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10,1-12: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1. 말씀읽기:루카10,1-12: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2. 말씀연구

 추수할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추수할 일꾼이 그렇게 열심히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고, 급한 것도 없는 것 같고, 일꾼도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더러는 추수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일꾼들도 있습니다. 일꾼인 내가 누구로부터 파견 받은 지 잊어먹기 때문입니다. 추수할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께로 향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굶주려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매 맺으려 하지만 그 방법을 몰라서 고민하고 있습니까?

조금만 잡아주고, 조금만 더 관심 가져 주고, 조금만 더 이해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혼자 본당 신자들을 사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목자는 없을 것입니다. 함께 해야 합니다. 서로 보완하면서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인사이동 되면 전 신부님이 하시던 것은 없어지고,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곳도 있습니다. 신자들이 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자들을 위해서 파견 받는 것이지, 자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파견 받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 그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뿐만 아니라 일흔 두 제자를 파견하셨습니다. 일흔이라는 숫자는 성경에 나타난 민족들의 명부에 따라(창세기 10장) 전 인류를 이루는 일흔 국가의 숫자와 일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 전체에 대한 전권을 내세우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파견된 일흔 두 제자는 예수님보다 앞서 가서 예수님께서 부여해 주신 사명을 수행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 또한 일흔 두 제자 중의 하나가 되었으면 합니다. 비록 열두 사도처럼 이름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기초 작업을 해 놓을 수 있는 신자. 나를 드러내지 않고 예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신자. 그런 신자가 나였으면 좋겠습니다. 구역이나 반 모임을 위해서, 직장 모임이나 기타 신앙인들의 모임을 위해서 일흔 두 제자가 되어 미리 기본 작업을 해 놓은 신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추수와 관계되는 모든 일은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감을 허락하는 것은 하느님의 일이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입니다. 인간을 제자로 부르시는 분은 또한 하느님이십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워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하느님의 나라에 불러들이는 데 온 마음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시도록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을 달라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하는 기도는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그들 자신이 받은 소명과 선교 사명이 하느님의 은총이었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가거라.”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떠나는 것, 여행하는 것, 행동하는 것은 하나의 사명입니다. 제자들의 가장 중요하고도 우선되는 자격은 예수님께로부터 파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인간적인 모든 수단을 박탈당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마치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지는 어린양처럼 그렇게 파견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스스로를 “일흔 마리의 이리떼 가운데 있는 양”으로 자처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또한 그들의 위대한 목자가 그들을 지켜 주고 안전하게 보살펴 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일흔 두 제자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핵심이 됩니다.



“이리”라는 것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론가, 열광자, 괴변가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리떼 가운데 보낸다는 것은 모욕과 박해 속으로 내보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 10장1절 이하에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양순해야함을 말씀하십니다. 뱀은 교활하다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런데 달리 말하면 어떠한 위험일지라도 교묘하게 피하고 적을 공격하기 위해 몸을 사립니다. 그것은 자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리 속에 들어 간선교사는 스스로 그 이리의 입 속으로 뛰어 들어 가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뱀과 같이 자기를 보호하는 데 슬기로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진정으로 슬기로운 선교사는 그들과도 어울 릴 수 있어야 합니다.



