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성사-교회직무의 사제적인 특성에 대해서

 

3.2.  교회 직무의 ‘사제적’인 특성에 대해서


교회 직무의 사제적인 특성에 대해서는 성서학에서 그리고 특별히 개신교의 신학에서 이의를 제기하기에 이 문제를 따로 다루어본다.


3.2.1. 교부 시대


디다케는 성찬례를 세번이나 제사(thysia)라고 표현한다(14). 그러나 디다케는 구약성서의 제사가 아니라 예언자 말라키아와 연결을 짓는다. 말라 1, 11을 자유로이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나에게는 깨끗한 제사를 바쳐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위대한 왕이며 내 이름은 백성들에게 놀랍기 때문이다”1). 또한 예언자들은 – 구약성서의 표현 방식에 의존해서- ‘대제관’이라고 지칭되었다(13). 그러나 이 표현 방식은 막연한 채로 머물고, 초세기에 교회직무자들은 드물게 사제라고 표현하였다2). 그러나 4세기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3).


무엇보다도 안티오키아의 신학에서 상당히 많은 표상을 사용하면서 성찬례를 제사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몹수에시아의 테오도로(Theodor von Mopsuestia)는 천상 전례 안에서 십자가상 그리스도의 제사가 완성되고 교회의 전례는 그의 모상이라고 얘기하며, 천상 전례가 ‘두려움을 주는’ 특성을 지닌다고 강조한다. 크리소스토모(Chrisostomos)는 성찬례에서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영적인 殺害’(geistige Schlachtung)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리스도와 사제의 신비적인 일치를 주장한다: “이전에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준 것과 지금 사제가 수행하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4). 십자가의 제사와 성찬례의 일치를 강조할수록 교회직무자의 역할에 ‘제사드리는 자’, ‘사제’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교부시대에는 교회직무자의 ‘사제적’ 행동과 전체교회의 ‘사제적’ 행동 사이의 관련이 유지되었다5).




3.2.2.. 중세


교부시대에 성찬례를 공동체의 영신적인 희생제사라고 이해하였다. 이는 십자가 상 희생제사가 기억 (anamnesis)을 통해서 (성령의 힘으로) 성찬례 안에 현존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가능하였다. 이 생각의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원형이 모형 안에 (존재론적으로) 현존한다는 플라톤 사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원형-모형 사고방식이 잊혀지면서, 성찬례의 희생제사성이 기억이란 개념에서 유리되고, 그러면서 성찬례를 십자가 상 희생 제사의 갱신으로서 이해하게 되었다6). 성찬례가 십자가상 희생제사의 기억이라는 것이 잊혀짐에 따라 성찬례의 희생제사성을 일반종교학적인 의미로 이해하게 되었다. 즉 제물 (빵과 포도주)을 예식 중에 직접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의미에서 성찬례가 희생제사라는 것이다.


고대의 원형-모형 사고의 틀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었던 카롤링 왕조의 신학에서는 십자가상 그리스도의 몸과 성체가 아주 직접적인 일치를 이룬다고 보았는데, 거기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차원은 잊혀졌다: 예를 들어서 제1차 성찬례 논쟁의 발단이 되었던 Paschasius Radbertus(+ 859 경)는 마리아에게서 탄생한 역사적인 예수의 몸과 성찬례에서의 그리스도의 몸의 완전한 동일성을 주장하면서, 매 미사때마다 그리스도의 수난이 반복된다고 하였다7). 동시에 예수께서 최후만찬 석상에서 발설하셨고 성찬례의 성찬기도에 인용되는 말씀이 성찬기도의 맥락(anamnesis /epiclesis)에서 떨어져나가 사제가 신품을 통해서 받은 권한의 힘으로 말하는 축성의 말씀이 되었다. 이렇게 축성권을 강조함으로써 사제는 신자들로부터 더 엄격히 분리되어서 사제가 ‘그리스도를 대신해서’(in persona Christi) 행하는 것과 ‘교회를 대신해서’(in persona ecclaesiae)행하는 것을 대립적으로 보게 되었다. 사제는 전례에서 한 부분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른 부분은 교회의 이름으로 말한다8).


이렇게 해서 신품성사는 더 이상 광범위하게 교회 내에서 사목하는 권한을 부여받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축성권을 위임받는 것으로 보게 되었다. 그래서 사제직은 하나의 개인 생활의 지위로, 공동체에 봉사하는 職分이라기보다 하나의 身分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個人化하고 私事化한 것이다. 이런 발전과정을 스콜라 신학이 뒤쫒는다: 사제 서품은 무엇보다도 성찬례를 거행할 수 있는 권한 (potestas in corpus eucharisticum)을, 주교 서품은 교회를 다스리는 권한 (potestas in corpus mysticum)을 수여한다9). 성체 축성의 권한에로의 집중은 상당히 강하게 영향을 미쳤는데, 그 결과로 스콜라 신학의 성사론의 전개 과정에서 상당수의 신학자들이 (그중에는 Petrus Lombardus, Thomas Aquinas도 있다) 주교 서품은 제외하고 사제 서품만이 성사에 속한다고 보았다.


