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2,41-52 :예수님의 소년 시절

 

성가정 축일

1. 말씀읽기:루카2,41-52

예수님의 소년 시절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52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2. 말씀연구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예수님은 구약의 신심에 젖어 있는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순례는 그 필수적인 일이었습니다. 14 ‘너희는 일 년에 세 차례 나를 위하여 축제를 지내야 한다. 15 너희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아빕 달 정해진 때에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그달에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아무도 빈손으로 내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 16 너희는 밭에 씨를 뿌려 얻은 너희 노동의 맏물을 바치는 수확절을 지키고, 밭에서 너희 노동의 결실을 거두어들이는 연말에는 추수절을 지켜야 한다. 17 남자들은 모두 일 년에 세 번 주 하느님 앞에 나와야 한다.”(탈출 23,14-17).

    성가정은 율법이 정하는 것 이상을 지켰습니다. 여자들은 순례할 의무가 없었으나 성모님께서는 성전순례를 하셨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 열두 살이 된 아들 예수님을 모시고 성전으로 갔습니다. 또한 율법학자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소년은 열세 살이 되었을 때부터 율법의 모든 규정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되었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먼 길을 걸어 가야하는 순례는 무척 어려웠을 것입니다. 주일날 10분 거리의 성당도 차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거리가 멀다고 성당 안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웃어봅시다>

한 아이의 소원이 있었다. 차를 타고서 성당에 가는 것이었다. 매일 성당에 갈 때 걸어갔기 때문이다.

“엄마! 나도 차타고 성당에 가고 싶어…”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집은 성당 바로 옆집이었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누룩 없는 빵을 먹는 축제인 과월절 축제는 칠 일간 계속되었습니다. 축제의 둘째 날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가정은 축제 기간 동안 줄곧 그 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축제가 끝나자 마리아와 요셉은 집은 향해 떠났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 무리는 친척들과 친지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 밖의 사람들도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여행하는 것은 안전을 위해서였는데 어느 정도 자유로운 왕래도 가능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부모님을 따라가지 않고 성전에 남아 있었습니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예수님께서는 평상시에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행동하셨던 것 같습니다.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하며 하룻길을 갔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을 믿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그만큼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님을 찾아다녔습니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랍비들의 교수 방법은 토론식이었습니다. 옛 유대인들의 격언에 의하면 그들은 율법 지식을 동료 랍비들의 연구나 제자들의 논쟁을 통하여 얻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마 이런 율법교사들의 틈에 끼어 바닥에 앉아 계셨던 것 같습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들과 성경에 대해서,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셨을 것이고, 예수님의 슬기로운 답변에 율법  교사들은 경탄하였습니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성모님의 말씀은 오랫동안 헤매면서 느낀 슬픔과 비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친어머니로서 인간적인 감정을 숨기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씀하십니다.

부모님은 속이 터집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일단 한번 쥐어박고 보는 우리의 부모님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첫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본성을 깊이 의식하고 계심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이 인간적인 모든 한계로부터 독립되어 계심을 확증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이해를 초월하십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은 장차 그분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 집에 계셔야 합니다. 성전은 하느님께 바쳐진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옛 성전은 구원사에서 그 역할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새 성전이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친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어디나 새 성전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에서 예루살렘은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신 도시였고, 또한 예수님의 죽음과 현양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 결과 새 예루살렘과 새 성전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요한묵시록 21,2-3참조).



 예수님과 부모와의 대화법을 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들과의 원만한 대화가 필수적입니다. 따듯한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들 수도 있고,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도 예수님께 많은 화가 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성모님께서 P.E.T 교육을 받으셔서 이렇게 말을 시작하셨다면 어때했을까?

 아들을 껴안아 주면서 “사랑하는 아들아! 무사했구나! 엄마와 아빠는 네가 잘못된 줄 알고 가슴 조이면서 너를 찾아다녔단다. 다음부터는 너 혼자 어디를 가게 될 때 꼭 말해주고 가겠니?”

 “어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말씀을 안 드려서 많이 걱정하셨군요. 앞으로는 꼭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저는 하느님의 아들이지 않습니까?”



