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의 분석심리학

 

융의 분석심리학2

*학습목표

1. 융의 무의식이론을 살펴본다.

2. 프로이트의 부정적이고 병리적인 무의식이론과 대비하여 융의 긍정적이며 창조적인 무의식이론에 대해 살펴본다.

3. 융의 분석심리학이론을 대표하는 이론인 ‘마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서 살펴봄으로써 ego(자아)와 집단의식인 페르조나(가면, persona), 그리고 집단무의식인 새도우(그림자, shadow), 아니마-아니무스(여성성-남성성, anima-animus), 셀프(자기, self)에 대해서 각각 살펴보고, 자아와 페르조나, 그리고 집단무의식들간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본다.

4. 진정한 의미의 자기실현인 개성화(individuation)의 의미와 고통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





*학습목차

1. 융에 대한 간단한 소개

2. 분석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마음의 의미 – 의식과 무의식

3. 프로이트와 융의 무의식관에 대한 견해비교

4. 마음의 구조와 기능

5. 고통(신경증 등)의 의미에 대한 융





1. 융에 대한 간단한 소개

1) 융과 프로이트의 만남과 헤어짐의 일화 

융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반복되는 꿈이 있었다. 꿈의 내용은 이렇다

[내가 꿈속에서 어느 집에 들어가게 되면 그 집 중앙 한가운데 남근모양의 거대한 석상이 서있었다].





융은 이 꿈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그 후 융은 스위스 부르크휠쯜리의 대학 교수가 된 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과 성욕론을 접하게 된다. 이때 비로소 융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꾸어왔던 꿈의 의미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성적인 욕구를 상징하고 있음을 깨닫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당시 유럽에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기에 당시 심리학자나 정신의학자들에게 정신분석이론은 금기적인 이론이었다. 따라서 부르크휠쯜리의 대학 측에서는 융에게 정신분석이론을 선택하고 대학교수를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정신분석이론을 포기하고 대학교수로 남을 것인지에 대해 선택을 강요한다.





이때 융은 \”오직 확률적인 것, 평균적인 것, 진부한 곳, 창조성이 빈곤한 것만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대학에 있을 수 없다\”, \”만일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나는 그의 편에 머물겠다. 만일 대학에서의 출세가 연구를 끊어버리고 진실을 침묵시키게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출세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겠다\”라고 주장하면서 대학교수직을 사임한다. 이로 인해 프로이트와 융은 학문적인 동지가 된다.





세월이 흘러 정신분석학은 점차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아울러 정신분석은 미국에 까지 알려지게 된다. 당시 미국의 클라크대학에서는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프로이트와 융을 초청하게 된다. 그런데 미국으로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융은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의 꿈을 꾸게 된다. 융의 꿈의 내용은 이렇다.





[나는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집에 다시 들어갔고 역시 가운데 남근석이 있었다. 그런데 구석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계단으로 내려갔다. 지하1층에는 중세시대 기사의 갑옷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 지하2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의 가운데에는 아주 원시시대의 무덤같은 것이 보였는데 그곳에는 해골을 비롯한 여러 유골들이 구덩이 속에 있었다]





융은 이 꿈의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해본 결과, 아마도 무의식에는 성적 본능보다 심층적인 무의식이 존재할 수 있음을 예시해주는 꿈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 꿈을 프로이트에게 이야기 한 결과 프로이트는 융의 꿈이 정신분석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을 살해(배신)할 꿈 (자신의 오이디푸스컴플렉스이론)이라고 해석을 하였다. 융과 프로이트는 이런 견해차이로 인해 결국 서로 결별을 하게 된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성적 본능을 강조하는 정신분석학이론을, 융은 성적 본능보다 심층적인 무의식인 집단무의식과 인간무의식 속의 神性을 강조하는 분석심리학이론을 형성하게 된다.

  위의 일화에서 보였듯이 프로이트와 융은 꿈을 통해서 만났고, 꿈을 통해서 헤어지는 기묘한 인연을 갖게 된다.



2) 융의 BBC방송 대담내용

사회자가 당시의 세계정세에 관한 의견을 물었을 때 융은 사람들의 무의식에 나타난 불안과 공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인류의 심리학적 자세에 장차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단언하였다. 사회자가 그 이유를 묻자 융은 이렇게 설명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좀더 많은 심리학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일한 위험은 인간 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큰 위험인데도 우리는 너무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을 모릅니다. 아는 게 너무 적습니다. 우리는 그의 정신을 연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가오는 모든 재앙의 근원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



융이 위의 이야기를 한지 벌써 40년이 지났다.