교회 공식적인 가르침도 이런 방향으로 움직여갔다. 피렌체 공의회는 신품성사에 필수적인 요소인 ‘질료’와 ‘형상’을 규정하였다. 아르메니아 인들을 위한 칙령 (1439)에 따르면, “교회에서 제물을 바치는 권한을 받으시오“라는 정식이 성품성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말씀, 즉 forma sacramenti이고, 포도주가 담긴 성작과 빵을 얹은 성반의 수여가 결정적인 표징, 즉 materia sacramenti이다. 주교는 성품성사의 정식 수여자이다. 그러나 주교 서품 자체는 성사로 언급되지 않았다(DS 1326). 이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피렌체 공의회가 신품성사를 미사성제를 거행하기 위한 권한을 위임하는 예식으로 이해하였다는 것이다.




3.2.3.  소멸되지 않는 인호와 이단자가 수여한 서품의 유효성


이단자에 의한 세례의 유효성을 부정한 치쁘리아노는 마찬가지로 이단자에 의한 서품의 유효성도 부정하였다(Ep. 55,8; 72,2). 아우구스띠노는 이와 반대로 (도나뚜스파를 염두에 두고) 이단자의 세례가 유효하지만, 효력을 내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우구스띠노의 주장대로 이단자에 의한 세례는 유효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관철되었지만, 이단자에 의한 서품의 유효성은 일반적으로 관철되지 못하였다10). 비로소 중세에 와서 이전에 막연한 방식으로 존재했던 인호에 대한 가르침이 분명해지고, 동시에 신품권과 재치권(jurisdictio)을 구분하게 되면서 이단자에 의한 서품의 유효성의 문제가 해결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해에 따르면 분열자와 이단자에 의한 서품은 두 가지 조건하에 유효하다(그러므로 인호도 받는다): 첫째는 서품을 수여하는 주교 자신이 유효하게 서품된 사람이어야 하고, 두번째는 교회가 하는 바를 하고자 하는 의향을 지니고 교회가 정한 형식을 지키는 것이다(Sth.III sup.38,2). 그러나 분열자나 이단자에서 서품을 받은 주교는 교회로부터 인정받은 재치권을 갖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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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성사-교회직무의 사제적인 특성에 대해서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3.2.  교회 직무의 ‘사제적’인 특성에 대해서

    교회 직무의 사제적인 특성에 대해서는 성서학에서 그리고 특별히 개신교의 신학에서 이의를 제기하기에 이 문제를 따로 다루어본다.

    3.2.1. 교부 시대

    디다케는 성찬례를 세번이나 제사(thysia)라고 표현한다(14). 그러나 디다케는 구약성서의 제사가 아니라 예언자 말라키아와 연결을 짓는다. 말라 1, 11을 자유로이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나에게는 깨끗한 제사를 바쳐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위대한 왕이며 내 이름은 백성들에게 놀랍기 때문이다”1). 또한 예언자들은 – 구약성서의 표현 방식에 의존해서- ‘대제관’이라고 지칭되었다(13). 그러나 이 표현 방식은 막연한 채로 머물고, 초세기에 교회직무자들은 드물게 사제라고 표현하였다2). 그러나 4세기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3).

    무엇보다도 안티오키아의 신학에서 상당히 많은 표상을 사용하면서 성찬례를 제사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몹수에시아의 테오도로(Theodor von Mopsuestia)는 천상 전례 안에서 십자가상 그리스도의 제사가 완성되고 교회의 전례는 그의 모상이라고 얘기하며, 천상 전례가 ‘두려움을 주는’ 특성을 지닌다고 강조한다. 크리소스토모(Chrisostomos)는 성찬례에서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영적인 殺害’(geistige Schlachtung)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리스도와 사제의 신비적인 일치를 주장한다: “이전에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준 것과 지금 사제가 수행하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4). 십자가의 제사와 성찬례의 일치를 강조할수록 교회직무자의 역할에 ‘제사드리는 자’, ‘사제’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교부시대에는 교회직무자의 ‘사제적’ 행동과 전체교회의 ‘사제적’ 행동 사이의 관련이 유지되었다5).


    3.2.2.. 중세

    교부시대에 성찬례를 공동체의 영신적인 희생제사라고 이해하였다. 이는 십자가 상 희생제사가 기억 (anamnesis)을 통해서 (성령의 힘으로) 성찬례 안에 현존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가능하였다. 이 생각의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원형이 모형 안에 (존재론적으로) 현존한다는 플라톤 사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원형-모형 사고방식이 잊혀지면서, 성찬례의 희생제사성이 기억이란 개념에서 유리되고, 그러면서 성찬례를 십자가 상 희생 제사의 갱신으로서 이해하게 되었다6). 성찬례가 십자가상 희생제사의 기억이라는 것이 잊혀짐에 따라 성찬례의 희생제사성을 일반종교학적인 의미로 이해하게 되었다. 즉 제물 (빵과 포도주)을 예식 중에 직접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의미에서 성찬례가 희생제사라는 것이다.

