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현의 차이, 또는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차이는 그들의 이름이 서로 다르다는 데 있다. 사실 그것은 성자에게 있어서 그의 존재가 아버지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어떤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아들됨은 어떤 결핍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뿐이다. 그런 식으로 논리를 따르면 어떤 결핍이 아버지에게 있다는 말이 될수 있다, 성부가 성자일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러나 그런의미가 아니다. 성부가 성자가 아니라는 것 뿐이고, 거기에는 어떠한 결핍 또는 본질의 종속적 관계에 의해서 기인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낳음을 받지 않으신 분을 첫번째로 아버지라는 이름을, 낳음을 받으신 분을 두번째로 성자라는 이름을, 그리고 파견되신 분을 세번째로 성령이라는 이름을 부를 뿐이다. 세위격의 구별은 하나의 본성, 하나의 신적 존엄성안에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성부는 성자가 아니다. 성부는 한분이시며, 오직 그분만이 아버지이신 그분이다. 성자는 성신이 아니다.낳음을 받으신 분은 오직 한분이시기 빼문이다. 그분은 아들로서 존재하는 그분이다. 이 세위격은 신성안에서 하나이며, 이 한분이신 하느님은 그 고유성에 있어서 셋이다…(The Fifth Theological Oration).
이러한 그리이스 교부들의 삼위일체 신비에 대한 접근은 나중에 다마스커스의 요한(749경 사망)에게서 요약되어 나타난다 (The Source of Kowledge).
5.6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과 로마 공의회(382)
이러한 후기 니체아적 신학은 공식적으로 두 공의회에서 승인을 받는다. 하나는 세계 공의회였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였으며, 다른 하나는 지역 공의회 였던 로마 공의회였다. 이때 로마제국은 둘로 나누어져 서방은 테오도시우스황제가 다스리고 있었고, 동방은 그라씨안 황제가 다스리고 있었다. 이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150명의 주교들이 모여 니체아의 신앙을 다시한번 확인하였다. 성령의 신성을 부정하던 Macedonians들을 거스려 그들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 마찬가지로 동일본질을 지니고 있으며, 동일하게 영원성을 지닌다고 천명하였다. 여기서부터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나오게 되었다. 이때부터 카톨릭 교회는 매 주일 미사에 이 신경을 고백하게 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들이 이 신경을 작성한 것은 아니다. 이 주교들은 이미 니체아 공의회의 이론을 정식화 한것을 존중하여 받아들인 것이다.
다마소 교황(384)은 이 공의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가 이 공의회의 결정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는지에 관해서 역사적으로 분명하지가 않다. 어떻든 교황은 그 다음해 로마에서 공의회를 열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관해 그릇된 가르침을 가르치는자들을 거스려 단죄하였다. 로마공의회는 긍정적인 입장에서 한분 하느님, 세 위격을 이야기 하며 서로 동등하고, 공동으로 영원성을 지니고, 서로 구별되지만, 세분의 신으로 분리할 수 있는 구별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5.7 아우구스티누스
서방 교회는 아우구스티노가 출현하기까지 동방교회에 비견할 만한 박학한 신학자가 없었다고 본다. 물론 이레네우스나 테르뚤리아노, 힐라리오같은 교부들이 괄목한 만한 업적을 남긴 것도 사실이지만.신플라토니즘은 교회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무런 문제없이 한분이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동일본질을 이루는 동시에 구별되는 하느님이심을 받아들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consubstantial이라는 표현보다 co-essential이라는 표현을 선호했다. 의미롭게도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는 이런 이론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어디 곳에서도 찿아볼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관점에서 성서가 선포한 것을 계시의 자료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그의 관심은 증명이 아니라 이해였다.우리는 그의 이런 기본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credo ut intelligam)라고 고백하는 사실에서 잘 볼 수 있다.
