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명 –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Stanislaus Kostka)
축일 – 8월 15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신비가
활동지역 – 폴란드(Poland)
활동연도 – 1550-1568년
같은이름 – 스따니쓸라우스, 스타니슬라우스, 쓰따니쓸라오, 코스트가
폴란드 로스트코보(Rostkovo) 성에서 태어난 성 스타니슬라우스 코스트카(또는 스타니슬라오)는 폴란드 원로원 의원의 아들이었다. 그는 개인교수로부터 교육을 받고 14세 때에 비엔(Vienne)의 예수회 대학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근면과 신심 그리고 고행으로 유명하였고 또 수 차례에 걸쳐 환시를 보았다. 그래서 그는 예수회 회원이 되고자 했으나 비엔의 관구장은 너무 어린 나이 등을 들어 반대하였다. 그러자 그는 집을 몰래 빠져나와 순례자의 복장을 하고 당시 독일의 예수회 총장인 성 베드로 카니시우스(Petrus Canisius, 12월 21일)가 있는 딜링엔(Dillingen)까지 350마일을 걸어가 입회를 청하였다.
성 베드로 카니시우스는 그가 비록 17세의 어린 소년이었지만 착실하고 열성적인 모습에 반해 입회를 허락하고 로마(Roma)의 수련소로 보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1567년에 예수회에 입회한 그는 더욱 엄격한 고행을 하였고, 미사 중에 자주 탈혼하였으며, 거룩한 삶을 살다가 예수회 수련자로서 단지 9개월을 지낸 뒤 사망하였다. 그는 1605년 10월 19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시복되었고, 1726년 12월 31일 폴란드의 수호성인으로서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첫번째 그림은 성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의 죽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