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세례, 예비자 입교식

 

 





    2部 : 성인 세례




1. 예비자로 받아들이는 예식 : 첫 인사말(74항)


                제목 : 목표를 향한 달음질




  여기 모인 모든 분들께 교회의 이름으로 기쁨과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들이 교회의 품안에 한 형제 자매로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만남 속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각자의 인생여정에서 기묘하게 뻗혀오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체험합니다. 그것은 죄악에 허덕이는 인류를 구원해 주시려고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주신 사랑의 손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이 자리에 이끌어 주신 부르심의 손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거룩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인생길을 걸어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은 나그네의 길이라고 노래합니다. “인생은 나그네의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목적 없이 방황하며 자기 삶을 운명에 맡겨버리고 사는 인생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길은 아무 희망도 목표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방랑자의 길만은 아닌 것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들은 같은 목표를 향해 떠나가는 순례자들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 삶의 목표는 하느님 그분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누리는 사랑과 친교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향한 순례의 여정에는 많은 역경과 고난도 따를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나아갈 길은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영광의 길인 동시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할”(마태 16,24) 고난의 길인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로 한 후보자 여러분의 결심을 하느님께서는 축복해 주시고 친히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러한 길에 들어서는데 협력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여러 후견인들의 도움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분들은 그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후보자들을 도와왔습니다.


이제 교회의 품안에 받아들여진 이 후보자들과 더욱 친밀한 친교를 나누게 되길 바랍니다. 이러한 친교 속에서 이 후보자들의 신앙은 더욱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서로서로 사랑에 찬 관심과 기도를 아끼지 말도록 하십시오. 우리들은 모두 하느님 안에 한 형제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후보자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바울로 사도의 말씀처럼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내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려가도록 하십시오”(필립 3,14). 그러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풍성한 신앙의 결실을 맺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2. 예비자로 받아들이는 예식 : 강론(92항) – 성인




  우리 본당의 모든 신자들과 함께 여기 오신 예비자 여러분의 입교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또한 이들을 이끌어 주신 후견인 여러분에게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의 인생이 각 사람에 따라 다르듯이, 오늘 이곳을 찾아오신 예비자 여러분의 경위도 다 다를 것입니다. 어쩌면 가까운 가족, 친지, 친척들 중에 천주교 신자가 계셔서 오시게 된 분도 계실 것이고 우연히 들러본 천주교회의 의식에 마음이 끌려서 오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또는 종교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거나 마음의 참된 평화를 얻고 인생의 뜻을 속 시원히 밝혀 줄 그 누구를 찾아다니다가 여기까지 오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아마 이 자리에 오시기까지 각자 나름대로의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러나 여러분의 선택은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앞으로 여러분 스스로가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오늘 독서의 내용에서 신앙의 선조인 아브라함이 정든 고향, 친척을 버리고 무조건 길을 떠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장면을 들었습니다. 이로써 신앙인에게 가장 첫 번째로 요구되는 자세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명임을 성서는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복음에서는 사도들이 그분을 만나고 난 후의 자기 결단에 대해 전해줌으로써 이제 구세주를 만난 우리들도 어떠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천한 사람, 귀한 사람을 차별하거나 구별치 않고 누구나 당신의 집으로 부르십니다.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도록 당신의 초대장을 보내신 것이고 여러분께서는 이 초대에 응해서 여기 오신 것입니다. 즉 여러분은 여러분을 초대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집에 오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장애가 많겠지만, 여러분은 끝까지 초대받은 이 아버지의 집에 머무르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을 초대하신 아버지께서는 교회를 통해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보여주시고 우리를 위해 품으신 당신의 계획을 들려주시며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길이며 진리며 생명이시라는 것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야말로 우리 인간들이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자비와 용서의 하느님이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체험을 할 때에 비로소 신앙인은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우리를 살리기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버리고 너를 찾아야 하는 새생활을 실천할 때 비로소 참된 나를 발견하게 되는 신앙의 기쁨을 이 기간 중에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비하는 이 기간 동안 여러분 안에 시작한 신앙을 굳게 하는 생활을 개선하도록 힘쓰시기를 부탁드리며 예전의 옳지 못한 습관과 행위를 끊어버리는데 적극적인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구세주를 만난 이들의 결단이며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순명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아무쪼록 여러분 마음 안에 살아 계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참석하신 후견인과 교우 여러분들은 이분들에게 그리스도의 은총을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깊이 느끼시고 이분들의 신앙생활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3. 예비자들을 받아들이는 말씀의 전례시의 강론 (예식서 92항)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예비 교우 여러분과 이분들을 인도해주신 후견인 여러분, 그리고 자리를 함께 한 모든 형제 자매 여러분께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사실 예비 교우 여러분들은 여기 이 자리에 참석하기까지 많은 고심을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분들은 길거나 혹은 짧은 인생의 여정에서 겪은 수많은 체험들을 통해, 창조주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어느 정도 느끼고, 이제껏의 자기 생활의 방향을 그분께로 향하게 하기 위해 의연히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여러분의 결단에 대해, 저는 교회를 대표해서 찬사를 드리며 여러분을 우리 교회에 맞아들이기로 하겠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여러분의 결정에 대해 그 용기를 높이 기리고 축하합니다. 아울러 여러분을 여기 이 자리가지 인도해주신 하느님의 너그러우신 보살피심에 다같이 감사합시다.




