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유혹

 

4. 죄와 유혹


   왜 인간은 창조주를 거역하고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죄를 범하는 것일까? 죄를 범하


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윤리신학에서는 그 답으로 ‘죄의 기회’


와 ‘유혹’이라는 두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1) 죄의 기회


   죄는 근본적으로 인간 자유의지의 유한성과 나약성에서 기인한다고 하겠지만 직접적


으로는 인간의 실존적 환경이 죄를 범하게 하는 기회로 작용한다. 즉 인간은 세상안에


들어찬 죄악으로 말미암아 도처에서 잘못을 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되며, 이로인해


인간은 ‘죄의 유혹’을 느끼게 된다. 이런 죄의 유혹에 자유로이 동의함으로써 짓게 되는


죄는 개인뿐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와 세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죄는 하나의 세력으로서 사회구조, 가치체계, 이념, 전통, 관습, 집단 행동 속에,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의 사고방식 속에 스며들어 세상 안에 ‘죄의 현실’, 즉 죄악으로 비틀어진


세상의 세력이 되어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 이전에 이미 그를 에워싸 그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고 그를 억압하게 된다. 이로써 인간은 선을 행하고는 싶으나 이들의 영향으


로 죄를 범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여기에 대해 인간은 자신의 노력과 선의만으로는


대처해 나갈 수가 없고, 오직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덕심과 사랑이 확대됨으


로 해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삶의 현장은 이런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즉


인간 삶의 현장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 사랑과 순종을 고백하는 기회의 장이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따라서 삶의 현장 자체를 무조건 기피하거나 죄악시하려는 것은 잘


못이다. 삶의 현장이 죄의 기회가 되는 것은 그것이 나 자신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그러한 가능성을 보다 많이 제공하고 있을 때이다. 따라서 언제나


인간은 죄의 기회를 피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2) 죄의 유혹


   유혹은 악을 행하도록 인간을 자극하는 것이다. 성서나 교회의 오랜 전승은 한결같이,


인간이 죄의 유혹을 받고 있다는 것과 인간을 유혹하는 것에는 마귀와 세속과 육신의 세


가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마귀와 세속이 인간을 유혹하는 외적요인이라면 육


신의 욕망은 인간 자신의 내적요인이라 할 수 있다.


   (1) 마귀 


   성서는 하나의 실재로서 사탄 또는 마귀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마귀는 인


간이 하느님께로 나아가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방해하면서 악으로 기울도록 하는


유혹자로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성서가 마귀를 의인화시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인간을


죄와 불행에로 이끄는 악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성서만


이 아니라 모든 문화권에서 한결같이 인정하고 묘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마귀는 인


간을 현혹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끔 만들며 악으로 기울도록 충동질한다. 그


러나 마귀는 영적 존재이기에 인간에게 직접 접근하지 않고 오관의 대상인 물질이나 이


물질을 통해서 얻어진 상상을 동원하여 인간을 유혹한다. 따라서 실제적인 유혹자는 세


속이라고 할 수 있다.


   (2) 세속 


   세속은 하느님의 피조물인 세상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악에 오염되어 있고 악


의 도구가 되어 악 자체의 역할을 하는 현상계를 말한다. 다시말해서 세속이란 윤리적으


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한계 문헌이나 바오로의 서간에서


말하는 세속은 하느님을 거역하고 죄스러운 생활을 하는 조건이나 사회 또는 사람, 구조


적인 악을 가리킨다. 이것은 또한 마귀의 세력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마귀와 세속은 완전


히 별개의 것이라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어지럽히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도록 방


해하며 인간을 잘못되도록 유혹하는 세력이나 환경 또는 조건 등을 총칭하는 표현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3) 육신 


   여기서의 육신은 인간을 영혼과 육신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지니고 있는 한계성 또는 나약성을 의미한다. 인간은 오관을 통해서 자기 밖의 세계와


접촉을 하게 되는데, 자기 뜻대로 육신이 움직여 주지 않는 갈등의 체험에서 육신을 일


종의 유혹으로도 묘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혹자로서의 육신이란 죄에 기울어


지는 인간의 성향을 의미한다.  또한 육신을 꾸준히 조련하지 않으면 민첩하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수덕적인 반성에서 육신을 유혹의 요인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인간 외부에서 오는 충동과 인간 내부의 경향이 소위 유혹을 일으키는데, 이 유혹을


의식하게 되는 것은 욕정의 충동과 양심의 경고가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현상을 체험할


때이다. 아무리 심한 유혹이라 할지라도 유혹자체는 죄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유혹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조건을 깨닫도록 해주는 시금석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런 유혹을 스스로 찾아가거나 그 유혹에서 떠나지 않을 경우에는 죄로 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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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유혹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4. 죄와 유혹

