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권 제 3장 오니아스와 톨레미 필로메토르 간의 우정과 오니아스가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성전을 애굽에 건축한 것에 대하여

 


제 3 장



오니아스와 톨레미 필로메토르 간의 우정과 오니아스가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성전을 애굽에 건축한 것에 대하여



1. 대제사장 오니아스(Onias)가 애굽에 성전을 짓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다



  [㈜ 오니아스 Ⅳ세(Onias Ⅳ)의 이야기와 전쟁. 7권. (423-432)에 있는 병행 본문에 대해서는 참). 부록을 보라. ] 자기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가진 대제사장의 아들 오니아스(Onias)는 우리가 이전에 언급했던 바와 같이,[㈜ 고대. 12권. (386) 이하에. ] 필로메토르(Philometor)라 이름붙은 톨레미왕(King Ptolemy)에게로 도마아쳤었던 그 이후로 줄곧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 살고 있었다. 유대가 마게도냐인들과 그 왕들에 의해 황폐해져 가던 것을 본 오니아스는 스스로 영원한 명성과 영광을 얻기를 갈망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톨레미왕과 클레오파트라 여왕(QueenCleopatra)에게 사람을 보내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과 비슷한성전을 애굽에 건축할 수 있는 권한과, 자기 자신의 혈족인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을 임명하는 권한을 그들에게 요청하기로 결심하였다. 그가 이같은 욕망을 가지게 된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크게 고무되었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그 보다 600여년 전에 살았었던 선지자로서 가장 높으신 하느님(the Most High God)의 성전이 유대인에 의해 애굽에 세워질 것을 확실히 예언한 바가있었다. [㈜ 참). 사 19 : 19, \’그 날에 애굽땅 중앙에는 야훼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야훼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많은 주석가들은 하스모네안(Hasmonaean)기간의 저작가에 의해 삽입된 이 장의 18~25절을 의시하고 있다 ; 18절에서 어떤 학자들은 \’ir ha-heres \’파괴된 도시\’를 \’ir ha-heres \’태양의 도시\’로 수정하였는데 이는 헬리오폴리스 \’태양의 도시\’로 수정하였는데 이는 헬리오폴리스 \’태양의 도시\’를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 그러므로 이같은 말씀들을 인용하면서 오니아스는 톨레미와 클레오파트라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전쟁 중[㈜추측컨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와 톨레미 필로메토르(Ptolemy Philometor)사이에는 전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필로메토르와 그의 적대자 톨레미Ⅶ세 유에르게테스(Ptolemy Ⅶ. Euergetes)사이의 전쟁이었다. 이때의 오니아스(Onias)는 아피. 2권. 5(49)에 언급된 유대의 장군 오니아스와 동일한 인물이다. 뷔흘러(Buchler)는 <\’Tobiaden\’, pp. 246이하>오니아스와 동시대인 사마리아인 도시데우스(Dositheus)가 애굽에 뒤지지 않는 성전을 세우려고 노력하였다고 추론하였다. ] 78)[㈜ 대개의 학자들은 나빌(Naville)과 플린더스페트리(Flinders Petrie)를 따라 멤피스(Memphis)의 북동쪽 30마일에 있는 현재의 텔 엘 예후디예(Tell-el-Yeh\’diy도)에 위치하고 있다고 본다. 전쟁. 7권. (426)에서 요세푸스는 이곳이 멤피스에서 180스다디온(약20마일)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였다. 지형학에 관한 문헌은 쉬러(Schurer) iii. 97 주 25와 페트리(Petrie), \’Hyksos and Israelite Cities\’, 1906을 보라. 성전은 추측컨대 고대. 14권. (133)에 언급된 !Ioudaivwn st ratovpedon \’유대인의 진영\’근처에 있었던 것 같다. ] 제가 코엘레 수리아(Coele Syria)와 베니게(Phoenicia)에 있었을때, 그리고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의 노메에 있는 레온토폴리스(Leontopolis)와 우리 민족이 거주하는 다른 여러 지역에 유대인들과 함께 갔을 때 두 분께 이바지했던 공헌들은 많고도 큽니다. 그런데 그 지역들 중 대부분에는 성전이 서 있지만 적당하지는 못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이같은 이유로해서 사람들이 서로 서로에 대해 적의를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애굽인들의 신전들과 예배의 형식에 대한 그들의 여러가지 주장들 때문에 이 문제는 애굽인들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후에 전장의 부바스티스(Bubast-is- of – the – Fields)라고 불리워진 요새 안에 성전 건축에 가장 적합한 장소를 알아냈습니다. 그곳은 각양 나무들로 가득차있으며 신성한 동물들이 풍부하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왕께 어느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아 황폐해 있는 이 전(temple)을 정결하게 하는 것과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과 같은 규모로 비슷하게[㈜ 전쟁. 7권(427)에서 요세푸스는 단순히 오니아스 성전의 제단이 예루살렘의 것과 닮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 가장 높으신 하느님의 전을 세울 수 있도록[㈜ 체리코버(Tscherikower), pp. 286이하에는 성전 건축이 오니아스에 의해 유대인들이 군사적 식민지에 정착하면서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는 흥미있는 제안을 하고 있다. ] 허락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이것은 폐하와 왕후 그리고 폐하의 자녀들을 위하는 일이며, 또 애굽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상호 조화로 그곳에 함께 모여 폐하의 이익을 위하여 일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가 \’그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야훼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라고 예언했었던 것입니다. 다른 많은 곳에서도 그는 이 장소에 관하여 그 같은 것들을 예언하였습니다. \’



