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2,1-7 :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의 탄생

1. 말씀읽기: 루카 2,1-7

 예수님의 탄생 (마태 1,18-25)

1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3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4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5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2. 말씀연구

1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루카는 역사가로서 구원사를 세계사의 합당한 자리에 놓고 있습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기원 전 30년-기원후 14년)가 로마 제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소아시아의 프린에 있는 한 비문에는(기원전 9년)아우구스투스가 “전 세계에 새 시대를 열어 주었다.”라고 그의 출생을 기리는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기원 전 27년 원로원은 황제에게 “세바스토스(아우구스토)”라는 칭호를 부여하였습니다(고대 로마에서 아우구스투스-Augustus-는 신성하고 경배를 받아 마땅한 인물이나 장소를 의미하는 말에 불과했고, 무력이나 권력을 연상시키는 의미는 전혀 없었다. 신성하다는 뜻이긴 하지만, 다신교 세계인 로마에서는 유일무이한 절대적 권위는 아니다. 길가에 서 있는 사당조차도 신성하고 경배를 받아 마땅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로마 원로원이 옥타비아누스의 공화정 복귀선언 이후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라는 존칭을 수여하였다.  아우구스투스라는 존칭이라면 권력과는 결부되지 않는다고 믿어 흔쾌하게 옥타비아누스에게 부여했지만 아우구스투스라고 불리게 됨으로써 옥타비아누스가 얻은 것은 권력이 아니라 권위였다).



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이 호구 조사령에는 토지와 부동산 등록과 세금을 매기기 위한 재산 평가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시리아의 총독 퀴리노는 황제의 칙령을 팔레스티나에 포고하였습니다. 팔레스티나를 다스리던 헤로데왕은 황제의 총애를 받아 왕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호구 조사령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호구 조사는 유대인들에게는 첫 번째 실시되는 호구조사였고, 이 일은 시리아의 총독으로 퀴리니우스 때의 일입니다.



3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왜 루카는 이 모든 일을 말해 주고 있을까요? 연대를 정확히 밝혀 주기 위해서임이 분명합니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기록 문서들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아내들은 자기 남편과 함께 등록하러 가야 했습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재산이 있는 자기 마을로 갔습니다.



4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입니다.



5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마리아는 요셉의 약혼녀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요셉은 이미 마리아를 자기 집에 데려왔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갈릴래아 지방의 관습상 마리아는 결코 요셉과 단둘이서 길을 떠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처녀였기에 요셉의 약혼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결혼할 아내가 아니라 약혼녀로서 데리고 살았습니다. 마리아는 임신중이었습니다. 그녀는 처녀이면서 동시에 임신부였습니다.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마리아의 아들들 중에서 맏이였기 때문일까? 반드시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5세기 경의 한 비문은 이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된다. 그 비문에는 아르시노에라는, 세상을 떠난 한 젊은 부인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다. “나는 첫아들을 낳는 산고의 고통으로 죽게 되었구나.” 아르시노에의 첫아들은 그녀의 외아들이기도 했다. 루카가 첫아들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예수님은 첫아들이 져야하는 모든 의무와 권리(2,23)를 지니고 있었으며 또한 약속의 소유자이셨기 때문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베들레헴으로 가는 요셉과 성모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2. 아내가 해산을 해야 하는데, 방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요셉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 글은 카테고리: 루카복음, 성경, 성경 공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루카 2,1-7 : 예수님의 탄생에 1개의 응답

  1. 햇살가득 님의 말:

     

    예수님의 탄생

    1. 말씀읽기: 루카 2,1-7

     예수님의 탄생 (마태 1,18-25)

    1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3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4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5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2. 말씀연구

    1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루카는 역사가로서 구원사를 세계사의 합당한 자리에 놓고 있습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기원 전 30년-기원후 14년)가 로마 제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소아시아의 프린에 있는 한 비문에는(기원전 9년)아우구스투스가 “전 세계에 새 시대를 열어 주었다.”라고 그의 출생을 기리는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기원 전 27년 원로원은 황제에게 “세바스토스(아우구스토)”라는 칭호를 부여하였습니다(고대 로마에서 아우구스투스-Augustus-는 신성하고 경배를 받아 마땅한 인물이나 장소를 의미하는 말에 불과했고, 무력이나 권력을 연상시키는 의미는 전혀 없었다. 신성하다는 뜻이긴 하지만, 다신교 세계인 로마에서는 유일무이한 절대적 권위는 아니다. 길가에 서 있는 사당조차도 신성하고 경배를 받아 마땅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로마 원로원이 옥타비아누스의 공화정 복귀선언 이후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라는 존칭을 수여하였다.  아우구스투스라는 존칭이라면 권력과는 결부되지 않는다고 믿어 흔쾌하게 옥타비아누스에게 부여했지만 아우구스투스라고 불리게 됨으로써 옥타비아누스가 얻은 것은 권력이 아니라 권위였다).


