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를 중심한 실체기대

  ㄴ) 여후수아를 중심한 실체기대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로써 가나안으로 복귀하려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민수기 20장 1~13절1)) 외적으로는 사탄이 침범했지만, 르비듬 반석 샘물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는 그대로 샘물을 내어 이스라엘에게 먹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위에서도 밝혀 온 바와같이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서빌에 대한 또 하나의 노정을 보여주셨다. 즉 이스라엘 민족 중, 사탄 세계인 애급에서 출생하여 광야노정에서 불신으로 돌아갔던 외적인 이스라엘에 속하는 사람들은, 정탐 40일을 믿음으로 세웠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반석샘물을 마시고 성막을 받드는 광야생활 가운데서 출생한 내적 이스라엘만이, 모세 대신의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다(민수기 32장 11~12절2)).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면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잔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민수기 27장 18~20절3))고 하셨다.


 여호수아는 정탐 40일기간에 불신으로 돌아갔던 온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모세가 세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위에 굳게 서서, 변함 없는 믿음과 충절로써 성막을 위한 기대를 조성하고 끝까지 그것을 받들었던 오직 두 사람 중의 하나였다. 이와같이 비록 모세는 불신으로 돌아갔으나, 석판과 성막과 법궤는 여전히 여호수아가 세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후수아를 모세의 대신으로 세우시고, 그 내적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에게 복종하여 그와 함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게 하심으로써, 반석 샘물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고, 이 섭리에 의하여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감으로써, 거기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가지고, 제3차 노정의 여호수아를 중심한 실체기대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여호수아)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가나안으로) 건너가서 네(모세)가 볼 당을 그들로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신명기 3장 28절4))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후수아에게도 “모세와 함께 있떤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여호수아 1장 5~6절5))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미디안광야생활 40년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찾아 세웠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시어 이스라엘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고 명령하셨던 것과 같이(출애굽기 3장 8~10절6)), 하나님은 광야에서 표루하는 40년을 오직 믿음과 충성으로 찾아 세운 여후수아를 모세 대신으로 부르시어,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여호수아 1장 2절)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가, 백성의 유사들을 불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러한 뜻을 전하였을 때(여호수아 1장 10절7)), 그들은 여호수아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여호수아 1장 16~18절8))라고 대답하면서, 그들은 죽기를 맹세하고 여호수아를 따라갈 것을 결의하였다. 이와같이 모세의 사명을 대신하고 나선 여호수아는, 초림때의 사명을 계승 완성하러 재림하실 예수님을 상징하였다. 따라서 모세노정을 탕감복귀하는 여호수아의 노정은, 예수님의 영적 복귀의 노정을 영 육 아울러 탕감복귀해야 할 그의 재림노정에 대한 표시적인 노정이 되는 것이다.


 모세가 제2차 노정에서 가나안 땅에 정탐으로 보냈던 열 두 사람이 있었다(민수기 13장 1~2절9)). 그들 중 오직 충성으로 그 사명을 완수한 두 사람의 심정의 터전 위에서, 여호수아는 다시 두 사람의 정탐을 여리고성으로 보냈다(여호수아 2장 1절10)). 그리하여 여리고 성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두 정탐인은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던이다”(여호수아 2장 24절11))라고 믿음으로 보고하였던 것이다. 이 때에 광야에서 출생한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모두 그 정탐인의 말을 믿었으므로, 이것으로써 과거에 40일 정탐을 뜻맞게 세우지 못한 선조들의 죄를 탕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내적 이스라엘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선 여호수아에게 순종할 것을 죽음으로써 맹세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여호수아와 함께 그 기대 위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그들은 반석 샘물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로써, 제2차 노정에서 3대기적과 10재앙으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었던, 모세를 중심한 그들의 선조들과 같은 입장을 복귀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거너기 전에 3일노정을 찾아 세웠던 것과같이,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도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3일 조정을 찾아 세웠던 것이다(여호수아 3장 2절12)). 한편 제2차 노정에 있어서 3일노정을 지난 이스라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홍해까지 인도하였던 것과같이,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그들이 3일노정을 마친 후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표상된 예수님과 성신의 상징적 실체인 법궤가 그들을 요단강까지 인도하였던 것이다(여호수아 3장 3절13), 여호수아 3장 8절14)).


