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장에 복음의 씨가 뿌려지기 시작한 것은 1780년대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여사울 출신 이단원(존창)에 의해서였다. 1791년 신해박해로 교세가 주춤했으나 백여년 후 파리 외방전교회 귀를리에 남 신부가 내포 이남 지방의 사목을 시작하면서 본당이 설립 되었다. 본당에서 남서쪽 6Km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신리 공소는 1780년대 내포지역 전교의 근거지로써 한국교회사에 빛나는 유서깊은 곳이다. 병인 박해가 시작될 무렵 1866년 3월 30 보령 갈매못에서 같은날 순교한 다블리안 주교(안또니오), 오메르또 오신부(베드로), 위앵인신부(말띵), 황석두(루가)등이 신리에서 교리 저술편찬 사업을 하면서 전교의 본거지로 활동하다가 체포된 곳이다. 또한 이곳은 덕산에서 체포되어 공주에서 순교한 손자선(도마)의 고향이기도 하다. 위의 다섯분은 1868년 10월 6일로마에서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여의도에서 요한 바오로 2세 집전하에 성인품에 오르셨다.

이 고장에 복음의 씨가 뿌려지기 시작한 것은 1780년대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여사울 출신 이단원(존창)에 의해서였다. 1791년 신해박해로 교세가 주춤했으나 백여년 후 파리 외방전교회 귀를리에 남 신부가 내포 이남 지방의 사목을 시작하면서 본당이 설립 되었다. 본당에서 남서쪽 6Km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신리 공소는 1780년대 내포지역 전교의 근거지로써 한국교회사에 빛나는 유서깊은 곳이다. 병인 박해가 시작될 무렵 1866년 3월 30 보령 갈매못에서 같은날 순교한 다블리안 주교(안또니오), 오메르또 오신부(베드로), 위앵인신부(말띵), 황석두(루가)등이 신리에서 교리 저술편찬 사업을 하면서 전교의 본거지로 활동하다가 체포된 곳이다. 또한 이곳은 덕산에서 체포되어 공주에서 순교한 손자선(도마)의 고향이기도 하다. 위의 다섯분은 1868년 10월 6일로마에서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여의도에서 요한 바오로 2세 집전하에 성인품에 오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