  오늘 독서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신앙의 아버지가 될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아브라함은 앞일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고, 하느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기꺼이 떠나갑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이어 복음에서 예수님은 처음으로 제자들을 부릅니다.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는 곧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 나섭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 형제는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고 즉시 따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들은 독서와 복음은 지금 여기서 우리의 결단을 촉구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듯이, 그리고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가 예수님을 따라 갔듯이, 우리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그분의 말씀을 따릅시다.




  시몬이나 안드레아도 우리와 같이 결점 많고 허물 많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우리와 같은 죄인이었지만, 예수님께 모든 것을 신뢰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꺼이 따랐기에, 하느님의 가장 큰 축복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느님의 축복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주님이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시기에 그분을 믿고 따르며 그분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요한 11,25-26 참조).




  이제 형제 자매 여러분은, 그분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야합니다.”(요한 3,5) 그러기 위해선 그분을 좀더 친밀하게 만나야 하기 때문에 오랜 동안의 교리 공부와 전례 생활을 배우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 여러분들이 믿는 주님은 반대받는 표적(요한 15,19)이시기에 어떤 어려움을 겪기도 하겠지만, 또한 하느님이 주시는 헤아릴 수 없는 즐거움도 함께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미 교회와 결합한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집안의 식구가 되었기에, 교회가 베푸는 하느님의 말씀의 양식으로 자라며 교회의 전례 안에서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비하는 이 기간 동안, 여러분 안에 시작한 신앙을 굳게 하고, 생활을 개선하도록 노력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사귀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부르며 기도하는 습관을 기르면서 열심히 준비하도록 합시다.




  모쪼록 좋은 일을 시작하신 여러분께 하느님의 은총이 여러분을 새롭게 해 주시길 간절하게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하신 모든 교우들은, 이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더욱 친밀하게 만나 우리의 신앙생활을 완전히 몸에 익히기까지 열과 성의를 다해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4. 예비자들을 받아들이는 예식 – 요한 1, 35-42(소명과 응답)




  먼저 근 한 달간 준비기간을 가져왔고 이 받아들이는 예식을 통하여 가톨릭 교회의 정식 예비신자가 되신 형제 자매님들께 축하를 드립니다.


조금 전에 들으신 복음 말씀의 주제는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 즉 소명은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이제 방관하는 사람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의 제자로 뽑힌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을 보입니다. 아무런 고용 계약도 없었고 무슨 임무를 맡을 것인지 여쭈어 보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완전무결한 봉사의 자세만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이데올로기를 따른 것이 아니라 사람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직접적인 인간 관계였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벗이 된 다음 제자가 되었습니다.


전직이 어부였던 그들은 머지않아 초인간적인 어려운 일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환멸을 느끼게 하는 이 세상에 새 희망을 알리라는 임무입니다.


만일 이 어부들이 나자렛 예수를 만나기 전에,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귀뜸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어부들은 예수의 강력한 인격에 사로잡혀 멋도 모르고 예수를 따라 나섰습니다.