다양한 학문이 발전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산업이 발전하였다. 이념투쟁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보다 실리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그로 인하여 우리 자신을 더 많이 알게 되었는가? 그래서 우리는 얼마나 더 지혜로워지고 현명해졌는가? 광야의 예언자나 영웅, 개척자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는 사라지고 물질적 풍요를 신봉하는 대중집단의 시대가 열렸다. 비록 제1, 2차 세계대전 같은 큰 규모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세계 도처에서 종교적 이념이나 인종간의 대립 또는 살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간은 여전히 증오와 상호비난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20세기가 가고 21세기가 시작되는 전환의 시대에 인간의 내면, 특히 그 어두운 측면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일지 모른다. 모든 재앙의 근원이 인간에게 있다고 한 융은 사실 인간의 마음 속에서 그 재앙의 근원뿐 아니라 이른바 \’구원\’의 근원도 발견하고 주장했던 사람이었다.



2.분석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마음의 의미 – 의식과 무의식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마음이란 엄청나게 큰 세계이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우리의 마음\’ 이라고 알고 있는 것, 우리가 남의 마음\’ 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마음의 전부인 양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오해를 받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혹은 자기도 모르게 실수를 저질렀을 때 우리는 \”나도 모르는 내 마음\” \”나도 어쩔 수 없는 내 마음\’을 한탄하고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 속은 모른다\”고 실토한다. 이로써 우리는 나와 남이 모두 가지고 있으나 평소에 모르고 지내는 \’속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이나마 시인하는 것이다.

click

프로이트의 \”빙산\”과 융의 \”섬\”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정신)을 바다위에 떠있는 \”빙산\”에 비유를 했지만, 융은 \”섬\”에 비유를 했다.

프로이트는 해면위에 드러나는 빙산의 윗부분을 의식이라고 했고 해저에 있는 빙산의 아랫부분을 무의식이라고 비유를 했다.

그러나 융의 경우에는 섬의 비유를 통해 바다위에 드러나 우리가 섬이라고 알고 있는 부분이 의식이며, 조류에 의해 드러났다 사라졌다하는 부분을

개인무의식이라고 했다. 그에 비해 바다속에 잠겨 있는 부분을 집단무의식이라고 했다.

우리가 언뜻보면 섬은 서로 분리되어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섬과 섬은 사실상 해저면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융에 따르면 언뜻 사람과 사람이 달라보이지만 깊은 집단무의식 층에 들어가면 사실은 \”서로 이어져 있는 하나\”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만큼 인간의 정신(마음)에 대한 견해에 있어 프로이트에 비해 융이 보다 폭넓은 관점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말이나 표정으로 표현되지 않은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들에게는 밖으로 표현되지 않은 마음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외향적인 서양인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해야 사랑하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한다. 말하지 않은 감정, 말하지 않은 마음은 주목할 만한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되풀이해서 \”I Love You\”라고 말함으로써 사랑의 마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비교적 내향적인 동양인들은 대체로 마음과 마음이 말없이도 통한다는 이심전심의 \’비언어적 소통\’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말 뒤에 숨은 뜻을 생각하고 말없는 깊은 마음을 존중해 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기 마음이나 남의 속마음을 항상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 지레짐작으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나 타인의 마음을 잘못 판단하고 오해하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서구인처럼 외향적이든 동양인처럼 내향적이든, 마음을 표현을 하던, 표현을 하지 않던지 간에 내가 아는 나의 마음을 “의식”이라고 하고, 내가 모르는 나의 마음을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3. 프로이트와 융의 무의식관에 대한 견해비교

1) 프로이트와 융의 공통점 – 무의식의 존재에 대한 인정

프로이트와 융은 인간의 정신이나 마음속에 무의식이 존재하고 있고, 이런 무의식이 인간의 정신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아울러 무의식에 대한 발견을 통해 인간의 성숙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2) 프로이트와 융의 차이점 – 무의식의 내용과 그 기능

*프로이트

▶프로이트가 주장한 무의식의 내용은 현실의 도덕규범과 맞지 않아서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억압된 여러 가지 본능적 충동이었다. 특히 억압된 성적 욕구의 원초아(이드)와 이런 성적 욕구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적 감독 기능을 하는 초자아부분이 무의식의 중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융

▶그는 또한 무의식은 사람이 태어나 의식이 생긴 뒤 거기서 억압된 내용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즉 출생이후의 유아기와 아동기 경험을 통해서 무의식의 내용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개인무의식 (the personal unconscious) – 출생이후 개인이 살아오면서 이루어진 무의식의 층. 무의식에는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된 성적 충동뿐 아니라 단순히 잊어버린 것들이나 자극이 약해 의식까지 미치지 못하는 내용들이 있으며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여기에 해당된다.