동방교부들과는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역사안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수행한 기능으로서 세위격에 대해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하느님의 유일성, 일치성으로부터 다룬다. 하나인 신 본성 그 자체로 시작해서 어떻게 세 위격이 그 하나의 신본성을 갈림없이 공유하고 있느냐하는 것을 이해하고자 시도했다. 그는 어떤 종속론의 형태도 거부하였다. 하느님에 관한 어떤 진술도 바로 동등하게 세 위격에 대한 진술로 이해했다. “성부는 성자보다 신성의 관점에 있어서 더 위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성부와 성자는 성령보다도 더 위대하지도 않다. 어떤 위격도 세위격의 하느님 전체보다도 더 작은 것도 아니다”. 그와같이 우리는 여기서 구분하는 세 위격을 마치 인간존재를 셋으로 구분하듯이 분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본다. 거기에 세가지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의지가 있다고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렇다고 세위격의 여러가지 역할을 파괴하고 있다(마치 모달리즘에 떨어진 것으로 보는)는 이견을 거스려서, 그는 비록 성자가 그를 낳으신 성부가 아니며, 성자는 수난받고 죽으셨다고 주장하는 것을 본다.성부는 육화, 수난, 그리고 부활에 있어서 성자와 전적으로 함께 협력하셨다고 말한다. 다만 성자는 각각의 신적 위격들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적 본성을 성부의 외적 작용안에서 가짓적인 것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지니고 있으며, 그 기원은 항상 성부께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세 위격은 모든 외적 행위안에서 하나로서 연루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이론에 원천적으로 공헌한 아우구스타누스의 한가지 업적은 그의 “실제적”(real) 또는 “본질적 관계”(subsistent relations)라는 개념이다. 안셀모의 가르침이나 플로렌스 공의회에 앞서서 “삼위 안에서 삼위가 관계상 서로 대응하고 있다는 이유로 상이할뿐 그 이외에는 모두가 하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낳음을 받지 않으신 분이 성부요, 그는 낳음을 받으신 분인 성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리우스파가 신성안에서 본질적인 것뿐만(거기에 세분의 신이 계시다는 주장)아니라, 우연적인, 비본질적인 것(하느님은 순전히 단순하지 않다는 주장)에서도 세위격이 구별된다고 하는 이해를 반대하고 있다. 성부, 성자, 성신 누구도 서로 다른 위격과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안에 셋이라는 것은 본질이나 또는 우연적인 것에서 셋이라는 데 근거하지 않고, 관계에 있어서 셋이라는 것이다. 낳음을 받지 않고, 낳음을 받으시고, 진행되어 나오는 관계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초적인 삼위일체론에 대한 공헌은 하느님의 내재적 삶에 대한 설명을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유출하여 이끌어 낸점이다.(이것은 그의 논증이 따르기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또는 오늘날 전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인식괒엉에는 세가지 구별되는 요소가 있다. 외적 대상, 그 대상을 재연하는 마음의 감수성, 그리고 마음의 촛점을 두는 행위가 있다. 외적 대상이 움직일 때, 우리는 높은 삼위일체의 수준으로 올려지는 것이다. 처음 상태보다 더 높이 오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과정은 전적으로 지금 마음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그리고 같은 주체안에”, 다시말해서 기억적 인상, 내적 기억의 이미지, 그리고 의지의 촛점에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저서 「삼위일체」에서 이 세가지 상태에 대해 길게 유추하고 있다. (1) 마음, 그 자체의 그의 지식, 자체의 그의 사랑 (2)기억 또는 그 자신의 마음의 잠재적 지식, 그 자신의 이해와 사랑, (3) 하느님을 기억하고 알고 사랑하는 것으로서의 마음. 아우구스티누스는 마지막 이 세가지 유추를 대단히 만족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마음이 기억가 이해와 사랑의 모든 능력과 더불어 그 창조주에 대해서 그 자체에 촛점을 맞추고 있을 때, 하느님을 지탱하는 이미지는 완전히 회복될 수 있다. “거기엔 기억, 이해, 그리고 의지 셋이 있다. 그러므로 셋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삶이 있다. 마음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마음이 있다. 따라서 세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주체가 있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은 이러한 유추적인 접근의 한계에 대해서 현실적이다. 유추라는 것은 항상 절름발이이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사물들이 다른 사물들과 어떻게 같을 수 있는가? 그러나 그들은 우리들에게 동시에 더떤 사물의 존재가 다른 사물들과 역시 같지 않다는 점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게 해 준다. 그와같이 인간 의식의 작용들은 삼위일체의 내재적 작용과 동일시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기억하는 것, 이해하는 것,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서 나눌 수 있는 세가지 능력이다. 신성안에서는 능력들이 구별되지 않는다. 하느님은 절대적으로 하나이시다. 더우기 인간의 마음안에서 이 세가지 능력들은 독립적으로 작용한다. 하느님 안에서 모든 행위와 작용들은 불가분의 것이다. 게다가 하느님의 신성에는 왜 두가지의 진행(낳음)이 있는데 세 위격이 있는가 질문될 수 있다.
결국 이것은 신비로 남는다. 성서와 그리스도교의 이론은 하느님을 세 위격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성서와 그리스도교 이론은 역시 강력하게 하느님의 유일성에 대해서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에 영향을 준 아우구스틴의 이론은 확실히 거대한 것이다. 보에티우스는 인격(person)을 이성적 본성의 개체적 주체라고 정의하였다. 후세기에 와서 아무도 아우구스티누스와 비교할 만한 신학자는 없다. 그의 접근의 직접적인 효과는 역시 고려해 볼만한 것이었다. 삼위일체 신앙의 고전적 언명이 뚜렷한 소위 5세기의 아타나시오 신경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취가 서려있다. 그것이 아타나시오에 의한 것으로 여겨졌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은 역시 11차 톨레도 공의회(675)에도, 아타나시오 신경에서 처럼 잘 드러나고 있다. 하느님은 한분이시며 또한 세위격의 하느님이시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의 사앗아이 신앙고백에 잘 드러나고 있다.
