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하나인 몸의 지체들의 일치
그리스도의 몸 개념은 그 성사적인 본질안에서 하나인 몸의 지체들의 일치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 수직적인 구조 뿐만아니라 수평적인 구조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이 맺는 하느님과 또 그로부터 인간들 사이의 두차원의 통교가 교회의 내적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느님의 부성은 새롭게 연역되는데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이 되고 이와함께 하느님은 인간본성을 취하심으로써 그리스도안에서 인간이 되신 하느님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정말로 아들이다. 인간이 되심의 의미는 자신의 것을 모든 이를 위해서 내어 놓는 다는 의미이다. 예수그리스도아안에 있는 사람은 예수와 함께 자성안에 있는 것이고 예수와 함께 하느님을 아빠 – 나의 아버지(로마 8,15)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사람되심에 접합을 통하여 아들이 되며 이와함께 우리는 모두 한몸이 되는 것이다. (갈라 3, 28: 여러분 모두는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한몸인 것이다.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몸의 일치에로 결합된다. 이렇게해서 부성과 자성 그리고 형제성 개념은 하나의 새로운 실재가 된다.
그리스도인들의 형제성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을 이룸으르써 하나의 새로운 인간이라는유일성을 형성한다. 형제성이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한몸을 이룬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이 한몸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세례를 통해 실현된다. 세례는 다만 한 개인을 위한 은총의 수여가 아니라,단순한 개인 존재로붙 벗어나는 과정, 그리하여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변환되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그리스도와의 한몸의 일치 그리고 우리들 사이의 일치의 완전한 실현은 성체성사를 통해서이다. 세례가 새로운 관계로 들어가는 출생을 의미한다면 성체성사는 한몸으로서의 삶의 실현을 계속해서 드러내주는 것이다. 성체성사를 거행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는 항상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새롭게 실현하는 것이고 동시에 이러한 공동체로 하여금 모든 지체들로 하여금 거룩함과 형제애를 실현하게 해야할 의무를 가지게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체성사를 통하여 항상 새롭게 된다. 성찬을 통하여 사람들이 부활하신 주님과 일치하고 하나인 몸을 형성하기에 이 몸은 또한 신비롭고 성사적인 그리스도의 몸이다. 바오로는 여기에서 하나의 공동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몸은 바로 그리스도께 속한 하나의 몸을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하나의 빵을 먹음으로써 한 몸이 되고 그 몸은 바로 주님의 몸인 것이다. 바오로는 그것이 다만 개인의 그리스도공동체가 아니라 성찬을 통하여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 상호간의 일치로 확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일치는 성찬에 참여하는 모두가 하나인 빵, 곧 하나인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친교를 통하여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한몸으로 결합되는 것이다. 주니므이 몸을 먹는 사람들은 바로 그 자체로 주님의 몸이 되는 것이다.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하나의 빵을 나우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1고린 10,17)
바로 하느님의 식탁이 인간 상호간의 참된 친교가 이루어지는 장소다.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고 또 동시에 그들 상호간에 친교를 이루는 인간들이 하나의 새로운 인간으로 혼합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하느님과의 동일화는 바로 하느님 스스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인간들과 동일시 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동시에 한인간의 다른 인간들과의 동일화 또한 그들모두가 신앙을 통하여 근본적인 동일화의 범주안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여러분 모두는 그리스도 한에서 한몸이다’는 바오로의 말은 동시에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지칭하고 있다.
형제성의 근본 윤리가 이러한 교의적인 인식으로부터 연역된다. 그것은 교회가 그 본래의 모습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한다는 항구한 명령인 것이다. 즉 하느님 부성(父性)의 수라고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당신 아들로 받아주시고 이로써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하느님은 절대적으로 충실하시고 신뢰할 수 있는 하느님이다. 이러한 토대로부터 인간은 하느님의 충실성과 신롸성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당위성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둘째로 일치의 그리스도론적 요소가 드러나느데, 그리스도의 몸을 더욱더 드러내야 한다는 당위성이 그것이다. 그리스도와 한몸이 된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우리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 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우리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 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자신을 위한 존재로부터 벗어나 타자를 위한 존재로 옮아감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아주 강하게 교회의 ‘사회적인 특성’을 부각시키고있고 이웃을 위한 봉사를 톡구하고 있따. 사회복지에로의 투신은 이새대 교회의 새로운 소명이다. 치열한 경쟁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은 교회에 본격적인 활동무대를 제공해주고 있다. 정신부야아, 지체부자유자, 고아, 기타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은 이시대 교회의 특별한 혻이다. 그들문제는 돈으로 해결될수 없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잘지어진 건물과 충분한 식사와 휴식이 아니라 따뜻한 손길과 눈길, 따뜻한 가슴과 사람인 것이다. 그리 하여 바로 그일은 교회가 할수 있고 해야하는 일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의몸 윤리는 필연적으로 나라는 자아로부터 탈피하며 모든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들과 형제적인 일치를 이루는데 있다. 자아로부터의 탈피윤리, 자기스스로를 포기하는 윤리로서의 그리스도의 몸 윤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형제성을 필연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봉사라는 말마디를 이해하는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바로 그의미가 모든이를 위한 봉사에로 선택되고 부르심을 받은 마지막 의미인 것이다.

