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20,9-19;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태 21,33-46 ; 마르 12,1-12)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1. 말씀읽기: 루카 20,9-19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태 21,33-46 ; 마르 12,1-12)

9 예수님께서 백성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오랫동안 멀리 떠나 있었다.

10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포도밭 소출에서 얼마를 내놓으라고 하였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11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도 매질하고 모욕하고 나서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12 그리고 또 세 번째 종을 보냈더니, 그들은 그 종도 상처를 입히고 내쫓아 버렸다.

13 그래서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할까? 사랑하는 내 아들을 보내야겠다.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서로 의논하면서,

15 그를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6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똑바로 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러면 이렇게 기록된 말씀은 무슨 뜻이냐?‘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8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누구나 부서지고, 그 돌에 맞는 자는 누구나 으스러질 것이다.”

19 율법 학자들과 수석 사제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당장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하였으나 백성이 두려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악한 포도원 소작인들. 그런데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당신께 닥친 상황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악을 꾸민 유다 국민의 지도자와 대사제와 원로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죽음에 넘기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아들의 순명과 수난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들의 불충을 바라보면서 내 모습을 성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어떤 소작인이었는지…,



9 예수님께서 백성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오랫동안 멀리 떠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반감을 가지고 헤치려는 유다인들 틈 속에 계십니다. 그들의 행동을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포도밭을 일구어 소자인들에게 내주고 오랫동안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소작의 계약은 각 지방의 관습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릅니다. 소작인은 수확의 3분의 1, 혹은 반, 혹은 4분의 1을 지주에게 바쳤습니다. 지불은 거둔 농작물로 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이렇게 풀이하여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세상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도조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했는데 사람들은 그 도조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종들)을 보내어 도조(회개를 통하여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했는데 오히려 종(예언자들)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예수님(아들)까지 보내신 것입니다.



10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포도밭 소출에서 얼마를 내놓으라고 하였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포도밭 주인의 종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종들은 몇 세기를 지나는 동안에 차례차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진 예언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도조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에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으니 “억만금”을 바치라는 말씀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적어도 포도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감사하고, 그것을 혼자만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바쳐야 할 도조는 바로 그것입니다.



11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도 매질하고 모욕하고 나서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상황이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어려운 형제들에게 성당에서 땅을 농사지을 수 있도록 빌려주었지만 나중에는 팔아먹거나 등기를 자기들 앞으로 해 놓고, 자신들 것이라고 우기고, 그렇게 땅을 차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시겠지요. 가장 두려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12 그리고 또 세 번째 종을 보냈더니, 그들은 그 종도 상처를 입히고 내쫓아 버렸다.

주인은 또 세 번째 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것은 매질과 모욕과 상처를 입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이 종에 대한 태도는 상식 밖의 일입니다. 이 세상에 지주의 종을 이처럼 잔인하게 다룰 소작인은 없습니다. 그런데 종들을 거느리고 있는 주인이라면 복수의 수단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종들이 이스라엘 예언자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주인이 복수를 안 하셨는지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작인들(나)이 예언자들을 박해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들(예언자들)도 참 불쌍했던 것 같습니다. 박해를 받을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께서 전하라고 하시니 가서 전하는 그들의 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어떻습니까? 신자들한테 가기 귀찮아서 주저앉아 있고, 누가 성당에 나오지 않아도 관심도 없고…,

 그래도 돌로 쳐 죽이지는 않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 종(예언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힘내서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돌 맞을 짓을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본당 신자들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는 금방 드러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지, 신자들을 위해서 하는지, 열심히 하는지, 대충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13 그래서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할까? 사랑하는 내 아들을 보내야겠다.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고 말하였다.

이제 포도밭 주인은 아들을 보내십니다.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하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이 주인에게는 자기 아들의 목숨보다도 밭의 도조가 더 중요했을까요? 종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주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들보다도 밭에다 더 애정을 쏟았던 것일까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이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아들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바라본다면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주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도 알 수 있습니다.



14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서로 의논하면서,

소작인들의 태도는 요한복음 1장 9절부터 11절의 말씀 과 같습니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1,9-11)

 어둠은 빛을 싫어합니다. 빛을 싫어하기에 어둠으로 빛을 덮어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선택한 것은 바로 어둠으로 빛을 덮어 버리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15 그를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이제 어둠속에서 살아가는, 어둠 자체인 포도밭의 소작인들은 포도밭 주인의 아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었지만 그들은 그 기회마저 포기하였습니다.

 살인자 소작인들은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 특히 그 지도자인 바리사이파 사람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배은망덕한 소작인들을 벌하시고 포도원을 빼앗으셨습니다. 기원 70년 예루살렘은 로마에 함락되고 맙니다.



