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성사-성서적 근거

 

2.   성서적 근거




2.1.   창조의 선물로서의 결혼


여러 문화권에서 결혼은 하나의 종교적 행위이다. 많은 경우 결혼은 “거룩한 결혼식”이라는 주제와 결부된다. 즉 이원론적인 세계관의 배경에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 대립되는 양극(兩極)을 대표하고 있고, 결혼은 이 양극의 우주적인 화해의 동작으로 나타난다. 모든 결혼은 대립되는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고, 질서을 세우며, 부족과 우주의 구원에 도움이 되고, 그래서 예식으로 거행되었다. 적지 않은 경우 이 거룩한 결혼식은 신성(神性)의 대표자인 사제나 성전 창녀와 이루어지는 성적인 결합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이와는 분명히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에서의 결혼은 세속적인 성격을 지닌다. 구약성서는 성대한 결혼 축제와 풍성한 관습(토비아서 8,19)을 언급하지만, 혼인이 종교적인 예식을 통해서 승인되는 절차를 거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가나안 토속 종교의 영향을 받아서 성전에서 몸을 파는 행위를 분명하게 금지하였다(신명 23,18 이하 참조). 구약성서에서 결혼에 대해서 얘기할 때 전면에 나타나는 것은 후손에 관한 관심인데, 情愛와 性愛에 관한 언급도 있다(특히 아가, 창조 24,67; 29,20; 1 사무 18,20,28도 참조). 인간의 양성은 우주적인 분열의 표현이 아니라 창조주의 선물이며 (창세 1,27; 5,2), 두 성의 서로 당기는 힘 또한 창조주의 선물로 보았다 (창세 2,21-34).


구약성서에서 “성생활은 인간 생활의 중심요소로 생각되고 있다. 황막한 세계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원조들에 관해 성서가 제일 먼저 보고하고 있는 것은 사람(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를 알았다(동침했다)는 사실이다(창세 4,1). 성서의 설화자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냉혹한 현실생활의 갖가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결정적인 도움은 부부간의 애정에 있다는 것을 뚜렷이 인식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낙원에서 행복하게 지낼 때는 그런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낙원에서 추방되어)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자 비로소 그들은 서로를 찾았다”.1)




또한 성서는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같은 품위가 부여되어 있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창세 1,27). 야훼스트의 증언에 의하면, 남성이 여성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결과이다 (창세 3,16).




2.2.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충실의 상징으로서의 결혼


예언자들은 결혼을 하느님과 이스라엘과의 역사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하였는데, 대부분 비난하는 기능으로 사용되었다: 마음의 넓고 충실하며 자비로운 남편(야훼)에 감사할 줄 모르고 불충하며 뻔뻔스러운 아내 (이스라엘)이 대치되어 있다 (특히 에제 16; 23; 광의로 예레 2,2; 3,1 이하; 이사 62,4 이하; 호세 2,4-22; 9,1 참조). 호세아의 경우 말씀으로 선포된 것이 실제로 상징 행동으로 나타난다. 즉 그는 하느님의 위탁을 받아서 창녀 (호세 1,2-9)와 간음한 여인 (호세 3, 1-5)을 아내로 맞아 들이는 데, 이는 이스라엘에게 하느님께 대한 불충을 보여주고, 그와 함께 하느님의 역설적인 사랑을 선포하려는 것이다.




2.3.  예수: 무조건적 충실에로의 요구


결혼에 충실하고 배우자에게 신의를 지키라는 요구는 구약에 있어서 (가부장적인 결혼법률에 상응하게) 대부분 여자들에게 해당이 됐고, 가끔은 남자들에게도 해당되었다 (잠언 2,16 이하; 5,1-23; 말라 2, 14-16; 잠언 2,17에는 간음과 하느님과의 계약의 파기를 같은 선상에 놓았다). 오직 남자 만이 여자를 내보낼 수 있었다. 어떤 이유가 이런 이혼의 정당한 근거가 되느냐에 대해서는 학파마다 의견이 달랐다. 남자가 여자를 내보낼 경우에 남자는 여자가 권리를 잃지 않도록 이혼 증서를 써 주어야 했다(신명 24,1-3).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관습은 남자들의 “모진 마음”에 대한 타협이라고 비난하시면서, “시초부터 그렇게 돼었던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마태 19,8). 예수께서는 창조 때 마련된 결혼의 질서에 무조건적으로 충실하라고 요구하시면서 상대편을 버리는 것을 근본적으로 금하신다 (마태 10,9; 마르 19,6). 나중에 신약의 교회공동체는 예수의 엄격한 요구를 실천하는 동시에 예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나타난 문제들과 중재하려고 노력하였다.


