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명 – 발프리도(Walfrid)
축일 – 10월 12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요크(York)
활동연도 – 634-709년
같은이름 – 발프리두스, 발프리드, 빌프리도, 빌프리두스, 빌프리드, 왈프리도, 왈프리두스, 윌프리도, 윌프리두스, 윌프리드
영국의 노섬브리아(Northumbria) 태생인 성 발프리두스(Walfridus, 또는 발프리도)는 린디스파른(Lindisfarne)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리옹(Lyon)과 로마(Roma)에서 수년 동안 지냈다. 그는 북부 영국의 켈트족(Celts) 전례를 반대하는 로마 교회의 비타협적인 지지자로서 귀향하였고, 664년의 휘트비(Whitby) 회의에서는 로마파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 후 요크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캔터베리의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9월 19일)로부터 강한 반대를 받아 착좌하지 못하였다.
678년 성 테오도루스가 그와 아무런 의논도 없이 요크 교구를 둘로 나누었을 때, 그는 노섬브리아로 갔다가 국왕 에그프리드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그 후 그는 색슨(Saxon) 지방으로 피신하여 그 지방의 복음화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성 발프리두스는 당대의 위인이었으며, 유능하고 용기 있는 분으로서 또 정치와 교회 쌍방에서 큰 인물로서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는 빌프리두스(Wilfridus)로도 불린다.

요크의 성 발프리도(Walfrid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