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체칠리아(Cecilia)


 

성인명 – 체칠리아(Cecilia)

축일 – 11월 22일

성인구분 – 성녀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연도 – +230년?

같은이름 – 세실리아, 쎄실리아, 카이킬리아, 케킬리아

 여러 필사본으로 전래된 성녀 체칠리아(Caecilia)의 순교록은 5세기 중엽에 기록되었다. 그 전승들에 의하면, 그녀는 로마 원로원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면서 평생 동정을 지킬 것을 서약하였다. 성녀 체칠리아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이교도인 성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4월 14일)라는 귀족 청년과 결혼하였으나, 결혼식이 끝난 후 그에게 자신은 동정 서약을 하였으며 천사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음을 말하였다. 성 발레리아누스는 그 천사를 보게 해 주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래서 성녀 체칠리아는 그를 교황 성 우르바누스 1세(Urbanus I, 5월 25일)에게 보내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도록 하였다. 세례를 받고 돌아온 그는 백합으로 장식된 관을 쓴 두 천사가 성녀 체칠리아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결국 그녀의 동정서약에 동의하였다. 또한 그의 동생인 성 티부르티우스(Tibrutius, 4월 14일)도 후에 천사를 보고 세례를 받았다.

 성 발레리아누스와 성 티부르티우스 형제는 그때부터 신앙생활과 자선활동에 전념하다가 행정관인 알마키우스(Almachius)의 미움을 사서 체포되었다. 그들은 신전에 제사를 바치라는 행정관의 강요를 거절하여 심한 매질을 당한 후 로마 근교 파구스 트리피오에서 성 막시무스(Maximus, 4월 14일)와 함께 참수되었다. 성 막시무스는 성 발레리아누스와 성 티부르티우스가 보여준 그리스도께 대한 굳은 신앙을 보고 감화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가 순교하였다.

 성녀 체칠리아(Caecilia)는 이 세 명의 순교자들을 장례지낸 다음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당하였다. 그녀는 용감하게 알마키우스와 논쟁하였으며, 행정관은 도저히 그녀의 신앙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하자 사형을 언도하였다. 사형 방법은 그 당시 흔히 사형수에게 적용된 것으로 욕실에 가두어 쪄서 죽이는 가혹한 형벌이었다. 목욕실에 가둔 지 24시간이 경과하였어도 성녀 체칠리아가 죽지 않자 목을 베어 죽이기로 다시 결정하였다.

 그러나 형리의 서툰 솜씨로 목을 베인 후에도 성녀는 3일 동안이나 숨이   붙어 있다가 순교하였다고 한다. 성녀 체칠리아에 대한 공경은 수세기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보편화되었고, 그녀의 행적들이 수많은 전설이 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순교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성 티부르티우스를 비롯한 다른 성인들이 세베루스 알렉산데르(Severus Alexander, 225-235년 재위)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고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녀의 순교 연대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성녀 체칠리아는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이다. 그 이유는 원치 않았던 결혼식 때 성녀 체칠리아는 결혼 음악과 환호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고, 오히려 내심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행적에 근거한 것이다. 그래서 성녀는 음악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전해졌다. 1584년 로마에 음악원이 세워졌을 때 성녀는 이 학원의 수호자로 지칭되었고, 이후 성녀 체칠리아를 교회 음악의 수호자로 공경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성녀의 문장은 오르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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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체칠리아(Cecilia)에 1개의 응답

  1. 11월22일 님의 말:

    <두번째 그림> – 로마에 있는 60여개의 카타콤바 중 가장 중요하고 규모가 큰 칼리스토 카타콤바의 성녀 체칠리아 무덤 모습입니다. 체칠리아 성녀는 오른쪽 어깨를 땅에 댄 채 옆으로 쓰러져 있는데, 목에는 도끼 자국이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남편과 시동생을 개종시켰다는 이유로 순교를 당한 체칠리아는 원래 뜨거운 수증기로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으나, 하루가 지나도 죽지 않아 도끼로 세 번이나 내리쳤으나 목이 잘리지 않고 사흘 동안 목숨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죽는 순간에도 오른손 세 손가락으로 삼위일체를 나타내고 있는 성녀 체칠리아는 음악의 수호성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성녀의 유해는 그녀가 살던 트라스테베레에 세워진 성 체칠리아 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너른 평지 아래 2세기 중엽 로마의 귀족인 체칠리아 가문에 속하는 장지에서부터 시작되어 3세기 초에 로마 교회의 직할 묘지가 된 칼리스토 카타콤바가 있습니다. 교황 성 제피리노(Zephyrinus, +217년)는 아피아 가도(Via Appia)의 묘지를 관리하던 칼리스토 부제에게 이 카타콤바의 관리를 위임하였고, 칼리스토 부제는 모든 신자들이 합당하게 묘지를 쓸 수 있도록 관리하였습니다. 후에 제피리노 교황을 승계하여 교황이 된 성 칼리스토는 이 카타콤바를 대대적으로 확장하였고, 이 묘지는 그의 이름을 따서 칼리스토 카타콤바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2006년 5월에 찍은 사진입니다. – <로마 칼리스토 카타콤바의 성녀 체칠리아 무덤>

  2. user#0 님의 말: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230 ? 순교)

    축일:11월 22일

    5세기에 로마에서 체칠리아라는 이름을 지닌 대성당이 건립되었다. 성녀의 수난기에 기초하는 그에 대한 공경심이 널리 전파되었다. 이 수난기에서 성녀는 동정성을 보존하여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에 순교한 그리스도인 여성의 완전한 본보기로 나온다.


