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사일반론 형성의 역사적 과정
3장에서는 구세사의 성사적 구조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보이는 사건이나 인물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성사적” 구조가 바로 7성사의 “못자리”가 된다고 하겠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성사”라는 말마디가 비록 성서에는 나타나지 않더라도 교회의 성사가 성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구체적으로 7성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4.1. 고대교회
4.1.1. 개념의 역사
신약성서에서는 후대에 ‘성사’(sacramentum)라는 개념으로 포괄되는 표징행동들, 즉 세례, 성찬례, 안수, 병자 도유(塗油) 등이 나타나지만, 이것들을 포괄하는 일반적인 개념은 발견되지 않는다. 비로소 2./3.세기의 고대 라틴어 번역 성서에서 그리스어 Mystérion을 ‘성사’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단어 sacramentum으로 옮겼다. 그래서 초세기의 서방 교회의 신학에서는 성사를 지칭하는 말마디로서 그리스어 mysterion과 라틴어 sacramentum이 뒤섞여서 사용되었다.
4.1.1.1. Mysterion
고대 교회의 신학자들은 mysterion이란 개념을 신약 성서에서와 비슷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해서 사용하였다. 그러나 영지주의와 밀교(密敎)예식과의 대결을 거치면서 호교론자들을 통해서 mysterion의 개념이 점차로 확장된다.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비밀 교리를, 이방 민족은 자신들의 종교 예식 등을 신비라고 일컬었다.
my라는 어근은 눈이나 입을 닫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신비로운 것을 체험할 때 인간은 이런 반응을 하게된다. 밀교예식의 추종자들은 자기들의 종교예식을 거행하면서 이런 체험을 하게 되고 그래서 그 종교예식 자체를 mysterion이라고 지칭했던 것이다.
이에 대항해서 호교론자들,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내용이야말로 진정한 신비라고 내세웠다. 즉 성서에 증언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역사적으로 이루는 사건들이 신비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구원 역사의 정점을 이루는 그리스도 생애의 개개의 사건, 특히 그리스도의 탄생, 십자가 상의 죽음을 신비라고 하였다. 교부들은 또한 구약의 사건이나 제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서 시작된 구원 실재를 예시하고, 선취한다고 해석하였고, 그래서 이것들을 신비라고 하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 즉 신비 자체가 현존하는 교회 공동체의 예식을 신비라고 일컬었다. 대표적으로 유스티노는 세례와 성찬례를 신비라고 불렀다.
이로써 신약 성서에 비해서 두 가지 본질적인 변화가 생겼다: 첫째, 바오로가 그리스도를 유일한 신비라고 표현한 것에 비해서 이제는 신비에 대해 복수로 얘기하게 됬다. 둘째, 세례와 성찬례와 같은 전례적인 행동도 신비라고 지칭하게 되었다.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실재를 뜻하던 신비라는 개념이 교부시대에 와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은 물론 이를 예시하는 구약의 사건들까지도 포함하고 더 나아가서는 구원을 현존케하고 전달하는 그리스도교의 예식에게까지 적용되었던 것이다.
4.1.1.2. Mysterion의 번역어로서의 Sacramentum
초기의 라틴어 성서번역에서는 그리스말인 mysterion을 여러 가지로 번역하였다: 이태리에서 나온 번역본에서는 차용어인 mysterium을 선호하였고 (Vulgata), 아프리카에서의 번역본에서는 그와는 달리 sacramentum이란 단어를 선호하였다. 이 개념 도입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떼루뚤리아노(160-220)이다. 그는 최초로 sacramentum이라는 낱말을 세례 성사에 의도적으로 적용하였다. 그 당시에 이 낱말은 복무 선서, 금전적 담보의 의미에도 군기(軍旗)에의 선서를 뜻하였고, 이런 점을 통해서 세례 서약과 구조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된다. 즉 군기에의 선서를 통해서 군인이 되듯이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떼루뚤이아노 이후에도 수백년 동안 ‘성사’란 용어는 ‘신비’라는 낱말과 비슷하게 세례와 성찬례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계획과 신‧구약성서에 담긴 구세사의 사건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 죽음, 부활, 신앙 교의, 교회의 여러 가지 예식, 서약, 성서적 비유 등을 지칭하였다.