 그리고 모세를 인도하던 지팡이에 의해서 홍해가 갈라졌듯이, 여호수아를 인도하던 법궤가 요단강의 물 위에 서자, 언덕에 넘치던 요단의 흐름이 갈라져서(여호수아 3장 16절15)), 따라온 이스라엘은 육지와 같이 강을 건너게 되었다(여호수아 3장 17절16)). 지팡이는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하나의 표시체였고, 두 석판과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는 법궤는 예수님과 성신의 상징적인 실체였었다. 그러므로 법궤 앞에서 요단강의 물이 갈라지고, 이스라엘이 평탄하게 가나안 땅으로 복귀하였다는 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과 성신 앞에 몰로 표시된 이 죄악세상(요한계시록 17장 15절17))이 선 악으로 분립되어 심판을 받은 후, 모든 성도들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오나성하게 될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 때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 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 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여호수아 4장 2~3절18))고 하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정월 10일에 요단강에서 올라와서, 여리고의 동편 지경인 길갈에 진을 치고 요단강에서 가져온 열 두 돌을 거기에 세웠었다(여호수아 4장 2019)절).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미리 보여주신 것인가 ? 이미 논한 바와 같이 돌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상징한다. 따라서 12지파를 대표한 열 두 사람이, 법궤로 인하여 물이 갈라진 요단강 가운데서 열 두 돌을 받들었다고 하는 것은, 장차 12지파의 대표형으로 부름을 받을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이 죄악세상이 선악으로 갈라질 때, 그 곳에서 예수님을 받들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들이 열 두 돌을 받을었다가 가나안땅의 안정된 진에 한데 모아 놓았을 때, 여호수아는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여호수아 4장 24절20))고 말하였다. 이것은 장차 돌로서 오시는 예수님을 모시는 열 두 제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한 곳에서 하나로 뭉쳐야만,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를 완성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영원히 찬양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야곱이 가는 곳마다 돌단을 쌓았던 것과 같이, 야곱의 열 두 아들의 후손인 열 두 지파의 대 표들도 열 두 돌을 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의 제단을 쌓아 앞으로 성전을 건축할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니,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힘을 합하여 예수님을 성전으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후일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되지 못하였을 때에,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한복음 2장 19절21))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과연 12제자는 하나 되지 못하고,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으므로, 성전된 예수님이 십자가로써 헐렸다가 3일만에 부활하시어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모은 후에야, 그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들어 영적인 성전으로 모시게 되었고, 또 재림하신 후에야 실체성전으로 모실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하여 제2차노정을 출발할 때, 그 해 정월 14일 유월절을 지나고 진군하였던 것과 같이(출애굽기 12장 17~18절22)길갈에 진을 쳤던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도 그 해 정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굳게 닫힌 여리고의 성벽을 향해 진군을 하였다. 땅에서 난 것을 먹기 시작하자 40년간이나 내려주시던 만나도 그쳤으므로, 그 때부터는 인간의 땀으로 된 곡식으로 생활해야만 되었으며, 사탄 도성의 최후의 관문을 뚫는데 있어서도 인간으로서 할 책임을 다해야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4만의 병사가 선두에 서고, 그 뒤를 따라 일곱 제사장이 일곱 나팔을 불면서 행진하고, 또 그뒤는 레우지파의 제사장들이 멘 법궤(여호수아 3장 3절23))가 따랐으며, 맨 뒤에는 이스라엘 전군이 연달아 진군하였던 것이다(여호수알 6장 8~9절24)).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이스라엘은 이러한 행군으로 하루에 한 번씩 6일이나 성을 돌았어도 그 성엔 아무런 변동도 없었다. 그들은 인내와 복종으로 사탄의 침범을 당한 6일의 창조기간을 탕감복귀해야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순종으로 6일을 찾아 세운 후, 제7일에 일곱 나팔을 부는 7명의 제사장이 성벽을 일곱 번 돌면서 7회의 나팔소리를 끝내고 여호수아가 백성을 향하여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고 호령하자, 백성들이 이에 응하여 일제히 큰 소리로 외치니 그 성이 곧 무너졌었다(여호수아 6장25)). 이러한 노정은 장차 예수님의 권능과 그의 성도들에 의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가로막혀 잇는 사탄의 장벽이 무너질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성벽은 다시 쌓아서는 아니 될 것이었으므로, 여호수아는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 계자를 잃으리라”(여호수아 6장 26절26))고 말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거침없이 적을 공격하게 된 여호수아는 벧호론 싸움에서의 19왕과 메롬격전에서의 12왕을 합하여 모두 31왕을 멸하였으니(여호수아 12장 9~24절27)), 이것도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이방의 왕들을 전부 굴복시키시고 그 백성들을 포섭하여 통일된 지상천국을 건설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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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를 중심한 실체기대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ㄴ) 여후수아를 중심한 실체기대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로써 가나안으로 복귀하려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민수기 20장 1~13절1)) 외적으로는 사탄이 침범했지만, 르비듬 반석 샘물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는 그대로 샘물을 내어 이스라엘에게 먹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위에서도 밝혀 온 바와같이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서빌에 대한 또 하나의 노정을 보여주셨다. 즉 이스라엘 민족 중, 사탄 세계인 애급에서 출생하여 광야노정에서 불신으로 돌아갔던 외적인 이스라엘에 속하는 사람들은, 정탐 40일을 믿음으로 세웠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반석샘물을 마시고 성막을 받드는 광야생활 가운데서 출생한 내적 이스라엘만이, 모세 대신의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다(민수기 32장 11~12절2)).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면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잔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민수기 27장 18~20절3))고 하셨다.