2. 톨레미 필로메토르(Ptolemy Philometor)가 오니아스에게 레온토폴리스에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다



 위의 글은 오니아스가 톨레미왕에게 썼던 서선의 내용이다. 그런데 답장으로 쓴 편지를 보게 되면 우리는 왕의 신앙심과 그의 누이 그리고 부인 클레오파트라의 신앙심을 잘 알 수 있다.왜냐하면 그들은 오니아스의 머리 위에 있는 율법에 대항하는 죄와 범법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렇게 볼 때 유일한 죄가 성전을 위해 이방인 장소를 선택하는 것에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예루살렘 밖에 있는 성스러운 장소에 관한 타당성의 문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신명기법에 의해서는 확실히 금지되어 있다고 믿는데 이곳에서는 제기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랍비들은 오니아스 성전이 어느정도 성스러운 것을 따랐다고 보고 있다. 참). 미쉬나(Mishnah),\’Menahoth\’, xiii. 10과 부록에서 인용됨. ] 그는답장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왕 톨레미와 여왕 클레오파트라가오니아스에게 인사하노라. 유리는 전장의 부바스티스(Bub-astis – of- the – Fields)라 불리는 헬리오폴리스의 노메라는 지역의 레온토폴리스 안에 있는 황폐해진 전을 정결케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는 그대의 청원서를 잘 읽었노라.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황량하고도[㈜ 문자적으로 \’음탕한\’;ajsevlgeia \’음란한\’은 \’솔로몬 지혜서\’, 14 : 26에는 우상숭배와 연결시키고 있다. ] 신성한[㈜ 다른 본문에는 \’불걸한\’: 만약 \’거룩한\’이 옳은 읽기라면 그 의미는 \’애굽인들에게 성스러운\’일 것이다. ] 짐승들로 가득찬 곳에전을 건축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인지의시하노라 그러나 그대가 선지자 이사야가 오래 전에 이것을 예언했다고 말하므로 이것이 율법에 견주어 우리가 어느 면에서도 하느님께 대하여 범죄치 않게 되는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그대의 청원을 허락하노라. \’



 3. 오니아스의 전(The temple of Onias)



 이리하여 오니아스는 그 장소를 인계받아, 그곳에 비록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보다는 규모가 작고 여러모로 빈약하지만 그것과 비슷하게 전(temple)과 제단(altar)을 세웠다. 여기서 그 규모나 그 안에 내장된 용기들(vessels)에 대하여 기술하는 것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에 대해서는 이미 나의 책 \’유대전쟁사\’제 7권에서 기술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오니아스는 자기 자신에 우호적인 몇 명의 유대인들과 그곳에서 섬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찾아 그들로 하여금 성전을 유지, 관리케 하였다. 성전에 이처럼 관심과 애착을 갖는 이유는우리가 이미 앞에서 충분히 살펴보았다.