고대교회의 중요한 교부에 속하는 아우구스티노는 sacramentum, mysterium 두 단어를 자주 동의어로 사용하면서 광의의 의미로 이해하였다. 그에 의하면 성사란 “감각적으로 인지할수 있는 모든 사물로써, 그 의미는 그것이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바에서 그치지않고 자신를 넘어선 정신적인 실재를 가르키는 것”이다.1) 이에 속하는 것으로는 “이스라엘의 성사들”(할례, 제물, 빠스카 축제, 사제와 왕들의 도유)과 새 계약의 모든 예식들이다. 아우구스티노는 성사라는 말마디로 무려 304가지를 지칭하였다. 다른 모든 성사가 향하여 있는 가장 큰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룩된 하느님의 육화이다. 그 밖에 아우구스티노에게서도 교회의 예식을 가르키는 성사의 협의의 개념도 발견된다: sacramentum 단어 사용 중 삼분의 일 이상이 세례와 성찬례를 지칭하였다.
4.1.2. 개개의 성사(성찬례, 세례)
이상에서 본 것처럼 고대의 교부들에게서 나타난 “성사”란 말마디는 단지 7성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범위가 상당히 넓었다. 그래서 교부들의 성사에 대한 견해를 sacramentum이란 개념에서 고찰하는 것보다는 각각의 성사를 어떻게 다루었는가에서 살펴 보는 쪽이 더 적합할 것이다. 교부들에게서 특히 자주 언급되는 성사인 세례와 성찬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4.1.2.1. 희랍 교부들
희랍 교부들의 사고는 “‘實在象徵’(Realsymbol)의 이해지평 속에서 움직여졌는데 […] 이에 의하면 하나의 실재는 한 차원 높은 다른 실재의 상징이라는 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해석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상징이란 그저 우리가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 관련을 짓는 그런 의미로서가 아니고, 한 차원 높은 실재 자체가 그 보다 낮은 실재 안에서 비록 불충분하고 약화된 방식이긴 하지만, 자신을 나타내고, 그 안에서 현존하며 그를 통해서 작용한다는 의미로서의 상징이다”.2) 이런 이해 지평의 배경을 이루는 것은 플라톤 철학의 原型-模型(Urbild-Abbild)사고이다: 원형은 모형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데, 원형은 존재론적으로 약화된 형식이지만 모형에 현존한다.
실재상징의 배경을 이루는 원형-모형사고 무엇보다도 성체성사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형이 그를 모사한 모형에 현존하듯, 원형인 그리스도는 모형인 성찬례 안에 현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찬례는 현양된 주님의 “형상”(eikon), “모상”(typos, antitypos) “비유”(homoioma) “상징”(symbolon)으로 일컬어졌다. 성찬례가 현양된 주님의 모상이라로 얘기할 때 이는 단지 靜的인 표상만이 아니라 구속사건의 현재화도 의미하였다. 그래서 희랍 교부들은 성찬례 안에 그리스도 자신만이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사건, 즉 그의 행동과 삶, 죽음이 현존한다고 이해하였다.3) 이렇게 성찬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 사건을 현재화하는데, 신자들은 성찬례 거행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고 그분의 구원공로에 참여하게 된다.
