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활동의 요소-신앙의 전달 : 부르심과 응답

 

8. 선교활동의 요소




1. 신앙의 전달 : 부르심과 응답




믿음은 말씀과 업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며 인간에게 자신을 선사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믿음은 하느님의 은총이요 동시에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이다. 이 응답은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다.1)


“계시하다”(apokalypt o (^) )는 말은 하느님이 휘장을 열고 자동적으로 인간에게 시각적으로 자명하게 인식되는 그러한 대상은 아니다. 하느님은 세상의 內在者가 아니라 超越者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계시는 초월적인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서 초자연적이기 때문에, 초자연적 능력에 의해서 인식될 수 있다. 인간이 초월자이신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는 인간이 초자연적 실존(supernatural existential)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 살면서 세계내존재로서의 내재성을 가지면서도 하느님에게로 향하는 초월성을 갖는다. 인간은 하느님을 완전히 알 수 없지만 역사 안에서 자유로이 자신을 알려주시는 하느님 말씀의 청취자이다.2)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하여 인간은 초월자이며 타자인 하느님에게로 자아를 개방하여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되고 하느님과 사귈 수 있게 된다. 초월의 하느님께서 자신을 인간에게 알려주시는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서 믿음이 발생하기 때문에 믿음 역시 초월적이다. 그래서 믿음의 주도권은 인간을 부르시는 하느님께 속하게 된다. 이 하느님의 자기선사(계시)는 인간에게 은총으로 이해된다. 믿음을 은총이라고 함은 믿음에로 인간을 불러 주시는 하느님의 자기 선사 때문에 믿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초자연적 실재인 하느님과 인간과의 만남의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이 신앙의 증언이다. 증인이 된 신앙인은 초자연적인 실재를 증언한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과 그에 의해서 신앙에 도달한 사도들의 증언에 의해서 그리고 이 증언들과의 연계성 안에서 증언하며, 이로써 증인이 된 신앙인의 증언은 그가 전해 받은 증언의 증인들과 같은 중재 역할을 하게 된다. 하느님과 세상을 중재하는 그리스도를 증언하면서 사도들의 증언을 증언한다. 그리하여 신앙인의 증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자기 계시를 해석하고 전달하면서 계시 구조에 속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을 향하여 세상을 호출하였듯이 신앙인은 사람들을 하느님께 호출한다. 신앙인의 증언과 그 중재역할에 의해서 상대 인격자는 하느님을 대면하게 된다. 여기서 상대자는 거부하던가 받아들이던가 양자 택일을 하게 된다. 인간은 하느님의 말씀에 자유로이 응답한다. 증언 그 자체는 자동적으로 신앙을 가져다 주지 않기 때문이다. 표징을 통해서 사도들에게 신앙을 일으키신 분은 그리고 사도들의 증언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은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고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인 성령이시다. 부활에 대한 오늘의 그리스도인의 증언의 근저에는, 사도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체험과 그리고 이 체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신앙 안에서의 해석에 있다. 신앙인의 증언이라는 중재에 의해서 하느님의 자기 계시인 은총과 성령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인간은 하느님을 믿게 되고 알게 된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사물에 대한 인식이나 정보수집에 의한 이해와는 그 성질이 다르다. 인간이 한 인격체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지성과 지식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귐이 필요하고 대화와 사귐으로 인격체를 알게 된다.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이해와 인식은 하느님의 성령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한 사귐에서 가능하다. 신앙인의 증언에 의해서 전인격체의 인간이 게시하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과의 사귐에 의해서 하느님과의 하나가 되는 것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계시된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지식으로서의 앎이 아니라 행동으로서의 앎이다. 구약성서의 하느님은 인간 지성에 계시된 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으로 계시되고 있다. 모세에게 계시된 하느님의 이름 즉 본성에 의하면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시면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활동하시고 계시는 분이시다. 구약성서의 믿음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라든지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과 같은 주제와는 거리가 멀다.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은 야훼 하느님에 의해서 체결된 계약이라는 특수한 관계 안에서 조명되어야 하는데. 이에 의하면 역사 안에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 이해된다. 계시와 계약의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명령하시는 것에 대해서 인간은 다만 순명과 찬미로 응답한다. 인간이 하느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하느님의 誠實하심에 인간이 信實로 응답하는 것이 구약성서의 믿음이다.


복음서에 의하면 성자만이 하느님을 알고 있으며 인간은 성자께서 알려 주신 성부 하느님을 알게 된다.(마태 11,27; 루가 11,22). 하느님의 말씀이 강생하여 內在者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은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하느님의 계시이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계시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이다. 인간 역사 안에서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役事하시는 활동 존재로서의 하느님은 인간과 사귀기를 원하신다. 인간은 하느님과의 친교를 통하여 하느님의 본성이 사랑이심을 알게 된다. 이것은 이성적 추론으로 얻어낸 결론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살아감으로써 인간이 얻어낸 경험적 진리다.


