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피 4,1-9 ; 권고

 

권고

1. 말씀읽기:필리4,1-9

1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기쁨이며 화관인 여러분, 이렇게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2 나는 에우오디아에게 권고하고 신티케에게 권고합니다. 주님 안에서 뜻을 같이하십시오. 3 그렇습니다. 나의 진실한 동지여, 이 여자들을 도와주도록 그대에게도 당부합니다. 이들은 클레멘스를 비롯하여 나의 다른 협력자들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려고 나와 함께 싸운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이들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적혀 있습니다. 4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6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7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8 끝으로, 형제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9 그리고 나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그대로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2. 말씀연구

신앙인들은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고, 어떤 처지에 있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 나갑니다. 그런데 그런 열정 때문에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사람도 있고, 분열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 또한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주님의 뜻을 찾지 않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결국 내 영광을 위하여 일하다가 공동체에 상처를 주고, 공동체에서 상처를 받아 뒤로 물러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권고에 귀를 기울이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를 간직하기 위한 삶의 방법을 깊이 생각해 봅시다.



1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기쁨이며 화관인 여러분, 이렇게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목자의 기쁨은 양들의 건강과 풍요로움입니다. 필리피 교회에 신앙을 심은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교회의 굳은 믿음과 성장에 기뻐하며 “나의 기쁨이며 화관”이라고 말합니다.

화관은 잔치에 참석한 귀한 손님이나 운동경기에서 우승한 사람 머리 위에 씌워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화관은 기쁨, 명예, 자랑, 승리 등을 뜻하는데, 필리피 교회를 사도의 화관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교회의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지키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2 나는 에우오디아에게 권고하고 신티케에게 권고합니다. 주님 안에서 뜻을 같이하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에우오디아와 신티케에게 권고를 합니다. 아마도 이 두 여인은 공동체 안에서 분열을 일으킬 요소가 있었던 여인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녀들의 이름, 즉 편한 길(에우오디아)과 만남(신티케)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두 여인은 이름과는 반대로 공동체에 어려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공동체에 추문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다른 협력자들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려고 나와 함께 싸운 사람들(3절)”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자기 주장이 무척 강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둘에게 “주님 안에서 뜻을 같이하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



열심한 사람들이 열심히 하려고 하다보니 대립이 생기고 분열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열심이 자기 중심의 열심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형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를 격려해 주며, 그와 함께 하려 합니다. 그의 부족을 채워 주려고 하고, 결코 교만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공동체를 일치시킵니다. “주님 안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됩시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 봅시다.



3 그렇습니다. 나의 진실한 동지여, 이 여자들을 도와주도록 그대에게도 당부합니다. 이들은 클레멘스를 비롯하여 나의 다른 협력자들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려고 나와 함께 싸운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이들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적혀 있습니다.

동지(쉬쥐고스)라는 말은 멍에를 같이 멘 한 쌍의 소의 모습에서 따온 말로써, “멍에를 함께 멘”이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대에게도 당부합니다.”라는 말로보아 “동지”를 사람 이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실한 동지여”라는 말을 통해서 그가 자기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에우오디아나 신티케와는 대조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면 “진실한 동지”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신자들, 또는 필리피 신자 전체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에우오디아와 신티케를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바오로 사도와 함께 한 사람이고, 주님의 길을 걷는 사람이며, 생명의 책에 기록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의 책은 구약성경의 전통적인 표현으로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부로 생각되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갈등을 통해 뒤로 물러나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 그 모습을 기뻐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그와 한 마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느님의 사람이고, 자칫하면 내가 하느님의 사람을 밀어내는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무관심은 죄입니다. 그를 공동체에서 소외시키는 것은 죄입니다.



4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주님의 평화를 간직하고 있기에 늘 기뻐합니다. 내가 드러나지 않고, 내가 중심이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 안에서 기뻐하기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갑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주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의 열성을 기뻐하고, 그의 부족함을 결코 탓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처지를 탓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옥중에서 필리피서를 쓰고 있지만 기뻐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기뻐해야 하고, 더욱 너그러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다는 것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임마누엘 주님”께서 항상 신자들과 함께 계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 바로 임마누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님의 재림은 큰 기쁨입니다.



6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굳게 믿고 있기에 옥중에서 바로오 사도도 아무 걱정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고, 신자들을 돌보는 일입니다. 그 일이 감옥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감옥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그 소원을 주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주십니다.