예루살렘의 치릴로 주교의 저서 예비자 교리서에서는 신자들이 성사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운명에 동참하게 되는 것을 모방(mimesis)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즉 치릴로 주교는 세례 예식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모방”이라고 해석하였다: 세례통 앞에 옷을 벗어놓는 것은 세례를 받으시고자 하는 그리스도, 즉 옷 벗켜진채 십자가 상에서 매달리신 분을 “모방하는” 것이며, 세번의 침례는 그의 죽음과 땅 속에서 지낸 삼일 낯과 밤을 모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모방”이란 행동으로 표현하는 전례적인 모방을 의미하는데,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 사건을 현실화하고, 세례자는 그리스도의 사건에 “참여”하게 되어 구원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는 참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셨고 참으로 묻히셨으며 참으로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은총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것을 상징적으로 모방하여 구원을 실제로 얻게 되었습니다”.4) 그리스도가 현존하시는 성사에 (모방을 통해) 참여함으로써 구원 은총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서방교부인 아우구스티노는 조금 다른 길을 가는데, 즉 그는 말씀과 믿음을 강조한다.
4.1.2.2. 아우구스티노
서방교회 성사론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아우구스티노(+430)인데, 그는 희랍교부들처럼 성사를 실재 상징, 표지로 이해한다. 즉 그에 의하면 성사는 보이지 않는 실재를 드러내는 가시적인 표지이다. 그런데 성사는 여타의 표지와는 달리 거룩한 것, 신적인 것을 가르킨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는 성사를 “거룩한 표지”라고 불렀다.5)
더 나아가서 아우구스티노는 성사적 표지가 요소(Elementum)와 말씀(Verbum)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본래적으로 요소는 외적인 유사함을 근거로 성사적 은총을 지시하는 역할을 하고, 말씀은 이것을 확인한다. 예를 들어서 세례성사의 경우에 성사의 요소인 물은 모든 죄를 사하는 성화은총을 암시하고, 말씀은 세례를 통해서 그 은총이 전달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한다.
이렇게 아우구스티노는 성사적 표지를 분석하면서 역점은 말씀에 놓는다: “말씀을 빼고나면 물은 단지 물일뿐 무엇이겠는가? 말씀이 요소로 들어섬으로써 성사가 되고, 이렇게 해서 성사는 동시에 가시적인 말씀(visibile verbum)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고자 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목욕을 한 사람은 발 외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온전히 깨끗합니다’(요한 13,10)”.6)
그런데 말씀이 그렇게 능력과 효력을 갖는 것은 그 말씀을 믿기 때문이다. “몸에 닿고 마음을 씻는 물의 이 큰 힘은 말씀의 효력 외에 어디에서 올 수 있겠는가? 말씀은 그것이 말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믿어졌기 때문에 효력을 내는 것이 아닌가? […] 사도는 말하기를, ‘그것은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그대가 그대의 입으로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는 것을 그대의 마음 속으로 믿으면 그대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으면 의로움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로마 10,8-10)”. 아우구스티노는 계속해서 사도 15,9; 1베드 3,21의 성서 구절을 인용하면서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구원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는 성사를 통한 말씀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 교회 전체가 믿는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아우구스티노는 예수께서 교회를 물로 씻어서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셨다는 에페 5,26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깨끗하게 되는 것은 ‘말씀으로’ 라는 말을 첨가하지 않는 한 결코 흐르는 물이라는 요소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신앙의 말씀은 하느님의 교회에서 믿는 사람, 봉헌하는 사람, 축복하는 사람을 통해서, 아직 마음으로 믿어 의롭게 되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어린 아이까지도 깨끗하게 한다”7) 아우구스티노에 의하면 성사 안에서 말씀이 효력과 능력을 갖는 것은 그것이 그리스도의 말씀이고 교회의 신앙의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아우구스티노는 성사를 “표지”와 “실재”로 구분하고, 표지는 다시 가시적인 요소와 말씀으로 나누면서 가시적인 요소에 비해서 말씀을 강조한다. 이로써 서방교회의 신학은 동방교회의 신학과는 다른 강조점을 드러내게 된다: 동방교회의 표지 중심적이고 실재상징적 사고에 비해 서방에서는 말씀과 개념 중심적인, 분석적인 사고가 자리 잡게 된다.

