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여라

 

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여라

1. 말씀읽기: 루카16,9-13

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여라

하느님이냐, 재물이냐 (마태 6,24-24)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의 참모습



2. 말씀연구

 약은 집사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을 때, 회개하기”를 가르치십니다.“회개할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는 것”이것이 바로 슬기로운 사람의 처세술임을 알기를 바라십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 왔으니 그들은 슬기로운 사람들이고, 의인이라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바리사이들은 결국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지금의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앞가림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재빠르고도 영리하게 자기 앞가림을 하는 약은 집사(청지기)를 칭찬 하십니다. 그의 부도덕함을 칭찬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무 늦기 전에 자기 앞을 생각한 집사의 자세를 통해서 신앙인들도 너무 늦기 전에 회개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냥 이대로 있으면 하느님 나라에 가지 못하는 나. 어떻게든 방법을 구해야 합니다. 그동안 소홀히 한 사람들에게 잘 해주고, 열심히 생활 하고, 기도생활도 충실히 하고……,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불의한 재물(세속의 재물)은 부정한 수단으로 벌어들인 재산이란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재산에 집착하기 쉽고 또 악한 목적을 위해 쓸 수 있으므로  그것을 불의한 재물(세속의 재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세속의 재물(불의한 재물)로 부정하게 이 세상에서 친구를 만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사랑을 가지고 자기가 가진 것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베푼 일은 당신에게 베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이 되시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10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세상의 재물은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것은 가장 작은 것이며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큰 선물은 다가올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에 들 권리이며 새롭고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현세의 재물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작습니다. 그것은 나의 생명을 참으로 안전하게 해 줄 수 없을뿐더러 죽음을 물리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내 목숨을 한 순간도 늘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매달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작은 것(재물)을 올바로 관리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더 큰 것을(구원) 맡기실 것입니다.



11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현세의 재물(불의한 재물)은 남의 것 입니다. 언젠가는 내가 놓고 가야 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더 큰 것은 맡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재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12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또한 내가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아주 작은 관리하지 못한다면 나는 다른 아무것도 관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현세의 재물(불의한 재물)은 남의 것 입니다. 내가 가진 것 대부분도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내 것 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대로 휘두른다면, 결국 그것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습니다. 내 것과 남의 것은 대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내 집의 선풍기는 20년도 넘게 쓰지만, 성당의 선풍기는 2년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 재물로 세상의 친구를 사귈 수는 있지만 재물로 하느님께 구원을 보증 받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재물(남의 것)을 성실히 관리한다는 것은 세상을 재물을 섬긴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재물을 섬길 때 나는 하느님께로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탐욕스러운 자들로 여겨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과부들의 재산을 집어 삼킨다고 비난하셨습니다. 쿰란 공동체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그들은 오로지 잔치와 필요 이상으로 더 많이 가지는 데만 관심 있는 거짓말쟁이”라고 언급하였고, 랍비 요하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몸의 지체들은 마음에 달려 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다.”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사람이었지만 탐욕스러웠던 그들. 그들 스스로는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들 생각이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재산을 지니고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모두의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고, 그것이 자기네들에 대한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의 표시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재산, 명예들은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자기네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보를 살피시는 하느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밖에 알 수 없는 인간의 존경을 샀다고 하리라도 하느님께서는 결코 교만한 사람을 반기시지 않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가난을 저주로 여겼습니다. 부는 덕의 보답이요 가난은 죄의 벌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부에 집착을 하니 결국 하느님은 보이지도 않게 됩니다.

재물과 하느님.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요? 그런데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재물을 섬기는 일은 양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온 마음으로 당신께로 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재물도 인간이 온전히 자기만을 섬기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까요?



재물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재물을 가지고 생명으로 나가야 합니다. 재물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면 결국 하느님은 뒷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재물을 가지고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회복지 시설에 정기적으로 후원을 해 주고, 가난한 이들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느님을 섬기시겠습니까? 재물을 섬기시겠습니까? 지금 결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4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를 비웃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탐욕스러운 자들로 여겨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과부들의 재산을 집어 삼킨다고 비난하셨습니다. 쿰란 공동체는 그들을 “오로지 잔치와 필요 이상으로 더 많이 가지는 데만 관심 있는 거짓말쟁이”라고 언급하였고, 랍비 요하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몸의 지체들은 마음에 다렬 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가난을 저주로 여겼습니다. 부는 덕의 보답이요 가난은 죄의 벌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15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을 알고 계십니다. 사실 사람들 가운데서 높은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흉물입니다.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사람이었지만 탐욕스러웠던 그들. 그들 스스로는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들 생각이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재산을 지니고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모두의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고, 그것이 자기네들에 대한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의 표시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재산, 명예들은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자기네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보를 살피시는 하느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밖에 알 수 없는 인간의 존경을 샀다고 하리라도 하느님께서는 결코 교만한 사람을 반기시지 않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부정직한 집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낀 점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② 하느님과 재물은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재물을 섬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또 일, 놀이, 행사, 기타 취미 때문에 주일 미사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는 신앙인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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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여라에 1개의 응답