    희고 아름다운 비둘기는 솔직함의 상징입니다. 죄 없는 생활을 하며, 음모를 꾸미지 않고, 악한 자의 의심도 일으키지 않는 정직한 생활을 보내는 것은 불화와 논쟁만을 일삼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평화를 잃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조건입니다. 여기에 신중함을 곁들인다면 그 소박함을 지킬 수 있고, 악인의 함정을 피할 수 있으며 부당한 고소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비둘기에 대한 해석☞ 비둘기는 순진한 걸음걸이를 하며 언제 잡아도 괜찮다는 듯이 보이지만, 이쪽에서 막상 잡으려 하면 훌쩍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비둘기와 같이 순진하라는 말씀일지도…,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사도들은 하늘에서 받은 선물을 이 세상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아무 준비도 없이 간다는 것이 대책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옛날이나 지금도 팔레스티나인들은 지갑을 허리춤에 넣고 다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아무것도 지니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 생활에 방해가 되고, 혹은 섭리에 대한 불신의 표시가 되는 것들, 혹은 하느님 나라를 전하면서 무슨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그러한 위험을 내포하는 쓸 데 없는 세속적인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로부터 파견 받은 제자들은 가난해야 했습니다. 가난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며, 하느님 나라를 설교하는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했습니다. 하느님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 것들을 그렇게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제자들은 자신들의 사명에 온전히 투신하기 위해서는 의례적인 인사를 하거나, 어깨에 힘을 주면서 자신을 과시하거나, 복음전파에 장애되는 어떤 일들에 참견하기 위해서 걸음을 멈추거나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제자들의 복음 선포 방법은 단순하고 직접적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의 집으로 찾아가야 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는 집 안에서부터 온 마을 전체로 퍼져 나가야 합니다.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축복한다는 것은 인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인사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있어서는 보통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였습니다. “평화”란 성경에서 보면, 정신적, 물질적 축복을 의미하는 대단히 넓은 뜻을 지닌 말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하느님께로부터 내려오는 평화는 기도로 청해 준 사람에게 머뭅니다. 만일 그 사람이 그것을 받기에 합당치 못하면 그 평화가 기도드린 사람에게로 돌아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평화를 빌어주고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얼마만큼 평화 속에 머물고 있는 사람인가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물론 하느님의 선물을 돈을 받고 팔아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선교사들의 생활을 당연히 돌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씨를 심어 주었는데 이제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을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살며 제단을 맡아 보는 사람들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이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제정해 주셨습니다”(1코린9,11-14).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어야 합니다. 개인적인 영리와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을 우선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거처를 끊임없이 옮기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락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제자들을 환영하는 동네는 그들의 마음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런 동네에서는 자기들이 받은 사명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주는 음식을 먹으라는 것은 그런 것들에 연연해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더 나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음식이 정결한 음식인지 부정한 음식인지를 가리지 말고 그들의 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신부님이 나환자촌에 봉사를 가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밥 먹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나병에 걸린 손으로 밥을 퍼서 주는데 그걸 먹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먹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그들과 더욱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음식은 주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초대받았을 때 음식이 간이 안 맞는다든지, 나는 회를 좋아하는데 왜 고기를 주느냐 느니, 나는 이런 음식은 안 먹는다느니…,그런 말을 하면 다시는 초대할 생각도 안 들고, 나를 사람 취급도 안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병자의 치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제자들이 선포하는 구원의 때를 준비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병자의 치유는 이 구원의 때가 힘차게 도래하였다는 실제적인 증거가 될 것입니다. 대머리가 아무리 발모제를 팔아도 팔리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10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제자들도 믿지 않는 동네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당신네 동네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표시로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11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 지역을 벗어날 때나 팔레스티나의 거룩한 땅에 발을 들여놓을 때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버리곤 했습니다. 이제 그 동네가 망했다 해서 제자들이 책임을 물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관한 가르침을 배척하고 예수님께 마음을 닫아 버리는 사람은 스스로를 징벌하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이 사실만을 알려 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소돔은 유다인들에게는 범죄와 벌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가르침을 거부한 동네의 책임은 소돔의 범죄보다 큽니다. 그날은 심판하는 날입니다. 이 날,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한 동네가 소돔보다 엄한 벌을 받는 것은, 보다 풍부한 은총을 받으면서도 하느님을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내가 일흔 두 제자중의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 복음을 전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며, 보람된 것은 무엇이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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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10,1-12: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1. 말씀읽기:루카10,1-12: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2. 말씀연구

     추수할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추수할 일꾼이 그렇게 열심히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고, 급한 것도 없는 것 같고, 일꾼도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더러는 추수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일꾼들도 있습니다. 일꾼인 내가 누구로부터 파견 받은 지 잊어먹기 때문입니다. 추수할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께로 향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굶주려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매 맺으려 하지만 그 방법을 몰라서 고민하고 있습니까?

    조금만 잡아주고, 조금만 더 관심 가져 주고, 조금만 더 이해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혼자 본당 신자들을 사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목자는 없을 것입니다. 함께 해야 합니다. 서로 보완하면서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인사이동 되면 전 신부님이 하시던 것은 없어지고,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곳도 있습니다. 신자들이 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자들을 위해서 파견 받는 것이지, 자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파견 받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 그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뿐만 아니라 일흔 두 제자를 파견하셨습니다. 일흔이라는 숫자는 성경에 나타난 민족들의 명부에 따라(창세기 10장) 전 인류를 이루는 일흔 국가의 숫자와 일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 전체에 대한 전권을 내세우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파견된 일흔 두 제자는 예수님보다 앞서 가서 예수님께서 부여해 주신 사명을 수행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 또한 일흔 두 제자 중의 하나가 되었으면 합니다. 비록 열두 사도처럼 이름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기초 작업을 해 놓을 수 있는 신자. 나를 드러내지 않고 예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신자. 그런 신자가 나였으면 좋겠습니다. 구역이나 반 모임을 위해서, 직장 모임이나 기타 신앙인들의 모임을 위해서 일흔 두 제자가 되어 미리 기본 작업을 해 놓은 신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추수와 관계되는 모든 일은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감을 허락하는 것은 하느님의 일이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입니다. 인간을 제자로 부르시는 분은 또한 하느님이십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워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하느님의 나라에 불러들이는 데 온 마음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시도록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을 달라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하는 기도는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그들 자신이 받은 소명과 선교 사명이 하느님의 은총이었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가거라.”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떠나는 것, 여행하는 것, 행동하는 것은 하나의 사명입니다. 제자들의 가장 중요하고도 우선되는 자격은 예수님께로부터 파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인간적인 모든 수단을 박탈당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마치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지는 어린양처럼 그렇게 파견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스스로를 “일흔 마리의 이리떼 가운데 있는 양”으로 자처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또한 그들의 위대한 목자가 그들을 지켜 주고 안전하게 보살펴 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일흔 두 제자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핵심이 됩니다.