3.2.3. 하나인 몸의 지체들의 일치
그리스도의 몸 개념은 그 성사적인 본질안에서 하나인 몸의 지체들의 일치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 수직적인 구조 뿐만아니라 수평적인 구조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이 맺는 하느님과 또 그로부터 인간들 사이의 두차원의 통교가 교회의 내적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느님의 부성은 새롭게 연역되는데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이 되고 이와함께 하느님은 인간본성을 취하심으로써 그리스도안에서 인간이 되신 하느님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정말로 아들이다. 인간이 되심의 의미는 자신의 것을 모든 이를 위해서 내어 놓는 다는 의미이다. 예수그리스도아안에 있는 사람은 예수와 함께 자성안에 있는 것이고 예수와 함께 하느님을 아빠 – 나의 아버지(로마 8,15)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사람되심에 접합을 통하여 아들이 되며 이와함께 우리는 모두 한몸이 되는 것이다. (갈라 3, 28: 여러분 모두는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한몸인 것이다.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몸의 일치에로 결합된다. 이렇게해서 부성과 자성 그리고 형제성 개념은 하나의 새로운 실재가 된다.
그리스도인들의 형제성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을 이룸으르써 하나의 새로운 인간이라는유일성을 형성한다. 형제성이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한몸을 이룬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이 한몸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세례를 통해 실현된다. 세례는 다만 한 개인을 위한 은총의 수여가 아니라,단순한 개인 존재로붙 벗어나는 과정, 그리하여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변환되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그리스도와의 한몸의 일치 그리고 우리들 사이의 일치의 완전한 실현은 성체성사를 통해서이다. 세례가 새로운 관계로 들어가는 출생을 의미한다면 성체성사는 한몸으로서의 삶의 실현을 계속해서 드러내주는 것이다. 성체성사를 거행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는 항상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새롭게 실현하는 것이고 동시에 이러한 공동체로 하여금 모든 지체들로 하여금 거룩함과 형제애를 실현하게 해야할 의무를 가지게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체성사를 통하여 항상 새롭게 된다. 성찬을 통하여 사람들이 부활하신 주님과 일치하고 하나인 몸을 형성하기에 이 몸은 또한 신비롭고 성사적인 그리스도의 몸이다. 바오로는 여기에서 하나의 공동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몸은 바로 그리스도께 속한 하나의 몸을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하나의 빵을 먹음으로써 한 몸이 되고 그 몸은 바로 주님의 몸인 것이다. 바오로는 그것이 다만 개인의 그리스도공동체가 아니라 성찬을 통하여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 상호간의 일치로 확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일치는 성찬에 참여하는 모두가 하나인 빵, 곧 하나인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친교를 통하여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한몸으로 결합되는 것이다. 주니므이 몸을 먹는 사람들은 바로 그 자체로 주님의 몸이 되는 것이다.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하나의 빵을 나우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1고린 10,17)
바로 하느님의 식탁이 인간 상호간의 참된 친교가 이루어지는 장소다.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고 또 동시에 그들 상호간에 친교를 이루는 인간들이 하나의 새로운 인간으로 혼합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하느님과의 동일화는 바로 하느님 스스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인간들과 동일시 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동시에 한인간의 다른 인간들과의 동일화 또한 그들모두가 신앙을 통하여 근본적인 동일화의 범주안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여러분 모두는 그리스도 한에서 한몸이다’는 바오로의 말은 동시에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지칭하고 있다.
형제성의 근본 윤리가 이러한 교의적인 인식으로부터 연역된다. 그것은 교회가 그 본래의 모습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한다는 항구한 명령인 것이다. 즉 하느님 부성(父性)의 수라고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당신 아들로 받아주시고 이로써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하느님은 절대적으로 충실하시고 신뢰할 수 있는 하느님이다. 이러한 토대로부터 인간은 하느님의 충실성과 신롸성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당위성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둘째로 일치의 그리스도론적 요소가 드러나느데, 그리스도의 몸을 더욱더 드러내야 한다는 당위성이 그것이다. 그리스도와 한몸이 된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우리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 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우리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 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자신을 위한 존재로부터 벗어나 타자를 위한 존재로 옮아감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아주 강하게 교회의 ‘사회적인 특성’을 부각시키고있고 이웃을 위한 봉사를 톡구하고 있따. 사회복지에로의 투신은 이새대 교회의 새로운 소명이다. 치열한 경쟁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은 교회에 본격적인 활동무대를 제공해주고 있다. 정신부야아, 지체부자유자, 고아, 기타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은 이시대 교회의 특별한 혻이다. 그들문제는 돈으로 해결될수 없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잘지어진 건물과 충분한 식사와 휴식이 아니라 따뜻한 손길과 눈길, 따뜻한 가슴과 사람인 것이다. 그리 하여 바로 그일은 교회가 할수 있고 해야하는 일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의몸 윤리는 필연적으로 나라는 자아로부터 탈피하며 모든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들과 형제적인 일치를 이루는데 있다. 자아로부터의 탈피윤리, 자기스스로를 포기하는 윤리로서의 그리스도의 몸 윤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형제성을 필연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봉사라는 말마디를 이해하는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바로 그의미가 모든이를 위한 봉사에로 선택되고 부르심을 받은 마지막 의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