16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이런 비유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지금 예수님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 “바로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데…,”



내가 나를 돌아보지 못하면, 나에게 하시는 말씀들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의 부드러운 충고도, 하느님께서 내 귀에 대시고 크게 말씀하시는 것도…,



예수님도 참 대단하십니다. 돌려서 말하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좀 알아들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면 좋겠는데…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똑바로 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러면 이렇게 기록된 말씀은 무슨 뜻이냐?‘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내버린 돌이란 머릿돌이 될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이 돌은  하느님께서 세우시는 새로운 건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앉습니다. 더구나 모든 것을 심판하실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돌이기도 합니다. 집짓는 자들(백성의 지도자들과 불신자들)이 하느님 나라를 건설한다고 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버린 돌),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버린 돌)이 하느님 나라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과 유다인들이 만나서 이루게 될 하느님 나라의 중심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볼 눈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필요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해서 버렸는데 알고 보니 보석중의 보석이여서 정말 귀하게 쓰인다면 얼마나 배가 아프겠습니까? 필요 없는 땅이라고 버렸는데 갑자가 노른자 땅이 되었다면 얼마나 속이 아프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다인들에게는 그런 일이 닥칠 것입니다.



18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누구나 부서지고, 그 돌에 맞는 자는 누구나 으스러질 것이다.”

그 돌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돌에 떨어진다는 것과 그 돌에 맞는 다는 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심판자가 아니라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구원이 밀려옵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이들, 더 나아가 예수님을 모욕하는 이들에게는 구원이 아니라 심판이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19 율법 학자들과 수석 사제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당장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하였으나 백성이 두려웠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포도밭 주인이 “악한 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실”힘을 가지신 하느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신 이 악한 소작인들이 이스라엘의 포도밭을 짓밟은 로마인이라고 오해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것은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결국 그들 자신들이 스스로를 심판한 것입니다. 이 백성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렸을까요? 인정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저 자기가 옳다고 우기는 사람들, 남이 조금만 잘못해도 잡아먹으려 으르렁거리고, 자신의 허물은 하나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남을 짓밟는 사람들.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 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십시오. 거기에 바로 그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거울 속에…,



3. 나눔 및 묵상

1. 내가 하느님께 드려야 할 소작료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는 하느님께 소작료를 잘 내고 있습니까?



2. 가끔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것처럼, 그저 상대방들은 단지 침묵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잘못한 것들, 부족한 실수들에 대해서 용서를 청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이나, 배우자나, 부모나 직장 동료들에게 “미안합니다.”,“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얼마나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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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20,9-19;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태 21,33-46 ; 마르 12,1-12)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1. 말씀읽기: 루카 20,9-19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태 21,33-46 ; 마르 12,1-12)

    9 예수님께서 백성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오랫동안 멀리 떠나 있었다.

    10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포도밭 소출에서 얼마를 내놓으라고 하였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11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도 매질하고 모욕하고 나서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12 그리고 또 세 번째 종을 보냈더니, 그들은 그 종도 상처를 입히고 내쫓아 버렸다.

    13 그래서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할까? 사랑하는 내 아들을 보내야겠다.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서로 의논하면서,

    15 그를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6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똑바로 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러면 이렇게 기록된 말씀은 무슨 뜻이냐?‘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8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누구나 부서지고, 그 돌에 맞는 자는 누구나 으스러질 것이다.”

    19 율법 학자들과 수석 사제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당장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하였으나 백성이 두려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악한 포도원 소작인들. 그런데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당신께 닥친 상황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악을 꾸민 유다 국민의 지도자와 대사제와 원로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죽음에 넘기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아들의 순명과 수난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들의 불충을 바라보면서 내 모습을 성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어떤 소작인이었는지…,


    9 예수님께서 백성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오랫동안 멀리 떠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반감을 가지고 헤치려는 유다인들 틈 속에 계십니다. 그들의 행동을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포도밭을 일구어 소자인들에게 내주고 오랫동안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소작의 계약은 각 지방의 관습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릅니다. 소작인은 수확의 3분의 1, 혹은 반, 혹은 4분의 1을 지주에게 바쳤습니다. 지불은 거둔 농작물로 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이렇게 풀이하여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세상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도조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했는데 사람들은 그 도조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종들)을 보내어 도조(회개를 통하여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했는데 오히려 종(예언자들)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예수님(아들)까지 보내신 것입니다.


    10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포도밭 소출에서 얼마를 내놓으라고 하였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포도밭 주인의 종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종들은 몇 세기를 지나는 동안에 차례차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진 예언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도조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에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으니 “억만금”을 바치라는 말씀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적어도 포도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감사하고, 그것을 혼자만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바쳐야 할 도조는 바로 그것입니다.


    11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도 매질하고 모욕하고 나서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상황이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어려운 형제들에게 성당에서 땅을 농사지을 수 있도록 빌려주었지만 나중에는 팔아먹거나 등기를 자기들 앞으로 해 놓고, 자신들 것이라고 우기고, 그렇게 땅을 차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시겠지요. 가장 두려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12 그리고 또 세 번째 종을 보냈더니, 그들은 그 종도 상처를 입히고 내쫓아 버렸다.