▶집단무의식(the collective unconscious) – 개인적 무의식에서 나아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출생이전부터) 마음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개인의 특수한 생활사에서 나온 무의식의 층과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갖추어져 있는 인간 고유의 원초적인, 그리고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무의식의 심층이다.

: 이런 집단무의식은 의식에 활력을 주고 그 기능을 조절하여 의식과 무의식이 통일된 전체정신을 실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다. 프로이트가 주장한 바와 같이 무의식은 단지 충동의 창고, 의식에서 쓸어낸 본능의 쓰레기장이거나 병적인 유아기 욕구로 가득 찬 웅덩이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진정으로 성숙케 하는 창조의 샘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4. 마음의 구조와 기능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옛날 철학자나 심리학자는 즐겨 둥근 공으로 표시하였다. 전체정신을 설명하는 데는 이것이 가장 적절하다. 

  우리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며 무의식은 개인적 무의식, 집단적 무의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의식계와 무의식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 그림에서와 같이 독특한 요소가 있다.

의식과 무의식을 막론하고 우리의 정신은 심리적 복합체, 콤플렉스(Complex)로 이루어지며 이 가운데 집단무의식을 구성하는 콤플렉스를 다른 말로 원형(Archetype)이라 부른다. 



click *융이 주장한 컴플렉스의 개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열등감의 의미와 다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열등감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는 애들러(Adler)라는 심리학자에 의해 주로 연구되었다. 애들러는 열등감은 여러가지 원인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보았으나 열등감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열등감이야말로 인간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자신의 열등감을 수용 인식함으로써 그런 열등감을 보상하여 우월감을 성취하려는 노력에 바로 인간의 위대함이 있다고 보았다. 부정적인 열등감이란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고 열등감속에 머무를 때, 또는 자신의 열등감을 지나치게 보상하려고 할 때 나타난다고 보았다. 열등감은 부모의 무관심 혹은 정반대로 부모의 과보호로 인해 나타난다고보았다.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부모의 무관심으로 인해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껴서 자신의 열등감속에 주저 앉는 다거나 혹은 정반대로 부모의 과보호로 인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다른 사람이 모든 것을 대신해주어야 한다는 지나친 의존성으로 인해 나타난다고 보았다.

애들어는 열등감을 컴플렉스라고 하지 않고 인피리어리티(inferiority)라고 명칭하였다.

융이 주장한 컴플렉스의 의미는 이렇다.

정의를 내리면 어떤 일정한 대상이나 사람 혹은 사건에 대해 강하고 많은 정신적 에너지들이 모여 있는 것을 뜻한다(참고로 잠실운동장을 영어로 할때 잠실

스포츠 컴플렉스라고 한다 – 주경기장, 보조경기장, 야구장, 체육관 등등이 주경기장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돈에 대해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다고 가정하자. 친구가 이 사람에게 충고를 하더라고 이 사람은 자신이 돈이 없어서 친구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돈만 있으면 네가 내게 이런 소리를 하지 못할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모든 경우를 \’돈\’이라는 대상에 의존하여 자신이나 타인의 삶을 판단하고 이끌어 나가기 때문에 돈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사람이 돈이 많아 졌다고 해도 결코 만족할 수 없기에 진정한 돈컴플렉스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나는 돈에 욕심이 없어\”라는 말하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언뜻보면 이 사람이 돈에 욕심이 없어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찌 보면 돈에 욕심이 많다고 하는 사람보다 더 돈에 대한 욕심이 많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진정으로 돈에 욕심이 없다면 돈에 욕심이 있다고 말할 필요도 없고 돈에 욕심이 없다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즉 위 사람의 경우 그 심리를 정확히 표현하면 \”나는 지금은 돈이 없어 욕심을 낼 수 없지만, 돈이 생길 기회가 오면 너보다 더 돈에 대한 욕심을 낼거야\”라는 무의식 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런 경우도 돈에 대한 컴플렉스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컴플렉스는 돈 뿐만아니라 지위, 학력 등 사회적으로 선호되는 기준이나 사람 – 아버지, 어머니 등에도 나타날 수 있다.