나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먼저 화부터 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에 아마 손이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근데 예수님 말씀이 참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하지만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계셔야 할 자리에 계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잘못하신 것은 아닙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실 요셉과 마리아가 있어야 할 곳도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비록 몸은 밖에서 일로 지쳐있다 하더라도 마음은 늘 성전으로 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52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순종하면서 지냈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것이기도 하지만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자녀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부모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을 기억하면서 부모님께 좀더 잘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성가정의 율법을 지키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 가정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는지.





2. 예수님과 부모님의 성전에서의 만남을 기억해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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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2,41-52 :예수님의 소년 시절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가정 축일

    1. 말씀읽기:루카2,41-52

    예수님의 소년 시절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52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2. 말씀연구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예수님은 구약의 신심에 젖어 있는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순례는 그 필수적인 일이었습니다. 14 ‘너희는 일 년에 세 차례 나를 위하여 축제를 지내야 한다. 15 너희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아빕 달 정해진 때에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그달에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아무도 빈손으로 내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 16 너희는 밭에 씨를 뿌려 얻은 너희 노동의 맏물을 바치는 수확절을 지키고, 밭에서 너희 노동의 결실을 거두어들이는 연말에는 추수절을 지켜야 한다. 17 남자들은 모두 일 년에 세 번 주 하느님 앞에 나와야 한다.”(탈출 23,14-17).

        성가정은 율법이 정하는 것 이상을 지켰습니다. 여자들은 순례할 의무가 없었으나 성모님께서는 성전순례를 하셨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 열두 살이 된 아들 예수님을 모시고 성전으로 갔습니다. 또한 율법학자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소년은 열세 살이 되었을 때부터 율법의 모든 규정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되었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먼 길을 걸어 가야하는 순례는 무척 어려웠을 것입니다. 주일날 10분 거리의 성당도 차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거리가 멀다고 성당 안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웃어봅시다>

    한 아이의 소원이 있었다. 차를 타고서 성당에 가는 것이었다. 매일 성당에 갈 때 걸어갔기 때문이다.

    “엄마! 나도 차타고 성당에 가고 싶어…”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집은 성당 바로 옆집이었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누룩 없는 빵을 먹는 축제인 과월절 축제는 칠 일간 계속되었습니다. 축제의 둘째 날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가정은 축제 기간 동안 줄곧 그 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축제가 끝나자 마리아와 요셉은 집은 향해 떠났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 무리는 친척들과 친지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 밖의 사람들도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여행하는 것은 안전을 위해서였는데 어느 정도 자유로운 왕래도 가능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부모님을 따라가지 않고 성전에 남아 있었습니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예수님께서는 평상시에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행동하셨던 것 같습니다.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하며 하룻길을 갔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을 믿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그만큼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님을 찾아다녔습니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랍비들의 교수 방법은 토론식이었습니다. 옛 유대인들의 격언에 의하면 그들은 율법 지식을 동료 랍비들의 연구나 제자들의 논쟁을 통하여 얻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마 이런 율법교사들의 틈에 끼어 바닥에 앉아 계셨던 것 같습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들과 성경에 대해서,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셨을 것이고, 예수님의 슬기로운 답변에 율법  교사들은 경탄하였습니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성모님의 말씀은 오랫동안 헤매면서 느낀 슬픔과 비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친어머니로서 인간적인 감정을 숨기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씀하십니다.

    부모님은 속이 터집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일단 한번 쥐어박고 보는 우리의 부모님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첫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본성을 깊이 의식하고 계심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이 인간적인 모든 한계로부터 독립되어 계심을 확증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이해를 초월하십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은 장차 그분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 집에 계셔야 합니다. 성전은 하느님께 바쳐진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옛 성전은 구원사에서 그 역할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새 성전이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친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어디나 새 성전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에서 예루살렘은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신 도시였고, 또한 예수님의 죽음과 현양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 결과 새 예루살렘과 새 성전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요한묵시록 21,2-3참조).


     예수님과 부모와의 대화법을 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들과의 원만한 대화가 필수적입니다. 따듯한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들 수도 있고,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도 예수님께 많은 화가 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성모님께서 P.E.T 교육을 받으셔서 이렇게 말을 시작하셨다면 어때했을까?

