Re..“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 도 자기 고향에



 

어느듯 팔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한 것은 없는데 가는 시간을 잡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을 가져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마음은 분주한데 딱히 보이는 결정체는 없는 것같은 그런 마음입니다.

그렇다고 무의미한 한달이 아니라 더 하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이지요.

사랑을 받은 만큼 더 큰 마음을 드리지 못한 그런 것이랍니다.

평화롭고 기쁜 주일인 어제는 비가 내렸습니다.

간만에 조용한 마음으로 평온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생각만해도 웃음을 주는 이들도 그려보았고 그들을 위해

제 시간도 내어놓으며 마냥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처럼 마음먹기에 달린게 맞나 봅니다.

아버지를 사랑함도~

그 사랑에서 오는 믿음도~

모두가 제 마음을 어떻게 다루냐에 딸려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넘치면 넘치는데로 아버지를 사랑하고

또 사랑을 채워가는 그런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할 때 삶이란 도화지에 이런저런 채색을 이용해

빛을 주고 살리며 희망을 그리지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마음을 주고 때론 마음을 다주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제 시간을 마다하진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절 이토록 사랑해 주시는데 하물며…….

그저 아버지의 사랑에 저를 묻고 살아가는 평온함속에 살아가는 의미를 찾습니다.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 가 아니라 사랑의 책임을 완수하며

스스로 기쁨과 행복의 삶을 설계해 가는 지혜를 배우며

저의 자리를 깨달아 간답니다.

그러고보면 아버지께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 가슴으로 아버지를 안기에 너무나 버겁지만 제가 안기려 하니

더 꼭 안아주시는 아버지의 체온을 알았기에 이렇게 평화로운가 봅니다.

오늘 말씀에서 희년을 선포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사랑의 은총이 시작됨인데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그 무리속에 저는 포함되지 않을까요?

말로는 멋있다 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그런 저는 아닌지요.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희년!

얼마나 기뻤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희년을 고향 나자렛에서 선포하심인데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

그러자 어떠한 예언자도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하시면서

사렙타 과부와 나아만의 얘기를 하자

그들은 도리어 화를 내면서 예수님을 벼랑으로 끌고 가 떨어 뜨리려 합니다.

왜 이방인인 그들이 나았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이

제 모습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모르고….

이방인일지라도 믿음이 있는 이라면 먼저 품에 안김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되새겨 봅니다.

총명한 고백속에 가슴은 비어있는

그런 형식의 노래를 바치는 게 제 모습은 아니었는지요.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라 하셨지만 부족한 전

아직도 그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예언자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잊고 사는 저는 아닌지요.

공동체속에서 함께 하는 봉사자들을 존경하고 받아들이며

그의 모습을 인정하는 그런 저였는지요.

그들이 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도 보잘 것없은 것을 하는

다른 공동체 사람을 더 인정하진 않았는지요.

한 울타리안에 있는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제가 무능한 것 같은 옹졸한 생각이

저를 어리석음으로 끌고 감을 모르고 그렇게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제가 누군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제 삶의 그릇은

더 영롱한 빛을 발함을 모르고

그렇게 어리석게 저를 지키느라 안간힘을 쓰면서

저를 힘들게 하진 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사랑을 주시려 하시는 아버지의 등을 밀려는 이의 모습으로……

입으로는 고백의 노래를 하면서 가슴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저를 보면서

새로이 다짐을 해 봅니다.

기쁨과 행복의 그늘을 만들어 주시는 아버지시지만

제가 그 그늘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뙤약볕에서 흘려야 할 아픔의 땀방울을 피할 수 없음을….

아버지의 사랑안에서 평화를 안고 살아가면서 말씀을 더 깊이 새기고

그 안에서 기쁨과 희망의 삶으로

늘 새로이 출발하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바라볼 것을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고향 나자렛으로 가시어 희년을 선포하십니다.

새로운 출발에로의 희망의 빛을 주시는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저를 보았습니다.

사렙타의 과부와 나아만의 예를 들어 말씀을 하심에

도리어 화를 내면서 아버지를 벼랑으로 끌고가 밀어뜨리려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저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이방인임이지만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을 고쳐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모습이 바로 제 모습은 아닌지요.

믿음이 있는 만큼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한 순간의 기적만을 바라면서 바로 옆에서 함께 하심에도

보지 못하는 저는 아니었는지요.

아버지!

언제 어디서든 아버지 사랑의 힘으로 희망으로 나아가는 삶이 되게 하소서.

저의 부족하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버지를 벼랑으로 밀어넣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시어

언제 어디서든 지혜로움속에 사랑의 힘으로

희망으로 나아가는 삶을 영위하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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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 도 자기 고향에에 1개의 응답

  1. 아리랑 님의 말:

    아멘!
    넉넉함
    샘지기님이 가진 너그러움을 주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하며 감사하고 비쁘게 찬미하는 모습에 감동을 합니다.
    그리고 샘지기님을 통해 보여 주신 의로우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여름에게 이별하는 달력의 오늘 좋은분과 함께 동네 앞산에 올랐습니다. 늦게 오르고 내려오는 사이 사이 꽃들과 나무들과 구름들과 바위들과 골짜기들과 벌들과 나비들과 살랑이는 바람들과 도청예정지의 집들과 축사의 가축들과 먼동네 가차운 동네 사이의 가로등 불빛들과 화려한 시내의 내온들과 거기서 울려나오는 음악소리들과 캄캄해 앞을 안보이는 어둠들과 그 위로 보이는 방긋운는 달님과 별님…..그로 하여금 주님은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2. 샘지기 님의 말:

    《Re》아리랑 님 ,
    아리랑님의 여유로움에서 잠시 머물러 봅니다.
    바쁜 시간중에 가슴을 펴고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는 것도
    사랑이 있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늘 그런 사랑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정말 멋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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