7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선물을 받으면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뭐 이런 것을 주나!”하고 투덜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선물의 가치를 알고, 감사하는 이에게는 기쁨과 평화가 밀려오지만, 그 선물의 가치를 모르고 불평하는 이에게는 불만만 쌓여갑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하느님 나라에 마음을 두지 않는 이는 감사할 줄 모릅니다. 영원한 생명에 관심 없는 이는 참된 것을 청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에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은총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보잘 것 없는 믿음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은총을 주셨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처지에 있든지, 비록 감옥에 갇혀 있다 할지라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켜주시는 두려움은 없습니다.



8 끝으로, 형제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신앙인들이 마음에 간직해야 할 것과 실천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간직해야 하는 것은 “덕이 되는 것과 칭송 받는 것”이고, 실천해야 할 것은 바오로 사도에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입니다.



먼저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덕이라는 것은 한 번 했다고 해서 덕이라고 불리지는 않습니다. 이 덕은 “참된 것, 고귀한 것, 의로운 것, 정결한 것, 사랑스러운 것, 영예로운 것”을 지킴으로서 생겨나고, 유지되고, 행동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드러나게 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더욱 노력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자랑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덕은 자랑을 통해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덕은 보편적으로 다른 이들에게도 인정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톨릭은 보편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도 신자들의 덕행을 통해 하느님을 찬미하게 되고,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9 그리고 나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그대로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이제 바오로 사도는 실천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나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그대로 실천하십시오.”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28,19-20) 바오로 사도는 이 말씀을 실천하였고, 신자들에게 이것을 지킬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믿음을 고백하고, 기쁨을 간직한 이들은 행동으로 그 믿음과 기쁨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그 기쁨을 감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산 위에 있는 마을을 감출 수 없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빛을 감출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주님 안에서 공동체와 함께 하며, 주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살아갈 때, 어떤 처지에 있든지 공동체는 하나 되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내가 실천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열정 때문에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사람도 있고, 분열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열정으로 공동체를 주님 안에서 일치시키는 삶은 어떤 삶이고, 분열시키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② 신앙인들이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간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실천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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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피 4,1-9 ; 권고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권고

    1. 말씀읽기:필리4,1-9

    1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기쁨이며 화관인 여러분, 이렇게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2 나는 에우오디아에게 권고하고 신티케에게 권고합니다. 주님 안에서 뜻을 같이하십시오. 3 그렇습니다. 나의 진실한 동지여, 이 여자들을 도와주도록 그대에게도 당부합니다. 이들은 클레멘스를 비롯하여 나의 다른 협력자들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려고 나와 함께 싸운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이들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적혀 있습니다. 4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6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7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8 끝으로, 형제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9 그리고 나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그대로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2. 말씀연구

    신앙인들은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고, 어떤 처지에 있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 나갑니다. 그런데 그런 열정 때문에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사람도 있고, 분열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 또한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주님의 뜻을 찾지 않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결국 내 영광을 위하여 일하다가 공동체에 상처를 주고, 공동체에서 상처를 받아 뒤로 물러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권고에 귀를 기울이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를 간직하기 위한 삶의 방법을 깊이 생각해 봅시다.


    1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기쁨이며 화관인 여러분, 이렇게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목자의 기쁨은 양들의 건강과 풍요로움입니다. 필리피 교회에 신앙을 심은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교회의 굳은 믿음과 성장에 기뻐하며 “나의 기쁨이며 화관”이라고 말합니다.

    화관은 잔치에 참석한 귀한 손님이나 운동경기에서 우승한 사람 머리 위에 씌워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화관은 기쁨, 명예, 자랑, 승리 등을 뜻하는데, 필리피 교회를 사도의 화관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교회의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지키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2 나는 에우오디아에게 권고하고 신티케에게 권고합니다. 주님 안에서 뜻을 같이하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에우오디아와 신티케에게 권고를 합니다. 아마도 이 두 여인은 공동체 안에서 분열을 일으킬 요소가 있었던 여인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녀들의 이름, 즉 편한 길(에우오디아)과 만남(신티케)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두 여인은 이름과는 반대로 공동체에 어려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공동체에 추문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다른 협력자들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려고 나와 함께 싸운 사람들(3절)”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자기 주장이 무척 강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둘에게 “주님 안에서 뜻을 같이하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


    열심한 사람들이 열심히 하려고 하다보니 대립이 생기고 분열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열심이 자기 중심의 열심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형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를 격려해 주며, 그와 함께 하려 합니다. 그의 부족을 채워 주려고 하고, 결코 교만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공동체를 일치시킵니다. “주님 안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됩시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 봅시다.