예수의 권위에 사로잡힌 어부들은 예수가 누구신지도 알기도 전에 따라나섰고, 예수의 제자로서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예수님과 운명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벗, 즉 예수를 ‘스승’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승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제자치고는 낙제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보통 때보다 한층 더 미련하게 굴어서 스승께서 참다 못해 역정을 내신 경우도 간혹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사이의 애정 깊은 사제지간의 정은 결코 손상된 적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당신의 살을 먹고 당신의 피를 마시도록 주겠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이 말씀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중 가까운 벗들에게 ‘당신들도 떠나겠느냐’고 물었을 때, 베드로는 그들을 대표하여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하고 전폭적인 충성을 다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끝끝내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이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인줄 알면서도 주님을 추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목격하지 못한 우리는 예수님의 ‘권위’는 체험하지 못하고, 다만 그 가르치심을 물려받았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도들과는 다르지 않느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교사인 성 바울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실제로 예수님을 만나 뵙지 못했으면서도 가장 웅변적으로 주님의 복음을 설교하고 다녔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도직 수행의 덕분으로 바울로는 예수님의 가까운 벗들 중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깊은 신앙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도들처럼 주님을 직접 모시고 다니지는 못했으면서도, 다른 사도들과 진배없는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예비자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직접 뵙지도 또한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지도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기존 가톨릭 신자들보다 교리도 또 복음 말씀도 아직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알았다고 해서 또한 많이 안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무슨 특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그분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과 그 부르심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하느냐인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 안에 계시며, 특히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당신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들과 함께 계십니다. 주님의 명에 따라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 우리는 성경 말씀을 경청하고, 예물과 함께 우리 자신들도 하느님께 봉헌하며, 주님의 사랑을 우리 형제 자매들과 함께 나누어 주고 받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생활 속에서나, 직장이거나 학교거나, 또는 가정이거나, 우리가 가는 곳마다 어떠한 인간 관계에서든지 사랑의 관계를 이루어 우리 주님의 현존을 사람들이 느끼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그리스도 신자가 된다는 것은 진정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고 응답하여 그분의 제자가 되고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 건설에 일익을 맡을 수 있도록, 또한 진정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기쁨을 주는 신앙인이 되겠다고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 예비자들을 받아들이는 예식강론(훈화)


          독서 : 창세기 12,1-4/ 복음 : 요한 1,35-42/ 제목 : 믿음을 향하여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이 성당의 주임 신부인 _______신부입니다.


본당 신부로서 먼저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지금 이 자리가 매우 서먹서먹하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분 중에는 스스로 오신 분도 계실 것이고 가족이나 친구, 또는 아는 사람의 권유에 의해 오신 분도 계실 것이고, 혹은 누군가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겨 오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어떠한 이유로 오셨든지, 나는 여러분이 이곳에 오시게 된 것이 참으로 잘된 일이라는 것을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어색한 자리일지라도 이제 앞으로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가장 행복하게 느껴지고, 여러분의 삶을 가장 풍요롭게 살찌우는 곳이 바로 이곳이 될 수 있도록 계속 기도드릴 것을 약속드리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요즘 가끔 볼 수 있는 일인데, 남녀가 서로 결혼할 것을 약속하고 양쪽 집안에서도 허락이 내린 상황에서 여자가 장차 자기의 시집이 될 남자 쪽 집에 자주 방문하면서 시어머니될 분과 친분도 두텁게 하고 그집의 가풍도 익히고, 심지어 음식의 맛까지 배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비록 그 처녀는 시집을 간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 집안 식구로서의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제 여러분도 그리스도 집안의 식구가 되었습니다(교회헌장 14장 : 선교교령 14.18장). 때문에 여러분은 그리스도 집안의 가풍과 교훈을 배우고, 그 생활 양식을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모두 익히고 생활화할 수 있을 때 여러분은 진정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바로 주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제 여러분이 배우게 될 것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생명과 그 주인이신 분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훌륭한 그림이나 도자기 등을 볼 때 우리는 흔히 그것을 창작한 작가를 물어보곤 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을 창조한 분을 알려고 하지 않고, 다른 것에 마음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좋은 시를 읽었을 때 그 작가를 알고 그를 이해할 수 있을 때 읽은 시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고 기억하게 되듯이 생명의 주인을 알고 그분의 뜻을 알게 될 때, 그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생명 자체를 이해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생명’을 사랑하게 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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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세례, 예비자 입교식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2部 : 성인 세례


    1. 예비자로 받아들이는 예식 : 첫 인사말(74항)