       왜 인간은 창조주를 거역하고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죄를 범하는 것일까? 죄를 범하

    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윤리신학에서는 그 답으로 ‘죄의 기회’

    와 ‘유혹’이라는 두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1) 죄의 기회

       죄는 근본적으로 인간 자유의지의 유한성과 나약성에서 기인한다고 하겠지만 직접적

    으로는 인간의 실존적 환경이 죄를 범하게 하는 기회로 작용한다. 즉 인간은 세상안에

    들어찬 죄악으로 말미암아 도처에서 잘못을 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되며, 이로인해

    인간은 ‘죄의 유혹’을 느끼게 된다. 이런 죄의 유혹에 자유로이 동의함으로써 짓게 되는

    죄는 개인뿐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와 세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죄는 하나의 세력으로서 사회구조, 가치체계, 이념, 전통, 관습, 집단 행동 속에,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의 사고방식 속에 스며들어 세상 안에 ‘죄의 현실’, 즉 죄악으로 비틀어진

    세상의 세력이 되어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 이전에 이미 그를 에워싸 그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고 그를 억압하게 된다. 이로써 인간은 선을 행하고는 싶으나 이들의 영향으

    로 죄를 범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여기에 대해 인간은 자신의 노력과 선의만으로는

    대처해 나갈 수가 없고, 오직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덕심과 사랑이 확대됨으

    로 해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삶의 현장은 이런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즉

    인간 삶의 현장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 사랑과 순종을 고백하는 기회의 장이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따라서 삶의 현장 자체를 무조건 기피하거나 죄악시하려는 것은 잘

    못이다. 삶의 현장이 죄의 기회가 되는 것은 그것이 나 자신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그러한 가능성을 보다 많이 제공하고 있을 때이다. 따라서 언제나

    인간은 죄의 기회를 피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2) 죄의 유혹

       유혹은 악을 행하도록 인간을 자극하는 것이다. 성서나 교회의 오랜 전승은 한결같이,

    인간이 죄의 유혹을 받고 있다는 것과 인간을 유혹하는 것에는 마귀와 세속과 육신의 세

    가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마귀와 세속이 인간을 유혹하는 외적요인이라면 육

    신의 욕망은 인간 자신의 내적요인이라 할 수 있다.

       (1) 마귀 

       성서는 하나의 실재로서 사탄 또는 마귀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마귀는 인

    간이 하느님께로 나아가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방해하면서 악으로 기울도록 하는

    유혹자로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성서가 마귀를 의인화시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인간을

    죄와 불행에로 이끄는 악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성서만

    이 아니라 모든 문화권에서 한결같이 인정하고 묘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마귀는 인

    간을 현혹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끔 만들며 악으로 기울도록 충동질한다. 그

    러나 마귀는 영적 존재이기에 인간에게 직접 접근하지 않고 오관의 대상인 물질이나 이

    물질을 통해서 얻어진 상상을 동원하여 인간을 유혹한다. 따라서 실제적인 유혹자는 세

    속이라고 할 수 있다.

       (2) 세속 

       세속은 하느님의 피조물인 세상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악에 오염되어 있고 악

    의 도구가 되어 악 자체의 역할을 하는 현상계를 말한다. 다시말해서 세속이란 윤리적으

    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한계 문헌이나 바오로의 서간에서

    말하는 세속은 하느님을 거역하고 죄스러운 생활을 하는 조건이나 사회 또는 사람, 구조

    적인 악을 가리킨다. 이것은 또한 마귀의 세력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마귀와 세속은 완전

    히 별개의 것이라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어지럽히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도록 방

    해하며 인간을 잘못되도록 유혹하는 세력이나 환경 또는 조건 등을 총칭하는 표현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3) 육신 

       여기서의 육신은 인간을 영혼과 육신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지니고 있는 한계성 또는 나약성을 의미한다. 인간은 오관을 통해서 자기 밖의 세계와

    접촉을 하게 되는데, 자기 뜻대로 육신이 움직여 주지 않는 갈등의 체험에서 육신을 일

    종의 유혹으로도 묘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혹자로서의 육신이란 죄에 기울어

    지는 인간의 성향을 의미한다.  또한 육신을 꾸준히 조련하지 않으면 민첩하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수덕적인 반성에서 육신을 유혹의 요인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인간 외부에서 오는 충동과 인간 내부의 경향이 소위 유혹을 일으키는데, 이 유혹을

    의식하게 되는 것은 욕정의 충동과 양심의 경고가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현상을 체험할

    때이다. 아무리 심한 유혹이라 할지라도 유혹자체는 죄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유혹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조건을 깨닫도록 해주는 시금석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런 유혹을 스스로 찾아가거나 그 유혹에서 떠나지 않을 경우에는 죄로 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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