     아들을 껴안아 주면서 “사랑하는 아들아! 무사했구나! 엄마와 아빠는 네가 잘못된 줄 알고 가슴 조이면서 너를 찾아다녔단다. 다음부터는 너 혼자 어디를 가게 될 때 꼭 말해주고 가겠니?”

     “어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말씀을 안 드려서 많이 걱정하셨군요. 앞으로는 꼭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저는 하느님의 아들이지 않습니까?”


    나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먼저 화부터 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에 아마 손이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근데 예수님 말씀이 참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하지만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계셔야 할 자리에 계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잘못하신 것은 아닙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실 요셉과 마리아가 있어야 할 곳도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비록 몸은 밖에서 일로 지쳐있다 하더라도 마음은 늘 성전으로 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52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순종하면서 지냈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것이기도 하지만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자녀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부모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을 기억하면서 부모님께 좀더 잘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성가정의 율법을 지키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 가정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는지.



    2. 예수님과 부모님의 성전에서의 만남을 기억해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2. 저녁노을 님의 말:

    1. 아이들이 어릴때는 아이들의 신앙생활을 내 마음대로 움직? 일 수 있었다.
    단순하고 순진한 아이들은 나의 열심함에 이끌려 매일 모여 기도하는 시간도
    당연히 함께 하고 작은 아이 같은 경우에는 함께 한다고
    스스로 유치원때 부터 기도문을 다외웠다.
    새벽미사에 매일 함께 갔었으며 복사를 설 때는 당번은 물론
    대타도 자주 서게 되어 거의 매일 복사를 섰다.
    처음에는 함께 하지 않던 남편도 스스로 간다고 했다.

    지금의 아이들의 신앙자세는 지극히 소극적이다,
    기도는 어머니가 해 주세요…
    평일미사는 휴일이라해도 꿈도 못꾼다.
    ‘물론 기일이나 명절때는 다행히도 가기는 한다.
    그러나 전혀 마음이 하느님께로 향해 있지 않다.
    이 것이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형보다 먼저 결혼하는 작은 아이와 어제도 한바탕 말씨름을 했다.
    다행히 개신교 집안의 아가씨를 입교시키고 지금 교리중이다.
    해야 하는 기본은 하는데 약혼자 주말을 가보면 좋을 것 같다는 내 말은 들은등 마는 등…
    혼인교리는 갈거라고 그거면 되지않느냐는 식이다.
    그것도 수원은 하루종일이고 서울은 반나절이라고 서울로 간단다.

    아가씨 집안을을 배려해 회사 예식실을 사용하기로 하고
    관면혼배로 하기로 했다. 그러나 날자가 다가올 수록
    우리집 첫 결혼식인데 성당에서 혼배미사를 못하는 것이 안타갑고 서운했다.
    신부님께 여쭈었더니 가족끼리라도 혼배미사를 해 주신다고 하셨다.
    그 날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큰소리가 난것이다.

    색시감이 세례를 받고 나서 (1월8일) 관면혼배를 받고 결혼하자했고.
    혼배미사에 더 마음을 쓰고 싶은 나는 결혼준비(1월28일)로 바쁜가운데
    경황없이 관면혼배를 받는 것보다 좀 일찍 마음으로 준비하여
    성사를 받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짜증스러운 아들의 답변에 왜 이리 화가 나는지….
    지딴에는 영세도 시키고 준비한다고 했는데..
    왜 나는 욕심을 내는 걸까…
    주변에 가까운이들의 애들 모습을 보아서 일까
    억지로 영세까지는 받았으나 잘나가지 않아
    아들마저 냉담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았기 때문일까?

    삶 안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이런 식의 강압적인 나를 며느리 될 애가 보았다면 어떤 반응일까…
    주님의 법을 지키되 사랑으로 지킬때 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일 것이다.
    열정이 주님의 것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나 스스로 자만에 빠져 진정한 주님의 아름다운 법을
    율법주의자들처럼 엄하고 무섭게 변질시키는 것 같다.

    2. 우선 율법헉자들과의 자유로운 토론의 모습을 떠올리니 새롭게 다가온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율법학자들과
    어린아이들의 말을 들어 주는 율법학자들의 모습이 교차된다.

