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명 – 요한(John)
축일 – 10월 17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은수자
활동연도 – +5세기
같은이름 – 요안네스, 요한네스,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이집트의 바스타(Basta) 태생인 성 요한 콜로부스(Joannes Colobus)는 젊어서부터 스케트 사막에서 혼자 살다가 성 포에멘(Poemen)의 제자가 되었다. 성 요한은 일생 동안 순종과 겸손 그리고 최대의 엄격한 생활을 하였다 그 후 그는 베르베르족(Berbers)들의 약탈을 피하기 위하여 퀄줌(Quolzum) 산에 정착하여 여생을 지냈다.

케페스트라노의 성요한 사제(1386-1456)
축일:10월 23일
1386년 이탈리아의 가페스트라노에서 태어났다. 페루지아와 나폴리에서 수학하고 유명한 판사가 되었다. 백성들이 소요 중에 포로가 되었다가 기적적으로 풀려 나오고 깊은 신앙적 위기를 겪고 나서 프란치스꼬회에 입회하기로 결심했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와 절친한 사이로서 그와 함께 자기 수도회의 쇄신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이단자를 대적하고 또한 회교도에 대항할 십자군을 독려하면서 온 유럽을 두루 다니면서 설교했다. 바쁜 생활 중에서도 많은 저서들을 남겼다. 1456년 10월 23일 오스트리아의 일로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스도교의 성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낙관적인 사람들로 전해진다. 악의 현존과 그 결과를 외면하지 않고 그들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에 맡긴다. 그리스도를 통한 회개의 힘은 죄인들에게 뿐 아니라 비극적인 사건까지 확대된다. 14세기에 태어났다고 상상해 보자. 인구의 삼분의 일에 가까운 신자들과 성직자들의 40퍼센트가 흑색 죽음에 휩쓸려 갔다. 동시에 서방의 대분열은 교황이라고 자칭하는 두세 명이 교회를 갈라 놓았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중이었으며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도 계속 싸우고 있었다. 당시의 문화와 시대 정신이 암흑이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이 없다.
요한은 아퀼라 지방의 카페스트라노에서 1386년에 태어났다. 그는 철저한 교육을 받았으며 그의 재능과 성공 또한 대단했다. 그는 26세에 페루자의 총독이 되었다. 말라테스타스와의 전투 후에 감옥에 갇힌 그는 자신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기로 결심했다. 결국 30세가 되었을 때 프란치스코회 수련자로 들어간 그는 4년만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의 설교는 종교적인 무관심과 혼란의 시기에서도 수많은 군중을 끌어들였다. 그와 12명의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은 중부 유럽국가들에서 하느님의 천사들처럼 영접되었다. 그들은 죽어 가는 신앙과 신심을 되살리는 데 도구가 되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자체가 성프란치스코의 규칙에 대한 해석과 실천을 놓고 혼란에 빠졌다. 요한의 끊임없는 노력과 그의 전문적 법률 지식을 통하여 이단적인 ‘프라티첼리(Fraticelli)’는 사라지고 ‘신성함(Spiritualis)’이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는 데 방해를 받지 않게 되었다.
그는 희랍 교회 및 아르메니아 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애썼으나 불행히도 사소한 진전밖에는 이루지 못했다. 터키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을 때 그는 유럽을 방어하기 위한 십자군 모집을 설교할 사명을 받았다. 바이에른 지방과 오스트리아에서 약간의 호응을 얻은 그는 헝가리에서 그의 모든 노력을
기울이기로 결심하고 자신도 벨그라드에 군대를 이끌고 갔다. 요한 유냐디 대장의 지휘하에 그들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벨그라드의 포위를 풀었다. 카페스트라노의 요한은 마음과 몸이 전쟁으로 지쳐 있었기 때문에 전쟁의 부산물로 생겨난 전염병에 쉽사리 희생되고 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은 1456년 10월 23일이었다.
요한의 전기 작가인 요한 호퍼는 이 성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브뤼셀회를 상기시키는데 그 회는 완전한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생활문제를 해결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조직의 표어는 자율적으로 조직하고 활동한다는 세 가지 말로 되어 있다. 이말은 요한의 생활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었다. 그는 잠시라도 주저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깊은 그리스도교적 낙관주의는 그리스도께 대한 깊은 신앙심에서 생겨난 신뢰로 온갖 것, 전쟁 문제까지 다루었던 것이다.
빌라흐의 헝가리 도시에 있는 성인의 무덤에는 총독이 이런 메시지를 새기게 했다. “이곳은 카페스트라노 출신으로, 온갖 찬사를 받아 마땅한 사람
인 요한의 무덤이다. 그는 신앙의 선구자이며 옹호자이고 교회의 파수꾼이며, 자기 수도회의 열성적인 보호자이다. 또한 그는 온세계의 장식이며 진리와 정의의 애호가이고 생활의 모범으로 가장 확실한 교리의 인도자이다. 헤아릴 수 없는 말로 찬양받을 그분은 천상에서 복을 누리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실제적이고 성공적인 낙관주의자에게 적합한 비문이다.
가페스트라노의 성 요한 사제의 「성직자들의 거울」에서
(Pars Ⅰ, Venetiae 1580,2)
덕망 있는 성직자의 생활은 빛과 확신을 가져다 줍니다
주님의 식탁에로 부름을 받은 이들은 칭송받을 만한 윤리생활의 모범으로 환히 빛나야 하고 온갖 악행의 더러움과 불결을 떨어 버려야 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소금처럼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 품위 있게 살고 빛나는 사려와 분별력으로 세상의 빛처럼 다른 이들을 비추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탁월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사도들과 제자들에게뿐만 아니라 그들의 후계자들인 사제와 성직자들에게도 전하신 다음 말씀을 깨닫도륵 해야 합니다.”너회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데도 쓸데없어 밖에 내버려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그러나 악행의 매로 더럽혀져 쇠사슬로 묶인 채 나쁜 표양을 주는 사악한 성직자들이 다른 이들에 의해 흠사 아주 더러운 흙처럼 짓발히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유익한 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 그레고리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생활로 봐서 멸시받아 마땅한 자는 그의 설교도 멸시받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기 교회를 잘 지도하는 사제들 특히 설교와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사제들은 두 갑절의 영예를 받아 마땅합니다. 거룩한 사제들은 두 갑절의 영예 즉 직무로 인한 영예와 자기 인격에 기초하는 영예, 세상의 영예와 영적인 영예, 그리고 일시적인 영예와 영원한 영예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로서, 사라져야 할 다른 피조물처럼 자연의 제약에 예속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영원하신 임금님의 마음에 드는 슬기로운 봉사자가 되기 위해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지극히 높으신 하늘로부터 세상을 밝히는 태양이 솟아오르듯이 성직자들은 자신들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사람들이 그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해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빛이 자기 자신을 비추기 위해서 된 것이 아니라 그 빛 줄기를 주위에 퍼뜨려 보이는 것을 빛나게 하는 것처럼, 의롭고 정직한 성직자들의 빛나는 생활도 자신의 거룩함의 광명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빛과 확신을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을 지도할 의무를 진 사람들은 자기를 통해서 다른 이들이 하느님의 집에서 어떻게 생활해 나가야 하는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