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과 따름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1. 말씀읽기: 루카14,25-33 버림과 따름 (마태 10,37-38)

2. 말씀연구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쉽다는 것은 내가 모든 것을 그분께 의지하고 모든 것을 맡겨 드릴 때입니다. 하지만 부족한 내 모습은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리지 못하게 합니다. 어떠한 이유가 되면 그 이유를 핑계로 그분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여행이나, 시험, 놀이 등이 항상 예수님을 앞서고 있습니다. 내 개인적인 일이나 성공 등이 항상 먼저입니다.

 그런 내 마음을 버려야 되는데 버릴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 버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따른다고 하면서 따르지도 않고, 버렸다고 하면서 버린 것이 하나도 없으니……,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뒤를 따르려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수난이 가까워 졌기에 군중들로 하여금 구원사업을 계승할 참된 제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갖도록 키우셔야만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려면 단순히 그분의 가르침이나 인격에 감탄하고 있다든가, 혹은 표면적으로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는 모자랍니다. 제자에게 필요한 것은 내적인 회개, 세속으로부터의 이탈, 참된 겸손,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성전에서 봉사하던 레위 지파의 조상 레위는 이렇게 행동했습니다.“그는 제 아비와 어미를 모른다면서, 제 동기도 외면하고 자식마저 모르는 체하면서, 하느님의 말씀만 따라 주신 계약을 지켰습니다.”(신명33,9). 어떠한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 가운데서 레위는 자기 자신이 성전과 율법과 계약을 지키기 위해, 지킬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투신 때문에 그는 가족에 대한 모든 의무를 이차적인 것으로 격하시켰습니다. 레위는 하느님께 봉헌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법과 계약이 그의 유일한 관심사였고, 그것들은 다른 모든 것보다 우위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가장 우선순위에 놓아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제자들의 유일한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법, 새로운 구원 질서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계시이고 진리이시며 다른 모든 것들은 한낱 그림자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구원은 오직 그분에게서만 발견될 수 있습니다.

 사랑에 눈이 멀면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면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다 받아들일 수 있고,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2차적인 것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불이 타오른 사람들이 바로 성인들 이십니다. 그래서 그렇게 온전히 예수님을 사랑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버림을 통해서 예수님을 모든 것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즉 다른 모든 것들은 이차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제 4계명(부모에게 효도하여라)을 폐기하려는 의향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루카18,19-20). 여기서 미워한다는 것은 셈족어의 표현으로서, 어떤 것을 의도적으로 이차적인 자리에 둔다는 것, 소홀히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노예나 탈주자 따위의 평판이 나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형벌,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명과 명예를 박탈당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완전히 파멸에 처해졌습니다(갈라티아 3,13).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나 이 모든 것을 견뎌 낼 각오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주님이시며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들어 높여지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본받아 자기 운명을 참아 받고 십자가를 받아들이며 목숨을 내걸 준비를 하는 것 입니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까지 참아 내겠다는 결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 두 가지.

하나는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니.

둘 중의 하나라도 해보고 싶지만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어찌할까? 내 처지를,

어찌할까? 내 마음을…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예수님께서는 탑을 세우는 것을 비유로 드십니다. 이 탑은 아마도 포도밭에 세워지는 탑일 것입니다. 이 탑은 포도밭에서 두 가지 용도로 쓰이게 됩니다. 할 일이 많이 있을 때는 숙소로, 그 외에도 연중 내내 감시대로 사용됩니다. 그 편편한 꼭대기에서는 포도밭을 훤히 볼 수가 있어서 도둑이나 강도의 침입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포도 재배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뭇가지로 엮은 작은 움막 대신에 자기 밭에 적합한 탑(망대)을 가지기를 꿈꾸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그런데 탑(망대)을 짓고자 한다면 당장에 벽돌공을 고용하고 필요한 자재 들을 구입하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먼저 자기 재산으로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확신이 있어야 만이 공사를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데 능력도 없는 사람이 망대를 짓겠다고 일꾼들을 불러 모았다면, 그러다가 돈이 없어서 품값도 못주고 말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비웃을 것입니다.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하고 말입니다.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이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버리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을 최우선으로 두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온전히 예수님께로 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계획이 있어야 하고,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넘어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주저앉아 버리는 이유는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시키면 열심히 할 때, 그 마음이 하느님께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마음이 가기만 하면 미사 열심히 나오고, 성경공부 열심히 하고, 회합 열심히 참석하고, 주변 형제  자매들과 깊은 친교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생을 예수님을 위해 살 수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호언장담 한다면 어떻게 말해 주겠습니까? 부자청년이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풀이 죽어서 갔던 것처럼, 모든 시련을 이겨 낼 자신이 없는 사람이 무모하게 도전을 하게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교나 수도원에서는 긴 기간 동안 수련 기간을 두는 것입니다. 내가 한 생을 이렇게 살 수 있을지, 내가 정말 원하는 길인지.