1) 자아(Ego)와 의식

●자아의 정의: 자아란 사람들이 ‘나’라고 알고 있는 모든 의식내용을 뜻한다. (나=자아)





● 자아 또는 ‘나’ 는 의식의 중심에서 의식된 마음을 조절하고, 동시에 무의식의 마음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의식의 유형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의식의 모든 내용은 나(자아)와 연관되고 나(자아)는 의식의 영역을 넓히기도 하고 좁히기도 하며, 무의식의 작용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나(자아)는 개인이 외부(사회)세계와 관계를 맺는 중요한 창구인 동시에 자신의 내면(무의식)세계와도 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자아)의 태도는 우리의 인격의 성숙, 즉 정신의 전체성의 실현(외부세계와 내면세계의 균형과 조화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내가 아는 모든 것,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 나의 생각, 나의 지각, 나의 느낌으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의식, 또는 자아의식이라 한다.



예) “나는 김철수다” “나의 종교는 기독교다” “나는 회사원이다” “나의 아버지는 김영수다”, “나는 성실하다” “나는 키가 작다” “나는 남자다” 등의 소위 나라고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의식 또는 자아의식이라고 한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나(자아)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생활 속에서 자기나름대로의 독특한 특성(성격:심리유형)과 함께 자신이 집단에서 행해야 할 일반적인 행동규범을 배우고, 사회의 일원으로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의식을 강화하고 그 영역을 넓히게 된다.

융은 나(자아)가 성장하고 사회의 일원이 되면서 맡게 되는 역할이 있고, 그 역할에 대해 사회가 집단적으로 개인들에게 요구하는 행동규범이 있는데, 이런 집단적으로 요구되는 집단정신을 페르조나(Persona)라고 하였다. 다음 절에서는 페르조나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2) 페르조나(Persona)와 집단의식(집단정신)

● 나(자아)가 형성하고 성장하면서 소유하게 되는 집단사회의 행동규범 또는 역할을 ‘페르조나(persona)’ 라 부른다. 이것은 집단정신에서 빌려온 판단과 행동의 틀이다.



click *페르조나의 의미와 예

페르조나(persona)란 고대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말한다. 



● 우리나라의 탈춤처럼 어떤 사람이 각시의 탈을 쓰면 각시가 되고, 양반의 탈을 쓰면 양반이 되는 것처럼 인간이 집단속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여러 개의 탈을 썼다가 벗었다가 하면서 살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한 주부의 경우, 누구네 집 딸의 역할, 누구네 집 며느리의 역할, 누구의 처의 역할, 누구의 엄마의 역할, 직장여성으로서의 역할, 직급에 따른 역할 등등 개인이 사회속에서 살아가면서 지니게 되는 가면의 수는 매우 많다).





● 여기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탈이나 가면의 의미가 \”도덕적인 위선\”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페르조나\”는 집단정신의 한 단면인데 사람들이 곧잘 나의 생각, 나의 신념, 나의 가치관, 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결코 자기의 생각이 아니라 남들의 생각, 즉 부모의 생각, 선생의 생각, 다른 친구들의 생각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수 있다. 즉, 집단적으로 주입된 생각이나 가치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페르조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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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분석심리학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융의 분석심리학2

    *학습목표

    1. 융의 무의식이론을 살펴본다.

    2. 프로이트의 부정적이고 병리적인 무의식이론과 대비하여 융의 긍정적이며 창조적인 무의식이론에 대해 살펴본다.

    3. 융의 분석심리학이론을 대표하는 이론인 ‘마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서 살펴봄으로써 ego(자아)와 집단의식인 페르조나(가면, persona), 그리고 집단무의식인 새도우(그림자, shadow), 아니마-아니무스(여성성-남성성, anima-animus), 셀프(자기, self)에 대해서 각각 살펴보고, 자아와 페르조나, 그리고 집단무의식들간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본다.

    4. 진정한 의미의 자기실현인 개성화(individuation)의 의미와 고통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



    *학습목차

    1. 융에 대한 간단한 소개

    2. 분석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마음의 의미 – 의식과 무의식

    3. 프로이트와 융의 무의식관에 대한 견해비교

    4. 마음의 구조와 기능

    5. 고통(신경증 등)의 의미에 대한 융



    1. 융에 대한 간단한 소개

    1) 융과 프로이트의 만남과 헤어짐의 일화 

    융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반복되는 꿈이 있었다. 꿈의 내용은 이렇다

    [내가 꿈속에서 어느 집에 들어가게 되면 그 집 중앙 한가운데 남근모양의 거대한 석상이 서있었다].



