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성찰(묵상)

 

5.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성찰(묵상)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제 모든 신학적 문장 중에서 아마 가장 단순한 문장,“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라는 문장에 도달했다. 어떤 문장이 믿는 이들에게서 이보다 더 자명한 문장이 있을 수 있을까?  또 이와 반대로 믿지 않는 이들에게 어떤 문장이 이 문장보다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문장이 있을 수 있을까?  때문에 바로 이 문장에 대한 조롱과 분노가 동시에 이 문장을 대할 때 생겨나는 것이기도 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 문장을 대할 때 사용하는 마음의 일치,화해, 사랑에 대한 조롱이요, 또 금세기의 비극적인 놀랄만한 사건 앞에서 이 문장을 입술이 마르도록 외쳐대는 것에 대한 분노이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이는 이 문장에 대해 보다 깊게 숙고해야만 한다. 여기서 우리가 ‘묵상, 성찰’한다 할 때 이 문장을 해석하는 서술언사들이 주관적 추측에 머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런 문장에 대한 깊은 숙고 안에서 어떤 객관적 실체묘사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엄밀하게 따져서 이 문장을 객관적으로 분석, 묘사한다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만일 그럴 경우 이 문장이 지니는 본래 의미를 간과할 수 있다. 즉 이 문장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설명하려 할 때, 그것은 자칫 공허한 언사의 나열일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 문장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판단을 내포하는 말인 까닭에 개별적이요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모든 서술적이거나 주관적인 언사들은 동시에 나에 의해서 인정될 수 있는(체험된) 것이어야 하고, 나의 삶 안에서 나의 삶을 통해 나타나져야만 하는 것이다.(이를 다른 신학적 개념으로 말한다면,“해석학적 순환”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여기에서 바로 이 질문, 즉 나의 삶 안에서의 증명내지는 의미체험이 문제이기에,‘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의 묵상이라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은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 은총은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하느님에 대한 언사요, 동시에 인간에 대한 언사이기도 하다. 이 문장이 실제로 무미건조한 의미 없는 말인지, 바로 우리의 두가지 관점 즉, 하나는 하느님에 관한, 또하나는 인간에 관한 관점에서 살펴 볼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문장이 무미건조한 의미 없는 말이 아니라 한다면,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아울러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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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성찰(묵상)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5.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성찰(묵상)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제 모든 신학적 문장 중에서 아마 가장 단순한 문장,“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라는 문장에 도달했다. 어떤 문장이 믿는 이들에게서 이보다 더 자명한 문장이 있을 수 있을까?  또 이와 반대로 믿지 않는 이들에게 어떤 문장이 이 문장보다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문장이 있을 수 있을까?  때문에 바로 이 문장에 대한 조롱과 분노가 동시에 이 문장을 대할 때 생겨나는 것이기도 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 문장을 대할 때 사용하는 마음의 일치,화해, 사랑에 대한 조롱이요, 또 금세기의 비극적인 놀랄만한 사건 앞에서 이 문장을 입술이 마르도록 외쳐대는 것에 대한 분노이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이는 이 문장에 대해 보다 깊게 숙고해야만 한다. 여기서 우리가 ‘묵상, 성찰’한다 할 때 이 문장을 해석하는 서술언사들이 주관적 추측에 머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런 문장에 대한 깊은 숙고 안에서 어떤 객관적 실체묘사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엄밀하게 따져서 이 문장을 객관적으로 분석, 묘사한다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만일 그럴 경우 이 문장이 지니는 본래 의미를 간과할 수 있다. 즉 이 문장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설명하려 할 때, 그것은 자칫 공허한 언사의 나열일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 문장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판단을 내포하는 말인 까닭에 개별적이요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모든 서술적이거나 주관적인 언사들은 동시에 나에 의해서 인정될 수 있는(체험된) 것이어야 하고, 나의 삶 안에서 나의 삶을 통해 나타나져야만 하는 것이다.(이를 다른 신학적 개념으로 말한다면,“해석학적 순환”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여기에서 바로 이 질문, 즉 나의 삶 안에서의 증명내지는 의미체험이 문제이기에,‘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의 묵상이라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은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 은총은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하느님에 대한 언사요, 동시에 인간에 대한 언사이기도 하다. 이 문장이 실제로 무미건조한 의미 없는 말인지, 바로 우리의 두가지 관점 즉, 하나는 하느님에 관한, 또하나는 인간에 관한 관점에서 살펴 볼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문장이 무미건조한 의미 없는 말이 아니라 한다면,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아울러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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