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디오니시오(Dionysius)


 

성인명 – 디오니시오(Dionysius)

축일 – 10월 9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판사,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아레오파고(Areopagos)

활동연도 – +1세기

같은이름 – 디오니시우스, 디오니씨오, 디오니씨우스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는 사도행전 17장 23-34절의 기사에 나오는 인물이다. 사도 바오로(Paulus)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대한 설교를 아테네(Athenae)의 아레오파고(군신의 언덕) 법정에서 행하였을 때, 그에게 호감을 가졌던 인물이 많았다. 그들 중에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 판사와 다마리스라는 여자는 후일 사도 바오로에 의하여 개종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특히 코린토스(Corinthos)의 성 디오니시우스의 말씀에 따르면, 판사 디오니시우스가 아테네의 첫 주교가 되었으며, 또 그는 95년의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화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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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디오니시오(Dionysius)에 1개의 응답

  1. 햇살가득 님의 말:

    성디오니시오 주교와 동료 순교자(258 ? 년 순교)

    투르의 성 그레고리오에 따르면, 디오니시오는 3세기 중엽 로마에서 프랑스로 왔다고 한다. 파리의 초대 주교가 되었고, 파리 근교에서 두 동료 사제들과 함께 순교했다.

    프랑스의 수호 성인인 이 순교자는 전통적으로 파리의 초대 주교인 디오니시오였다고 한다. 그이 명성은 한 전설에서 전해지고 있는데 특히 파리에 있는 성디오니시오 대수도원 성당과 그를 연관시키고 있다. 가장 믿을 만한 가설은 디오니시오가 3세기에 로마에서 골 지방

    으로 파견되어 그곳에서 258년에 있었던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에 참수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전설에 따르면 몽마르트르-순교자들의 산-에서 순교한 뒤에 파리의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그의 머리를 가져갔다고 한다. 6세기 초 성녀 제노베파는 디오니시오의 무덤 위에 대성당을 건축했다.

    또다시 우리는 그분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지만 그에 대한 공경이 수세기 동안 교회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온 성인을 맞이했다. 우리는 이 성인이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새겨 놓은 깊은 인상은 뛰어나게 성스러운 그의 생활에서 연유한 것이 틀림없다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모든 경우에 근본적인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위대한 인물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신의 생애를 바쳤으며 교회는 결코 그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지니신 영원한 관심에 대한 인간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순교는 꿋꿋한 신앙에 의한 죽음으로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순수한 형태로 드러내는 한, 교회 본질의 일부이다. 한편 죽음으로도 꺾이지 않는 신앙은 모든 인간사의 반대 감정이 병존하는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교회의 성덕은 순교를 통하여 순전히 주관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따라 그것이 필요로 하는 눈에 보이는 표현을 얻는 것이다. 2세기라는 초창기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이나 그리스도교 윤리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마르티르(Martyr)라 하여 존경했다. 이 증거자란 성서에 있는 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충실한 증거자”(묵시1,5;3,14)라 한다. (칼 라너, Theological Dictio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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