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


 

큰 아들과 작은 아들!

제가 그런 상황에 있는 부모라면

제 몫을 가지고 떠났던 아들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또 큰 아들이라면 화를 내지 않고 동생을 말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저를 되돌아 봅니다.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라고 하면서 자신의 몫을 가지고 떠났던 그 아들이

모든 것을 다 탕진하고 돌아왔을때 달려가 아들의 목을 꼭 껴안고

입을 맞추어 주는 그런 부모가 될 수 있겠는지요.

감히 흉내도 못낼겁니다.

냉대하여 쫓아 보내지 않으면 다행이겠지요.

이런걸보면 아직 철들지 않은 저이지요? ㅎㅎ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저미게 다시 안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엔 끝이 없음을 새삼 되새기고 있답니다.

늘 가여워하시고~ 늘 안타까워 하시는 아버지!

그 어떤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의 죽음을 바라시는게 아니라

그가 회개하여 돌아오는 것을 바라시고 좋아하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가슴에 안은 채, 눈을 감아 보았습니다.

밖에서 고요를 깨며 내리는 빗소리가 그런 저를 위로라도 하듯 하염없이 내리고 있네요.

호부견자(虎父犬子)라 한다지요?

바로 저를 두고 하는 성어는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시간입니다.

훌륭한 아버지에 못난 아들을 두고 일컫는 말이라지만

아직 안개속에서 헤매며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저역시

그안에 해당되는 것은 아닐런지요.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하고 스스로 고백하는 모습을 바라시는 참 사랑이신 아버지신데

오늘을 살면서도 그것을 헤아리기는 커녕

헛된 욕망과 명예를 위해 달음질치는 저는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잘사는 듯 하지만

정작 회개하고 돌아오는 형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속내가 묻어있는 바리사이가

저는 아닐런지요. 큰아들처럼..

차라리 그렇다면 지금은 아버지의 곁을 떠날지라도

언젠가는 회개하여 아버지 품으로 다시 돌아오는 저가 되는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물론 품에서 벗어나지 않고 아버지의 맘을 헤아린다면 더 말할나위 없지만요…

그냥 그렇다는 거네요.

충실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착각이

저를 현대판 바리사이로 만들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겠지요?

아버지의 사랑!

그 사랑에 답하는 삶은 바로 회개임을 되새겨 봅니다.

미카 예언자가 이스라엘을 보살펴 주시기를 기도하지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를~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시기를 청하면서

아버지의 자비를 간구합니다.

그 모습처럼 저도 그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만약 그가 회개하여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온다면

기쁨으로 안아 주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저가 되려 더 깨어 기도하렵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금 아버지의 사랑을

감히 되집어 봅니다. 참 사랑이신 아버지의 그 사랑을

무엇으로 담을 수 있을런지요.

오늘 아버지께서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들어 깨우침을 주십니다.

자신의 몫을 가지고 나갔던 아들이 모두 다 탕진하고 회개하여 돌아오자

아버지께선 그를 꼭 안아 주십니다.

그러면서 함께 하지 않으려는 큰 아들에게 이리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라고…

늘 분주했지만 텅빈 가슴을 안고 아버지를 바라보는 제게 하시는 말씀이 되어

가슴 깊이 자리잡았습니다.

뜻을 거스르지 않고 잘 사는 저라는 착각속에 빠져

본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함께 하심에도 제가 느끼지를 못했고 저를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제가 깨닫지를 못했으면서….

비유의 상황에서 처럼 작은 아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정작 전 그 아들만도 못한 모습은 아닌지 되돌아 봅니다.

작은 아들은 회개하여 돌아왔지만

전 회개와는 너무나 무관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면서 다한것처럼 교만한 모습으로 기뻐하지도 않고 함께 하지도 않으면서

회개하여 돌아오는 이를 적대시한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

사랑이신 아버지를 가슴으로 안고 생활하게 하시어 부족한 저의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더 나은 내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여 회개의 삶속에서 기쁨을 함께 하고 누구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다면

먼저 달려가 안을 수 있는 저가 되게 하소서.

교만한 삶이 다인것처럼 착각하며 사는 저가 아니라

맘과 몸이 하나되어 아버지를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이 글은 카테고리: TN-lectiodominus-C2, 복음 나눔(주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Re..“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에 1개의 응답

  1. ^*^ 님의 말:

    제가 형이었다면 동생 무지 싫어했을 것 같습니다. 누구 시켜서 디지게 패 주지 않았을까요? ^*^

    얼마나 기도해야 그런 동생을 사랑할 수 있고, 또 얼마나 노력해야 아버지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2. 샘지기 님의 말:

    《Re》^*^ 님 ,
    솔직한 고백안에서 성숙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내가 되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지요?
    이젠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벌함이 아니라 더 꼭 안아주심을 느꼈거든요.
    그 사랑안에서 새로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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