4. 톨레미 필로메토르가 사마리아인들(the Samaritans)과 논쟁하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Alexandrian J



 이렇게 되자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유대인들과 그리심산(Mo-unt Gerizim)에 있는 전에서 예배 드리던 사마리아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심산의 성전은 알렉산더(Ale-xander) 시대에 세워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톨레미 시대에자신들이 섬기는 전에 대하여 논쟁이 붙은 것이다. 유대인들은모세의 율법(the laws of Moses)에 따라 세워졌던 예루살렘에있는 성전에서 예배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반면에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 있는 성전에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고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왕에게 그의 친구들과 함께 종교 회의에참석하여 이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논쟁을 들어 줄 것과 논쟁에서 지는 사람들을 사형으로 처벌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래서사바이우스(Sabbaeus)와 데오도시우스(Theodosius)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대표해서 연설을 하였고, 반면에 메살라무스(Mes-salamus)의 아들 안드로니쿠스(Andronicus)는예루살렘과 유대의 거주자들을 대표해서 연설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제시하는 증거들은 율법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느님과 왕을두고 맹세하면서, 율법에 맞지 않는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처형해도 좋다고 톨레미왕에게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왕은 그 종교 회의에 많은 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나가 연설을 듣기위해 자리에 앉았다. 그때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대하여[㈜ 다른 본문에는 \’~관하여. \’]분노를 표시하던 사람들에 대하여 크게 화가 나있었다. 그 까닭은 그들이, 지어진지가 오래될뿐만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전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예루살렘 성전을 훼파하려는 무리들에 대해 적개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바이우스와 데오도시우스가 안드로니쿠스에게 먼저 연설권을 주자 그는 율법과 대제사장들의 계보로부터 여러증거들을 제시하며 그의 연설을 시작하였다. 그는 어떻게 각각의 대제사장들의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그같은 대제사장 직책을받음으로써 그 전의 우두머리가 되었던가를 증거로 보여 주었다. 또한 그 전은 아시아의 모든 왕들이 헌납한 봉헌물들과 가장 찬란한 선물들로 영광스럽게 되었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반면에어느 누구도 그런 성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심산에 있는 성전에 대해서는 어떤 경의나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었다. 이러한 정화들과 또 이와 유사한 논리를 근거로 안드로니쿠스는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모세의 율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세워졌음을 인정하게 했으며 반대파의 연설자인 사바이우스와데오도시우스 그리고 그 무리들을 처형케 하였다. 이와같은 것들이 톨레미 필로메토르의 영토 안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유대인들에게 있었던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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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권 제 3장 오니아스와 톨레미 필로메토르 간의 우정과 오니아스가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성전을 애굽에 건축한 것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3 장


    오니아스와 톨레미 필로메토르 간의 우정과 오니아스가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성전을 애굽에 건축한 것에 대하여


    1. 대제사장 오니아스(Onias)가 애굽에 성전을 짓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다