    주인은 또 세 번째 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것은 매질과 모욕과 상처를 입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이 종에 대한 태도는 상식 밖의 일입니다. 이 세상에 지주의 종을 이처럼 잔인하게 다룰 소작인은 없습니다. 그런데 종들을 거느리고 있는 주인이라면 복수의 수단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종들이 이스라엘 예언자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주인이 복수를 안 하셨는지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작인들(나)이 예언자들을 박해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들(예언자들)도 참 불쌍했던 것 같습니다. 박해를 받을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께서 전하라고 하시니 가서 전하는 그들의 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어떻습니까? 신자들한테 가기 귀찮아서 주저앉아 있고, 누가 성당에 나오지 않아도 관심도 없고…,

     그래도 돌로 쳐 죽이지는 않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 종(예언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힘내서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돌 맞을 짓을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본당 신자들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는 금방 드러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지, 신자들을 위해서 하는지, 열심히 하는지, 대충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13 그래서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할까? 사랑하는 내 아들을 보내야겠다.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고 말하였다.

    이제 포도밭 주인은 아들을 보내십니다.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하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이 주인에게는 자기 아들의 목숨보다도 밭의 도조가 더 중요했을까요? 종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주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들보다도 밭에다 더 애정을 쏟았던 것일까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이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아들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바라본다면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주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도 알 수 있습니다.


    14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서로 의논하면서,

    소작인들의 태도는 요한복음 1장 9절부터 11절의 말씀 과 같습니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1,9-11)

     어둠은 빛을 싫어합니다. 빛을 싫어하기에 어둠으로 빛을 덮어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선택한 것은 바로 어둠으로 빛을 덮어 버리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15 그를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이제 어둠속에서 살아가는, 어둠 자체인 포도밭의 소작인들은 포도밭 주인의 아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었지만 그들은 그 기회마저 포기하였습니다.

     살인자 소작인들은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 특히 그 지도자인 바리사이파 사람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배은망덕한 소작인들을 벌하시고 포도원을 빼앗으셨습니다. 기원 70년 예루살렘은 로마에 함락되고 맙니다.


    16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이런 비유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지금 예수님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 “바로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데…,”


    내가 나를 돌아보지 못하면, 나에게 하시는 말씀들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의 부드러운 충고도, 하느님께서 내 귀에 대시고 크게 말씀하시는 것도…,


    예수님도 참 대단하십니다. 돌려서 말하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좀 알아들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면 좋겠는데…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똑바로 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러면 이렇게 기록된 말씀은 무슨 뜻이냐?‘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내버린 돌이란 머릿돌이 될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이 돌은  하느님께서 세우시는 새로운 건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앉습니다. 더구나 모든 것을 심판하실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돌이기도 합니다. 집짓는 자들(백성의 지도자들과 불신자들)이 하느님 나라를 건설한다고 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버린 돌),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버린 돌)이 하느님 나라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과 유다인들이 만나서 이루게 될 하느님 나라의 중심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볼 눈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필요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해서 버렸는데 알고 보니 보석중의 보석이여서 정말 귀하게 쓰인다면 얼마나 배가 아프겠습니까? 필요 없는 땅이라고 버렸는데 갑자가 노른자 땅이 되었다면 얼마나 속이 아프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다인들에게는 그런 일이 닥칠 것입니다.


    18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누구나 부서지고, 그 돌에 맞는 자는 누구나 으스러질 것이다.”

    그 돌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돌에 떨어진다는 것과 그 돌에 맞는 다는 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심판자가 아니라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구원이 밀려옵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이들, 더 나아가 예수님을 모욕하는 이들에게는 구원이 아니라 심판이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19 율법 학자들과 수석 사제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당장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하였으나 백성이 두려웠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포도밭 주인이 “악한 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실”힘을 가지신 하느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신 이 악한 소작인들이 이스라엘의 포도밭을 짓밟은 로마인이라고 오해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것은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결국 그들 자신들이 스스로를 심판한 것입니다. 이 백성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렸을까요? 인정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저 자기가 옳다고 우기는 사람들, 남이 조금만 잘못해도 잡아먹으려 으르렁거리고, 자신의 허물은 하나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남을 짓밟는 사람들.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 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십시오. 거기에 바로 그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거울 속에…,


    3. 나눔 및 묵상

    1. 내가 하느님께 드려야 할 소작료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는 하느님께 소작료를 잘 내고 있습니까?


    2. 가끔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것처럼, 그저 상대방들은 단지 침묵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잘못한 것들, 부족한 실수들에 대해서 용서를 청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이나, 배우자나, 부모나 직장 동료들에게 “미안합니다.”,“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얼마나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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