    고대의 원형-모형 사고의 틀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었던 카롤링 왕조의 신학에서는 십자가상 그리스도의 몸과 성체가 아주 직접적인 일치를 이룬다고 보았는데, 거기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차원은 잊혀졌다: 예를 들어서 제1차 성찬례 논쟁의 발단이 되었던 Paschasius Radbertus(+ 859 경)는 마리아에게서 탄생한 역사적인 예수의 몸과 성찬례에서의 그리스도의 몸의 완전한 동일성을 주장하면서, 매 미사때마다 그리스도의 수난이 반복된다고 하였다7). 동시에 예수께서 최후만찬 석상에서 발설하셨고 성찬례의 성찬기도에 인용되는 말씀이 성찬기도의 맥락(anamnesis /epiclesis)에서 떨어져나가 사제가 신품을 통해서 받은 권한의 힘으로 말하는 축성의 말씀이 되었다. 이렇게 축성권을 강조함으로써 사제는 신자들로부터 더 엄격히 분리되어서 사제가 ‘그리스도를 대신해서’(in persona Christi) 행하는 것과 ‘교회를 대신해서’(in persona ecclaesiae)행하는 것을 대립적으로 보게 되었다. 사제는 전례에서 한 부분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른 부분은 교회의 이름으로 말한다8).

    이렇게 해서 신품성사는 더 이상 광범위하게 교회 내에서 사목하는 권한을 부여받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축성권을 위임받는 것으로 보게 되었다. 그래서 사제직은 하나의 개인 생활의 지위로, 공동체에 봉사하는 職分이라기보다 하나의 身分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個人化하고 私事化한 것이다. 이런 발전과정을 스콜라 신학이 뒤쫒는다: 사제 서품은 무엇보다도 성찬례를 거행할 수 있는 권한 (potestas in corpus eucharisticum)을, 주교 서품은 교회를 다스리는 권한 (potestas in corpus mysticum)을 수여한다9). 성체 축성의 권한에로의 집중은 상당히 강하게 영향을 미쳤는데, 그 결과로 스콜라 신학의 성사론의 전개 과정에서 상당수의 신학자들이 (그중에는 Petrus Lombardus, Thomas Aquinas도 있다) 주교 서품은 제외하고 사제 서품만이 성사에 속한다고 보았다.

    교회 공식적인 가르침도 이런 방향으로 움직여갔다. 피렌체 공의회는 신품성사에 필수적인 요소인 ‘질료’와 ‘형상’을 규정하였다. 아르메니아 인들을 위한 칙령 (1439)에 따르면, “교회에서 제물을 바치는 권한을 받으시오“라는 정식이 성품성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말씀, 즉 forma sacramenti이고, 포도주가 담긴 성작과 빵을 얹은 성반의 수여가 결정적인 표징, 즉 materia sacramenti이다. 주교는 성품성사의 정식 수여자이다. 그러나 주교 서품 자체는 성사로 언급되지 않았다(DS 1326). 이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피렌체 공의회가 신품성사를 미사성제를 거행하기 위한 권한을 위임하는 예식으로 이해하였다는 것이다.


    3.2.3.  소멸되지 않는 인호와 이단자가 수여한 서품의 유효성

    이단자에 의한 세례의 유효성을 부정한 치쁘리아노는 마찬가지로 이단자에 의한 서품의 유효성도 부정하였다(Ep. 55,8; 72,2). 아우구스띠노는 이와 반대로 (도나뚜스파를 염두에 두고) 이단자의 세례가 유효하지만, 효력을 내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우구스띠노의 주장대로 이단자에 의한 세례는 유효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관철되었지만, 이단자에 의한 서품의 유효성은 일반적으로 관철되지 못하였다10). 비로소 중세에 와서 이전에 막연한 방식으로 존재했던 인호에 대한 가르침이 분명해지고, 동시에 신품권과 재치권(jurisdictio)을 구분하게 되면서 이단자에 의한 서품의 유효성의 문제가 해결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해에 따르면 분열자와 이단자에 의한 서품은 두 가지 조건하에 유효하다(그러므로 인호도 받는다): 첫째는 서품을 수여하는 주교 자신이 유효하게 서품된 사람이어야 하고, 두번째는 교회가 하는 바를 하고자 하는 의향을 지니고 교회가 정한 형식을 지키는 것이다(Sth.III sup.38,2). 그러나 분열자나 이단자에서 서품을 받은 주교는 교회로부터 인정받은 재치권을 갖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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