      [㈜ 오니아스 Ⅳ세(Onias Ⅳ)의 이야기와 전쟁. 7권. (423-432)에 있는 병행 본문에 대해서는 참). 부록을 보라. ] 자기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가진 대제사장의 아들 오니아스(Onias)는 우리가 이전에 언급했던 바와 같이,[㈜ 고대. 12권. (386) 이하에. ] 필로메토르(Philometor)라 이름붙은 톨레미왕(King Ptolemy)에게로 도마아쳤었던 그 이후로 줄곧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 살고 있었다. 유대가 마게도냐인들과 그 왕들에 의해 황폐해져 가던 것을 본 오니아스는 스스로 영원한 명성과 영광을 얻기를 갈망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톨레미왕과 클레오파트라 여왕(QueenCleopatra)에게 사람을 보내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과 비슷한성전을 애굽에 건축할 수 있는 권한과, 자기 자신의 혈족인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을 임명하는 권한을 그들에게 요청하기로 결심하였다. 그가 이같은 욕망을 가지게 된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크게 고무되었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그 보다 600여년 전에 살았었던 선지자로서 가장 높으신 하느님(the Most High God)의 성전이 유대인에 의해 애굽에 세워질 것을 확실히 예언한 바가있었다. [㈜ 참). 사 19 : 19, ‘그 날에 애굽땅 중앙에는 야훼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야훼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많은 주석가들은 하스모네안(Hasmonaean)기간의 저작가에 의해 삽입된 이 장의 18~25절을 의시하고 있다 ; 18절에서 어떤 학자들은 ‘ir ha-heres ‘파괴된 도시’를 ‘ir ha-heres ‘태양의 도시’로 수정하였는데 이는 헬리오폴리스 ‘태양의 도시’로 수정하였는데 이는 헬리오폴리스 ‘태양의 도시’를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 그러므로 이같은 말씀들을 인용하면서 오니아스는 톨레미와 클레오파트라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전쟁 중[㈜추측컨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와 톨레미 필로메토르(Ptolemy Philometor)사이에는 전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필로메토르와 그의 적대자 톨레미Ⅶ세 유에르게테스(Ptolemy Ⅶ. Euergetes)사이의 전쟁이었다. 이때의 오니아스(Onias)는 아피. 2권. 5(49)에 언급된 유대의 장군 오니아스와 동일한 인물이다. 뷔흘러(Buchler)는 <'Tobiaden', pp. 246이하>오니아스와 동시대인 사마리아인 도시데우스(Dositheus)가 애굽에 뒤지지 않는 성전을 세우려고 노력하였다고 추론하였다. ] 78)[㈜ 대개의 학자들은 나빌(Naville)과 플린더스페트리(Flinders Petrie)를 따라 멤피스(Memphis)의 북동쪽 30마일에 있는 현재의 텔 엘 예후디예(Tell-el-Yeh’diy도)에 위치하고 있다고 본다. 전쟁. 7권. (426)에서 요세푸스는 이곳이 멤피스에서 180스다디온(약20마일)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였다. 지형학에 관한 문헌은 쉬러(Schurer) iii. 97 주 25와 페트리(Petrie), ‘Hyksos and Israelite Cities’, 1906을 보라. 성전은 추측컨대 고대. 14권. (133)에 언급된 !Ioudaivwn st ratovpedon ‘유대인의 진영’근처에 있었던 것 같다. ] 제가 코엘레 수리아(Coele Syria)와 베니게(Phoenicia)에 있었을때, 그리고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의 노메에 있는 레온토폴리스(Leontopolis)와 우리 민족이 거주하는 다른 여러 지역에 유대인들과 함께 갔을 때 두 분께 이바지했던 공헌들은 많고도 큽니다. 그런데 그 지역들 중 대부분에는 성전이 서 있지만 적당하지는 못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이같은 이유로해서 사람들이 서로 서로에 대해 적의를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애굽인들의 신전들과 예배의 형식에 대한 그들의 여러가지 주장들 때문에 이 문제는 애굽인들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후에 전장의 부바스티스(Bubast-is- of – the – Fields)라고 불리워진 요새 안에 성전 건축에 가장 적합한 장소를 알아냈습니다. 그곳은 각양 나무들로 가득차있으며 신성한 동물들이 풍부하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왕께 어느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아 황폐해 있는 이 전(temple)을 정결하게 하는 것과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과 같은 규모로 비슷하게[㈜ 전쟁. 7권(427)에서 요세푸스는 단순히 오니아스 성전의 제단이 예루살렘의 것과 닮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 가장 높으신 하느님의 전을 세울 수 있도록[㈜ 체리코버(Tscherikower), pp. 286이하에는 성전 건축이 오니아스에 의해 유대인들이 군사적 식민지에 정착하면서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는 흥미있는 제안을 하고 있다. ] 허락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이것은 폐하와 왕후 그리고 폐하의 자녀들을 위하는 일이며, 또 애굽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상호 조화로 그곳에 함께 모여 폐하의 이익을 위하여 일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가 ‘그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야훼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라고 예언했었던 것입니다. 다른 많은 곳에서도 그는 이 장소에 관하여 그 같은 것들을 예언하였습니다. ‘


    2. 톨레미 필로메토르(Ptolemy Philometor)가 오니아스에게 레온토폴리스에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다