    융은 이 꿈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그 후 융은 스위스 부르크휠쯜리의 대학 교수가 된 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과 성욕론을 접하게 된다. 이때 비로소 융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꾸어왔던 꿈의 의미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성적인 욕구를 상징하고 있음을 깨닫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당시 유럽에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기에 당시 심리학자나 정신의학자들에게 정신분석이론은 금기적인 이론이었다. 따라서 부르크휠쯜리의 대학 측에서는 융에게 정신분석이론을 선택하고 대학교수를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정신분석이론을 포기하고 대학교수로 남을 것인지에 대해 선택을 강요한다.



    이때 융은 “오직 확률적인 것, 평균적인 것, 진부한 곳, 창조성이 빈곤한 것만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대학에 있을 수 없다”, “만일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나는 그의 편에 머물겠다. 만일 대학에서의 출세가 연구를 끊어버리고 진실을 침묵시키게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출세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겠다”라고 주장하면서 대학교수직을 사임한다. 이로 인해 프로이트와 융은 학문적인 동지가 된다.



    세월이 흘러 정신분석학은 점차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아울러 정신분석은 미국에 까지 알려지게 된다. 당시 미국의 클라크대학에서는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프로이트와 융을 초청하게 된다. 그런데 미국으로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융은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의 꿈을 꾸게 된다. 융의 꿈의 내용은 이렇다.



    [나는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집에 다시 들어갔고 역시 가운데 남근석이 있었다. 그런데 구석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계단으로 내려갔다. 지하1층에는 중세시대 기사의 갑옷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 지하2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의 가운데에는 아주 원시시대의 무덤같은 것이 보였는데 그곳에는 해골을 비롯한 여러 유골들이 구덩이 속에 있었다]



    융은 이 꿈의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해본 결과, 아마도 무의식에는 성적 본능보다 심층적인 무의식이 존재할 수 있음을 예시해주는 꿈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 꿈을 프로이트에게 이야기 한 결과 프로이트는 융의 꿈이 정신분석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을 살해(배신)할 꿈 (자신의 오이디푸스컴플렉스이론)이라고 해석을 하였다. 융과 프로이트는 이런 견해차이로 인해 결국 서로 결별을 하게 된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성적 본능을 강조하는 정신분석학이론을, 융은 성적 본능보다 심층적인 무의식인 집단무의식과 인간무의식 속의 神性을 강조하는 분석심리학이론을 형성하게 된다.

      위의 일화에서 보였듯이 프로이트와 융은 꿈을 통해서 만났고, 꿈을 통해서 헤어지는 기묘한 인연을 갖게 된다.


    2) 융의 BBC방송 대담내용

    사회자가 당시의 세계정세에 관한 의견을 물었을 때 융은 사람들의 무의식에 나타난 불안과 공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인류의 심리학적 자세에 장차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단언하였다. 사회자가 그 이유를 묻자 융은 이렇게 설명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좀더 많은 심리학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일한 위험은 인간 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큰 위험인데도 우리는 너무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을 모릅니다. 아는 게 너무 적습니다. 우리는 그의 정신을 연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가오는 모든 재앙의 근원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


    융이 위의 이야기를 한지 벌써 40년이 지났다.

    다양한 학문이 발전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산업이 발전하였다. 이념투쟁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보다 실리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그로 인하여 우리 자신을 더 많이 알게 되었는가? 그래서 우리는 얼마나 더 지혜로워지고 현명해졌는가? 광야의 예언자나 영웅, 개척자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는 사라지고 물질적 풍요를 신봉하는 대중집단의 시대가 열렸다. 비록 제1, 2차 세계대전 같은 큰 규모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세계 도처에서 종교적 이념이나 인종간의 대립 또는 살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간은 여전히 증오와 상호비난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20세기가 가고 21세기가 시작되는 전환의 시대에 인간의 내면, 특히 그 어두운 측면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일지 모른다. 모든 재앙의 근원이 인간에게 있다고 한 융은 사실 인간의 마음 속에서 그 재앙의 근원뿐 아니라 이른바 ‘구원’의 근원도 발견하고 주장했던 사람이었다.


