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소화 데레사

 

성녀 소화 데레사



성인명 데레사(Teresa)

 축일 10월 1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수녀, 교회학자 

 활동지역 리지외(Lisieux)

 활동연도 1873-1897년 

 같은이름 테레사, 테레시아 


  



   프랑스 북서부 바스노르망디(Basse-Normandie)의 알랑송(Alencon)에서 시계 제조업을 하던 루이 마르탱(Louis Martin)과 젤리 게랭(Zelie Guerin)의 아홉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성녀 테레사(Teresia, 또는 데레사)의 원래 이름은 마리 프랑스와즈 테레즈 마르탱(Marie Francoise Therese Martin)이며, \’소화(小花) 테레사\’라고도 부른다. 그녀는 4살이 채 못 되어 어머니를 여의었고, 아버지와 함께 오빠가 사는 리지외로 이사를 하였다.



   성녀는 어릴 적부터 특히 성모 마리아 신심에 출중했다. 7살 때부터 고해성사를 즐겨 받았고, 10살 때인 1883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석 달 동안 심하게 알았는데, 때로는 경련과 환각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의식을 잃기도 하였다. 그녀는 ‘미소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 성모님께서 미소 지으면서 이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테레사는 1884년에는 첫영성체를 하고 그 얼마 후에는 견진성사를 받았다.



   1886년 성탄 전야 미사 직후 ‘완전한 회심’을 체험한 그녀는 자신의 영혼 안에 애덕이 넘쳐 드는 것을 체험하였고, 또한 이웃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잊어야 할 필요를 깨달았다고 한다. 며칠 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그린 상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영혼 속에서 불타오르는 열망, 즉 다른 영혼들을 돕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머무르며 필요한 영혼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성혈을 전해 주기로 결심하였다. 성탄절에 회심의 은총을 체험한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삶을 자신의 소명으로 깨달았다.



   하느님을 위해 고통당하고 죄인의 회개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열망을 지닌 테레사는 14세에 리지외의 맨발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기를 청하였다. 이 카르멜 수녀원에는 이미 테레사의 두 언니, 마리(Marie)와 폴린느(Pauline)가 입회해 있었다. 그러나 그 수녀원에서는 테레사에게 21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통보하였다. 테레사와 그녀의 아버지는 교구의 주교에게 입회를 청하기도 하였고, 또 아버지와 언니 셀린느(Celine)와 함께 로마를 순례하면서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게 개인적으로 수녀원에 입회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하기도 하였다. 이때 교황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입회하겠지” 하고 대답하였는데, 그녀가 1888년 4월 9일 리지외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한 것은 나이 15세 때였다.



   그 후 24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9년 반 동안 테레사의 수도원 생활은 지극히 평범하였다. 다른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성격이 까다롭고 질투심 많은 곤자가의 마리아(Marie Gonzague) 원장수녀에 의해서 생긴 공동체의 내부 분열로 고통을 당하였다. 테레사는 수도원 내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들을 멀리하고, 자신의 기도생활에 열중하였다. 수도원 규칙에 충실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작은 직무들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그녀가 이룬 하느님과의 친밀감과 충실성은 그녀의 자서전이 출판되기 전에는 그 어느 수녀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1893년 테레사는 수련장 서리로 임명되어 4년 간 직무를 수행하였다. 이 시기에 그녀는 ‘작은 길’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영성을 갖고 살았다. 그녀의 ‘작은 길’에는 새로운 것은 없다. 오히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상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 걸어야 하는 길인 것이다. 그것은 어떤 삶의 방법이 아니라 영혼이 하느님 앞에 서서 지니는 가장 순수한 태도를 의미한다.



   죽기 18개월 전에 처음으로 결핵의 증세가 나타났지만, 죽기 얼마 전 병상에 눕기까지 테레사는 수녀원의 기본 의무들을 충실히 지켰다.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의 시련을 겪었으며, 1897년 9월 30일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죽은 일 년 후 카르멜 수녀회의 통상 관습대로 그녀의 자서전이 비공식적으로 출판되어 여러 카르멜 수녀원에서 읽혀졌고, 이 자서전을 요구하는 부수가 점차 늘어나자 공식적으로 이를 출판하였다. 그 후 15년 동안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에 수백만 권이 넘게 보급되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난 테레사에 대한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이 반응을 ‘폭풍과 같은 열광’이라 불렀다. 그래서 시성을 위해서는 적어도 사후 50년을 기다려야 하는 교회 관례를 무릅쓰고, 교황 비오 11세는 테레사가 죽은 지 28년이 지난 1925년 5월 17일 ‘아기 예수의 성녀 테레사’로 선포하였다.