4. 성사일반론 형성의 역사적 과정
3장에서는 구세사의 성사적 구조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보이는 사건이나 인물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성사적” 구조가 바로 7성사의 “못자리”가 된다고 하겠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성사”라는 말마디가 비록 성서에는 나타나지 않더라도 교회의 성사가 성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구체적으로 7성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4.1. 고대교회
4.1.1. 개념의 역사
신약성서에서는 후대에 ‘성사’(sacramentum)라는 개념으로 포괄되는 표징행동들, 즉 세례, 성찬례, 안수, 병자 도유(塗油) 등이 나타나지만, 이것들을 포괄하는 일반적인 개념은 발견되지 않는다. 비로소 2./3.세기의 고대 라틴어 번역 성서에서 그리스어 Mystérion을 ‘성사’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단어 sacramentum으로 옮겼다. 그래서 초세기의 서방 교회의 신학에서는 성사를 지칭하는 말마디로서 그리스어 mysterion과 라틴어 sacramentum이 뒤섞여서 사용되었다.
4.1.1.1. Mysterion
고대 교회의 신학자들은 mysterion이란 개념을 신약 성서에서와 비슷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해서 사용하였다. 그러나 영지주의와 밀교(密敎)예식과의 대결을 거치면서 호교론자들을 통해서 mysterion의 개념이 점차로 확장된다.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비밀 교리를, 이방 민족은 자신들의 종교 예식 등을 신비라고 일컬었다.
my라는 어근은 눈이나 입을 닫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신비로운 것을 체험할 때 인간은 이런 반응을 하게된다. 밀교예식의 추종자들은 자기들의 종교예식을 거행하면서 이런 체험을 하게 되고 그래서 그 종교예식 자체를 mysterion이라고 지칭했던 것이다.
이에 대항해서 호교론자들,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내용이야말로 진정한 신비라고 내세웠다. 즉 성서에 증언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역사적으로 이루는 사건들이 신비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구원 역사의 정점을 이루는 그리스도 생애의 개개의 사건, 특히 그리스도의 탄생, 십자가 상의 죽음을 신비라고 하였다. 교부들은 또한 구약의 사건이나 제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서 시작된 구원 실재를 예시하고, 선취한다고 해석하였고, 그래서 이것들을 신비라고 하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 즉 신비 자체가 현존하는 교회 공동체의 예식을 신비라고 일컬었다. 대표적으로 유스티노는 세례와 성찬례를 신비라고 불렀다.
이로써 신약 성서에 비해서 두 가지 본질적인 변화가 생겼다: 첫째, 바오로가 그리스도를 유일한 신비라고 표현한 것에 비해서 이제는 신비에 대해 복수로 얘기하게 됬다. 둘째, 세례와 성찬례와 같은 전례적인 행동도 신비라고 지칭하게 되었다.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실재를 뜻하던 신비라는 개념이 교부시대에 와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은 물론 이를 예시하는 구약의 사건들까지도 포함하고 더 나아가서는 구원을 현존케하고 전달하는 그리스도교의 예식에게까지 적용되었던 것이다.
4.1.1.2. Mysterion의 번역어로서의 Sacramentum
초기의 라틴어 성서번역에서는 그리스말인 mysterion을 여러 가지로 번역하였다: 이태리에서 나온 번역본에서는 차용어인 mysterium을 선호하였고 (Vulgata), 아프리카에서의 번역본에서는 그와는 달리 sacramentum이란 단어를 선호하였다. 이 개념 도입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떼루뚤리아노(160-220)이다. 그는 최초로 sacramentum이라는 낱말을 세례 성사에 의도적으로 적용하였다. 그 당시에 이 낱말은 복무 선서, 금전적 담보의 의미에도 군기(軍旗)에의 선서를 뜻하였고, 이런 점을 통해서 세례 서약과 구조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된다. 즉 군기에의 선서를 통해서 군인이 되듯이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떼루뚤이아노 이후에도 수백년 동안 ‘성사’란 용어는 ‘신비’라는 낱말과 비슷하게 세례와 성찬례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계획과 신‧구약성서에 담긴 구세사의 사건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 죽음, 부활, 신앙 교의, 교회의 여러 가지 예식, 서약, 성서적 비유 등을 지칭하였다.