예수의 요구는 여러 형태로 변형된다. 원래의 예수의 말씀은 단지 남성을 대상으로 하였는데(왜냐하면 이스라엘에서 여자들은 남자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마르코는 로마인들의 이혼법을 염두에 두고 남자들에 대한 이혼 금지에 여자들에 대한 이혼 금지도 삽입하였다. “또한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다”(마르 10,11). 마테오의 공동체에서는 예수의 요구를 현실에 맞도록 하기 위해서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마태 5,32; 19,9)라는 예외 규정을 두었다. 간음한 여인을 낸 보낼 수 없다는 것은 그 당시의 유다인의 심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고, 더 나아가서는 비윤리적으로까지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는 고린토 교회에서 결혼한 이들 중에서 한 편이 신자가 되려하기 때문에 다른 편이 갈라서기를 원하는 경우를 당하게 되자 이에 대해서 지침을 준다. 바오로는 근본적으로 종교가 다른 결혼이라도 계속 지속되는 것을 찬성하면서, 믿지 않는 쪽에 의해서 “부정하게”될 두려움에 대해서 그를 “거룩하게”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바오로는 믿지 않는 쪽이 헤어지기를 원하면 신자측은 그를 가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허락한다. 이 경우 신자인 쪽은 더 이상 매어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평화롭게 살라고 부르셨기” 때문이다(1고린 7,12-16). 이렇게 바오로는 사목적인 현실과 무조건적인 예수의 요구를 연결하였으나, 그러나 권위의 차이가 있음을 다음과 같은 말로 분명히 하였다. “내가 아니라 주님께서 명하십니다 […] 그밖의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아니라 내가 말합니다”(1고린 7,10,12). 근본적인 원칙은 무조건적으로 충실하라는 예수의 요구이다. 그러나 “평화로운 삶에로의 부르심”은 근본 원칙을 무시함이 없이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하게 하고 예외 규정을 만드는 것을 허용한다.




2.4. 그리스도 신자 간의 결혼 –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상


에페소서는 가정에서의 그리스도교적 행동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설명한다: 남편과 아내 (5,21-33), 부모와 자녀 (6,1-4), 주인과 종 (6,5-9)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는, 매번 그 관계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댄다. 모든 관계에 해당되는 근본 원칙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며 서로 순종하라”는 것이다 (5,21). 그러나 다음에는 이 원칙에 철저하기 보다는, 추측컨대 그 당시의 사회적인 관습에 영향을 받아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설명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 남편은 부인을 사랑해야 한다. 에페소서는 남편들에게 요구된 사랑을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표상으로 발전시킨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넘겨 주셔서”, 교회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만들어서”, 교회가 “때나 주름이나 그와 비숫한 어떠한 흠도 없이 화려한 모습으로 당신 앞에 나오게” 하시려 하였다 (5,25-27). 모두가 자기를 자신의 몸과 동일시하고, 몸을 “기르고 돌보듯이”, 그리스도도 자신의 교회를 그렇게 대하신다 (5,29). 창세기 2,24에서 남자와 여자에 대해 언급된 것 (“남자는 여자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은 “큰 신비인데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한다”(5,32)고 바울로는 얘기한다. “큰 신비”(mysterion)란 우선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 (4,15 이하; 5,30)인 교회를 사랑하고 돌보고 그와 자신을 하나도 동일시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이렇게 남자, 여자와의 관계와 그리스도가 자신의 교회에 대한 관계가 밀접하게 얽혀진 것은 그리스도교의 혼인에 무슨 의미을 주는가?