5.8 캔터베리의 안셀모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사이에 가장 독특하고 중요한 신학자는 안셀모 성인이다. 그리스도교적 하느님 이해에 안셀모 성인이 공헌한 것은 적어도 세가지다.첫째는 소위 말하는 하느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논증”이다. 둘째는 빚-보속이라는 보상이론이다. 셋째는 하느님에게 있어서 세 위격 사이의 관계적 위치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외에는 모든 것이 하나라는 원칙이다. 첫번째 점에 대해서 안셀모는 하느님은 더 큰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만일 마음안에서 또는 이해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만 한다면, 실제적 실존은 더 이상 큰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상의 것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큰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엔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이상의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상상이나 또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논증은 후에 아퀴나스와 칸트에 의해서 거부되었다. 마음이나 상상의 질서안에서 진실인 것은 반드시 실제의 질서안에서 실제일수는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 점에 대해서 안셀모는 아담의 죄는 오직 충분한 댓가(보속)를 성부께 드려야만 용서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죄로 초래된 부채를 합당하게 해결할 수 있는 자는 단지 신적존재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의 우정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하느님은 인간이 되셔야 했다.
세번째 점에 대해서 안셀모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전승을 따라서 하느님은 세 위격간의 관계에 있어서 자리하고 있는 위치상 복수적인 위격으로 구분되었다는 점 이외에는 절대적으로 한분이시라는 점을 주장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은 한분이신 하느님이시다. 단지 하느님은 낳음을 받지 않으셨으며, 성자는 낳음을 받으셨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 부터 내 불어졌다는 것이다. 신적 위격간의 상호 거주에 대한 이론을 위한 신학적 기초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성부는 항상 성자와 성령안에 계신다. 성자는 항상 성부와 성령안에 계신다. 성령은 항상 성부와 성자안에 계신다. 이러한 상호교환적 거주는 역시 circumincession (지속적순환)으로 알려지고 있다. 플로렌스 공의회(1442)는 ”야고버파를 위한 선언“이라는 데서 이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성부는 홀로 당신의 주체밖으로 성자를 낳았으며, 성자는 홀로 성부로 부터 낳음을 받았으며, 성령은 홀로 성부와 성자 양편으로부터 진행되어 나온다“. 이 세 위격은 한분이신 하느님이며 세 신이 아니다. 이 세 위격에게는 하나의 주체, 하나의 본질, 하나의 본성, 하나의 신성, 하나의 무한성, 하나의 영원성을 지니며, 그 위격안에 모든 것은 관계에 있어서 서로 대치하고 있는 곳이 아닌 곳에서는 항상 하나다.
마지막으로 보아야 할 것은 안셀모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의 신비가 인간 지성의 모든 비젼을 초월하는 것, 즉 ” 그렇게 숭고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런 존재들이 어떻게 있는가 설명하려는 시도를 삼가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안셀모에게 하느님이 계시다는 지식안에서 안전하게 되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성의 모순 없이” 있다는 것이다. 신학을 위해 이해하고자 하는 신학을 추구하였다.
5.9 교부들의 하느님 이해에 관한 종합적 결론
개략적으로 밖에 교부들의 하느님 이해를 살펴보았지만, 그래도 어떤 종합적인 것을 요약해 낼 수 있다고 본다.
1) 교부들에게 하느님 이해는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시대도 다르고. 글의 성격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 이해의 근거를 성서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성서를 바탕으로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한분이신 하느님”, 즉 하느님의 유일성, 그러면서도 “세 위로 존재하시는 삼위의 하느님”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성격을 띤다. 이런한 하느님 이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맥을 이루고 있다. 마태오 28, 19- 디다케 7,1 – 사도신경.