                    제목 : 목표를 향한 달음질


      여기 모인 모든 분들께 교회의 이름으로 기쁨과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들이 교회의 품안에 한 형제 자매로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만남 속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각자의 인생여정에서 기묘하게 뻗혀오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체험합니다. 그것은 죄악에 허덕이는 인류를 구원해 주시려고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주신 사랑의 손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이 자리에 이끌어 주신 부르심의 손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거룩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인생길을 걸어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은 나그네의 길이라고 노래합니다. “인생은 나그네의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목적 없이 방황하며 자기 삶을 운명에 맡겨버리고 사는 인생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길은 아무 희망도 목표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방랑자의 길만은 아닌 것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들은 같은 목표를 향해 떠나가는 순례자들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 삶의 목표는 하느님 그분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누리는 사랑과 친교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향한 순례의 여정에는 많은 역경과 고난도 따를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나아갈 길은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영광의 길인 동시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할”(마태 16,24) 고난의 길인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로 한 후보자 여러분의 결심을 하느님께서는 축복해 주시고 친히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러한 길에 들어서는데 협력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여러 후견인들의 도움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분들은 그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후보자들을 도와왔습니다.

    이제 교회의 품안에 받아들여진 이 후보자들과 더욱 친밀한 친교를 나누게 되길 바랍니다. 이러한 친교 속에서 이 후보자들의 신앙은 더욱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서로서로 사랑에 찬 관심과 기도를 아끼지 말도록 하십시오. 우리들은 모두 하느님 안에 한 형제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후보자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바울로 사도의 말씀처럼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내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려가도록 하십시오”(필립 3,14). 그러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풍성한 신앙의 결실을 맺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2. 예비자로 받아들이는 예식 : 강론(92항) – 성인


      우리 본당의 모든 신자들과 함께 여기 오신 예비자 여러분의 입교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또한 이들을 이끌어 주신 후견인 여러분에게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의 인생이 각 사람에 따라 다르듯이, 오늘 이곳을 찾아오신 예비자 여러분의 경위도 다 다를 것입니다. 어쩌면 가까운 가족, 친지, 친척들 중에 천주교 신자가 계셔서 오시게 된 분도 계실 것이고 우연히 들러본 천주교회의 의식에 마음이 끌려서 오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또는 종교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거나 마음의 참된 평화를 얻고 인생의 뜻을 속 시원히 밝혀 줄 그 누구를 찾아다니다가 여기까지 오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아마 이 자리에 오시기까지 각자 나름대로의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러나 여러분의 선택은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앞으로 여러분 스스로가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오늘 독서의 내용에서 신앙의 선조인 아브라함이 정든 고향, 친척을 버리고 무조건 길을 떠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장면을 들었습니다. 이로써 신앙인에게 가장 첫 번째로 요구되는 자세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명임을 성서는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복음에서는 사도들이 그분을 만나고 난 후의 자기 결단에 대해 전해줌으로써 이제 구세주를 만난 우리들도 어떠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천한 사람, 귀한 사람을 차별하거나 구별치 않고 누구나 당신의 집으로 부르십니다.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도록 당신의 초대장을 보내신 것이고 여러분께서는 이 초대에 응해서 여기 오신 것입니다. 즉 여러분은 여러분을 초대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집에 오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장애가 많겠지만, 여러분은 끝까지 초대받은 이 아버지의 집에 머무르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을 초대하신 아버지께서는 교회를 통해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보여주시고 우리를 위해 품으신 당신의 계획을 들려주시며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길이며 진리며 생명이시라는 것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야말로 우리 인간들이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자비와 용서의 하느님이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체험을 할 때에 비로소 신앙인은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우리를 살리기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버리고 너를 찾아야 하는 새생활을 실천할 때 비로소 참된 나를 발견하게 되는 신앙의 기쁨을 이 기간 중에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비하는 이 기간 동안 여러분 안에 시작한 신앙을 굳게 하는 생활을 개선하도록 힘쓰시기를 부탁드리며 예전의 옳지 못한 습관과 행위를 끊어버리는데 적극적인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구세주를 만난 이들의 결단이며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순명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아무쪼록 여러분 마음 안에 살아 계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참석하신 후견인과 교우 여러분들은 이분들에게 그리스도의 은총을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깊이 느끼시고 이분들의 신앙생활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3. 예비자들을 받아들이는 말씀의 전례시의 강론 (예식서 92항)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예비 교우 여러분과 이분들을 인도해주신 후견인 여러분, 그리고 자리를 함께 한 모든 형제 자매 여러분께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사실 예비 교우 여러분들은 여기 이 자리에 참석하기까지 많은 고심을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분들은 길거나 혹은 짧은 인생의 여정에서 겪은 수많은 체험들을 통해, 창조주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어느 정도 느끼고, 이제껏의 자기 생활의 방향을 그분께로 향하게 하기 위해 의연히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여러분의 결단에 대해, 저는 교회를 대표해서 찬사를 드리며 여러분을 우리 교회에 맞아들이기로 하겠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여러분의 결정에 대해 그 용기를 높이 기리고 축하합니다. 아울러 여러분을 여기 이 자리가지 인도해주신 하느님의 너그러우신 보살피심에 다같이 감사합시다.