가톨릭의 성서학자들은 여기에서 단순한 비유, 즉 모범과 이를 따르는 관계, 그 이상을 본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보이신 사랑은 결혼한 이들이 본받아야 한다는 단순한 모범의 차원을 넘어선다. 고대 교부들의 원형-모형 사고 방식처럼 모형인 현세의 결혼과 그 실행은 그리스도의 원형을 통해서 그 본질의 형성된다. 현세의 결혼이라는 모형은 원형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표현한다…. 현세의 결혼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관계를 본질적으로 보존한다.2) 바로 이렇게 때문에 (단순히 라틴어로 “sacramentum”으로 번역되는 “mysterion”이라는 말마디 때문이 아니라) 에페 5,21-33은 결혼을 “성사적”으로 해석하도록 이끈다.


가톨릭 신약성서학자 하인리히 슐리어(Heinrich Schlier)는 에페 5,21-33이 종교역사적인 측면에서는 “거룩한 혼인”(2.1. 참조)이라는 주제를 받아들여서 변형시켰다고 추측한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남자와 여자와의 사랑 안에서 하늘과 땅이 합하여진다는 생각이다. 차이점은, 에페소서가 혼인이라는 사실만으로 마술적, 자동적으로 신성(神性)과의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부 상호간의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현존하게 된다고 보는 데에 있다.




개신교의 성서학자들은 혼인을 이렇게 성사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성서가 그 당시의 인접한 다른 종교들과는 대조적으로 당연하게 여겼던 결혼의 현세적이고 세상적인 성격을 잃어버릴까,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비가 묻혀버릴까, 하는 염려에 있다. 그러나 이런 염려를 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주님께서 교회 공동체 안에 살아 계시듯, 혼인 안에서도 살아계시고, 그리스도 사건에 의해서 결혼 사건도 규정된다”3) 이렇게 볼 때 해석의 차이는 에페 5,21-33 본문 자체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에 있기 보다는 “성사”란 개념에 따라 다니는 서로 다른 연상에 근거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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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성사-성서적 근거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2.   성서적 근거


    2.1.   창조의 선물로서의 결혼

    여러 문화권에서 결혼은 하나의 종교적 행위이다. 많은 경우 결혼은 “거룩한 결혼식”이라는 주제와 결부된다. 즉 이원론적인 세계관의 배경에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 대립되는 양극(兩極)을 대표하고 있고, 결혼은 이 양극의 우주적인 화해의 동작으로 나타난다. 모든 결혼은 대립되는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고, 질서을 세우며, 부족과 우주의 구원에 도움이 되고, 그래서 예식으로 거행되었다. 적지 않은 경우 이 거룩한 결혼식은 신성(神性)의 대표자인 사제나 성전 창녀와 이루어지는 성적인 결합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이와는 분명히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에서의 결혼은 세속적인 성격을 지닌다. 구약성서는 성대한 결혼 축제와 풍성한 관습(토비아서 8,19)을 언급하지만, 혼인이 종교적인 예식을 통해서 승인되는 절차를 거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가나안 토속 종교의 영향을 받아서 성전에서 몸을 파는 행위를 분명하게 금지하였다(신명 23,18 이하 참조). 구약성서에서 결혼에 대해서 얘기할 때 전면에 나타나는 것은 후손에 관한 관심인데, 情愛와 性愛에 관한 언급도 있다(특히 아가, 창조 24,67; 29,20; 1 사무 18,20,28도 참조). 인간의 양성은 우주적인 분열의 표현이 아니라 창조주의 선물이며 (창세 1,27; 5,2), 두 성의 서로 당기는 힘 또한 창조주의 선물로 보았다 (창세 2,21-34).

    구약성서에서 “성생활은 인간 생활의 중심요소로 생각되고 있다. 황막한 세계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원조들에 관해 성서가 제일 먼저 보고하고 있는 것은 사람(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를 알았다(동침했다)는 사실이다(창세 4,1). 성서의 설화자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냉혹한 현실생활의 갖가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결정적인 도움은 부부간의 애정에 있다는 것을 뚜렷이 인식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낙원에서 행복하게 지낼 때는 그런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낙원에서 추방되어)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자 비로소 그들은 서로를 찾았다”.1)


    또한 성서는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같은 품위가 부여되어 있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창세 1,27). 야훼스트의 증언에 의하면, 남성이 여성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결과이다 (창세 3,16).


