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교황청과 프랑크왕국의 제휴
클로비스가 죽은 뒤 관습에 따라 왕국은 아들들에게 분할, 상속되었고 그 국가는 약체를 면할 수 없었다.
왕의 실권은 궁재(宮滓)에게 귀속되고, 그 중 한 사람인 카알 마르텔이 점차 국가령의 완전한 처분권을 행사하는 막대한 권한을 갖고 모든 세력 위에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에스파니아(스페인)에서 갈리아(프랑스)로 침입한 이슬람을 맞이하여 포아띠에 전투(732년)에서 승리함으로써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던 아를르와 아비뇽에서 그들을 추방하였다.
이탈리아에서 달려온 랑고바르디족의 후원을 받은 이 군사적 성공은, 서유럽과 교회발전에 결정적인 의의를 지니는 세계사적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
카알 마르텔의 아들 피핀3세는 메로빙왕조의 마지막 왕인 킬데릭2세를 폐위시키고 751년 프랑크 귀족들에 의해서 스스로 프랑크왕국의 국왕으로 선출되었고 보니파시오에 의해 도유(途油, 기름부음), 축성되었다.
피핀은 로마교회의 충고에 따라 국와에 즉위함으로써 프랑크왕국의 건설을 교회의 기반 위에 놓고자 하였다. 752년 랑고바르디족이 라벤나를 점령하고, 로마를 침공하여 함락을 위헙하고 있을 때 스테파노2세 교황은 프랑스왕국을 방문(754년)하여 교황청과 프랑크왕국과의 동맹을 체결하였다. 피핀은 교황에게 점령한 영토를 돌려주기도 약속하였다. 한편 교황은 피핀을 왕으로 도유하고 그에게 ‘로마의 보호자’라는 명예 칭호를 부여하였다.
이것은 로마교회를 보호할 임무가 비찬친에서 프랑크 왕에게로 넘어갔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어 피핀은 랑고바르디족을 격퇴시키고(756년), 정복한 지역과 중부 이탈리아를 교황에게 기증하였다. 이로써 교황이 세습 군주로서 통치하는 교회국가(교황령) 건설의 기초가 이루어졌다.

2-1. 교황청과 프랑크왕국의 제휴
클로비스가 죽은 뒤 관습에 따라 왕국은 아들들에게 분할, 상속되었고 그 국가는 약체를 면할 수 없었다.
왕의 실권은 궁재(宮滓)에게 귀속되고, 그 중 한 사람인 카알 마르텔이 점차 국가령의 완전한 처분권을 행사하는 막대한 권한을 갖고 모든 세력 위에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에스파니아(스페인)에서 갈리아(프랑스)로 침입한 이슬람을 맞이하여 포아띠에 전투(732년)에서 승리함으로써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던 아를르와 아비뇽에서 그들을 추방하였다.
이탈리아에서 달려온 랑고바르디족의 후원을 받은 이 군사적 성공은, 서유럽과 교회발전에 결정적인 의의를 지니는 세계사적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
카알 마르텔의 아들 피핀3세는 메로빙왕조의 마지막 왕인 킬데릭2세를 폐위시키고 751년 프랑크 귀족들에 의해서 스스로 프랑크왕국의 국왕으로 선출되었고 보니파시오에 의해 도유(途油, 기름부음), 축성되었다.
피핀은 로마교회의 충고에 따라 국와에 즉위함으로써 프랑크왕국의 건설을 교회의 기반 위에 놓고자 하였다. 752년 랑고바르디족이 라벤나를 점령하고, 로마를 침공하여 함락을 위헙하고 있을 때 스테파노2세 교황은 프랑스왕국을 방문(754년)하여 교황청과 프랑크왕국과의 동맹을 체결하였다. 피핀은 교황에게 점령한 영토를 돌려주기도 약속하였다. 한편 교황은 피핀을 왕으로 도유하고 그에게 ‘로마의 보호자’라는 명예 칭호를 부여하였다.
이것은 로마교회를 보호할 임무가 비찬친에서 프랑크 왕에게로 넘어갔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어 피핀은 랑고바르디족을 격퇴시키고(756년), 정복한 지역과 중부 이탈리아를 교황에게 기증하였다. 이로써 교황이 세습 군주로서 통치하는 교회국가(교황령) 건설의 기초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