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판단

사탄주의는 기본적으로 하나이신 참 하느님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로마 교황청립 라떼란 대학교의 총장인 안젤로 스콜라 주교는 사탄주의에 대해 교회가 어떤 판단을 내리는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경배는 단순한 예식이나 신심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
도록 자시의 모든 삶을 봉헌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경배는 완성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오직 하느님만을 지향하는 경배 행위는 기본적으로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부께로 향하는 [응답]이다. 그 안에서 모든 성덕은 참 의미를 갖고 인
간의 모든 차원을 포함하게 된다.
사탄주의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한마디로 건전한 신앙을 견지하는 것이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72년 한 일반 알현석상에서 악마는 단지 어떤 것의 [부족]만을 의
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 존재, 살아있는 영적 존재로서 가공할 실재라고 지적했다.
제 4차 라떼란 공의회는 {악마는 원래 하느님으로부터 선하게 창조된 실재로서 스스로
자신을 악하게 만들었고 인간은 악마의 제의를 받아들여 악을 범했다}고 선언했다.
성서와 교회 전통은 사탄, 악마를 타락한 천사로 간주한다. 교회는 사탄이 처음에는 선하
였으나 스스로 악에 빠졌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교회는 악마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실
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악마는 구원의 역사 안에서, 창조와 원죄의 맥락에서 하부적인 역할만을 갖는다.
악으로서의 사탄을 선이신 하느님과 대등한 위치에 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구세사는 자
비의 하느님과 악신의 투쟁이라는 이분법이 아니다.
악을 물리치려 아들을 불러낸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권능의 영역이다. 따라서 유일한
가능성은 승리뿐이며 애초부터 사탄은 패배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비록 패배하더라도 사탄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아들을 어려움에 처하게 하고 인간
을 구세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온갖 덫을 놓는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이런 투쟁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유한한 실재로서 인간은 스스로
의 자유를 부여받고 있기에 그의 삶안에서 사탄의 유혹과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성서에서 나타나는 사탄에 대한 비난과 경고는 기본적으로 사탄주의가 하나이신 참 하느
님을 거부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위험에 처한 당신 백성을 구원하는 것은 오로지 주님뿐
이다. 오직 하느님만이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구원한다.
교회의 역사의 어떤 기간에도 교회의 판단은 변함이 없다. 사탄 숭배는 우상숭배이다. 왜
냐하면 이는 곧 하느님이 아닌 인간의 적에게 힘과 신성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런 행동은 따라서 하느님과의 일치와 친교를 극단적으로 해치며 하나이신 하느님 대신
사탄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탄주의에 참여하는 것은 사탄 앞에서 인간이 극도로 무력해지는 행위이다. 경배 예식에
참여하면 할수록 인간은 더 약화되고 무력해진다. 구원의 손길을 좌절시키는 사탄주의에
대항해서 성부는 결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성실하게 용서를 청하는 이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복음화의 사명에 충실할수록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사탄을 정복하는 하느님께 완전히 의탁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은 결코 다른 데서 구원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는 바
로 하나이고 참된 인간과 세상의 구세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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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판단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사탄주의는 기본적으로 하나이신 참 하느님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로마 교황청립 라떼란 대학교의 총장인 안젤로 스콜라 주교는 사탄주의에 대해 교회가 어떤 판단을 내리는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경배는 단순한 예식이나 신심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
    도록 자시의 모든 삶을 봉헌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경배는 완성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오직 하느님만을 지향하는 경배 행위는 기본적으로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부께로 향하는 [응답]이다. 그 안에서 모든 성덕은 참 의미를 갖고 인
    간의 모든 차원을 포함하게 된다.
    사탄주의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한마디로 건전한 신앙을 견지하는 것이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72년 한 일반 알현석상에서 악마는 단지 어떤 것의 [부족]만을 의
    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 존재, 살아있는 영적 존재로서 가공할 실재라고 지적했다.
    제 4차 라떼란 공의회는 {악마는 원래 하느님으로부터 선하게 창조된 실재로서 스스로
    자신을 악하게 만들었고 인간은 악마의 제의를 받아들여 악을 범했다}고 선언했다.
    성서와 교회 전통은 사탄, 악마를 타락한 천사로 간주한다. 교회는 사탄이 처음에는 선하
    였으나 스스로 악에 빠졌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교회는 악마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실
    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악마는 구원의 역사 안에서, 창조와 원죄의 맥락에서 하부적인 역할만을 갖는다.
    악으로서의 사탄을 선이신 하느님과 대등한 위치에 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구세사는 자
    비의 하느님과 악신의 투쟁이라는 이분법이 아니다.
    악을 물리치려 아들을 불러낸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권능의 영역이다. 따라서 유일한
    가능성은 승리뿐이며 애초부터 사탄은 패배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비록 패배하더라도 사탄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아들을 어려움에 처하게 하고 인간
    을 구세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온갖 덫을 놓는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이런 투쟁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유한한 실재로서 인간은 스스로
    의 자유를 부여받고 있기에 그의 삶안에서 사탄의 유혹과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성서에서 나타나는 사탄에 대한 비난과 경고는 기본적으로 사탄주의가 하나이신 참 하느
    님을 거부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위험에 처한 당신 백성을 구원하는 것은 오로지 주님뿐
    이다. 오직 하느님만이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구원한다.
    교회의 역사의 어떤 기간에도 교회의 판단은 변함이 없다. 사탄 숭배는 우상숭배이다. 왜
    냐하면 이는 곧 하느님이 아닌 인간의 적에게 힘과 신성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런 행동은 따라서 하느님과의 일치와 친교를 극단적으로 해치며 하나이신 하느님 대신
    사탄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탄주의에 참여하는 것은 사탄 앞에서 인간이 극도로 무력해지는 행위이다. 경배 예식에
    참여하면 할수록 인간은 더 약화되고 무력해진다. 구원의 손길을 좌절시키는 사탄주의에
    대항해서 성부는 결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성실하게 용서를 청하는 이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복음화의 사명에 충실할수록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사탄을 정복하는 하느님께 완전히 의탁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은 결코 다른 데서 구원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는 바
    로 하나이고 참된 인간과 세상의 구세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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