      오늘 독서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신앙의 아버지가 될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아브라함은 앞일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고, 하느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기꺼이 떠나갑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이어 복음에서 예수님은 처음으로 제자들을 부릅니다.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는 곧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 나섭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 형제는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고 즉시 따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들은 독서와 복음은 지금 여기서 우리의 결단을 촉구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듯이, 그리고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가 예수님을 따라 갔듯이, 우리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그분의 말씀을 따릅시다.


      시몬이나 안드레아도 우리와 같이 결점 많고 허물 많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우리와 같은 죄인이었지만, 예수님께 모든 것을 신뢰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꺼이 따랐기에, 하느님의 가장 큰 축복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느님의 축복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주님이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시기에 그분을 믿고 따르며 그분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요한 11,25-26 참조).


      이제 형제 자매 여러분은, 그분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야합니다.”(요한 3,5) 그러기 위해선 그분을 좀더 친밀하게 만나야 하기 때문에 오랜 동안의 교리 공부와 전례 생활을 배우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 여러분들이 믿는 주님은 반대받는 표적(요한 15,19)이시기에 어떤 어려움을 겪기도 하겠지만, 또한 하느님이 주시는 헤아릴 수 없는 즐거움도 함께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미 교회와 결합한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집안의 식구가 되었기에, 교회가 베푸는 하느님의 말씀의 양식으로 자라며 교회의 전례 안에서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비하는 이 기간 동안, 여러분 안에 시작한 신앙을 굳게 하고, 생활을 개선하도록 노력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사귀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부르며 기도하는 습관을 기르면서 열심히 준비하도록 합시다.


      모쪼록 좋은 일을 시작하신 여러분께 하느님의 은총이 여러분을 새롭게 해 주시길 간절하게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하신 모든 교우들은, 이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더욱 친밀하게 만나 우리의 신앙생활을 완전히 몸에 익히기까지 열과 성의를 다해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4. 예비자들을 받아들이는 예식 – 요한 1, 35-42(소명과 응답)


      먼저 근 한 달간 준비기간을 가져왔고 이 받아들이는 예식을 통하여 가톨릭 교회의 정식 예비신자가 되신 형제 자매님들께 축하를 드립니다.

    조금 전에 들으신 복음 말씀의 주제는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 즉 소명은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이제 방관하는 사람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의 제자로 뽑힌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을 보입니다. 아무런 고용 계약도 없었고 무슨 임무를 맡을 것인지 여쭈어 보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완전무결한 봉사의 자세만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이데올로기를 따른 것이 아니라 사람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직접적인 인간 관계였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벗이 된 다음 제자가 되었습니다.

    전직이 어부였던 그들은 머지않아 초인간적인 어려운 일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환멸을 느끼게 하는 이 세상에 새 희망을 알리라는 임무입니다.

    만일 이 어부들이 나자렛 예수를 만나기 전에,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귀뜸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어부들은 예수의 강력한 인격에 사로잡혀 멋도 모르고 예수를 따라 나섰습니다.