   테레사는 로마를 순례한 것 외에는 고향인 알랑송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러나 일평생 다른 영혼을 위해 보속하는 삶을 살았기에, 교황 비오 12세는 그녀를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ianciscus Xaverius)와 더불어 ‘선교 사업의 수호자’로 선포하였고, 1944년 5월 3일에는 성녀 잔 다르크에 이어 프랑스의 제2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1997년 6월 10일 성녀 테레사를 보편교회의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그녀가 남긴 저서로는 “성녀 소화 테레사 자서전”, “성녀 소화 테레사의 마지막 남긴 말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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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sponse to 성녀 소화 데레사

  1. user#0 님의 말: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 동정-포교 사업의 수호자, 소화데레사  

     

    프랑스의 알랑송에서 태어난 성녀 데레사(1873-1897년)는 어린 나이에 리지외에 있는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가 겸손과 복음적 단순성과 하느님에 대한 굳은 신뢰심을 익히고, 말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며 이 같은 덕행을 수련자들에게 가르쳤다. 데레사 성녀는 죽기까지 영혼들을 구원하고, 교회를 새롭게 하고, 선교 지역에서 신앙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데에 온 힘을 다하였으며, 1925년에 시성되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24년의 짧은 생애(1873-1897년)를 살았지만 겸손하고 온유하였으며 꿋꿋하고 위대한 영혼을 지녔다. 그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에 자신을 오롯이 바쳤고, 그를 온통 휘감았던 어둠 가운데서도 순명 정신으로 주님께 충실하였다. 그러기에 그는 처음 각혈을 하였을 때, 주님과 만날 때가 다가왔다는 예고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믿음과 희망의 절정에 이르렀다. 그는 1897년 9월 30일 숨을 거두면서 말하였다. “오, 저의 하느님,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그는 이 사랑 때문에 그토록 열렬한 선교 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알랑송 시절부터 가족들과 함께하였던 리지외 시절과 15세(1888년)에 가르멜 수녀회에 입회하기까지 줄곧 따른 “작은 길”은 참된 복을 향한 참으로 힘겨운 발걸음이었다. 겉으로는 맥없어 보일 수 있는 데레사의 삶에서, 우리는 아주 강한, 그러면서도 성령의 활동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불타며 하느님 아버지를 발견하고 황홀해하는 한 영혼을 발견한다. 데레사에게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날개를 펴 깃 뿌리에 어린 새끼들을 태워 데려가는”(신명 32,11) 독수리와 같은 분이시다. 데레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작은 길”을 따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어머니 팔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작음을 깨닫고,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베푸시는 자비에 자신을 내맡기라고 오늘도 우리에게 웃음짓는다.



    “나는 모든 황홀한 환시보다도 숨은 희생의 단조로움을 선택합니다. 사랑을 위해서 핀 한 개를 줍는 것이 한 영혼을 회개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리지외의 봉쇄 수녀원에서 숨어 살던 갈멜 수녀인 예수 아기의 데레사가 한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숨은 희생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영혼을 회개시켰던 것이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성인들 가운데서 이 젊은 수녀보다 더 유명한 사람들은 얼마 안된다. 그녀의 자서전과도 같은 ‘한영혼의 이야기’는 전세계에서 읽혀지며 사랑을 받고 있다.

    데레사 마르탱은 15세에 수녀원에 들어가 24세가 되던 1897년에 세상을 떠났다.

    갈멜 수녀원에서의 생활은 참으로 평온 무사한 것이었고 주로 모든 집안 일을 하는 것이었다. 데레사는 시간을 구속한다는 거룩한통찰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시간은 따분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은밀한 고통 안에서 구원의 고통을 보았으며 그 고통은 참으로 그녀의 사도직이 되었다. 데레사는 “영혼을 구하고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하여 갈멜수녀원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죽기 얼마 전에 “나는 지상에서 선행을 하면서 나의 천국에서 지내고 싶다.”고 썼다.


