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6,16-18 :율법과 하느님의 나라 (마태 5,18-18 ; 마태 11,12-13)

 

하느님 나라와 율법

1. 말씀읽기: 루카 16,16-18

율법과 하느님의 나라 (마태 5,18-18 ; 마태 11,12-13)

16 “율법과 예언자들의 시대는 요한까지다. 그 뒤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이 나라에 들어가려고 힘을 쓴다.

17 율법에서 한 획이 빠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쉽다.”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 (마태 5,31-32 ; 마태 19,9-9 ; 마르 10,11-12)

18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누구나 간음하는 것이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좀더 계명을 잘 지키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6 “율법과 예언자들의 시대는 요한까지다. 그 뒤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이 나라에 들어가려고 힘을 쓴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이고, 신약과 구약을 잇는 교량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였고,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계명을 형식적으로 지킨다면, 그리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여 지킨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계명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애를 쓴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면 안 됩니다. 내 뜻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수님께서 완성하셔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17 율법에서 한 획이 빠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쉽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예수님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이 하는 것과 같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셨고, 정결례를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율법의 혁명자로 생각했을까요? 모든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가르치러 오신 분으로 생각했을까요?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유언비어를 퍼뜨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회의 암과 같은 존재이다. 그분이 더 활보하시면 우리 사회는 기강이 무너진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의미를 바로 잡고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율법에서 한 획이 빠지는 것ㅅ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일 점”은 히브리말의 욧드를 말합니다. 이것은 히브리말 알파베트 중 가장 작은 글자입니다. “일 획”은 히브리말 알파베트의 서로 비슷한 글자를 구별하기 위한 새로 세운 자획이었습니다.

율법은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 불완전이 보충되어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아직도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모세의 율법이라는 좁은 의미에 국한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에 따라 개량되고 완성된 보편적인 율법의 이미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구약은 하느님이 예수님을 보내시어 인류를 결합시키는 신약의 예비이며, 그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로마3,21.10,4). 실물이 나타나면 이제 그림자는 존재를 감추고 사라져도 좋습니다. 성숙은 미숙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파괴가 아니라 건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명하는 도덕을 조금도 파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가져다 준 개혁은 넓고 또한 깊은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침범할 수 없는 율법을 가르쳤으나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위로의 하느님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는 똑같은 구약성경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확실히 다른 종교인 것입니다. 

유다교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리석게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18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누구나 간음하는 것이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의 혼인법과 이혼법을 살펴보면 쿰란 종파만이 일부일처제를 주장하면서 이혼과 재혼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일부다처제를 묵인했을 뿐만 아니라 이혼과 재혼을 쉽사리 허락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이혼이란 언제나 남편이 아내를 소박하여 내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있어야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수치스러운 일일까요? 남성 중심적인 사회 안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리사이계 율사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내렸는데 간음, 풍기문란, 음식을 태우는 것, 계명을 어기는 것, 남편 눈에 거슬리는 모습 따위를 수치스러운 일로 보았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서 이런 일을 발견하고 버릴 마음이 있으면, 이혼장을 만들어 아내에게 건네주면 그 순간부터 아내는 소박맞고 쫓겨난 여자가 됩니다. 이혼장에  소박 사유를 쓸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아내가 무서워서 지붕위에 올라가서 아래에 있는 아내에게 이혼장을 던졌다고도 합니다.



■ 이혼장 ■

나 말자의 남편 말똥이는

아내 말자를 소박하니

다른 남자가 데려가도 무방합니다.

2000.0.00일

증인: 소똥이, 개똥이.



바리사이들의 이혼 관례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비판적 입장을 취하시어 이혼 불가를 선언 하셨습니다. \”모세는 여러분의 완고한 마음 때문에 그 계명을 적어 여러분에게 남겼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창조의 시초부터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은 한 몸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미 둘이 아니고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그와 간음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계명 중 제6계명과 관련하여 이혼을 단죄하십니다. 당시 소박맞고 쫓겨난 여자는 홀로 살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아무래도 재혼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이 이혼을 단죄한 말씀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을 내렸습니다. 유다교인들이 모세의 이혼법을 내세워 소박을 정당화하자,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원초적인 뜻(창세1,27;2,24)을 내세워 예수님의 말씀을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70년경 이방계 신도들은 남편이 아내를 내보낸 다음 재혼하면 간음하는 것처럼, 또한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여자에게도 이혼하고 재혼할 권리를 인정한 로마와 그리스 사회에서나 할 수 있었습니다.



55년경 에페소에서 고린토 교회로 써 보낸 편지에서 바오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이혼해서는 안 되지만 부득이 이혼한 경우 재혼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1고린 7,10-11). 그리고 비신자 부부 가운데 한편만 그리스도인이 된 경우에는 신자 편에서 이혼을 주장해서는 안 되지만 비신자편에서 이혼하려고 하면 갈라서도 무방하다(1코린7,12-15)



예수님은 이혼하지 말라는 법을 제정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아내를 버리는 남편들에게 일대 회개를 부르짖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유로 아내를 버릴 수 있을까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둘이 한 몸이 되는 비결을 익힐 수 있을까 궁리하라는 외침인 것입니다.