    예수의 권위에 사로잡힌 어부들은 예수가 누구신지도 알기도 전에 따라나섰고, 예수의 제자로서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예수님과 운명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벗, 즉 예수를 ‘스승’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승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제자치고는 낙제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보통 때보다 한층 더 미련하게 굴어서 스승께서 참다 못해 역정을 내신 경우도 간혹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사이의 애정 깊은 사제지간의 정은 결코 손상된 적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당신의 살을 먹고 당신의 피를 마시도록 주겠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이 말씀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중 가까운 벗들에게 ‘당신들도 떠나겠느냐’고 물었을 때, 베드로는 그들을 대표하여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하고 전폭적인 충성을 다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끝끝내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이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인줄 알면서도 주님을 추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목격하지 못한 우리는 예수님의 ‘권위’는 체험하지 못하고, 다만 그 가르치심을 물려받았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도들과는 다르지 않느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교사인 성 바울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실제로 예수님을 만나 뵙지 못했으면서도 가장 웅변적으로 주님의 복음을 설교하고 다녔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도직 수행의 덕분으로 바울로는 예수님의 가까운 벗들 중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깊은 신앙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도들처럼 주님을 직접 모시고 다니지는 못했으면서도, 다른 사도들과 진배없는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예비자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직접 뵙지도 또한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지도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기존 가톨릭 신자들보다 교리도 또 복음 말씀도 아직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알았다고 해서 또한 많이 안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무슨 특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그분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과 그 부르심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하느냐인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 안에 계시며, 특히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당신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들과 함께 계십니다. 주님의 명에 따라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 우리는 성경 말씀을 경청하고, 예물과 함께 우리 자신들도 하느님께 봉헌하며, 주님의 사랑을 우리 형제 자매들과 함께 나누어 주고 받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생활 속에서나, 직장이거나 학교거나, 또는 가정이거나, 우리가 가는 곳마다 어떠한 인간 관계에서든지 사랑의 관계를 이루어 우리 주님의 현존을 사람들이 느끼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그리스도 신자가 된다는 것은 진정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고 응답하여 그분의 제자가 되고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 건설에 일익을 맡을 수 있도록, 또한 진정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기쁨을 주는 신앙인이 되겠다고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 예비자들을 받아들이는 예식강론(훈화)

              독서 : 창세기 12,1-4/ 복음 : 요한 1,35-42/ 제목 : 믿음을 향하여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이 성당의 주임 신부인 _______신부입니다.

    본당 신부로서 먼저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지금 이 자리가 매우 서먹서먹하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분 중에는 스스로 오신 분도 계실 것이고 가족이나 친구, 또는 아는 사람의 권유에 의해 오신 분도 계실 것이고, 혹은 누군가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겨 오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어떠한 이유로 오셨든지, 나는 여러분이 이곳에 오시게 된 것이 참으로 잘된 일이라는 것을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어색한 자리일지라도 이제 앞으로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가장 행복하게 느껴지고, 여러분의 삶을 가장 풍요롭게 살찌우는 곳이 바로 이곳이 될 수 있도록 계속 기도드릴 것을 약속드리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요즘 가끔 볼 수 있는 일인데, 남녀가 서로 결혼할 것을 약속하고 양쪽 집안에서도 허락이 내린 상황에서 여자가 장차 자기의 시집이 될 남자 쪽 집에 자주 방문하면서 시어머니될 분과 친분도 두텁게 하고 그집의 가풍도 익히고, 심지어 음식의 맛까지 배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비록 그 처녀는 시집을 간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 집안 식구로서의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제 여러분도 그리스도 집안의 식구가 되었습니다(교회헌장 14장 : 선교교령 14.18장). 때문에 여러분은 그리스도 집안의 가풍과 교훈을 배우고, 그 생활 양식을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모두 익히고 생활화할 수 있을 때 여러분은 진정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바로 주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제 여러분이 배우게 될 것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생명과 그 주인이신 분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훌륭한 그림이나 도자기 등을 볼 때 우리는 흔히 그것을 창작한 작가를 물어보곤 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을 창조한 분을 알려고 하지 않고, 다른 것에 마음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좋은 시를 읽었을 때 그 작가를 알고 그를 이해할 수 있을 때 읽은 시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고 기억하게 되듯이 생명의 주인을 알고 그분의 뜻을 알게 될 때, 그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생명 자체를 이해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생명’을 사랑하게 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게 되고 나아가 건설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진리를 배우는데 전심전력하는 것이 이제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한편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 집안의 식구가 되었기 때문에 교회로부터의 축복과 준성사를 받을 권리를 지니게 되었습니다(축복과 준성사에 대해서는 교리 시간에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앙인이 되고자 이 자리를 찾아오신 여러분은 이미 구원의 은총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겠지만 꾸준하게 나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언젠가는 여러분의 진리를 찾는 열망이 기도로 바뀌게 되고, 나아가 주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믿음을 지닐 수 있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 사도 안드레아께서 그의 형 사도 베드로께 말한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다’라고 말한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을 환영하며 여러분 모두 각자 좋은 결실 맺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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