    체칠리아는 로마의 순교자들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이지만 그녀에 대한 이야기들이 정확한 자료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초대 교회가 그녀에게 바친 영예에 대한 흔적은 아무것도 없다. 4세기 후반의 단편적인 기록이 그녀의 이름을 딴 교회를 언급하고 있고 그녀의 축일은 적어도 545년에 와서 경축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체칠리아는 발레리아노라는 로마인과 약혼한 높은 신분의 젊은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영향으로 발레리아노도 개종하고 그의 형제와 함께 순교했다. 체칠리아의 죽음에 관한 전설은 칼로 그녀의 목을 세 번이나 친 뒤에도 3일 동안이나 살아 있다가 교황에게 자기 집을 교회로 바꾸어 주기를 청하고 죽었다고 한다.

    문예 부흥기 이후 그녀는 흔히 비올라나 작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다른 착한 그리스도인처럼 체칠리아도 마음 속으로, 때로는 소리를 내어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그녀는 훌륭한 음악이 전례의 내적 요소이며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교회에 크나큰 가치가 있다는 교회의 확신의 상징이 되었다. 오늘날과 같이 교회 음악의 혼란 상태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몇 마디 말을 상기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부제들이 보좌하고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전례의식을 노래로 성대히 집전할 때, 그 전례 의식은 더욱 고귀한 외양을 갖춘다. …성가대가 부단히 육성되어야 하는 바, 특히 주교좌 성당에서 그렇다. 그와 동시에 주교들과 기타 영혼의 목자들은 노래로 거행되는 어떠한 전례 의식에 있어서든지, 모든 신자들의 무리가 그들에게 속한 부분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힘써 돌보아야 한다. …성교회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로마식전례의 고유한 성가로 인정한다. 따라서 같은 조건이라면 이 성가가 전례 행위(의식)에서 첫 자리를 차지한다. 다른 종류의 교회음악 특히 다음곡(多音曲)도 전례 의식의 정신과 부합하는 한, 전례 집전에서 결코 배척되지 않는다. …신심 행사 중에나 바로전례 의식 중에라도 신자들의 소리가 울릴 수 있도록, 종교적 대중 가곡을 적극 장려하여야 한다.(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113-118항)


    성 아우구스띠노 주교의 「시편 주해」에서

    (Ps 32, sermo 1,7-8: CCL 38,253-254)


    주님께 멋진 노래를 부르고 기쁨의 노랫가락을 읊으십시오


      “비파로 주님께 감사 드리며, 십현금 맞추어 읊조리어라. 새로운 노래 불러 찬미하여라.” 새 노래를 알게 되었으니 낡은 것을 벗어 버리십시오. 새사람, 새 계약, 새 노래. 새 노래는 낡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새 노래는 새 사람들만 즉 은총을 통해 낡은 것에서 새로워져 하늘 나라의 새 계약에 속하는 사람들만 배웁니다. 우리의 모든 사랑은 이 하늘 나라를 갈망하고 새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입으로써가 아니라 생활로 부르도록 합시다.

      “주님께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멋진 가락을 읊으십시오.” 우리 각자가 자신에게 물어 봅시다. “어떻게 하느님께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부르십시오. 그러나 음에 맞지 않게 부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주님은 당신 귀에 거슬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형제들이여, 멋진 가락을 읊으십시오. 누가 당신보고 음악 전문가 앞에서 그의 마음에 들도록 노래하라고 한다면 음악 기교에 대해 별 준비가 없는 당신은 그 전문가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노래할 때 벌벌 떨 것입니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음악 전문가는 잘 인식하고 비평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위대한 음악 평론가이시고 만사를 일일이 살펴보시며 만사를 잘 들으시는 하느님 앞에 가서 훌륭히 노래부를 자신감을 지닌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당신은 그렇게도 완전한, 귀에 거슬리지 않는 멋진 노래를 부를 기교를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주님은 당신에게 다음 노래의 기교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가사 즉 당신의 내적인 정감을 알려 주는 듯한 그런 말들을 찾는 데에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쁨의 노랫가락을 읊으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깨 있어 훌륭히 노래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기쁨의 노랫가락을 읊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마음으로 노래하는 것을 언어로써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추수할 때나 포도를 거둘 때나 어떤 일을 열심히 할 때 노래하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 즐거움을 어떤 가사로써 표현하지만, 그 다음에는 감흥이 고조되면 말로써는 그 즐거움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가사없는 가락으로 감흥을 털어 버립니다. 이것은 기쁨의 노랏가락을 읊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기쁨의 노랫가락은 마음이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표출하게 하는 가락입니다.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께가 아니라면 이 기쁨의 노랫가락은 누구에게 더 마땅히 읊을 수 있겠습니까? 실상 당신이 말로써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분은 표현 불가능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당신이 말로써 표현은 못해도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면 기쁨의 노랫가락을 읊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있겠습니까? 그때 마음은 말의 도움 없이 기쁨으로 펼쳐져 그 기쁨의 광대함은 말의 한계를 넘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멋진 노래를 부르고 기쁨의 노랫가락을 읊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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