    3 그렇습니다. 나의 진실한 동지여, 이 여자들을 도와주도록 그대에게도 당부합니다. 이들은 클레멘스를 비롯하여 나의 다른 협력자들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려고 나와 함께 싸운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이들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적혀 있습니다.

    동지(쉬쥐고스)라는 말은 멍에를 같이 멘 한 쌍의 소의 모습에서 따온 말로써, “멍에를 함께 멘”이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대에게도 당부합니다.”라는 말로보아 “동지”를 사람 이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실한 동지여”라는 말을 통해서 그가 자기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에우오디아나 신티케와는 대조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면 “진실한 동지”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신자들, 또는 필리피 신자 전체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에우오디아와 신티케를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바오로 사도와 함께 한 사람이고, 주님의 길을 걷는 사람이며, 생명의 책에 기록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의 책은 구약성경의 전통적인 표현으로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부로 생각되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갈등을 통해 뒤로 물러나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 그 모습을 기뻐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그와 한 마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느님의 사람이고, 자칫하면 내가 하느님의 사람을 밀어내는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무관심은 죄입니다. 그를 공동체에서 소외시키는 것은 죄입니다.


    4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주님의 평화를 간직하고 있기에 늘 기뻐합니다. 내가 드러나지 않고, 내가 중심이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 안에서 기뻐하기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갑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주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의 열성을 기뻐하고, 그의 부족함을 결코 탓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처지를 탓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옥중에서 필리피서를 쓰고 있지만 기뻐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기뻐해야 하고, 더욱 너그러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다는 것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임마누엘 주님”께서 항상 신자들과 함께 계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 바로 임마누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님의 재림은 큰 기쁨입니다.


    6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굳게 믿고 있기에 옥중에서 바로오 사도도 아무 걱정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고, 신자들을 돌보는 일입니다. 그 일이 감옥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감옥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그 소원을 주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주십니다.


    7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선물을 받으면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뭐 이런 것을 주나!”하고 투덜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선물의 가치를 알고, 감사하는 이에게는 기쁨과 평화가 밀려오지만, 그 선물의 가치를 모르고 불평하는 이에게는 불만만 쌓여갑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하느님 나라에 마음을 두지 않는 이는 감사할 줄 모릅니다. 영원한 생명에 관심 없는 이는 참된 것을 청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에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은총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보잘 것 없는 믿음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은총을 주셨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처지에 있든지, 비록 감옥에 갇혀 있다 할지라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켜주시는 두려움은 없습니다.


    8 끝으로, 형제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신앙인들이 마음에 간직해야 할 것과 실천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간직해야 하는 것은 “덕이 되는 것과 칭송 받는 것”이고, 실천해야 할 것은 바오로 사도에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입니다.


    먼저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덕이라는 것은 한 번 했다고 해서 덕이라고 불리지는 않습니다. 이 덕은 “참된 것, 고귀한 것, 의로운 것, 정결한 것, 사랑스러운 것, 영예로운 것”을 지킴으로서 생겨나고, 유지되고, 행동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드러나게 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더욱 노력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자랑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덕은 자랑을 통해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덕은 보편적으로 다른 이들에게도 인정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톨릭은 보편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도 신자들의 덕행을 통해 하느님을 찬미하게 되고,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9 그리고 나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그대로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이제 바오로 사도는 실천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나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그대로 실천하십시오.”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28,19-20) 바오로 사도는 이 말씀을 실천하였고, 신자들에게 이것을 지킬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믿음을 고백하고, 기쁨을 간직한 이들은 행동으로 그 믿음과 기쁨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그 기쁨을 감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산 위에 있는 마을을 감출 수 없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빛을 감출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주님 안에서 공동체와 함께 하며, 주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살아갈 때, 어떤 처지에 있든지 공동체는 하나 되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내가 실천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열정 때문에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사람도 있고, 분열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열정으로 공동체를 주님 안에서 일치시키는 삶은 어떤 삶이고, 분열시키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② 신앙인들이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간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실천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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