     위의 글은 오니아스가 톨레미왕에게 썼던 서선의 내용이다. 그런데 답장으로 쓴 편지를 보게 되면 우리는 왕의 신앙심과 그의 누이 그리고 부인 클레오파트라의 신앙심을 잘 알 수 있다.왜냐하면 그들은 오니아스의 머리 위에 있는 율법에 대항하는 죄와 범법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렇게 볼 때 유일한 죄가 성전을 위해 이방인 장소를 선택하는 것에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예루살렘 밖에 있는 성스러운 장소에 관한 타당성의 문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신명기법에 의해서는 확실히 금지되어 있다고 믿는데 이곳에서는 제기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랍비들은 오니아스 성전이 어느정도 성스러운 것을 따랐다고 보고 있다. 참). 미쉬나(Mishnah),’Menahoth’, xiii. 10과 부록에서 인용됨. ] 그는답장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왕 톨레미와 여왕 클레오파트라가오니아스에게 인사하노라. 유리는 전장의 부바스티스(Bub-astis – of- the – Fields)라 불리는 헬리오폴리스의 노메라는 지역의 레온토폴리스 안에 있는 황폐해진 전을 정결케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는 그대의 청원서를 잘 읽었노라.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황량하고도[㈜ 문자적으로 ‘음탕한’;ajsevlgeia ‘음란한’은 ‘솔로몬 지혜서’, 14 : 26에는 우상숭배와 연결시키고 있다. ] 신성한[㈜ 다른 본문에는 ‘불걸한’: 만약 ‘거룩한’이 옳은 읽기라면 그 의미는 ‘애굽인들에게 성스러운’일 것이다. ] 짐승들로 가득찬 곳에전을 건축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인지의시하노라 그러나 그대가 선지자 이사야가 오래 전에 이것을 예언했다고 말하므로 이것이 율법에 견주어 우리가 어느 면에서도 하느님께 대하여 범죄치 않게 되는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그대의 청원을 허락하노라. ‘


     3. 오니아스의 전(The temple of Onias)


     이리하여 오니아스는 그 장소를 인계받아, 그곳에 비록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보다는 규모가 작고 여러모로 빈약하지만 그것과 비슷하게 전(temple)과 제단(altar)을 세웠다. 여기서 그 규모나 그 안에 내장된 용기들(vessels)에 대하여 기술하는 것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에 대해서는 이미 나의 책 ‘유대전쟁사’제 7권에서 기술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오니아스는 자기 자신에 우호적인 몇 명의 유대인들과 그곳에서 섬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찾아 그들로 하여금 성전을 유지, 관리케 하였다. 성전에 이처럼 관심과 애착을 갖는 이유는우리가 이미 앞에서 충분히 살펴보았다.


    4. 톨레미 필로메토르가 사마리아인들(the Samaritans)과 논쟁하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Alexandrian J


     이렇게 되자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유대인들과 그리심산(Mo-unt Gerizim)에 있는 전에서 예배 드리던 사마리아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심산의 성전은 알렉산더(Ale-xander) 시대에 세워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톨레미 시대에자신들이 섬기는 전에 대하여 논쟁이 붙은 것이다. 유대인들은모세의 율법(the laws of Moses)에 따라 세워졌던 예루살렘에있는 성전에서 예배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반면에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 있는 성전에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고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왕에게 그의 친구들과 함께 종교 회의에참석하여 이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논쟁을 들어 줄 것과 논쟁에서 지는 사람들을 사형으로 처벌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래서사바이우스(Sabbaeus)와 데오도시우스(Theodosius)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대표해서 연설을 하였고, 반면에 메살라무스(Mes-salamus)의 아들 안드로니쿠스(Andronicus)는예루살렘과 유대의 거주자들을 대표해서 연설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제시하는 증거들은 율법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느님과 왕을두고 맹세하면서, 율법에 맞지 않는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처형해도 좋다고 톨레미왕에게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왕은 그 종교 회의에 많은 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나가 연설을 듣기위해 자리에 앉았다. 그때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대하여[㈜ 다른 본문에는 ‘~관하여. ‘]분노를 표시하던 사람들에 대하여 크게 화가 나있었다. 그 까닭은 그들이, 지어진지가 오래될뿐만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전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예루살렘 성전을 훼파하려는 무리들에 대해 적개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바이우스와 데오도시우스가 안드로니쿠스에게 먼저 연설권을 주자 그는 율법과 대제사장들의 계보로부터 여러증거들을 제시하며 그의 연설을 시작하였다. 그는 어떻게 각각의 대제사장들의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그같은 대제사장 직책을받음으로써 그 전의 우두머리가 되었던가를 증거로 보여 주었다. 또한 그 전은 아시아의 모든 왕들이 헌납한 봉헌물들과 가장 찬란한 선물들로 영광스럽게 되었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반면에어느 누구도 그런 성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심산에 있는 성전에 대해서는 어떤 경의나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었다. 이러한 정화들과 또 이와 유사한 논리를 근거로 안드로니쿠스는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모세의 율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세워졌음을 인정하게 했으며 반대파의 연설자인 사바이우스와데오도시우스 그리고 그 무리들을 처형케 하였다. 이와같은 것들이 톨레미 필로메토르의 영토 안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유대인들에게 있었던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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