 굳은 마음만 있다면 그 마음에 예수님께서는 축복을 해 주십니다. 내가 어떤 능력이 있어서 예수님을 온전히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자들의 예를 들어본다면, 그분들은 끊임없이 기도했고,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그래서 순교의 영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마음들만 버린다면 내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는 또 한 가지의 예를 드십니다.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하십니다. 안되겠으면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데 싸워 이길 자신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리 계산을 해 봐도 상대방은 핵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소총 몇 자루 뿐 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싸움이 안 되는 싸움을 하면서 피를 흘릴 필요는 없습니다(물론 싸움이 안 되는 것 뻔히 알면서도 상대방의 전력을 과장시켜서 싸움을 걸고, 이겼다고 자랑하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으면서 위협하면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나라들도 있고요).

 자기 체면을 잃지 않기 위해 무모한 것을 시도하면 안 됩니다. 집에 빚이 많으면서도 성전건립기금으로 몇 억을 내겠다고 한다거나, 교무금을 너무 많이 내겠다고(이런 경우는 없겠지만^*^) 우기거나, 건강이 허락되지도 않으면서 외국으로 선교하러 나가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모한 시도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말로만 예수님의 제자는 될 수가 없습니다. 명예를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부족한 면이 있으면 부끄럽더라도 도움을 청하고, 준비를 충실히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첫 걸음이요, 그 첫걸음을 옮기는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것들을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 따르는 것.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한 걸음씩 주님께로 향해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주일 미사는 반드시 참례하고, 아침저녁 기도 열심히 하고, 레지오하고, 본당에서 기쁘게 봉사하기 위해서 내가 버려야 할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② 만일 지금 박해 시대고,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믿기에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배교”하면 살려주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글은 카테고리: TN-lectiodominus-C2, 복음 나눔(주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버림과 따름에 1개의 응답

  1. 샘지기 님의 말:

    세상에서 입었던 옷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옷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요. 경쟁, 비교, 우월감, 교만, 이기심…..
    그런 옷을 버리고 말씀으로 새옷을 지어입어야 하지요.
    하지만 과감히 버리지 못하고 껴안고 있기에 말씀을 멀리하고 관계에 집착하면서 세상에서의 힘을 얻기위해
    무리를 형성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 기도보다는 다른 것에 집착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사회단체가 아니라 봉사단체임에도 불구하고 맑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밝은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세상에서의 모습대로 한사람을 치기위해 이상한 말을 만들고 가지치기를 해 나갑니다.
    그렇게 잘려나간 이들은 다른 쪽을 잘릴까봐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요.
    만약 말씀으로 무장한 사람이라면 그 어떤 것도 감내했을 것입니다.
    그러지 못했기에 쉽게 좌절하고 지혜롭지 못한 행동으로 새옷을 입지 못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상의 떼로 얼룩진 옷을 스스로 태워버림과 동시에 새옷을 만들 준비를 하면서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힘이 생기고 의로운 이로 새로나게 되어 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모든 것에 열정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내 사업체를 일으키듯이…..

    ㅎㅎ 배교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배교한다고 하고 꽁꽁숨어서 다시 시작할려나요?
    사실 장담도 교만인 것같고 그렇다고 한번에 배교한다고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아버지를 버리라고 하는데 과연….
    제가 사랑하는 아버지를 저버리는 것은 못할 것 같기도….. ㅎㅎ 교만이지요?
    아버지니까요…

샘지기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