2) 하느님의 유일성은 유대교 신앙을 전해받으면서, 다신화의 경향을 띤 이방인들과 만나고 대결하는 가운데 교회 옹호적 입장에서 강조되고 있다. 이방인들, 특히 희랍사상에 젖은 사람들이 신을 지나치게 인간화하려는 사상과 거슬러 싸워야 했다. 2세기경에는 플라토니즘의 영향을 받은 이원론자들인, 영지주의자들과 대결해야 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정의의 하느님과 사랑의 하느님, 율법의 하느님과 복음의 하느님을 구별하였다. 이레네오를 비롯한 교부들은 신구약의 일치성, 단일성을 거론하며 하느님의 유일성을 옹호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마니케이즘을 거슬러 대결해야 했다. 삼신론적 경향과도 대결해야 했다. 사벨리아니즘(모달리즘, 성부수난설)에 미혹되는 사제들에게 경고하는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디오니시우스가 삼위의 구별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 삼신론을 주장했다고 로마의 디오니시우스가 단죄한다. 여기엔 정확한 근거가 없다. 다만 로마의 주교 디오니시우스가 정치적인 배경에서 유주론, 유일 군주제의 합법성을 뒷받침해 주는 유주론의 경향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우스를 공격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하느님의 단일성의 강조는 649년 라떼란 공의회를 거쳐, 675년 톨레도 공의회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를 위한 구세경륜적 삼위일체에 대해서 체험될 수 있는 것이 항상 무엇이든지 모두 세위격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삼위일체가 우리 인간에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공동으로 행한다. 삼위일체들은 그들의 존재와 역사속에서 서로 불가분리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느님의 유일성 강조는 Monarchianismus 즉 유주론의 경향을 이끌기도 했다.
3) 다른 한편으로 교부들은 유주론과도 거슬러 대결해야 했다.Monarchianismus는 유일신론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절대적 초월성을 보전하는데는 공통적이다. 그러나 이초월적인 유주론적 경향은 유대교의 유일신성의 엄격성으로부터 유래한다. 이 유주론에는 두가지 노선이 있다. (1) 입양적인 유주론, (2)성부수난주의자들(Patripassianismus)와 사벨리아니즘(Modalismus)으로 알려지고 있는 양식론적 유주론이다. 말하자면 교부들은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이런 유주론자들과 거슬러 그리스도론적 논쟁을 벌였고, 나중에 가서 삼위일체론적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런 유주론자들과 대결하면서 처음으로 부딪히는 문제는 바로 그리스도의 신성이었다. 그리스도는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강림으로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는 주장이다. 나중에 아리아니즘으로 발전한다. 여기서는 뚜렷한 종속론의 경향을 보게된다. 다시말하면 성자는 성부보다 하급의 신, 하급의 존재요, 성령은 성부와 성자보다 하급의 신이라는 이론이다. 사벨리아니즘에서는 성자와 성령은 한분이신 하느님의 현현 양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여러가지 탈(prosopon)을 쓰고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부가 수난당하고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여기서 교부들은 성자와 성부의 동일본질성, homoousios라는 개념을 니체아 공의회를 통하여 채택하는데, 이 이론은 아리아니즘을 이단으로 단죄하는데 용이하긴 했지만, 사벨리아니즘을 도아줄 수 있는 개념이기도 했다. 동일본질의 개념으로서 사벨리아니즘은 성자가 단순히 현현양식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언제가는 성부에 의해 완전히 흡수 되리라는 전망을 지니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성부와 성자 사이의 구별이 오로지 역사적 체험 양식안에만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통용된다는 점에서 ’그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라는 귀절을 첨가한다. 이렇게 영원성을 거론하면서 하느님은 인간체험과 동떨어진 사변속의 하느님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런 사변의 하느님, 영원의 하느님, 자신안에 폐쇄적인 존재의 하느님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중세기까지 이어진다.
어떻든 아타나시오는 성부와 성자의 구별과 동일성을 교회의 정통교리로 수용하게하는데 성공하였고, 까빠도치아의 세교부는 성령에게도 동일본질성을 배려함으로써 하나의 본질과 셋의 위격 (OUSIA, HYPOSTASIS)이라는 용어로써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교회의 정통교리로 수용케했다.
한편 서방교회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미 테르뚤리아노가 확정한 바 있는 una substantia et tres personae라는 용어를 una essentia et tres personae 라는 라틴어 용어로 삼위일체 정식을 정립했다. 칼체돈 공의회(451)는 ousia를 phusis라는 용어로 대치한다.
4) 이상에서 보았듯이, 교부들로부터 우리 교회가 보존해야 하는 하느님의 이해는 종속론적 경향, 유주론적 경향, 삼신론적 경향을 모두 피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5) 인간의 지성으로 알아듣기 어려운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해서 (1) 지성주의 – 신비란 이성의 포착으로 제거될 수 있다는 경향과, (2) 신앙주의 내지는 비 지성주의- 신비란 도대체가 알아 들을 수 없고, 그저 믿어야만 한다는 경향으로 빠져들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 교부들은 제 3의 길을 택하였다. (3) 즉 신비는 결코 인식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신비에 대한 질문을 포기할 수 없다. 적어도 문제를 분명하게 하고, 어떤 이해의 기준에 도달하려는 희망을 지녀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런 입장에서 교부들이 나름대로 삼위일체 신비를 인간의 이성에 이해될 수 있도록 여러가지 비유를 사용하여 시도하는 것을 보게 된다.이것은 삼위일체론에서 보게 될 것이다.