     여호수아는 정탐 40일기간에 불신으로 돌아갔던 온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모세가 세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위에 굳게 서서, 변함 없는 믿음과 충절로써 성막을 위한 기대를 조성하고 끝까지 그것을 받들었던 오직 두 사람 중의 하나였다. 이와같이 비록 모세는 불신으로 돌아갔으나, 석판과 성막과 법궤는 여전히 여호수아가 세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후수아를 모세의 대신으로 세우시고, 그 내적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에게 복종하여 그와 함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게 하심으로써, 반석 샘물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고, 이 섭리에 의하여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감으로써, 거기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가지고, 제3차 노정의 여호수아를 중심한 실체기대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여호수아)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가나안으로) 건너가서 네(모세)가 볼 당을 그들로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신명기 3장 28절4))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후수아에게도 “모세와 함께 있떤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여호수아 1장 5~6절5))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미디안광야생활 40년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찾아 세웠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시어 이스라엘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고 명령하셨던 것과 같이(출애굽기 3장 8~10절6)), 하나님은 광야에서 표루하는 40년을 오직 믿음과 충성으로 찾아 세운 여후수아를 모세 대신으로 부르시어,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여호수아 1장 2절)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가, 백성의 유사들을 불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러한 뜻을 전하였을 때(여호수아 1장 10절7)), 그들은 여호수아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여호수아 1장 16~18절8))라고 대답하면서, 그들은 죽기를 맹세하고 여호수아를 따라갈 것을 결의하였다. 이와같이 모세의 사명을 대신하고 나선 여호수아는, 초림때의 사명을 계승 완성하러 재림하실 예수님을 상징하였다. 따라서 모세노정을 탕감복귀하는 여호수아의 노정은, 예수님의 영적 복귀의 노정을 영 육 아울러 탕감복귀해야 할 그의 재림노정에 대한 표시적인 노정이 되는 것이다.

     모세가 제2차 노정에서 가나안 땅에 정탐으로 보냈던 열 두 사람이 있었다(민수기 13장 1~2절9)). 그들 중 오직 충성으로 그 사명을 완수한 두 사람의 심정의 터전 위에서, 여호수아는 다시 두 사람의 정탐을 여리고성으로 보냈다(여호수아 2장 1절10)). 그리하여 여리고 성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두 정탐인은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던이다”(여호수아 2장 24절11))라고 믿음으로 보고하였던 것이다. 이 때에 광야에서 출생한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모두 그 정탐인의 말을 믿었으므로, 이것으로써 과거에 40일 정탐을 뜻맞게 세우지 못한 선조들의 죄를 탕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내적 이스라엘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선 여호수아에게 순종할 것을 죽음으로써 맹세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여호수아와 함께 그 기대 위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그들은 반석 샘물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로써, 제2차 노정에서 3대기적과 10재앙으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었던, 모세를 중심한 그들의 선조들과 같은 입장을 복귀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거너기 전에 3일노정을 찾아 세웠던 것과같이,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도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3일 조정을 찾아 세웠던 것이다(여호수아 3장 2절12)). 한편 제2차 노정에 있어서 3일노정을 지난 이스라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홍해까지 인도하였던 것과같이,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그들이 3일노정을 마친 후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표상된 예수님과 성신의 상징적 실체인 법궤가 그들을 요단강까지 인도하였던 것이다(여호수아 3장 3절13), 여호수아 3장 8절14)).