    “이리”라는 것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론가, 열광자, 괴변가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리떼 가운데 보낸다는 것은 모욕과 박해 속으로 내보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 10장1절 이하에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양순해야함을 말씀하십니다. 뱀은 교활하다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런데 달리 말하면 어떠한 위험일지라도 교묘하게 피하고 적을 공격하기 위해 몸을 사립니다. 그것은 자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리 속에 들어 간선교사는 스스로 그 이리의 입 속으로 뛰어 들어 가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뱀과 같이 자기를 보호하는 데 슬기로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진정으로 슬기로운 선교사는 그들과도 어울 릴 수 있어야 합니다.


        희고 아름다운 비둘기는 솔직함의 상징입니다. 죄 없는 생활을 하며, 음모를 꾸미지 않고, 악한 자의 의심도 일으키지 않는 정직한 생활을 보내는 것은 불화와 논쟁만을 일삼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평화를 잃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조건입니다. 여기에 신중함을 곁들인다면 그 소박함을 지킬 수 있고, 악인의 함정을 피할 수 있으며 부당한 고소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비둘기에 대한 해석☞ 비둘기는 순진한 걸음걸이를 하며 언제 잡아도 괜찮다는 듯이 보이지만, 이쪽에서 막상 잡으려 하면 훌쩍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비둘기와 같이 순진하라는 말씀일지도…,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사도들은 하늘에서 받은 선물을 이 세상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아무 준비도 없이 간다는 것이 대책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옛날이나 지금도 팔레스티나인들은 지갑을 허리춤에 넣고 다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아무것도 지니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 생활에 방해가 되고, 혹은 섭리에 대한 불신의 표시가 되는 것들, 혹은 하느님 나라를 전하면서 무슨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그러한 위험을 내포하는 쓸 데 없는 세속적인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로부터 파견 받은 제자들은 가난해야 했습니다. 가난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며, 하느님 나라를 설교하는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했습니다. 하느님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 것들을 그렇게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제자들은 자신들의 사명에 온전히 투신하기 위해서는 의례적인 인사를 하거나, 어깨에 힘을 주면서 자신을 과시하거나, 복음전파에 장애되는 어떤 일들에 참견하기 위해서 걸음을 멈추거나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제자들의 복음 선포 방법은 단순하고 직접적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의 집으로 찾아가야 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는 집 안에서부터 온 마을 전체로 퍼져 나가야 합니다.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축복한다는 것은 인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인사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있어서는 보통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였습니다. “평화”란 성경에서 보면, 정신적, 물질적 축복을 의미하는 대단히 넓은 뜻을 지닌 말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하느님께로부터 내려오는 평화는 기도로 청해 준 사람에게 머뭅니다. 만일 그 사람이 그것을 받기에 합당치 못하면 그 평화가 기도드린 사람에게로 돌아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평화를 빌어주고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얼마만큼 평화 속에 머물고 있는 사람인가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물론 하느님의 선물을 돈을 받고 팔아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선교사들의 생활을 당연히 돌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씨를 심어 주었는데 이제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을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살며 제단을 맡아 보는 사람들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이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제정해 주셨습니다”(1코린9,11-14).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어야 합니다. 개인적인 영리와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을 우선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거처를 끊임없이 옮기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락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제자들을 환영하는 동네는 그들의 마음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런 동네에서는 자기들이 받은 사명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주는 음식을 먹으라는 것은 그런 것들에 연연해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더 나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음식이 정결한 음식인지 부정한 음식인지를 가리지 말고 그들의 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신부님이 나환자촌에 봉사를 가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밥 먹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나병에 걸린 손으로 밥을 퍼서 주는데 그걸 먹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먹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그들과 더욱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음식은 주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초대받았을 때 음식이 간이 안 맞는다든지, 나는 회를 좋아하는데 왜 고기를 주느냐 느니, 나는 이런 음식은 안 먹는다느니…,그런 말을 하면 다시는 초대할 생각도 안 들고, 나를 사람 취급도 안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병자의 치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제자들이 선포하는 구원의 때를 준비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병자의 치유는 이 구원의 때가 힘차게 도래하였다는 실제적인 증거가 될 것입니다. 대머리가 아무리 발모제를 팔아도 팔리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10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제자들도 믿지 않는 동네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당신네 동네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표시로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11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 지역을 벗어날 때나 팔레스티나의 거룩한 땅에 발을 들여놓을 때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버리곤 했습니다. 이제 그 동네가 망했다 해서 제자들이 책임을 물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관한 가르침을 배척하고 예수님께 마음을 닫아 버리는 사람은 스스로를 징벌하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이 사실만을 알려 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소돔은 유다인들에게는 범죄와 벌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가르침을 거부한 동네의 책임은 소돔의 범죄보다 큽니다. 그날은 심판하는 날입니다. 이 날,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한 동네가 소돔보다 엄한 벌을 받는 것은, 보다 풍부한 은총을 받으면서도 하느님을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내가 일흔 두 제자중의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 복음을 전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며, 보람된 것은 무엇이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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