    2.2.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충실의 상징으로서의 결혼

    예언자들은 결혼을 하느님과 이스라엘과의 역사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하였는데, 대부분 비난하는 기능으로 사용되었다: 마음의 넓고 충실하며 자비로운 남편(야훼)에 감사할 줄 모르고 불충하며 뻔뻔스러운 아내 (이스라엘)이 대치되어 있다 (특히 에제 16; 23; 광의로 예레 2,2; 3,1 이하; 이사 62,4 이하; 호세 2,4-22; 9,1 참조). 호세아의 경우 말씀으로 선포된 것이 실제로 상징 행동으로 나타난다. 즉 그는 하느님의 위탁을 받아서 창녀 (호세 1,2-9)와 간음한 여인 (호세 3, 1-5)을 아내로 맞아 들이는 데, 이는 이스라엘에게 하느님께 대한 불충을 보여주고, 그와 함께 하느님의 역설적인 사랑을 선포하려는 것이다.


    2.3.  예수: 무조건적 충실에로의 요구

    결혼에 충실하고 배우자에게 신의를 지키라는 요구는 구약에 있어서 (가부장적인 결혼법률에 상응하게) 대부분 여자들에게 해당이 됐고, 가끔은 남자들에게도 해당되었다 (잠언 2,16 이하; 5,1-23; 말라 2, 14-16; 잠언 2,17에는 간음과 하느님과의 계약의 파기를 같은 선상에 놓았다). 오직 남자 만이 여자를 내보낼 수 있었다. 어떤 이유가 이런 이혼의 정당한 근거가 되느냐에 대해서는 학파마다 의견이 달랐다. 남자가 여자를 내보낼 경우에 남자는 여자가 권리를 잃지 않도록 이혼 증서를 써 주어야 했다(신명 24,1-3).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관습은 남자들의 “모진 마음”에 대한 타협이라고 비난하시면서, “시초부터 그렇게 돼었던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마태 19,8). 예수께서는 창조 때 마련된 결혼의 질서에 무조건적으로 충실하라고 요구하시면서 상대편을 버리는 것을 근본적으로 금하신다 (마태 10,9; 마르 19,6). 나중에 신약의 교회공동체는 예수의 엄격한 요구를 실천하는 동시에 예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나타난 문제들과 중재하려고 노력하였다.

    예수의 요구는 여러 형태로 변형된다. 원래의 예수의 말씀은 단지 남성을 대상으로 하였는데(왜냐하면 이스라엘에서 여자들은 남자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마르코는 로마인들의 이혼법을 염두에 두고 남자들에 대한 이혼 금지에 여자들에 대한 이혼 금지도 삽입하였다. “또한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다”(마르 10,11). 마테오의 공동체에서는 예수의 요구를 현실에 맞도록 하기 위해서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마태 5,32; 19,9)라는 예외 규정을 두었다. 간음한 여인을 낸 보낼 수 없다는 것은 그 당시의 유다인의 심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고, 더 나아가서는 비윤리적으로까지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는 고린토 교회에서 결혼한 이들 중에서 한 편이 신자가 되려하기 때문에 다른 편이 갈라서기를 원하는 경우를 당하게 되자 이에 대해서 지침을 준다. 바오로는 근본적으로 종교가 다른 결혼이라도 계속 지속되는 것을 찬성하면서, 믿지 않는 쪽에 의해서 “부정하게”될 두려움에 대해서 그를 “거룩하게”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바오로는 믿지 않는 쪽이 헤어지기를 원하면 신자측은 그를 가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허락한다. 이 경우 신자인 쪽은 더 이상 매어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평화롭게 살라고 부르셨기” 때문이다(1고린 7,12-16). 이렇게 바오로는 사목적인 현실과 무조건적인 예수의 요구를 연결하였으나, 그러나 권위의 차이가 있음을 다음과 같은 말로 분명히 하였다. “내가 아니라 주님께서 명하십니다 […] 그밖의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아니라 내가 말합니다”(1고린 7,10,12). 근본적인 원칙은 무조건적으로 충실하라는 예수의 요구이다. 그러나 “평화로운 삶에로의 부르심”은 근본 원칙을 무시함이 없이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하게 하고 예외 규정을 만드는 것을 허용한다.


