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치온,몬타니즘 이단-몬타니즘 이단

 

12.2. 몬타니즘 이단


몬타니즘(Montanism)은 2세기 중엽 소아시아의 프리지아에서 몬타누스(Montanus)에 의해 시작된 이단으로서 영지주의 이단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급속도로 동.서방에 퍼져나가 5-6세기에 가서야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들은 초대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뽑히운 영적 사람,「비추임을 받은 사람들」이라 자처하면서,직접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집회에서 초기 교회에 넘쳤던 은사적 특은들을 새롭게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초기에는 일종의 성령쇄신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몬타누스는 원래 이교도에서 개종한 후에 이 집단의 지도자가 되었는데, 그의 추종자 쁘리쉴라(Priscilla)와 막시밀라(Maximilla)두 여인과 함께 종교적인 체험과 환시를 통해 방언과 예언을 하면서 성령의 신탁(神託)을 받아 전한다고 하였다.그들에게 그리스도와 성령이 발현한다는 소문이 번져나갔으며, 그들의 집회에서 무아경과 경련과 집단 히스테리 같은 비이성적인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났다.


초창기의 몬타니즘은 성령이 내려오심과 그 은사들을 강조하였을 뿐, 아직 이론적 정립을 하지 못하고 다만 몇가지 행동규범을 제시하였다. 단식같은 재계가 도입되고, 동정생활이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면서 결혼은 경시되었다. 그래서 부부라 할지라도 별거하는 것을 권장하였다. 또 세상의 종말이 곧 도래할 것이므로 신도들은 깨어 준비하고 있다가, 새 예루살렘과 천년왕국을 맞이하도록 뻬뿌자(Pepuza)에 모여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난 다음 떼르뚤리아노 시대에 와서 몬타니즘은 이론적으로 체계를 갖추게 된다. 칼타고의 대 학자 떼르뚤리아노는 206년부터 몬타니즘에 빠져들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소아시아에서 시작된 몬타니즘이 서북 아프리카의 칼타고에까지 널리 전파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엄격하고 극단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떼르뚤리아노는 뛰어난 필치로 몬타니즘의 이론을 정립하였다.평신도였던 그는 극단적인 윤리생활을 강조하면서, 한 배우자가 사별한 후에 재혼하는 것은 간음과 같이 불가하다고 하고, 박해 중에 피신하는 것도 배교와 같은 큰 잘못이며, 배교와 살인과 간은을 저지른 대죄인의 경우에는 교회도 사해줄 수 없다고 가르쳤다.


그는 또한 신자 공동체의 보편적 사제직을 강조하면서 반교계주의(反敎階主義:antihierachismus)를 부르짖었다. 그는 성령에 의한 내면적 교회와 주교들에 의한 외적인 교회를 대비시키면서 성령에 의한 내면적 교회만이 참되고 진실되며 구원을 가져다 주는 반면 주교들에의한 외적인 교회는 인위적이며 멸망을 초래한다고 주장하였다.


정통교회의 교계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한 이 평신도 운동은 교회로부터 단죄받았으며, 많은 교부들은 복음과 정통교리에 입각해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몬타니즘의 현상과 이론을 볼때, 근래에 개신교나 우리 가톨릭 안에서 일고 있는 비정상적인 성령운동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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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12.2. 몬타니즘 이단

    몬타니즘(Montanism)은 2세기 중엽 소아시아의 프리지아에서 몬타누스(Montanus)에 의해 시작된 이단으로서 영지주의 이단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급속도로 동.서방에 퍼져나가 5-6세기에 가서야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들은 초대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뽑히운 영적 사람,「비추임을 받은 사람들」이라 자처하면서,직접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집회에서 초기 교회에 넘쳤던 은사적 특은들을 새롭게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초기에는 일종의 성령쇄신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몬타누스는 원래 이교도에서 개종한 후에 이 집단의 지도자가 되었는데, 그의 추종자 쁘리쉴라(Priscilla)와 막시밀라(Maximilla)두 여인과 함께 종교적인 체험과 환시를 통해 방언과 예언을 하면서 성령의 신탁(神託)을 받아 전한다고 하였다.그들에게 그리스도와 성령이 발현한다는 소문이 번져나갔으며, 그들의 집회에서 무아경과 경련과 집단 히스테리 같은 비이성적인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났다.

    초창기의 몬타니즘은 성령이 내려오심과 그 은사들을 강조하였을 뿐, 아직 이론적 정립을 하지 못하고 다만 몇가지 행동규범을 제시하였다. 단식같은 재계가 도입되고, 동정생활이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면서 결혼은 경시되었다. 그래서 부부라 할지라도 별거하는 것을 권장하였다. 또 세상의 종말이 곧 도래할 것이므로 신도들은 깨어 준비하고 있다가, 새 예루살렘과 천년왕국을 맞이하도록 뻬뿌자(Pepuza)에 모여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난 다음 떼르뚤리아노 시대에 와서 몬타니즘은 이론적으로 체계를 갖추게 된다. 칼타고의 대 학자 떼르뚤리아노는 206년부터 몬타니즘에 빠져들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소아시아에서 시작된 몬타니즘이 서북 아프리카의 칼타고에까지 널리 전파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엄격하고 극단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떼르뚤리아노는 뛰어난 필치로 몬타니즘의 이론을 정립하였다.평신도였던 그는 극단적인 윤리생활을 강조하면서, 한 배우자가 사별한 후에 재혼하는 것은 간음과 같이 불가하다고 하고, 박해 중에 피신하는 것도 배교와 같은 큰 잘못이며, 배교와 살인과 간은을 저지른 대죄인의 경우에는 교회도 사해줄 수 없다고 가르쳤다.

    그는 또한 신자 공동체의 보편적 사제직을 강조하면서 반교계주의(反敎階主義:antihierachismus)를 부르짖었다. 그는 성령에 의한 내면적 교회와 주교들에 의한 외적인 교회를 대비시키면서 성령에 의한 내면적 교회만이 참되고 진실되며 구원을 가져다 주는 반면 주교들에의한 외적인 교회는 인위적이며 멸망을 초래한다고 주장하였다.

    정통교회의 교계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한 이 평신도 운동은 교회로부터 단죄받았으며, 많은 교부들은 복음과 정통교리에 입각해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몬타니즘의 현상과 이론을 볼때, 근래에 개신교나 우리 가톨릭 안에서 일고 있는 비정상적인 성령운동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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