  1. 샘지기 님의 말:

    제 모습은 아닐런지요.
    세상에서의 관계는 중시하면서 자신의 것도 과감히 투자합니다.
    하지만 공동체에서 사목위원이나 단체장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을 내어놓기 보다는 공동체의 돈으로 생색을 내려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당당히 “사무실에 청구해” 라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아껴쓰기 보다는 더 풍족하게 쓰면서 생색을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사라면 집사라 할 수 있는데…..
    의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행함이 우선이건만 함께 수렁으로 빠지자고 손을 잡는 꼴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적이 있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 의무였나 봅니다.
    돈이 있어야 존중받는 줄로 착각하는 이들의 뒷모습은 너무나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아무리 재물이 있다한들 그것이 나를 끝까지 지켜주진 못함인데…..
    그것이 안타까워 깨우침을 주시지만 저만은 부정직한 집사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요.
    재물이 있고 그것을 잘 관리할 자격이 있다면 은총의 덤이 쏟아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르기에 세상의 샘으로 잔꾀를 부리며 나만이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이라 자칭 자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저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기 위해 의롭고 성실한 집사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하루살이 보다 못한 불행한 삶의 주인공이 아닐까 싶습니다.
    많고 적음이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변수는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손에 쥐어진 것이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훗날 아버지께 갔을 때 제게 남아있는 것이 무엇이냐가 중요함을 잊지 않아야 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그렇다고 지금 궁상스레 힘들게 살아야 한다는게 아니라 제가 가진 것을 사랑의 마음으로 내어놓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함이지요.
    어떤 사람이 시간을 쪼개서 교회에서 봉사를 하다보니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가게 되기 마련인데
    어떤 사람이 “미쳤어” 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듣기 좋다 내가 하느님께 미쳤으니 그만큼 나를 이뻐해 주시겠네” 라고 했다고 ….
    얼마뒤에 그리 말한 형제가 자신의 몸이 아파서 여기저기 병원을 두루 다니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교회에 나가면 나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가기 시작했답니다.
    몸이 좀 좋아진다고 새벽기도를 비롯해 아주 열심히 다니는 모습을 보고 “나보고 미쳤다고 했지? 당신은 돌았어” 라고 농담을 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 사람이 교회를 안나오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가봤더니 못나가겠다고… 왜 그러냐고 물으니 너무 돈 얘기를 하니까 싫다고 하면서 안나갈거라고 했답니다. 만약 또 아프면 그돈으로 병원갈거라고… ㅎㅎ
    성당이 아니라 교회분들의 이야기인데 내것을 내놓는 것엔 다 민감한가 봅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은 돈을 택했다고….
    웃으며 했던 이야기지만 뜨끔했습니다.
    한순간에 내 이익과 관련된다면 언제든 등을 보임이 남의 일만은 아닐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늘 깨어있는 마음자세로 정직하고 성실한 집사의 모습으로 의롭게 살아가리라 다짐해 봅니다.

    제가 먼저 영세를 받고 참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늘상 꼬투리가 되어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주일에 성당에만 간다고….
    놀러가자… 바람쐰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등등 늘 불만이었지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서 빠지지 않게 다 해나가되 순서를 정했습니다.
    그 첫번째가 남편이길 바라지만 그렇게 하다보니 우선순위가 무너지고 집안의 대소사도 엉키기 시작했습니다.
    모질게 생각도 되겠지만 자신의 기분대로 모든 것을 뒤섞었고, 나중엔 정신이 없어 저까지 혼동이 왔지요.
    한번이다 싶어서 제 주관대로 하면서 정말 몸이 힘들정도로 놓치는거 없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그렇게 하다보니 적당한 포기를 하게 되더군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함없는 신앙생활의 모습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성당을 다닐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같다면 사실 어려웠을 수도 있을겁니다.
    새벽에 기도하는 것이나 저녁에 묵상하는 것이나 매일미사에 참례하는 것이나 들쭉날쭉이 아니라 늘 같은 저의 일상이 되었던 것이 가장 큰 도움이었지요.
    기도하지 않았으면… 묵상하지 않았으면… 이런날이 제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인내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면 그가 아닌 제가 어둠에서 머물렀을테니까요.
    더도덜도 말고 그냥 아버지께 드리는 사랑의 마음으로 인사하고 수다떨고 합니다.
    제가 잘못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전 그렇거든요.
    그냥 아버지랍니다.
    하느님이라 부르기보단 그냥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의무가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는게 아니라 그저 효도하려는 자식의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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