    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이 호구 조사령에는 토지와 부동산 등록과 세금을 매기기 위한 재산 평가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시리아의 총독 퀴리노는 황제의 칙령을 팔레스티나에 포고하였습니다. 팔레스티나를 다스리던 헤로데왕은 황제의 총애를 받아 왕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호구 조사령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호구 조사는 유대인들에게는 첫 번째 실시되는 호구조사였고, 이 일은 시리아의 총독으로 퀴리니우스 때의 일입니다.


    3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왜 루카는 이 모든 일을 말해 주고 있을까요? 연대를 정확히 밝혀 주기 위해서임이 분명합니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기록 문서들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아내들은 자기 남편과 함께 등록하러 가야 했습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재산이 있는 자기 마을로 갔습니다.


    4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입니다.


    5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마리아는 요셉의 약혼녀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요셉은 이미 마리아를 자기 집에 데려왔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갈릴래아 지방의 관습상 마리아는 결코 요셉과 단둘이서 길을 떠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처녀였기에 요셉의 약혼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결혼할 아내가 아니라 약혼녀로서 데리고 살았습니다. 마리아는 임신중이었습니다. 그녀는 처녀이면서 동시에 임신부였습니다.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마리아의 아들들 중에서 맏이였기 때문일까? 반드시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5세기 경의 한 비문은 이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된다. 그 비문에는 아르시노에라는, 세상을 떠난 한 젊은 부인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다. “나는 첫아들을 낳는 산고의 고통으로 죽게 되었구나.” 아르시노에의 첫아들은 그녀의 외아들이기도 했다. 루카가 첫아들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예수님은 첫아들이 져야하는 모든 의무와 권리(2,23)를 지니고 있었으며 또한 약속의 소유자이셨기 때문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베들레헴으로 가는 요셉과 성모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2. 아내가 해산을 해야 하는데, 방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요셉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2. 루카11,29-32 님의 말:

    1.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길을 떠나는 요셉과
    해산달이 가까운 성모님은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은
    두려움보다는 의무감와 책임감이 더 컸을 것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구세주에 대한 예언과
    성모님의 잉태가 이미 하느님의 섭리임을 알았을 터이니
    희망을 가지고 모든 어려움이나 걱정을 가슴에 묻고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만 바라보고 떠난 여정이었으리라.

    2. 쓸쓸하기도 하고 걱정이 앞을 가렸겠지만 알 수 없는 힘이
    그분들에게 용기와 지혜를 청하며 오직 하느님의 섭리에 내어 맡기는
    신앙으로 극복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우리도 어려움이 닥칠때 인간적인 눈으로만 바라보고 걱겅에 휘싸여
    앞뒤를 구분못하고 슬프고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어렵고 힘든 이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요셉성인과 성모 어머니의 깊은 신앙을 닮아 우리들의 세상안에서의
    생활이 영성생활과 구분되는 일이 없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한달동안 겪은 힘든 상황들 안에서 겨우 딛고 일어선 힘은
    바로 하느님의 뜻에 맡기며 그 뜻을 헤아리며
    지혜를 청하고 용기를 얻자 하는 것이었다~~

  3. 루카11,29-32 님의 말:

    1.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길을 떠나는 요셉과
    해산달이 가까운 성모님은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은
    두려움보다는 의무감와 책임감이 더 컸을 것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구세주에 대한 예언과
    성모님의 잉태가 이미 하느님의 섭리임을 알았을 터이니
    희망을 가지고 모든 어려움이나 걱정을 가슴에 묻고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만 바라보고 떠난 여정이었으리라.

    2. 쓸쓸하기도 하고 걱정이 앞을 가렸겠지만 알 수 없는 힘이
    그분들에게 용기와 지혜를 청하며 오직 하느님의 섭리에 내어 맡기는
    신앙으로 극복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우리도 어려움이 닥칠때 인간적인 눈으로만 바라보고 걱겅에 휘싸여
    앞뒤를 구분못하고 슬프고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어렵고 힘든 이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요셉성인과 성모 어머니의 깊은 신앙을 닮아 우리들의 세상안에서의
    생활이 영성생활과 구분되는 일이 없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한달동안 겪은 힘든 상황들 안에서 겨우 딛고 일어선 힘은
    바로 하느님의 뜻에 맡기며 그 뜻을 헤아리며
    지혜를 청하고 용기를 얻자 하는 것이었다~~

  4. ^*^ 님의 말:

    “하느님의 뜻에 맡기며 그 뜻을 헤아리며 지혜를 청하고 용기를 얻자”
    참 좋은 말씀입니다. 저도 그리하려 노력해 보겠습니다.

  5. ^*^ 님의 말:

    “하느님의 뜻에 맡기며 그 뜻을 헤아리며 지혜를 청하고 용기를 얻자”
    참 좋은 말씀입니다. 저도 그리하려 노력해 보겠습니다.

햇살가득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