    데레사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소금’이라는 말과 그 이미지에 대하여 많이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위험하리만큼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되었고 성취욕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하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데레사는 다른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기를 원했고 자신의 밖에 있는 어떤 것을 하려

    했으며 조용한 사랑의 행위로써 자신을 잊으려고 애썼다. 데레사는 우리가 생명을 잃으면 그 생명을 얻고, 땅에 떨어진 씨앗이 살기 위해서는 썩어야 한다는 복음적인 역설을 실지로 살아간 위대한 본보기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현대인들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동료들과 떼어 놓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유리되게 만든다. 현대인은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을 배워야 하며, 자신의 밖으로 자신을 끌어 낸 하느님을 관상하며 자신의 궁극적인 표현으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을 다시 배워야 한다. 이것이 리지외의 성녀데레사가 지닌 직관이며 그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더 가치있는 것이다.


    인용 ; 성녀 데레사는 일생 동안 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어렸을때 데레사는 석 달 동안이나 병석에 누어 있었는데 그 어려운 고비를 겪고 의식을 잃어 정신이 계속 희미했다. 그 후 그녀는 계속 허약했으나 그래도 수녀원의 식당과 세탁실에서 힘든 일을 했다. 데레사는 심리적으로 신앙의 빛이 모두 꺼진 것처럼 보이는 끝없는 어둠의 시기를 겪었다. 데레사는 그녀의 생명이 다해 가던 마지막 해에는 폐결핵으로 서서히 탈진되었다. 그래도 죽기 얼마 전인 9월 30일 그녀는 “아직도 나는 고통을 덜 받았다.”고 중얼거렸다. 데레사는 참으로 장한 여인이다. 그녀는 결코 자신의 병과 고통을 하소연하며 운 적이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을 아는 한 위인의 위대한 점이다. 허약함과 병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 대한 봉사와 구원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하느님의 연금술이기도 하다. 데레사가 선교의 수호자가 된 것에 대하여 이상한 점이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의 고통을 사랑 안에서 받아들이는 사람들 이외에 누가 참으로 세상을 회개시키겠는가?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 동정녀의 자서전」에서

    (안응렬 역, 1975년, 가톨릭 출판사 pp.229-230)


    어머니이신 교회의 마음속에서 저는 사랑이 되겠습니다


      묵상할 때 이 간절한 원이 순교에 못지 않은 고통이 되어서, 무슨 대답을 찾을 양으로, 성 바을로의 서간집을 폈습니다. 고린토 전서 12장과 13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거기에는 모든 이가 한꺼번에 사도와 예언자와 학자 등 여러 가지가 될 수 없다는 것, 교회는 여러 가지 지체로 이루어 졌다는 것, 그리고 눈은 동시에 손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대답은 분명하였지마는, 제 원이 채워진 것은 아니었고, 평화가 온 것도 못되었습니다. 성녀 막달레나가 텅빈 무덤가에 안아 줄곧 굽어보다가 마침내 그가 찾던 것을 발견했던 것같이, 저도 제 허무의 깊은 속까지 저를 낮춤으로 몹시도 높이 올라가 제 목적에 다다르게까지 되었습니다. 저는 실망치 않고 그대로 읽어 나가다가 이 구절에서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여러분은 더 큰 은총의 선물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내가 이제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사도께서는 어떻게 되어서 아무리 완전한 특은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지를 설명하시고, 천주께로 확실히 가기 위해서는 애덕이 가장 훌릉한 길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십니다.

      마침내 저는 안정을 찾았습니다. 성교회의 신비체를 살펴보니, 성 바울로께서 설명하신 아무 지체에서도 저를 찾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아니 오히려 모든 지체에서 저를 찾아내고자 하였습니다. “애덕” 이 제 “성소” 의 열쇠를 주었습니다. 저는 만일 교회가 여러 가지 지체로 이루어진 육신을 가졌다면, 모든 기관 중에 제일 필요하고 제일 귀한 것이 그에게는 없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였습니다. “교회에는 심장이 있고, 이 심장에는 사랑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교회의 모든 지체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 사랑이 꺼질 지경에 이른다면, 사도들은 복음을 더는 전하지 못할 것이고, 순교자들은 피를 흘리려 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은 모든 성소를 포함한다는것, 즉 한 말로 말해서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너무도 미칠 듯이 기쁜 중에 부르짖었숨니다. 오 제 사랑이신 예수여! 제 성소를 마침내 찾았습니다. 제 성소는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제자리를 찾아냈습니다. 천주여, 이 자리를 제게 주신 이는 바로 당신입니다. “어머니이신 교회의 마음” 속에서 저는 “사랑” 이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되겠습니다. 이래서 제 꿈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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