    2.분석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마음의 의미 – 의식과 무의식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마음이란 엄청나게 큰 세계이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우리의 마음’ 이라고 알고 있는 것, 우리가 남의 마음’ 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마음의 전부인 양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오해를 받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혹은 자기도 모르게 실수를 저질렀을 때 우리는 “나도 모르는 내 마음” “나도 어쩔 수 없는 내 마음’을 한탄하고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 속은 모른다”고 실토한다. 이로써 우리는 나와 남이 모두 가지고 있으나 평소에 모르고 지내는 ‘속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이나마 시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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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트의 “빙산”과 융의 “섬”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정신)을 바다위에 떠있는 “빙산”에 비유를 했지만, 융은 “섬”에 비유를 했다.

    프로이트는 해면위에 드러나는 빙산의 윗부분을 의식이라고 했고 해저에 있는 빙산의 아랫부분을 무의식이라고 비유를 했다.

    그러나 융의 경우에는 섬의 비유를 통해 바다위에 드러나 우리가 섬이라고 알고 있는 부분이 의식이며, 조류에 의해 드러났다 사라졌다하는 부분을

    개인무의식이라고 했다. 그에 비해 바다속에 잠겨 있는 부분을 집단무의식이라고 했다.

    우리가 언뜻보면 섬은 서로 분리되어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섬과 섬은 사실상 해저면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융에 따르면 언뜻 사람과 사람이 달라보이지만 깊은 집단무의식 층에 들어가면 사실은 “서로 이어져 있는 하나”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만큼 인간의 정신(마음)에 대한 견해에 있어 프로이트에 비해 융이 보다 폭넓은 관점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말이나 표정으로 표현되지 않은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들에게는 밖으로 표현되지 않은 마음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외향적인 서양인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해야 사랑하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한다. 말하지 않은 감정, 말하지 않은 마음은 주목할 만한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되풀이해서 “I Love You”라고 말함으로써 사랑의 마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비교적 내향적인 동양인들은 대체로 마음과 마음이 말없이도 통한다는 이심전심의 ‘비언어적 소통’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말 뒤에 숨은 뜻을 생각하고 말없는 깊은 마음을 존중해 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기 마음이나 남의 속마음을 항상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 지레짐작으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나 타인의 마음을 잘못 판단하고 오해하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서구인처럼 외향적이든 동양인처럼 내향적이든, 마음을 표현을 하던, 표현을 하지 않던지 간에 내가 아는 나의 마음을 “의식”이라고 하고, 내가 모르는 나의 마음을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3. 프로이트와 융의 무의식관에 대한 견해비교

    1) 프로이트와 융의 공통점 – 무의식의 존재에 대한 인정

    프로이트와 융은 인간의 정신이나 마음속에 무의식이 존재하고 있고, 이런 무의식이 인간의 정신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아울러 무의식에 대한 발견을 통해 인간의 성숙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2) 프로이트와 융의 차이점 – 무의식의 내용과 그 기능

    *프로이트

    ▶프로이트가 주장한 무의식의 내용은 현실의 도덕규범과 맞지 않아서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억압된 여러 가지 본능적 충동이었다. 특히 억압된 성적 욕구의 원초아(이드)와 이런 성적 욕구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적 감독 기능을 하는 초자아부분이 무의식의 중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융

    ▶그는 또한 무의식은 사람이 태어나 의식이 생긴 뒤 거기서 억압된 내용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즉 출생이후의 유아기와 아동기 경험을 통해서 무의식의 내용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개인무의식 (the personal unconscious) – 출생이후 개인이 살아오면서 이루어진 무의식의 층. 무의식에는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된 성적 충동뿐 아니라 단순히 잊어버린 것들이나 자극이 약해 의식까지 미치지 못하는 내용들이 있으며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여기에 해당된다.

    ▶집단무의식(the collective unconscious) – 개인적 무의식에서 나아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출생이전부터) 마음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개인의 특수한 생활사에서 나온 무의식의 층과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갖추어져 있는 인간 고유의 원초적인, 그리고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무의식의 심층이다.

    : 이런 집단무의식은 의식에 활력을 주고 그 기능을 조절하여 의식과 무의식이 통일된 전체정신을 실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다. 프로이트가 주장한 바와 같이 무의식은 단지 충동의 창고, 의식에서 쓸어낸 본능의 쓰레기장이거나 병적인 유아기 욕구로 가득 찬 웅덩이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진정으로 성숙케 하는 창조의 샘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4. 마음의 구조와 기능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옛날 철학자나 심리학자는 즐겨 둥근 공으로 표시하였다. 전체정신을 설명하는 데는 이것이 가장 적절하다. 