     그리고 모세를 인도하던 지팡이에 의해서 홍해가 갈라졌듯이, 여호수아를 인도하던 법궤가 요단강의 물 위에 서자, 언덕에 넘치던 요단의 흐름이 갈라져서(여호수아 3장 16절15)), 따라온 이스라엘은 육지와 같이 강을 건너게 되었다(여호수아 3장 17절16)). 지팡이는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하나의 표시체였고, 두 석판과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는 법궤는 예수님과 성신의 상징적인 실체였었다. 그러므로 법궤 앞에서 요단강의 물이 갈라지고, 이스라엘이 평탄하게 가나안 땅으로 복귀하였다는 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과 성신 앞에 몰로 표시된 이 죄악세상(요한계시록 17장 15절17))이 선 악으로 분립되어 심판을 받은 후, 모든 성도들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오나성하게 될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 때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 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 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여호수아 4장 2~3절18))고 하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정월 10일에 요단강에서 올라와서, 여리고의 동편 지경인 길갈에 진을 치고 요단강에서 가져온 열 두 돌을 거기에 세웠었다(여호수아 4장 2019)절).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미리 보여주신 것인가 ? 이미 논한 바와 같이 돌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상징한다. 따라서 12지파를 대표한 열 두 사람이, 법궤로 인하여 물이 갈라진 요단강 가운데서 열 두 돌을 받들었다고 하는 것은, 장차 12지파의 대표형으로 부름을 받을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이 죄악세상이 선악으로 갈라질 때, 그 곳에서 예수님을 받들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들이 열 두 돌을 받을었다가 가나안땅의 안정된 진에 한데 모아 놓았을 때, 여호수아는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여호수아 4장 24절20))고 말하였다. 이것은 장차 돌로서 오시는 예수님을 모시는 열 두 제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한 곳에서 하나로 뭉쳐야만,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를 완성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영원히 찬양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야곱이 가는 곳마다 돌단을 쌓았던 것과 같이, 야곱의 열 두 아들의 후손인 열 두 지파의 대 표들도 열 두 돌을 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의 제단을 쌓아 앞으로 성전을 건축할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니,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힘을 합하여 예수님을 성전으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후일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되지 못하였을 때에,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한복음 2장 19절21))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과연 12제자는 하나 되지 못하고,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으므로, 성전된 예수님이 십자가로써 헐렸다가 3일만에 부활하시어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모은 후에야, 그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들어 영적인 성전으로 모시게 되었고, 또 재림하신 후에야 실체성전으로 모실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하여 제2차노정을 출발할 때, 그 해 정월 14일 유월절을 지나고 진군하였던 것과 같이(출애굽기 12장 17~18절22)길갈에 진을 쳤던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도 그 해 정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굳게 닫힌 여리고의 성벽을 향해 진군을 하였다. 땅에서 난 것을 먹기 시작하자 40년간이나 내려주시던 만나도 그쳤으므로, 그 때부터는 인간의 땀으로 된 곡식으로 생활해야만 되었으며, 사탄 도성의 최후의 관문을 뚫는데 있어서도 인간으로서 할 책임을 다해야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4만의 병사가 선두에 서고, 그 뒤를 따라 일곱 제사장이 일곱 나팔을 불면서 행진하고, 또 그뒤는 레우지파의 제사장들이 멘 법궤(여호수아 3장 3절23))가 따랐으며, 맨 뒤에는 이스라엘 전군이 연달아 진군하였던 것이다(여호수알 6장 8~9절24)).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이스라엘은 이러한 행군으로 하루에 한 번씩 6일이나 성을 돌았어도 그 성엔 아무런 변동도 없었다. 그들은 인내와 복종으로 사탄의 침범을 당한 6일의 창조기간을 탕감복귀해야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순종으로 6일을 찾아 세운 후, 제7일에 일곱 나팔을 부는 7명의 제사장이 성벽을 일곱 번 돌면서 7회의 나팔소리를 끝내고 여호수아가 백성을 향하여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고 호령하자, 백성들이 이에 응하여 일제히 큰 소리로 외치니 그 성이 곧 무너졌었다(여호수아 6장25)). 이러한 노정은 장차 예수님의 권능과 그의 성도들에 의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가로막혀 잇는 사탄의 장벽이 무너질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성벽은 다시 쌓아서는 아니 될 것이었으므로, 여호수아는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 계자를 잃으리라”(여호수아 6장 26절26))고 말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거침없이 적을 공격하게 된 여호수아는 벧호론 싸움에서의 19왕과 메롬격전에서의 12왕을 합하여 모두 31왕을 멸하였으니(여호수아 12장 9~24절27)), 이것도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이방의 왕들을 전부 굴복시키시고 그 백성들을 포섭하여 통일된 지상천국을 건설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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