어떻게 아내를 사랑해야 할까? 어떻게 남편을 사랑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나는 하느님의 계명을 어떻게 지키고 있습니까? 내 편한대로 지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2. 어떻게 하면 부부가 더욱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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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하느님 나라와 율법

    1. 말씀읽기: 루카 16,16-18

    율법과 하느님의 나라 (마태 5,18-18 ; 마태 11,12-13)

    16 “율법과 예언자들의 시대는 요한까지다. 그 뒤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이 나라에 들어가려고 힘을 쓴다.

    17 율법에서 한 획이 빠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쉽다.”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 (마태 5,31-32 ; 마태 19,9-9 ; 마르 10,11-12)

    18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누구나 간음하는 것이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좀더 계명을 잘 지키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6 “율법과 예언자들의 시대는 요한까지다. 그 뒤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이 나라에 들어가려고 힘을 쓴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이고, 신약과 구약을 잇는 교량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였고,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계명을 형식적으로 지킨다면, 그리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여 지킨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계명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애를 쓴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면 안 됩니다. 내 뜻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수님께서 완성하셔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17 율법에서 한 획이 빠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쉽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예수님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이 하는 것과 같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셨고, 정결례를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율법의 혁명자로 생각했을까요? 모든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가르치러 오신 분으로 생각했을까요?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유언비어를 퍼뜨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회의 암과 같은 존재이다. 그분이 더 활보하시면 우리 사회는 기강이 무너진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의미를 바로 잡고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율법에서 한 획이 빠지는 것ㅅ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일 점”은 히브리말의 욧드를 말합니다. 이것은 히브리말 알파베트 중 가장 작은 글자입니다. “일 획”은 히브리말 알파베트의 서로 비슷한 글자를 구별하기 위한 새로 세운 자획이었습니다.

    율법은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 불완전이 보충되어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아직도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모세의 율법이라는 좁은 의미에 국한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에 따라 개량되고 완성된 보편적인 율법의 이미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구약은 하느님이 예수님을 보내시어 인류를 결합시키는 신약의 예비이며, 그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로마3,21.10,4). 실물이 나타나면 이제 그림자는 존재를 감추고 사라져도 좋습니다. 성숙은 미숙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파괴가 아니라 건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명하는 도덕을 조금도 파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가져다 준 개혁은 넓고 또한 깊은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침범할 수 없는 율법을 가르쳤으나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위로의 하느님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는 똑같은 구약성경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확실히 다른 종교인 것입니다. 

    유다교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리석게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18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누구나 간음하는 것이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의 혼인법과 이혼법을 살펴보면 쿰란 종파만이 일부일처제를 주장하면서 이혼과 재혼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일부다처제를 묵인했을 뿐만 아니라 이혼과 재혼을 쉽사리 허락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이혼이란 언제나 남편이 아내를 소박하여 내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있어야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수치스러운 일일까요? 남성 중심적인 사회 안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리사이계 율사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내렸는데 간음, 풍기문란, 음식을 태우는 것, 계명을 어기는 것, 남편 눈에 거슬리는 모습 따위를 수치스러운 일로 보았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서 이런 일을 발견하고 버릴 마음이 있으면, 이혼장을 만들어 아내에게 건네주면 그 순간부터 아내는 소박맞고 쫓겨난 여자가 됩니다. 이혼장에  소박 사유를 쓸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아내가 무서워서 지붕위에 올라가서 아래에 있는 아내에게 이혼장을 던졌다고도 합니다.


    ■ 이혼장 ■

    나 말자의 남편 말똥이는

    아내 말자를 소박하니

    다른 남자가 데려가도 무방합니다.

    2000.0.00일

    증인: 소똥이, 개똥이.


    바리사이들의 이혼 관례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비판적 입장을 취하시어 이혼 불가를 선언 하셨습니다. “모세는 여러분의 완고한 마음 때문에 그 계명을 적어 여러분에게 남겼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창조의 시초부터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은 한 몸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미 둘이 아니고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그와 간음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계명 중 제6계명과 관련하여 이혼을 단죄하십니다. 당시 소박맞고 쫓겨난 여자는 홀로 살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아무래도 재혼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이 이혼을 단죄한 말씀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을 내렸습니다. 유다교인들이 모세의 이혼법을 내세워 소박을 정당화하자,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원초적인 뜻(창세1,27;2,24)을 내세워 예수님의 말씀을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70년경 이방계 신도들은 남편이 아내를 내보낸 다음 재혼하면 간음하는 것처럼, 또한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여자에게도 이혼하고 재혼할 권리를 인정한 로마와 그리스 사회에서나 할 수 있었습니다.


    55년경 에페소에서 고린토 교회로 써 보낸 편지에서 바오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이혼해서는 안 되지만 부득이 이혼한 경우 재혼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1고린 7,10-11). 그리고 비신자 부부 가운데 한편만 그리스도인이 된 경우에는 신자 편에서 이혼을 주장해서는 안 되지만 비신자편에서 이혼하려고 하면 갈라서도 무방하다(1코린7,12-15)


    예수님은 이혼하지 말라는 법을 제정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아내를 버리는 남편들에게 일대 회개를 부르짖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유로 아내를 버릴 수 있을까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둘이 한 몸이 되는 비결을 익힐 수 있을까 궁리하라는 외침인 것입니다.

    어떻게 아내를 사랑해야 할까? 어떻게 남편을 사랑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나는 하느님의 계명을 어떻게 지키고 있습니까? 내 편한대로 지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2. 어떻게 하면 부부가 더욱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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