고대교회의 중요한 교부에 속하는 아우구스티노는 sacramentum, mysterium 두 단어를 자주 동의어로 사용하면서 광의의 의미로 이해하였다. 그에 의하면 성사란 “감각적으로 인지할수 있는 모든 사물로써, 그 의미는 그것이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바에서 그치지않고 자신를 넘어선 정신적인 실재를 가르키는 것”이다.1) 이에 속하는 것으로는 “이스라엘의 성사들”(할례, 제물, 빠스카 축제, 사제와 왕들의 도유)과 새 계약의 모든 예식들이다. 아우구스티노는 성사라는 말마디로 무려 304가지를 지칭하였다. 다른 모든 성사가 향하여 있는 가장 큰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룩된 하느님의 육화이다. 그 밖에 아우구스티노에게서도 교회의 예식을 가르키는 성사의 협의의 개념도 발견된다: sacramentum 단어 사용 중 삼분의 일 이상이 세례와 성찬례를 지칭하였다.
4.1.2. 개개의 성사(성찬례, 세례)
이상에서 본 것처럼 고대의 교부들에게서 나타난 “성사”란 말마디는 단지 7성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범위가 상당히 넓었다. 그래서 교부들의 성사에 대한 견해를 sacramentum이란 개념에서 고찰하는 것보다는 각각의 성사를 어떻게 다루었는가에서 살펴 보는 쪽이 더 적합할 것이다. 교부들에게서 특히 자주 언급되는 성사인 세례와 성찬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4.1.2.1. 희랍 교부들
희랍 교부들의 사고는 “‘實在象徵’(Realsymbol)의 이해지평 속에서 움직여졌는데 […] 이에 의하면 하나의 실재는 한 차원 높은 다른 실재의 상징이라는 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해석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상징이란 그저 우리가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 관련을 짓는 그런 의미로서가 아니고, 한 차원 높은 실재 자체가 그 보다 낮은 실재 안에서 비록 불충분하고 약화된 방식이긴 하지만, 자신을 나타내고, 그 안에서 현존하며 그를 통해서 작용한다는 의미로서의 상징이다”.2) 이런 이해 지평의 배경을 이루는 것은 플라톤 철학의 原型-模型(Urbild-Abbild)사고이다: 원형은 모형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데, 원형은 존재론적으로 약화된 형식이지만 모형에 현존한다.
실재상징의 배경을 이루는 원형-모형사고 무엇보다도 성체성사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형이 그를 모사한 모형에 현존하듯, 원형인 그리스도는 모형인 성찬례 안에 현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찬례는 현양된 주님의 “형상”(eikon), “모상”(typos, antitypos) “비유”(homoioma) “상징”(symbolon)으로 일컬어졌다. 성찬례가 현양된 주님의 모상이라로 얘기할 때 이는 단지 靜的인 표상만이 아니라 구속사건의 현재화도 의미하였다. 그래서 희랍 교부들은 성찬례 안에 그리스도 자신만이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사건, 즉 그의 행동과 삶, 죽음이 현존한다고 이해하였다.3) 이렇게 성찬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 사건을 현재화하는데, 신자들은 성찬례 거행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고 그분의 구원공로에 참여하게 된다.