” 표현의 차이, 또는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차이는 그들의 이름이 서로 다르다는 데 있다. 사실 그것은 성자에게 있어서 그의 존재가 아버지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어떤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아들됨은 어떤 결핍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뿐이다. 그런 식으로 논리를 따르면 어떤 결핍이 아버지에게 있다는 말이 될수 있다, 성부가 성자일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러나 그런의미가 아니다. 성부가 성자가 아니라는 것 뿐이고, 거기에는 어떠한 결핍 또는 본질의 종속적 관계에 의해서 기인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낳음을 받지 않으신 분을 첫번째로 아버지라는 이름을, 낳음을 받으신 분을 두번째로 성자라는 이름을, 그리고 파견되신 분을 세번째로 성령이라는 이름을 부를 뿐이다. 세위격의 구별은 하나의 본성, 하나의 신적 존엄성안에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성부는 성자가 아니다. 성부는 한분이시며, 오직 그분만이 아버지이신 그분이다. 성자는 성신이 아니다.낳음을 받으신 분은 오직 한분이시기 빼문이다. 그분은 아들로서 존재하는 그분이다. 이 세위격은 신성안에서 하나이며, 이 한분이신 하느님은 그 고유성에 있어서 셋이다…(The Fifth Theological Oration).
이러한 그리이스 교부들의 삼위일체 신비에 대한 접근은 나중에 다마스커스의 요한(749경 사망)에게서 요약되어 나타난다 (The Source of Kowledge).
5.6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과 로마 공의회(382)
이러한 후기 니체아적 신학은 공식적으로 두 공의회에서 승인을 받는다. 하나는 세계 공의회였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였으며, 다른 하나는 지역 공의회 였던 로마 공의회였다. 이때 로마제국은 둘로 나누어져 서방은 테오도시우스황제가 다스리고 있었고, 동방은 그라씨안 황제가 다스리고 있었다. 이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150명의 주교들이 모여 니체아의 신앙을 다시한번 확인하였다. 성령의 신성을 부정하던 Macedonians들을 거스려 그들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 마찬가지로 동일본질을 지니고 있으며, 동일하게 영원성을 지닌다고 천명하였다. 여기서부터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나오게 되었다. 이때부터 카톨릭 교회는 매 주일 미사에 이 신경을 고백하게 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들이 이 신경을 작성한 것은 아니다. 이 주교들은 이미 니체아 공의회의 이론을 정식화 한것을 존중하여 받아들인 것이다.
다마소 교황(384)은 이 공의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가 이 공의회의 결정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는지에 관해서 역사적으로 분명하지가 않다. 어떻든 교황은 그 다음해 로마에서 공의회를 열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관해 그릇된 가르침을 가르치는자들을 거스려 단죄하였다. 로마공의회는 긍정적인 입장에서 한분 하느님, 세 위격을 이야기 하며 서로 동등하고, 공동으로 영원성을 지니고, 서로 구별되지만, 세분의 신으로 분리할 수 있는 구별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5.7 아우구스티누스
서방 교회는 아우구스티노가 출현하기까지 동방교회에 비견할 만한 박학한 신학자가 없었다고 본다. 물론 이레네우스나 테르뚤리아노, 힐라리오같은 교부들이 괄목한 만한 업적을 남긴 것도 사실이지만.신플라토니즘은 교회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무런 문제없이 한분이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동일본질을 이루는 동시에 구별되는 하느님이심을 받아들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consubstantial이라는 표현보다 co-essential이라는 표현을 선호했다. 의미롭게도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는 이런 이론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어디 곳에서도 찿아볼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관점에서 성서가 선포한 것을 계시의 자료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그의 관심은 증명이 아니라 이해였다.우리는 그의 이런 기본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credo ut intelligam)라고 고백하는 사실에서 잘 볼 수 있다.