      우리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며 무의식은 개인적 무의식, 집단적 무의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의식계와 무의식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 그림에서와 같이 독특한 요소가 있다.

    의식과 무의식을 막론하고 우리의 정신은 심리적 복합체, 콤플렉스(Complex)로 이루어지며 이 가운데 집단무의식을 구성하는 콤플렉스를 다른 말로 원형(Archetype)이라 부른다. 


    click *융이 주장한 컴플렉스의 개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열등감의 의미와 다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열등감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는 애들러(Adler)라는 심리학자에 의해 주로 연구되었다. 애들러는 열등감은 여러가지 원인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보았으나 열등감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열등감이야말로 인간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자신의 열등감을 수용 인식함으로써 그런 열등감을 보상하여 우월감을 성취하려는 노력에 바로 인간의 위대함이 있다고 보았다. 부정적인 열등감이란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고 열등감속에 머무를 때, 또는 자신의 열등감을 지나치게 보상하려고 할 때 나타난다고 보았다. 열등감은 부모의 무관심 혹은 정반대로 부모의 과보호로 인해 나타난다고보았다.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부모의 무관심으로 인해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껴서 자신의 열등감속에 주저 앉는 다거나 혹은 정반대로 부모의 과보호로 인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다른 사람이 모든 것을 대신해주어야 한다는 지나친 의존성으로 인해 나타난다고 보았다.

    애들어는 열등감을 컴플렉스라고 하지 않고 인피리어리티(inferiority)라고 명칭하였다.

    융이 주장한 컴플렉스의 의미는 이렇다.

    정의를 내리면 어떤 일정한 대상이나 사람 혹은 사건에 대해 강하고 많은 정신적 에너지들이 모여 있는 것을 뜻한다(참고로 잠실운동장을 영어로 할때 잠실

    스포츠 컴플렉스라고 한다 – 주경기장, 보조경기장, 야구장, 체육관 등등이 주경기장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돈에 대해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다고 가정하자. 친구가 이 사람에게 충고를 하더라고 이 사람은 자신이 돈이 없어서 친구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돈만 있으면 네가 내게 이런 소리를 하지 못할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모든 경우를 ‘돈’이라는 대상에 의존하여 자신이나 타인의 삶을 판단하고 이끌어 나가기 때문에 돈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사람이 돈이 많아 졌다고 해도 결코 만족할 수 없기에 진정한 돈컴플렉스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나는 돈에 욕심이 없어”라는 말하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언뜻보면 이 사람이 돈에 욕심이 없어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찌 보면 돈에 욕심이 많다고 하는 사람보다 더 돈에 대한 욕심이 많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진정으로 돈에 욕심이 없다면 돈에 욕심이 있다고 말할 필요도 없고 돈에 욕심이 없다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즉 위 사람의 경우 그 심리를 정확히 표현하면 “나는 지금은 돈이 없어 욕심을 낼 수 없지만, 돈이 생길 기회가 오면 너보다 더 돈에 대한 욕심을 낼거야”라는 무의식 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런 경우도 돈에 대한 컴플렉스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컴플렉스는 돈 뿐만아니라 지위, 학력 등 사회적으로 선호되는 기준이나 사람 – 아버지, 어머니 등에도 나타날 수 있다.


    1) 자아(Ego)와 의식

    ●자아의 정의: 자아란 사람들이 ‘나’라고 알고 있는 모든 의식내용을 뜻한다. (나=자아)



    ● 자아 또는 ‘나’ 는 의식의 중심에서 의식된 마음을 조절하고, 동시에 무의식의 마음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의식의 유형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의식의 모든 내용은 나(자아)와 연관되고 나(자아)는 의식의 영역을 넓히기도 하고 좁히기도 하며, 무의식의 작용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나(자아)는 개인이 외부(사회)세계와 관계를 맺는 중요한 창구인 동시에 자신의 내면(무의식)세계와도 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자아)의 태도는 우리의 인격의 성숙, 즉 정신의 전체성의 실현(외부세계와 내면세계의 균형과 조화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내가 아는 모든 것,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 나의 생각, 나의 지각, 나의 느낌으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의식, 또는 자아의식이라 한다.