예루살렘의 치릴로 주교의 저서 예비자 교리서에서는 신자들이 성사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운명에 동참하게 되는 것을 모방(mimesis)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즉 치릴로 주교는 세례 예식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모방”이라고 해석하였다: 세례통 앞에 옷을 벗어놓는 것은 세례를 받으시고자 하는 그리스도, 즉 옷 벗켜진채 십자가 상에서 매달리신 분을 “모방하는” 것이며, 세번의 침례는 그의 죽음과 땅 속에서 지낸 삼일 낯과 밤을 모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모방”이란 행동으로 표현하는 전례적인 모방을 의미하는데,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 사건을 현실화하고, 세례자는 그리스도의 사건에 “참여”하게 되어 구원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는 참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셨고 참으로 묻히셨으며 참으로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은총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것을 상징적으로 모방하여 구원을 실제로 얻게 되었습니다”.4) 그리스도가 현존하시는 성사에 (모방을 통해) 참여함으로써 구원 은총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서방교부인 아우구스티노는 조금 다른 길을 가는데, 즉 그는 말씀과 믿음을 강조한다.
4.1.2.2. 아우구스티노
서방교회 성사론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아우구스티노(+430)인데, 그는 희랍교부들처럼 성사를 실재 상징, 표지로 이해한다. 즉 그에 의하면 성사는 보이지 않는 실재를 드러내는 가시적인 표지이다. 그런데 성사는 여타의 표지와는 달리 거룩한 것, 신적인 것을 가르킨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는 성사를 “거룩한 표지”라고 불렀다.5)
더 나아가서 아우구스티노는 성사적 표지가 요소(Elementum)와 말씀(Verbum)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본래적으로 요소는 외적인 유사함을 근거로 성사적 은총을 지시하는 역할을 하고, 말씀은 이것을 확인한다. 예를 들어서 세례성사의 경우에 성사의 요소인 물은 모든 죄를 사하는 성화은총을 암시하고, 말씀은 세례를 통해서 그 은총이 전달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한다.
이렇게 아우구스티노는 성사적 표지를 분석하면서 역점은 말씀에 놓는다: “말씀을 빼고나면 물은 단지 물일뿐 무엇이겠는가? 말씀이 요소로 들어섬으로써 성사가 되고, 이렇게 해서 성사는 동시에 가시적인 말씀(visibile verbum)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고자 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목욕을 한 사람은 발 외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온전히 깨끗합니다’(요한 13,10)”.6)
그런데 말씀이 그렇게 능력과 효력을 갖는 것은 그 말씀을 믿기 때문이다. “몸에 닿고 마음을 씻는 물의 이 큰 힘은 말씀의 효력 외에 어디에서 올 수 있겠는가? 말씀은 그것이 말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믿어졌기 때문에 효력을 내는 것이 아닌가? […] 사도는 말하기를, ‘그것은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그대가 그대의 입으로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는 것을 그대의 마음 속으로 믿으면 그대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으면 의로움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로마 10,8-10)”. 아우구스티노는 계속해서 사도 15,9; 1베드 3,21의 성서 구절을 인용하면서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구원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는 성사를 통한 말씀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 교회 전체가 믿는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아우구스티노는 예수께서 교회를 물로 씻어서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셨다는 에페 5,26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깨끗하게 되는 것은 ‘말씀으로’ 라는 말을 첨가하지 않는 한 결코 흐르는 물이라는 요소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신앙의 말씀은 하느님의 교회에서 믿는 사람, 봉헌하는 사람, 축복하는 사람을 통해서, 아직 마음으로 믿어 의롭게 되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어린 아이까지도 깨끗하게 한다”7) 아우구스티노에 의하면 성사 안에서 말씀이 효력과 능력을 갖는 것은 그것이 그리스도의 말씀이고 교회의 신앙의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아우구스티노는 성사를 “표지”와 “실재”로 구분하고, 표지는 다시 가시적인 요소와 말씀으로 나누면서 가시적인 요소에 비해서 말씀을 강조한다. 이로써 서방교회의 신학은 동방교회의 신학과는 다른 강조점을 드러내게 된다: 동방교회의 표지 중심적이고 실재상징적 사고에 비해 서방에서는 말씀과 개념 중심적인, 분석적인 사고가 자리 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