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세례자 요한의 탄생 ”


 

기나긴 깨우침의 시간에서 풀려나는 즈카르야를 그려봅니다.

주님의 천사가 아기를 가질 것이라고 하자 즈카르야는 믿지 않았습니다.

때가 되어 일어날 일을 믿지 않았기에 벙어리가 되었던 즈카르야가

아들의 이름을 \’요한\’ 이라고 판에 적자,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면서

아버지를 찬미합니다.

깨우침의 시간!

그 시간을 보내면서 비로소 깨달았나 봅니다.

아버지의 계획을 …..

그 아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어느 것하나 우연은 아닌 것처럼 요한도

그렇게 아버지의 계획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저희를 구원하러 오실 이를 위한 길을 준비하러 그렇게 왔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인만큼 더 엄하게 키운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번의 기회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게 아니라 늘 깨우침의 시간을 주십니다.

저라면 그 기나긴 시간을 보내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깨우치기는 커녕

원망하면서 독을 품진 않았을런지요.

처음엔 \”왜 벙어리로 만들지? 그냥 두어도 나중엔 알텐데..\”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임을 …

예전 어렸을 적에 딱 한번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오냐오냐 하시는 아버지의 태도에 늘 불만이셨던 엄마는 어느날 빗자루를 들었습니다.

전 이유도 모르고 처음인지라 무서워 손을 들라는 데로 들고

아버지께서 오시기만을 기다렸지요.

어둑해서야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보니까 그냥 눈물이 흘렀고,

목이 메여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서러움이 복받쳐 호흡도 되지 않을 정도였답니다.

달려오셔서 찬물을 떠 먹이고 엄마에게 호통을 치셨지요.

근데 엄마는 물러나지 않았고 우선 저를 아랫방으로 데리고 가서는

이불을 덮어주면서 이유를 물었지요.

전 정말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저만 남겨놓고 조용히 나가셨습니다.

서러움에 복받쳐 울었던지라 잠이 들었었나 봅니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 되었고 제 곁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눈을 부비며 나갔더니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어느 누구도 저더러 밥을 먹으라는 말을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엄마 밥\”

하면서 올라갔더니 대답도 없고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조그만 아이가 팬티가 보일 듯 말듯한 치마를 입고 하얀 코신을 신고

엉거주춤하게 뜨락에 앉아 있으니 그 모습이 그렇게 웃겼다고..

그래서 저만 뺀 네식구가 웃었다고 합니다. 그 상황에서…

전 그것도 모르고 저를 비웃는 것 같아 또다시 화가나

방으로 들어가선 문을 잠그고 나오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방학때니까 다행이었지요. ㅎㅎ

어린 나이에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뭐가 그리 엄마를 화나게 했는지…

뭐였기에 제편인 아버지께서도 손을 쓸 수 없는 것인지를

그제서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해보니 제가 한 것중에 딱 한가지 걸리는게 있었습니다.

시커먼 가마솥의 온기가 남아있는 부뚜막에 술빵이 두 개 있었는데

그것을 먹은 것밖에는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비로소 알았습니다.

저희집은 무엇이든 하나가 있어도 똑같이 세등분을 해서 함께 먹게 하였는데

그날은 생각없이 제가 다 먹어버렸지요.

고개를 푹 숙이고 나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지요.

\”죄송해요. 제가 술빵 다 먹어서… 다른 사람은 다 먹은 줄 알았어요.\”

그 짧은 말을 하면서 참 서럽게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말에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가슴으로 엄마와 아버지는 저를 안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은 \”사랑하는 가족은 아무리 작은 것도 함께 있을 때

같이 나누어 먹는 거란다.

그래야 사랑이 넘쳐 어둠이 우리집을 덮지 못하지.\” 라고 ….

그땐 물론 깊이를 알지 못했지만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새삼 떠오르는 추억입니다.

제게 그런 시간을 주지 않았다면 제가 그것을 깨달았을 리가 없지요.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알지를 못했겠지요.

사랑이 그런 것인가 봅니다.

사랑하기에 깨달음의 시간을 주심이고 사랑하기에

저를 믿고 기다려 주시는 사랑의 인내를 새삼 가슴에 묻어봅니다.

말씀의 돋보기와 사랑의 체온으로 깨우침의 시간에서 늘 새로나는 저가 되렵니다.

그리하여 겸손한 자세로 의로운 길을 걷는 세례자 요한처럼

저도 더 열심히 기도하여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늘 말씀안에 머물면서 의로운 신앙인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입장이 되어 봅니다.

믿지 않았기에 요한을 낳을 동안 벙어리로 지내야만 했던 즈카르야가

판에다 \”그의 이름은 요한\” 이라고 씁니다.

그러자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고통의 시간속에서 깨우침을 얻었던 즈카르야의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못할 일이 없으신 아버지!

아버지의 계획을 실행하시기 위해 깨우침을 주시는데

부족한 저는 고통이라 힘들어 하면서 주저앉으려 하진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늘 의문의 꼬리를 붙이며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으로 손을 내뻗는 저는 아니었는지요.

모든게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님을 알면서도

그런 지혜를 깨닫지 못하는 저는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

늘 겸손한 자세로 기적이 기적이 아닌 사랑의 은총으로

언제든지 올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시어

제게 주어지는 작은 시련에서도 새로운 깨우침을 얻게 하시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하소서.

그런 변화속에 의로운 사람으로 거듭나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위해 살아가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이 글은 카테고리: TN-lectiodominus-C2, 복음 나눔(주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Re..“ 세례자 요한의 탄생 ”에 1개의 응답

  1. ^*^ 님의 말:

    ㅎㅎ
    영화의 한 편이 생각나는 것 같네요…^*^

^*^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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