    예) “나는 김철수다” “나의 종교는 기독교다” “나는 회사원이다” “나의 아버지는 김영수다”, “나는 성실하다” “나는 키가 작다” “나는 남자다” 등의 소위 나라고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의식 또는 자아의식이라고 한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나(자아)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생활 속에서 자기나름대로의 독특한 특성(성격:심리유형)과 함께 자신이 집단에서 행해야 할 일반적인 행동규범을 배우고, 사회의 일원으로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의식을 강화하고 그 영역을 넓히게 된다.

    융은 나(자아)가 성장하고 사회의 일원이 되면서 맡게 되는 역할이 있고, 그 역할에 대해 사회가 집단적으로 개인들에게 요구하는 행동규범이 있는데, 이런 집단적으로 요구되는 집단정신을 페르조나(Persona)라고 하였다. 다음 절에서는 페르조나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2) 페르조나(Persona)와 집단의식(집단정신)

    ● 나(자아)가 형성하고 성장하면서 소유하게 되는 집단사회의 행동규범 또는 역할을 ‘페르조나(persona)’ 라 부른다. 이것은 집단정신에서 빌려온 판단과 행동의 틀이다.


    click *페르조나의 의미와 예

    페르조나(persona)란 고대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말한다. 


    ● 우리나라의 탈춤처럼 어떤 사람이 각시의 탈을 쓰면 각시가 되고, 양반의 탈을 쓰면 양반이 되는 것처럼 인간이 집단속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여러 개의 탈을 썼다가 벗었다가 하면서 살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한 주부의 경우, 누구네 집 딸의 역할, 누구네 집 며느리의 역할, 누구의 처의 역할, 누구의 엄마의 역할, 직장여성으로서의 역할, 직급에 따른 역할 등등 개인이 사회속에서 살아가면서 지니게 되는 가면의 수는 매우 많다).



    ● 여기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탈이나 가면의 의미가 “도덕적인 위선”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페르조나”는 집단정신의 한 단면인데 사람들이 곧잘 나의 생각, 나의 신념, 나의 가치관, 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결코 자기의 생각이 아니라 남들의 생각, 즉 부모의 생각, 선생의 생각, 다른 친구들의 생각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수 있다. 즉, 집단적으로 주입된 생각이나 가치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페르조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페르조나”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진상, 개성)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가짜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모습(가면/가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 우리나라 말 가운데 ‘페르조나”에 해당되는 말은 ‘체면’, ‘얼굴’, ‘낯’과 같은 것이다.

    어른의 체면, 남편의 체면, 교육자의 체면, 선생의 체면, 숙녀의 체면 등 그것은 모두 어떤 사회집단이 그 집단의 성원들에게 한결같이 요구하는 일정한 행동상의 규범이며 마치 의복과도 같은 것이다(예로 우리는 정장을 입고 고급음식점에 가는 경우하고, 일상생활복을 입고 고급음식점에 가는 경우하고 종업원들의 태도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자신이 입은 옷에 따라 행동이나 어투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 또한 체면이라는 말은 ‘사명’, ‘역할’, ‘본분’, ‘도리’라는 의미와 유사하다.

    종교인의 사명, 교육자의 본분, 아들된 도리, 주부의 역할이라고 할 때 바로 이것은 한정된 집단적 직업상과 기대되는 규범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감히 뵐 낯이 없다”, “얼굴을 들수 없다”, 어디다 낯을 들고 다니느냐” 등의 표현은 기대되는 사회적 역할 및 체면(페르조나)의 상실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 한국사회는 특히 페르조나가 강조되는 사회이며 개인이 싫든 좋든 그것과 동일시하도록(따르도록) 강요하거나 어느 틈엔가 동일시되어 있어 “진정으로 자신의 모습”을 잊게 만든다.

    예를 들어 “여자는 시집가서 아이나 낳을 일이다”, “염색한 머리는 부도덕하다”라는 말이나 누구네 집 딸, 누구네 아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아버지, 어디 출신, 무슨 대학, 무슨 직위 등이 개인의 개성과 능력을 판단할 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한국사회이다.

    (실례로 어떤 부인이 소형승용차를 몰고 호텔에 갔을 때 종업원이 “아줌마라고 부르고, 고급승용차를 타고 간 경우 종업원이 “사모님”이라고 부르더라는 이야기가 이런 내용에 해당된다. 즉 동일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로 표현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그 사람의 능력이나 개성이 평가받을 수 있다)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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