동방교부들과는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역사안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수행한 기능으로서 세위격에 대해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하느님의 유일성, 일치성으로부터 다룬다. 하나인 신 본성 그 자체로 시작해서 어떻게 세 위격이 그 하나의 신본성을 갈림없이 공유하고 있느냐하는 것을 이해하고자 시도했다. 그는 어떤 종속론의 형태도 거부하였다. 하느님에 관한 어떤 진술도 바로 동등하게 세 위격에 대한 진술로 이해했다. “성부는 성자보다 신성의 관점에 있어서 더 위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성부와 성자는 성령보다도 더 위대하지도 않다. 어떤 위격도 세위격의 하느님 전체보다도 더 작은 것도 아니다”. 그와같이 우리는 여기서 구분하는 세 위격을 마치 인간존재를 셋으로 구분하듯이 분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본다. 거기에 세가지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의지가 있다고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렇다고 세위격의 여러가지 역할을 파괴하고 있다(마치 모달리즘에 떨어진 것으로 보는)는 이견을 거스려서, 그는 비록 성자가 그를 낳으신 성부가 아니며, 성자는 수난받고 죽으셨다고 주장하는 것을 본다.성부는 육화, 수난, 그리고 부활에 있어서 성자와 전적으로 함께 협력하셨다고 말한다. 다만 성자는 각각의 신적 위격들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적 본성을 성부의 외적 작용안에서 가짓적인 것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지니고 있으며, 그 기원은 항상 성부께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세 위격은 모든 외적 행위안에서 하나로서 연루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이론에 원천적으로 공헌한 아우구스타누스의 한가지 업적은 그의 “실제적”(real) 또는 “본질적 관계”(subsistent relations)라는 개념이다. 안셀모의 가르침이나 플로렌스 공의회에 앞서서 “삼위 안에서 삼위가 관계상 서로 대응하고 있다는 이유로 상이할뿐 그 이외에는 모두가 하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낳음을 받지 않으신 분이 성부요, 그는 낳음을 받으신 분인 성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리우스파가 신성안에서 본질적인 것뿐만(거기에 세분의 신이 계시다는 주장)아니라, 우연적인, 비본질적인 것(하느님은 순전히 단순하지 않다는 주장)에서도 세위격이 구별된다고 하는 이해를 반대하고 있다. 성부, 성자, 성신 누구도 서로 다른 위격과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안에 셋이라는 것은 본질이나 또는 우연적인 것에서 셋이라는 데 근거하지 않고, 관계에 있어서 셋이라는 것이다. 낳음을 받지 않고, 낳음을 받으시고, 진행되어 나오는 관계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초적인 삼위일체론에 대한 공헌은 하느님의 내재적 삶에 대한 설명을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유출하여 이끌어 낸점이다.(이것은 그의 논증이 따르기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또는 오늘날 전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인식괒엉에는 세가지 구별되는 요소가 있다. 외적 대상, 그 대상을 재연하는 마음의 감수성, 그리고 마음의 촛점을 두는 행위가 있다. 외적 대상이 움직일 때, 우리는 높은 삼위일체의 수준으로 올려지는 것이다. 처음 상태보다 더 높이 오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과정은 전적으로 지금 마음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그리고 같은 주체안에”, 다시말해서 기억적 인상, 내적 기억의 이미지, 그리고 의지의 촛점에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저서 「삼위일체」에서 이 세가지 상태에 대해 길게 유추하고 있다. (1) 마음, 그 자체의 그의 지식, 자체의 그의 사랑 (2)기억 또는 그 자신의 마음의 잠재적 지식, 그 자신의 이해와 사랑, (3) 하느님을 기억하고 알고 사랑하는 것으로서의 마음. 아우구스티누스는 마지막 이 세가지 유추를 대단히 만족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마음이 기억가 이해와 사랑의 모든 능력과 더불어 그 창조주에 대해서 그 자체에 촛점을 맞추고 있을 때, 하느님을 지탱하는 이미지는 완전히 회복될 수 있다. “거기엔 기억, 이해, 그리고 의지 셋이 있다. 그러므로 셋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삶이 있다. 마음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마음이 있다. 따라서 세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주체가 있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은 이러한 유추적인 접근의 한계에 대해서 현실적이다. 유추라는 것은 항상 절름발이이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사물들이 다른 사물들과 어떻게 같을 수 있는가? 그러나 그들은 우리들에게 동시에 더떤 사물의 존재가 다른 사물들과 역시 같지 않다는 점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게 해 준다. 그와같이 인간 의식의 작용들은 삼위일체의 내재적 작용과 동일시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기억하는 것, 이해하는 것,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서 나눌 수 있는 세가지 능력이다. 신성안에서는 능력들이 구별되지 않는다. 하느님은 절대적으로 하나이시다. 더우기 인간의 마음안에서 이 세가지 능력들은 독립적으로 작용한다. 하느님 안에서 모든 행위와 작용들은 불가분의 것이다. 게다가 하느님의 신성에는 왜 두가지의 진행(낳음)이 있는데 세 위격이 있는가 질문될 수 있다.
결국 이것은 신비로 남는다. 성서와 그리스도교의 이론은 하느님을 세 위격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성서와 그리스도교 이론은 역시 강력하게 하느님의 유일성에 대해서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에 영향을 준 아우구스틴의 이론은 확실히 거대한 것이다. 보에티우스는 인격(person)을 이성적 본성의 개체적 주체라고 정의하였다. 후세기에 와서 아무도 아우구스티누스와 비교할 만한 신학자는 없다. 그의 접근의 직접적인 효과는 역시 고려해 볼만한 것이었다. 삼위일체 신앙의 고전적 언명이 뚜렷한 소위 5세기의 아타나시오 신경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취가 서려있다. 그것이 아타나시오에 의한 것으로 여겨졌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은 역시 11차 톨레도 공의회(675)에도, 아타나시오 신경에서 처럼 잘 드러나고 있다. 하느님은 한분이시며 또한 세위격의 하느님이시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의 사앗아이 신앙고백에 잘 드러나고 있다.