하느님과 만남과 사귐을 통해서 인간은 초월자이신 하느님을 향하여 定向된다. 믿음에 의한 인간의 하느님과의 만남과 사귐은 하느님의 직접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인간이 하느님에게로 정향되어 감을 체험하게 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느님께로 정향하는 인간의 이러한 믿음의 행위를 바오로 사도는 믿음의 복종이라고 표현한다(로마1,5; 로마16,26)3). “계시하시는 하느님께서 신앙의 복종(로마16,26; 1,5; 2고린10,5-6)을 드러내야 한다. 이로써 인간은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지성과 의지의 완전한 순종을 드러내시고 하느님이 주신 계시에 자의로 찬동함으로써 자기를 온전히 하느님께 자유로이 의탁하는 것이다”(계시헌장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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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선교활동의 요소


    1. 신앙의 전달 : 부르심과 응답


    믿음은 말씀과 업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며 인간에게 자신을 선사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믿음은 하느님의 은총이요 동시에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이다. 이 응답은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다.1)

    “계시하다”(apokalypt o (^) )는 말은 하느님이 휘장을 열고 자동적으로 인간에게 시각적으로 자명하게 인식되는 그러한 대상은 아니다. 하느님은 세상의 內在者가 아니라 超越者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계시는 초월적인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서 초자연적이기 때문에, 초자연적 능력에 의해서 인식될 수 있다. 인간이 초월자이신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는 인간이 초자연적 실존(supernatural existential)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 살면서 세계내존재로서의 내재성을 가지면서도 하느님에게로 향하는 초월성을 갖는다. 인간은 하느님을 완전히 알 수 없지만 역사 안에서 자유로이 자신을 알려주시는 하느님 말씀의 청취자이다.2)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하여 인간은 초월자이며 타자인 하느님에게로 자아를 개방하여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되고 하느님과 사귈 수 있게 된다. 초월의 하느님께서 자신을 인간에게 알려주시는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서 믿음이 발생하기 때문에 믿음 역시 초월적이다. 그래서 믿음의 주도권은 인간을 부르시는 하느님께 속하게 된다. 이 하느님의 자기선사(계시)는 인간에게 은총으로 이해된다. 믿음을 은총이라고 함은 믿음에로 인간을 불러 주시는 하느님의 자기 선사 때문에 믿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초자연적 실재인 하느님과 인간과의 만남의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이 신앙의 증언이다. 증인이 된 신앙인은 초자연적인 실재를 증언한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과 그에 의해서 신앙에 도달한 사도들의 증언에 의해서 그리고 이 증언들과의 연계성 안에서 증언하며, 이로써 증인이 된 신앙인의 증언은 그가 전해 받은 증언의 증인들과 같은 중재 역할을 하게 된다. 하느님과 세상을 중재하는 그리스도를 증언하면서 사도들의 증언을 증언한다. 그리하여 신앙인의 증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자기 계시를 해석하고 전달하면서 계시 구조에 속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을 향하여 세상을 호출하였듯이 신앙인은 사람들을 하느님께 호출한다. 신앙인의 증언과 그 중재역할에 의해서 상대 인격자는 하느님을 대면하게 된다. 여기서 상대자는 거부하던가 받아들이던가 양자 택일을 하게 된다. 인간은 하느님의 말씀에 자유로이 응답한다. 증언 그 자체는 자동적으로 신앙을 가져다 주지 않기 때문이다. 표징을 통해서 사도들에게 신앙을 일으키신 분은 그리고 사도들의 증언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은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고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인 성령이시다. 부활에 대한 오늘의 그리스도인의 증언의 근저에는, 사도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체험과 그리고 이 체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신앙 안에서의 해석에 있다. 신앙인의 증언이라는 중재에 의해서 하느님의 자기 계시인 은총과 성령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인간은 하느님을 믿게 되고 알게 된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사물에 대한 인식이나 정보수집에 의한 이해와는 그 성질이 다르다. 인간이 한 인격체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지성과 지식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귐이 필요하고 대화와 사귐으로 인격체를 알게 된다.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이해와 인식은 하느님의 성령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한 사귐에서 가능하다. 신앙인의 증언에 의해서 전인격체의 인간이 게시하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과의 사귐에 의해서 하느님과의 하나가 되는 것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계시된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지식으로서의 앎이 아니라 행동으로서의 앎이다. 구약성서의 하느님은 인간 지성에 계시된 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으로 계시되고 있다. 모세에게 계시된 하느님의 이름 즉 본성에 의하면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시면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활동하시고 계시는 분이시다. 구약성서의 믿음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라든지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과 같은 주제와는 거리가 멀다.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은 야훼 하느님에 의해서 체결된 계약이라는 특수한 관계 안에서 조명되어야 하는데. 이에 의하면 역사 안에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 이해된다. 계시와 계약의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명령하시는 것에 대해서 인간은 다만 순명과 찬미로 응답한다. 인간이 하느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하느님의 誠實하심에 인간이 信實로 응답하는 것이 구약성서의 믿음이다.

    복음서에 의하면 성자만이 하느님을 알고 있으며 인간은 성자께서 알려 주신 성부 하느님을 알게 된다.(마태 11,27; 루가 11,22). 하느님의 말씀이 강생하여 內在者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은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하느님의 계시이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계시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이다. 인간 역사 안에서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役事하시는 활동 존재로서의 하느님은 인간과 사귀기를 원하신다. 인간은 하느님과의 친교를 통하여 하느님의 본성이 사랑이심을 알게 된다. 이것은 이성적 추론으로 얻어낸 결론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살아감으로써 인간이 얻어낸 경험적 진리다.

    하느님과 만남과 사귐을 통해서 인간은 초월자이신 하느님을 향하여 定向된다. 믿음에 의한 인간의 하느님과의 만남과 사귐은 하느님의 직접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인간이 하느님에게로 정향되어 감을 체험하게 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느님께로 정향하는 인간의 이러한 믿음의 행위를 바오로 사도는 믿음의 복종이라고 표현한다(로마1,5; 로마16,26)3). “계시하시는 하느님께서 신앙의 복종(로마16,26; 1,5; 2고린10,5-6)을 드러내야 한다. 이로써 인간은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지성과 의지의 완전한 순종을 드러내시고 하느님이 주신 계시에 자의로 찬동함으로써 자기를 온전히 하느님께 자유로이 의탁하는 것이다”(계시헌장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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