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K. 바르트와 K. 라너의 삼위일체 신학 비판(가)

 

3. 삼위일체적 하느님의 단일성




    하느님의 단일성은 아리아니즘과 사벨리아니즘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당화되었으나, 일원론적 단일군주론으로 제기될 위험성을 내포하였다. 이는 두 가지 양상의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는 하느님의 단일성을 하나의 중성체로 생각하는 것과 절대 주체처럼 한 분 하느님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전자는 삼신론으로 생각할 수 있고, 후자는 양태론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단 한 분이신 하느님에서 신학이 출발할 경우이며, 반대로 먼저 삼위일체의 역사로 생각할 때 삼위일체 되신 하느님의 일치를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일치의 하느님에서는 절대 주체로서의 하느님을 생각하기보다는 세 인격의 상호관계의 일체에 일치된다. 삼위일체의 일치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개방을 통한 사귐을 통하여 형성된다. 또한 각각의 인격을 통하여 구분되어 있으며, 동시에 서로의 관계 안에 하나이다. 삼위일체의 순환을 통해 그들은 하나의 주체에 속해 버리지 않으며, 각각 개체적으로 분리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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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K. 바르트와 K. 라너의 삼위일체 신학 비판(가)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4. K. 바르트와 K. 라너의 삼위일체 신학 비판


        몰트만에 의하면, 바르트와 라너의 삼위일체 신학은 놀랄만큼 동일한 전제에서 시작하여 서로 공감되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한 같은 위험적 요소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일신론적이고, 관념주의적 양태론의 위험이다.1) 


      가. K. 바르트의 단일 군주론적 삼위일체 신학 비판


        몰트만은 바르트의 삼위일체 신학을 하느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더 나아가 완전한 계시는 하느님만이 말씀하시며, 이 말씀은 인간을 위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계시로 이해한다. 몰트만은 하느님의 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바르트가 삼위일체론을 사용하게 된다고 비판한다. 하느님의 주권과 단일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삼위일체는 그 안으로 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하느님의 계시와 주권이라는 두 개념을 강조하기 위한 삼위일체 신학을 고수한다. 몰트만은 바르트의 견해를 “영원 가운데에서 영원의 반복”2)이라는 삼위일체 위격들의 구분성을 모호하게 한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몰트만은 바르트의 삼위일체 신학을 하느님의 일신론이라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바르트는 근대 사고의 절대 주체의 관념주의를 고수하여 이것을 삼위일체 신학으로 확고히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불필요하게, 절대 주권에서 바르트는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삼신론을 반박하게 된다는 것이다.3)

        몰트만의 시각으로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을 보면, 하느님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내는 자기 계시가 하느님의 주권을 드러내는 출발점이 된다면, 구체적 자기 계시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서 시작하며, 하느님의 역사를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으로 출발하여 하느님을 계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몰트만은 ‘그렇다면, 성령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다시 말해서 바르트의 주장에 따르면 성령의 자기 주체성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몰트만은 바르트가 성령의 신성을 단지 형식적으로만 언급함을 비판한다. 그것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의 상호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창조사업과 무한한 희생 안에서 이미 두 위격의 관계에 종속되어 하나되어 버렸음을 의미한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두 위격의 사랑의 관계에서 성령의 존재는 그 사랑의 자체로 에너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몰트만은 성령의 위격성은 단지 삼위일체가 성립되기 위한 형식일 뿐이며, 성령의 본질은 격하되어 하느님의 속성 중의 하나로 전락할 위험을 내포함을 비판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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