5.8 캔터베리의 안셀모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사이에 가장 독특하고 중요한 신학자는 안셀모 성인이다. 그리스도교적 하느님 이해에 안셀모 성인이 공헌한 것은 적어도 세가지다.첫째는 소위 말하는 하느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논증”이다. 둘째는 빚-보속이라는 보상이론이다. 셋째는 하느님에게 있어서 세 위격 사이의 관계적 위치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외에는 모든 것이 하나라는 원칙이다. 첫번째 점에 대해서 안셀모는 하느님은 더 큰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만일 마음안에서 또는 이해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만 한다면, 실제적 실존은 더 이상 큰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상의 것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큰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엔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이상의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상상이나 또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논증은 후에 아퀴나스와 칸트에 의해서 거부되었다. 마음이나 상상의 질서안에서 진실인 것은 반드시 실제의 질서안에서 실제일수는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 점에 대해서 안셀모는 아담의 죄는 오직 충분한 댓가(보속)를 성부께 드려야만 용서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죄로 초래된 부채를 합당하게 해결할 수 있는 자는 단지 신적존재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의 우정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하느님은 인간이 되셔야 했다.
세번째 점에 대해서 안셀모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전승을 따라서 하느님은 세 위격간의 관계에 있어서 자리하고 있는 위치상 복수적인 위격으로 구분되었다는 점 이외에는 절대적으로 한분이시라는 점을 주장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은 한분이신 하느님이시다. 단지 하느님은 낳음을 받지 않으셨으며, 성자는 낳음을 받으셨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 부터 내 불어졌다는 것이다. 신적 위격간의 상호 거주에 대한 이론을 위한 신학적 기초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성부는 항상 성자와 성령안에 계신다. 성자는 항상 성부와 성령안에 계신다. 성령은 항상 성부와 성자안에 계신다. 이러한 상호교환적 거주는 역시 circumincession (지속적순환)으로 알려지고 있다. 플로렌스 공의회(1442)는 ”야고버파를 위한 선언“이라는 데서 이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성부는 홀로 당신의 주체밖으로 성자를 낳았으며, 성자는 홀로 성부로 부터 낳음을 받았으며, 성령은 홀로 성부와 성자 양편으로부터 진행되어 나온다“. 이 세 위격은 한분이신 하느님이며 세 신이 아니다. 이 세 위격에게는 하나의 주체, 하나의 본질, 하나의 본성, 하나의 신성, 하나의 무한성, 하나의 영원성을 지니며, 그 위격안에 모든 것은 관계에 있어서 서로 대치하고 있는 곳이 아닌 곳에서는 항상 하나다.
마지막으로 보아야 할 것은 안셀모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의 신비가 인간 지성의 모든 비젼을 초월하는 것, 즉 ” 그렇게 숭고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런 존재들이 어떻게 있는가 설명하려는 시도를 삼가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안셀모에게 하느님이 계시다는 지식안에서 안전하게 되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성의 모순 없이” 있다는 것이다. 신학을 위해 이해하고자 하는 신학을 추구하였다.
5.9 교부들의 하느님 이해에 관한 종합적 결론
개략적으로 밖에 교부들의 하느님 이해를 살펴보았지만, 그래도 어떤 종합적인 것을 요약해 낼 수 있다고 본다.
1) 교부들에게 하느님 이해는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시대도 다르고. 글의 성격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 이해의 근거를 성서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성서를 바탕으로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한분이신 하느님”, 즉 하느님의 유일성, 그러면서도 “세 위로 존재하시는 삼위의 하느님”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성격을 띤다. 이런한 하느님 이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맥을 이루고 있다. 마태오 28, 19- 디다케 7,1 – 사도신경.
