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기다림의 기쁜 주일을 앞두고 첫눈이 내렸습니다.

비와 눈을 좋아하지만 아들을 군대보내고서는 좋은 마음이 없어졌지요.

근데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금요일날 첫휴가를 나온 아들이 지금 함께 하기에

첫눈의 여유로움을 살짝 즐겼습니다.

지금 이시간 친구들을 만나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들을 기다리며

두 개의 촛불을 밝히고 대림2주일의 회개를

가슴에 담아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릴 때엔 지루함보단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며

돌아올 이를 기다립니다. 기쁨과 행복으로….

아버지께서 오실 길을 미리 준비하러 온 세례자 요한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 비교도 안될 만큼 더하였겠만…

그는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선포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합니다.

가슴이 멍해짐을 느꼈습니다.

전 무엇을 하고 있는지요.

구원으로 나아가기에 합당한 옷을 마련하고 있는지요.

입지도 못할 세상의 옷을 들고서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저는 아닌지요.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회개를 통해 구원으로 나아가기 위해 깨어 기도하며

한땀한땀 엮어야 함인데 그리하고 있는지 반성해 봅니다.

환히 비추이는 촛불을 바라보면서도 변화되지 않는 저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골짜기는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지고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

모든 사람이 아버지의 구원을 볼 것이라 하였거늘

전 그 진리를 가슴에 담고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해 봅니다.

누군가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던져진 사랑의 빛덩이를

제 사랑의 바구니에 담고 모아모아서 더 큰 빛을 내야 함인데

과연 그리하였는지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의 성찰이기보다 오늘은 사랑하는 아들을 기다리며

가냘프게 흔들리는 촛불에서 제 작은 마음을 봅니다.

언제 어디에 있든 사랑의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저가 되어야 함을 새삼 새기면서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이는 바로 저임을

가슴깊이 담으렵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선택을 위해 늘 깨어 기도하렵니다.

말씀에서 성찰을 통해 새로날 것을 이 밤에 아버지께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아버지의 길을 미리 준비하러 온 요한!

아버지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고백하는 그의 겸손에

한없이 작아지는 저가 보입니다.

회개를 향한 제겐 어떤 새로운 변화가 있는지요.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몸과 마음이 함께 하면서

아버지앞에 머무는 시간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을 밝히고 있는지요.

아버지!

구원을 향해 나아간다고 말은 하지만 저의 교만이 세상의 옷을 걸치지 않게 하시어

성찰속에서 좀더 성숙한 저가 되어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구원을 향해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저가 되게 하소서.

겸손한 자세로 말씀을 실천하며 바룩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저 또한 슬픔과 재앙의 옷을 벗어버리고

아버지에게서 오는 영광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입게 하소서.

그리하여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아버지게 찬미드리며

구원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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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에 1개의 응답

  1. ^*^ 님의 말:

    참 멋진 표현입니다. “슬픔과 재앙의 옷”
    근디 지혜라는 것은 한 순간에 생기지는 않는 듯 합니다. ^*^
    의로움의 옷을 입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한데…

  2. 샘지기 님의 말:

    《Re》^*^ 님 ,
    지혜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갈망하는 자의 움직임에 실려지는 것이라 하셨지요?
    정말 멋진 말씀임을 새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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