    어느 책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가믈리엘의 스승 힐렐..니코데모.. 아리마태아 요셉등
    훌륭한 교사들과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어린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상황에서 두분은 우선 안심하였을 것이다.

  3. 저녁노을 님의 말:

    1. 아이들이 어릴때는 아이들의 신앙생활을 내 마음대로 움직? 일 수 있었다.
    단순하고 순진한 아이들은 나의 열심함에 이끌려 매일 모여 기도하는 시간도
    당연히 함께 하고 작은 아이 같은 경우에는 함께 한다고
    스스로 유치원때 부터 기도문을 다외웠다.
    새벽미사에 매일 함께 갔었으며 복사를 설 때는 당번은 물론
    대타도 자주 서게 되어 거의 매일 복사를 섰다.
    처음에는 함께 하지 않던 남편도 스스로 간다고 했다.

    지금의 아이들의 신앙자세는 지극히 소극적이다,
    기도는 어머니가 해 주세요…
    평일미사는 휴일이라해도 꿈도 못꾼다.
    ‘물론 기일이나 명절때는 다행히도 가기는 한다.
    그러나 전혀 마음이 하느님께로 향해 있지 않다.
    이 것이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형보다 먼저 결혼하는 작은 아이와 어제도 한바탕 말씨름을 했다.
    다행히 개신교 집안의 아가씨를 입교시키고 지금 교리중이다.
    해야 하는 기본은 하는데 약혼자 주말을 가보면 좋을 것 같다는 내 말은 들은등 마는 등…
    혼인교리는 갈거라고 그거면 되지않느냐는 식이다.
    그것도 수원은 하루종일이고 서울은 반나절이라고 서울로 간단다.

    아가씨 집안을을 배려해 회사 예식실을 사용하기로 하고
    관면혼배로 하기로 했다. 그러나 날자가 다가올 수록
    우리집 첫 결혼식인데 성당에서 혼배미사를 못하는 것이 안타갑고 서운했다.
    신부님께 여쭈었더니 가족끼리라도 혼배미사를 해 주신다고 하셨다.
    그 날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큰소리가 난것이다.

    색시감이 세례를 받고 나서 (1월8일) 관면혼배를 받고 결혼하자했고.
    혼배미사에 더 마음을 쓰고 싶은 나는 결혼준비(1월28일)로 바쁜가운데
    경황없이 관면혼배를 받는 것보다 좀 일찍 마음으로 준비하여
    성사를 받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짜증스러운 아들의 답변에 왜 이리 화가 나는지….
    지딴에는 영세도 시키고 준비한다고 했는데..
    왜 나는 욕심을 내는 걸까…
    주변에 가까운이들의 애들 모습을 보아서 일까
    억지로 영세까지는 받았으나 잘나가지 않아
    아들마저 냉담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았기 때문일까?

    삶 안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이런 식의 강압적인 나를 며느리 될 애가 보았다면 어떤 반응일까…
    주님의 법을 지키되 사랑으로 지킬때 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일 것이다.
    열정이 주님의 것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나 스스로 자만에 빠져 진정한 주님의 아름다운 법을
    율법주의자들처럼 엄하고 무섭게 변질시키는 것 같다.

    2. 우선 율법헉자들과의 자유로운 토론의 모습을 떠올리니 새롭게 다가온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율법학자들과
    어린아이들의 말을 들어 주는 율법학자들의 모습이 교차된다.

    어느 책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가믈리엘의 스승 힐렐..니코데모.. 아리마태아 요셉등
    훌륭한 교사들과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어린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상황에서 두분은 우선 안심하였을 것이다.

  4. ^*^ 님의 말:

    저도 제가 부족한 선장이니 늘 인내와 기다림으로 그저 보여줄 뿐입니다.
    저녁노을님처럼 멋진 신앙인이 아닌지라 늘 부족하지만…
    저도 멋진 신앙인이 되려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5. ^*^ 님의 말:

    저도 제가 부족한 선장이니 늘 인내와 기다림으로 그저 보여줄 뿐입니다.
    저녁노을님처럼 멋진 신앙인이 아닌지라 늘 부족하지만…
    저도 멋진 신앙인이 되려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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