    2.4. 그리스도 신자 간의 결혼 –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상

    에페소서는 가정에서의 그리스도교적 행동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설명한다: 남편과 아내 (5,21-33), 부모와 자녀 (6,1-4), 주인과 종 (6,5-9)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는, 매번 그 관계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댄다. 모든 관계에 해당되는 근본 원칙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며 서로 순종하라”는 것이다 (5,21). 그러나 다음에는 이 원칙에 철저하기 보다는, 추측컨대 그 당시의 사회적인 관습에 영향을 받아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설명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 남편은 부인을 사랑해야 한다. 에페소서는 남편들에게 요구된 사랑을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표상으로 발전시킨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넘겨 주셔서”, 교회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만들어서”, 교회가 “때나 주름이나 그와 비숫한 어떠한 흠도 없이 화려한 모습으로 당신 앞에 나오게” 하시려 하였다 (5,25-27). 모두가 자기를 자신의 몸과 동일시하고, 몸을 “기르고 돌보듯이”, 그리스도도 자신의 교회를 그렇게 대하신다 (5,29). 창세기 2,24에서 남자와 여자에 대해 언급된 것 (“남자는 여자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은 “큰 신비인데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한다”(5,32)고 바울로는 얘기한다. “큰 신비”(mysterion)란 우선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 (4,15 이하; 5,30)인 교회를 사랑하고 돌보고 그와 자신을 하나도 동일시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이렇게 남자, 여자와의 관계와 그리스도가 자신의 교회에 대한 관계가 밀접하게 얽혀진 것은 그리스도교의 혼인에 무슨 의미을 주는가?

    가톨릭의 성서학자들은 여기에서 단순한 비유, 즉 모범과 이를 따르는 관계, 그 이상을 본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보이신 사랑은 결혼한 이들이 본받아야 한다는 단순한 모범의 차원을 넘어선다. 고대 교부들의 원형-모형 사고 방식처럼 모형인 현세의 결혼과 그 실행은 그리스도의 원형을 통해서 그 본질의 형성된다. 현세의 결혼이라는 모형은 원형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표현한다…. 현세의 결혼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관계를 본질적으로 보존한다.2) 바로 이렇게 때문에 (단순히 라틴어로 “sacramentum”으로 번역되는 “mysterion”이라는 말마디 때문이 아니라) 에페 5,21-33은 결혼을 “성사적”으로 해석하도록 이끈다.

    가톨릭 신약성서학자 하인리히 슐리어(Heinrich Schlier)는 에페 5,21-33이 종교역사적인 측면에서는 “거룩한 혼인”(2.1. 참조)이라는 주제를 받아들여서 변형시켰다고 추측한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남자와 여자와의 사랑 안에서 하늘과 땅이 합하여진다는 생각이다. 차이점은, 에페소서가 혼인이라는 사실만으로 마술적, 자동적으로 신성(神性)과의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부 상호간의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현존하게 된다고 보는 데에 있다.


    개신교의 성서학자들은 혼인을 이렇게 성사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성서가 그 당시의 인접한 다른 종교들과는 대조적으로 당연하게 여겼던 결혼의 현세적이고 세상적인 성격을 잃어버릴까,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비가 묻혀버릴까, 하는 염려에 있다. 그러나 이런 염려를 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주님께서 교회 공동체 안에 살아 계시듯, 혼인 안에서도 살아계시고, 그리스도 사건에 의해서 결혼 사건도 규정된다”3) 이렇게 볼 때 해석의 차이는 에페 5,21-33 본문 자체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에 있기 보다는 “성사”란 개념에 따라 다니는 서로 다른 연상에 근거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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