2) 하느님의 유일성은 유대교 신앙을 전해받으면서, 다신화의 경향을 띤 이방인들과 만나고 대결하는 가운데 교회 옹호적 입장에서 강조되고 있다. 이방인들, 특히 희랍사상에 젖은 사람들이 신을 지나치게 인간화하려는 사상과 거슬러 싸워야 했다. 2세기경에는 플라토니즘의 영향을 받은 이원론자들인, 영지주의자들과 대결해야 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정의의 하느님과 사랑의 하느님, 율법의 하느님과 복음의 하느님을 구별하였다. 이레네오를 비롯한 교부들은 신구약의 일치성, 단일성을 거론하며 하느님의 유일성을 옹호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마니케이즘을 거슬러 대결해야 했다. 삼신론적 경향과도 대결해야 했다. 사벨리아니즘(모달리즘, 성부수난설)에 미혹되는 사제들에게 경고하는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디오니시우스가 삼위의 구별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 삼신론을 주장했다고 로마의 디오니시우스가 단죄한다. 여기엔 정확한 근거가 없다. 다만 로마의 주교 디오니시우스가 정치적인 배경에서 유주론, 유일 군주제의 합법성을 뒷받침해 주는 유주론의 경향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우스를 공격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하느님의 단일성의 강조는 649년 라떼란 공의회를 거쳐, 675년 톨레도 공의회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를 위한 구세경륜적 삼위일체에 대해서 체험될 수 있는 것이 항상 무엇이든지 모두 세위격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삼위일체가 우리 인간에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공동으로 행한다. 삼위일체들은 그들의 존재와 역사속에서 서로 불가분리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느님의 유일성 강조는 Monarchianismus 즉 유주론의 경향을 이끌기도 했다.
3) 다른 한편으로 교부들은 유주론과도 거슬러 대결해야 했다.Monarchianismus는 유일신론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절대적 초월성을 보전하는데는 공통적이다. 그러나 이초월적인 유주론적 경향은 유대교의 유일신성의 엄격성으로부터 유래한다. 이 유주론에는 두가지 노선이 있다. (1) 입양적인 유주론, (2)성부수난주의자들(Patripassianismus)와 사벨리아니즘(Modalismus)으로 알려지고 있는 양식론적 유주론이다. 말하자면 교부들은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이런 유주론자들과 거슬러 그리스도론적 논쟁을 벌였고, 나중에 가서 삼위일체론적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런 유주론자들과 대결하면서 처음으로 부딪히는 문제는 바로 그리스도의 신성이었다. 그리스도는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강림으로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는 주장이다. 나중에 아리아니즘으로 발전한다. 여기서는 뚜렷한 종속론의 경향을 보게된다. 다시말하면 성자는 성부보다 하급의 신, 하급의 존재요, 성령은 성부와 성자보다 하급의 신이라는 이론이다. 사벨리아니즘에서는 성자와 성령은 한분이신 하느님의 현현 양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여러가지 탈(prosopon)을 쓰고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부가 수난당하고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여기서 교부들은 성자와 성부의 동일본질성, homoousios라는 개념을 니체아 공의회를 통하여 채택하는데, 이 이론은 아리아니즘을 이단으로 단죄하는데 용이하긴 했지만, 사벨리아니즘을 도아줄 수 있는 개념이기도 했다. 동일본질의 개념으로서 사벨리아니즘은 성자가 단순히 현현양식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언제가는 성부에 의해 완전히 흡수 되리라는 전망을 지니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성부와 성자 사이의 구별이 오로지 역사적 체험 양식안에만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통용된다는 점에서 ’그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라는 귀절을 첨가한다. 이렇게 영원성을 거론하면서 하느님은 인간체험과 동떨어진 사변속의 하느님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런 사변의 하느님, 영원의 하느님, 자신안에 폐쇄적인 존재의 하느님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중세기까지 이어진다.
어떻든 아타나시오는 성부와 성자의 구별과 동일성을 교회의 정통교리로 수용하게하는데 성공하였고, 까빠도치아의 세교부는 성령에게도 동일본질성을 배려함으로써 하나의 본질과 셋의 위격 (OUSIA, HYPOSTASIS)이라는 용어로써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교회의 정통교리로 수용케했다.
한편 서방교회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미 테르뚤리아노가 확정한 바 있는 una substantia et tres personae라는 용어를 una essentia et tres personae 라는 라틴어 용어로 삼위일체 정식을 정립했다. 칼체돈 공의회(451)는 ousia를 phusis라는 용어로 대치한다.
4) 이상에서 보았듯이, 교부들로부터 우리 교회가 보존해야 하는 하느님의 이해는 종속론적 경향, 유주론적 경향, 삼신론적 경향을 모두 피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5) 인간의 지성으로 알아듣기 어려운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해서 (1) 지성주의 – 신비란 이성의 포착으로 제거될 수 있다는 경향과, (2) 신앙주의 내지는 비 지성주의- 신비란 도대체가 알아 들을 수 없고, 그저 믿어야만 한다는 경향으로 빠져들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 교부들은 제 3의 길을 택하였다. (3) 즉 신비는 결코 인식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신비에 대한 질문을 포기할 수 없다. 적어도 문제를 분명하게 하고, 어떤 이해의 기준에 도달하려는 희망을 지녀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런 입장에서 교부들이 나름대로 삼위일체 신비를 인간의 이성에 이해될 수 있도록 여러가지 비유를 사용하여 시도하는 것을 보게 된다.이것은 삼위일체론에서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