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에파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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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에파타에 1개의 응답

  1. 샘지기 님의 말:

    영세를 받기전엔 조용히 돌아보기도 하였습니다.
    제 교만의 눈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세를 받고 전 새로남을 경험했습니다.
    장애인들을 보아도 사실 불편하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고 그들이 필요로 할 때 제 손을 내미는 아량도 생겼습니다.
    그들은 이미 그 몸에 자신을 맡겼기때문에 시간이 걸릴뿐입니다.
    근데 제가 보기 불편해서 사람들은 기다리지 않고 미리 내식대로 해주기도 합니다.
    기다려주는 인내와 배려가 그들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전 그들이 먹을 때까지 제가 맞춥니다.
    제가 먼저 손을 놓고 앉아있으면 그가 불편할테니까요.
    저도 언제 몸이 불편한 사람이 되어있을진 아무도 모르잖아요.
    저역시 그렇게 된다면 제가 끝낼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와 잔잔한 미소가 가장 큰 힘이 될듯합니다.
    사실 전 그들의 눈이 참 맑음을 영세를 받고 알았답니다.

    위에서 다룬 장애인이 바로 저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장애!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니 이것이 진정한 장애인이지요.
    마음을 닫은채 웅크리고 무언가 꼬투리를 잡으려 안간힘을 쏟는 어둠속에 머무는 장애인의 모습으로
    공동체에서 자리잡고 있는 저일수도 있으니까요.
    늘 저와 함께 계시는 아버지께서 “에파타” 라고 외치셔도 제가 듣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말씀안에서 머물며 그 안에서 힘을 얻어 저를 돌아본다면
    사랑이 스며들게 됨을 경험했습니다.
    적당한 유연성을 기르며 묵묵히 그자리를 지키는 모습도 필요하고
    아닌 것을 꺽으려 제 고집을 피우는게 아니라 지켜봐 줄 수 있는 인내를 안고 살아간다면
    더 많은 보석이 제안에 자리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며 그 사랑의 힘으로 움직이는 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말씀안에서 참으로 많은 보석을 얻게 되는데 경험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지요.
    내게 장애가 있거나 몸이 불편하다면 “뭐가 좋대” 라는 얘기에 귀가 솔깃하겠지요.
    진정 그렇거든요.
    내 장애를 치유하여 의로운 이로 당당히 설 수 있는 힘은 말씀인만큼 약해지는 나를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사랑안에서 건진다면 사랑의 은총을 안고 살아가는 삶으로 아버지를 전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2. ^*^ 님의 말:

    수덕생활이라는 것, 하느님께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는 것…어려운 발걸음 하나 하나 옮길 때마다 주님께서는 기뻐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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