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장마철 비오듯이 그렇게 웬종일 내렸지요.
비도 눈도 참 많이 좋아했는데 지금은 아니랍니다.
비와 눈이 오면 아들은 그만큼 힘들은 상황이니까요. ㅎㅎ
이러다가 아들이 제대하면 전처럼 비도 눈도 좋아하겠지요?
사람이 그런가 봅니다.
어제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봉사자가 분주한 발걸음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몇 번씩 분주히 다니더니 제의방으로 들어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일을 하였지요.
한숨과 음악소리… 그리고 쿵쾅거리는 소리에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순간 분심이 들면서 초조해 졌고,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어찌나 밉던지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그렇게 미운가?\’ 라는 생각이 온머리를 채웠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기도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저럴수 있을까 싶더군요.
그러면서 \”봉사하는 내 모습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70/80 음악이 흐르는가 싶더니 나중엔 신나는 생활성가가 나왔지요.
저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과연 그럴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서글픈 현실에 씁쓸한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성당안에서….
큰 계명을 잘 지키고 형식적인 전례에 모습을 드러내며 으쓱대는 것이
신앙생활의 표본이 아니라 작은 사랑실천이 먼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아버지께서는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처럼 위선에 빠지지 말라 하시지요.
의로움이 없는 형식에 사로잡힌 바라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을 넘어설 수 있어야
비로서 의인의 길을 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전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어제 그에 대한 미움이 제안에 가득한 것도 사실 저의 부족이지요.
어제 말씀에서 황금율에 대해 말씀하셨지요?
묵상할땐 지키고 있었던 저였는데 현실이 되자 또 한번 무너졌지요.
결국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저였습니다.
저의 입장에서 그를 생각하기보단 그저 있는 그대로 그를 받아들였더라면
괜스레 미움의 씨앗을 뿌리진 않았을 것을…
참 작은 것들로 상처를 주고 심지어는 상대의 등을 밀어내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제가….
아버지의 크신 뜻을 제가 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 울타리안에서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있으니….
그렇게 어려운걸까요?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게…
날씨만큼이나 서글픈 모습입니다.
그리고 얼마후 저녁 미사에 남편도 함께 갔었는데 그 봉사자를 문앞에서 만났습니다.
근데 외면하였습니다.
도리어 무안한 기분이랄까…. 괜히 성당에서 기도했나 싶어서..
남편이 그 모습을 보고 \”성당가서 기도하지마.\” 라고 하는데
가슴이 아프다 못해 쪼여왔답니다.
하지만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남편이 말을 바꾸더군요.
\”더 당당히 가서 해. 일년을 참았으면 이제 해도 될 것같다.\” 라고 했습니다.
왜 마음이 바뀌었냐고 물었더니 평화의 인사때
그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변했다고 합니다.
냉랭하게 외면하던 그가 미소지으며 온화한 척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누는데 정말 싫었다고…
배려가 그러한 그들의 위선을 더 키워주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속으론 미움을 퍼뜨린 격이 된 제가 얼마나 밉던지요.
차라리 얘기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하였습니다.
봉사자들이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미워하고 그로인해
자신이 더 작아짐을 불안해 하는 것같다는 남편의 말이
안타까운 현실을 말해 주는 듯 했지요.
그런 남편에게 오늘의 복음 말씀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가장 실현성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맘에서 내려놓지 않는한 한 형제라 부르면서
외면하는 위선의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겠지요.
먼저 손을 내밀고 마음을 내어준다는 것이…
사랑!
가장 최소한의 사랑이라도 있다면 화해라는 말을 필요치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저희 친정 아버지께서 사랑을 먹고 산 사람은
유난히 하얀 깨끗한 종이를 가지고 있는데 나중에 큰 재산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종이를 큰 사랑으로 가득채울 것이라고 하신 그 말씀이
오늘에서야 비로소 무슨 뜻인지를 알 것 같습니다.
결국은 저가 부족했다는 것이지요.
새하얀 종이를 가졌음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누어 주면 되는데 전 제것을 잡고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가 그 종이를 가지지 않았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했으면 되는 것인데…
작은 것을 행하지 못하는 저를 반성해 봅니다.
거창하고 드러나는 것은 잘 하려 온 신경을 다 쓰면서
작은 것엔 너무 무관심하고 막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결국 그것이 가장 큰 손실을 내는 것임을 모르고
바리사이들처럼 보이는 형식만을 실천하면서
모든 것을 다 잘하는 것처럼 교만하진 않았는지요.
그러고보니 정말 못났네요.
앞으론 사랑의 그물을 더 넓혀가려 다짐해 봅니다.
그들이 걸려들든 아니든 그저 열심히 사랑의 거미집을 만들다보면
얼떨결에 걸려 전염되겠지요.
아버지의 뜻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작지만 충실한 삶으로 아버지께 찬미드리렵니다.
제가 먼저 손을 내밀 때 결국 제가 사랑의 주사를 놓는 것임을 기억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진정 기뻐하시는 것은 악인의 죽음이 아닌
그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라 하신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
충실한 종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시며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처럼 위선에 빠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작은 것엔 소홀히 하면서 드러나고 보여지는 것에 충실하면서
형식을 살아가고 있는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은 아닌가 싶어
깊이 와 닿았습니다.
한 형제라 불리는 바로 옆에 있는 이들을 인정하지 않고
그를 있는 그대로 봐 주지 않으며 그의 모든 것을 질책이라도 하듯이
매정하게 외면한 적은 없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하는
차거운 이가 저는 아니었는지요.
아버지께로 나아간다면서 정작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저의 작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보이는 형식적인 것에 연연하면서 그것을 행한다고
가장 바람직한 신앙인인척 으쓱대며
기본중에 기본인 사랑을 안고 있지 않았던 저가 아니었는지요.
작은 연못에 돌을 밥먹듯 던지면서 아무도 찾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 곳에 화풀이를 한 저는 아니었는지요.
그러면서 그 작은 연못이 흇날 명소가 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저는 아니었는지요.
아버지!
아버지 앞에서 가장 작은 빛을 내는 저가 될 수 있게
사랑을 입고 먹으며 살아가게 하소서.
부족한 저이지만 큰 것에 매달리며 작은 것을 죽이는 이가 아니라
그 작은 것을 위해 저를 죽일 수 있는 아량을 가지고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살아감에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데로 살아 숨쉬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생각해 보니 “형제님, 자매님”이라는 말! 너무 쉽게 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마음에도 없으면서 형제자매를 부르고
마음에도 없으면서 웃어보이고
….
그 새하얀 종이가 온통 먹물로….
…
흐르는 맑은 개울물에 잘 씻어야겠습니다. ^*^
《Re》^*^ 님 ,
맞다. ㅎㅎ
흐르는 맑은 개울물에 잘 씻으면 되지요?
감사합니다. 늘 맑고 시원한 물을 주셨는데 그것을 그땐 깨닫지 못했지요.
그래서 어르신들이 “우리 작은 예수님” 이라고 부르셨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