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권 제 4장 알렉산더가 요나단을 특별하게 존경한 것과 데메트리우스의 아들 데메트리우스가 알렉산더를 물리치고 요나단과 동맹을 맺게 된 것에 대하여

 


제 4 장



알렉산더가 요나단을 특별하게 존경한 것과 데메트리우스의 아들 데메트리우스가 알렉산더를 물리치고 요나단과 동맹을 맺게 된 것에 대하여



 1. 알렉산더 발라스가 톨레미 필로메토르의 딸과 결혼하다[마카비 1서 10: 51]



  [㈜ 여기서 요세푸스는 마카비 1서의 그의 병행구를 요약하고 있다. ]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 13권. (61)에. ] 데메트리우스가 전투 중에죽은 이후, 이제 알렉산더가[㈜ 별명은 발라스(Balas), 참). 고대. 13권. (119). ] 수리아에서 왕권을 잡았다. 그런후 알렉산더는 톨레미 필로메토르에게 그의 딸과 자신과의 결혼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 그는 또, 자신이 하느님의 서리에 의해 톨레미왕의 부친의 보좌를 복원시켜 주었으며 데메트리우스도 정벌해 주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혼을 통하여 톨레미왕과 자신이 결연을 맺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말하였다. 그뿐 아니라 자신과 그 같은 결연을 맺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도 가치없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톨레미는 그의 제의를 기쁘게받아들이면서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즉 자신은 알렉산더가 자기 부친의 보좌를 되찾은 것을 기뻐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딸을 주겠노라고 약속하면서 자신이 딸을 데리고 톨레마이스(Ptolemais)로 갈테니 거기서 만나자고 말했다. 왜냐하면 자기자신이 애굽에서부티 그곳까지 딸을 호위할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곳에서 자기 자식을 그에게 보내겠노라고 하였다. 이같은 편지를 써 보낸 후에, 톨레미는 자기 딸 클레오파트라(Cleopatra)를 데리고 서둘러 톨레마이스(Ptolemais)로 갔다. [㈜ 마카비 1서 10 : 57에 의하면, 이것은 셀류키드 왕국 제162년째=주전 151-150년. ] 자신이 만나자고 지정해 놓은그곳에서, 알렉산더가 자신을 만나기 위하여 기다리는 것을 본톨레미는 그에게 자신의 딸과 딸의 결혼지참금으로 왕이 주기로예정되어 있는 만큼의 금과 은을 주었다. [㈜ 마카비 1서는 결혼을 대단히 호화스럽게 치러졌다고 단순하게 말하고 있다.]



  2. 요나단이 알렉산더 발라스와 톨레미 필로메토르에 의해 영광스럽게 되다[마카비 1서 10 : 59]



 결혼 예식이 거행되고 있던 동안, 알렉산더는 대제사장 요나단에게 편지를 띄워 그에게 톨레마이스에 오도록 하였다. 그래서 요나단은 그들에게 줄 화려한 선물들을 준비해 가지고 왕들에게 나아갔다. [㈜ 참). 앞의 주. ] 그리고는 그들 모두로부터 많은 영예로 보답을 받았다. [㈜ 마카비 1서 10 : 60, \’그는 그들에게 총애를 받았다\’. ] 먼저 알렉산더는 그에게 그의 의복을 벗고 자주색의복을 입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그에게 상단에 않도록 하고는신하들에게 명하기를 그와 함께 도시의 중심으로 나아가서 어느누구라도 그에 대항하여 말하거나 그와 어떤 분쟁을 일으킨다면용서하지 않겠노라는 선포를 하게 했다. 신하들이 이렇게 행했을 때 요나단을 비난하려고 준비했던 사람들과 그에게 적의를품고 있던 사람들은 왕의 선포에 의해 요나단이 얻은 영광을 보고는 자신들이 어떤 큰 해를 당하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도망을 쳤다. 이와같이 알렉산더왕이 요나단에게 보여준 우호적인 관심은 대단하였다. 심지어 왕은 그에게 자신의 가장 절친한친구라고까지 하였던 것이다. [㈜ 마카비 1서 10 : 65, \’가장 친한 친구중이 하나로 삼아 그 지방의 군사 및 행정 책임자로 세웠다. \’- 즉 비록 수리아 수비대가 예루살렘의 성에 남아 있었지만 유대의 군대와 시민의 총독이었다. 참). 고대. 13권. (121). ]



 3. 데메트리우스 Ⅱ)가 알렉산더발라스에 대항하다[마카비 1서 10 : 67]



 그러나 165년에[㈜ 셀류키드 왕국 165년째는 주전 148년 10월에서 147년 10월까지 계속되거나 유대인들의 계산으로는 주전 147년 4얼에서 146년 4월까지로 계속되기도 한다. ] 데메투리우스의 아들인 데메트리우스 Ⅱ세는 많은 외국인 용병들과 자관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 주었던 그레데 사람인 라스데네스(Lasthenes the Cretan)와 함께 그레데(Crete) 섬에서 배를 타고 길리기아(Cili:in)까지 항해하였다. [㈜ 베반(Bevan),\’H. Sel. \’ii. 301은 \”길리기아(Cilicia)\”를 \”셀류키아(Seleucia)\”로 수정 제안한다(안디옥에서 거리가 밀지 않은 피에리아(Pieria)에 있는). 마카비 1서 10 : 67은 \”그의 선조들의 땅으로\”로 되어 있다. 아마도 수리아톨 의미한 것 같다. 유스티누스 Huv. 2~t에 의하면 데메트리우스 ll세는 크니두스(Cnidus, 카리아(Caria)에 있는)에 살고 있었다. 데메트리우스는 요세푸스가 고대. 13권. (145)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나중에 길리기아에 돌아갔다. ] 알렉산더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불안과 혼란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래서 그는 즉시 데메트리우스가 도달하기전에 안디옥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하여 베니게(Phoenicia)에서 안디옥으로 서둘러 갔다. 그는 또한 아폴로니우스 타오스(Ap0ll0nius)[㈜ 바카비 1서에서는 아플로니우스(Apollonius)가 데메트리우스에게 임명을 받았지 알렉산더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 요나단이 아폴로니우스와 싸운 것은 후손를 위 한 것이었다. ] Taos)[㈜ 다론 본문에는 \”다오스\”(Daos) : 마카비 1서 10 : 69, \”아폴로니우스, 그는 코엘레수리아(Coele Syria)를 지배하고(to;n o[nta) 있었다. \” 어떤 학자들은 요세푸스의 tavon을 바꾸어 마카비 1서에 있는 두 음절 o[nta로 취하였다. 그런데 다를 학자들은 tavon의 전와(轉說) o[nta를 취한다. 이 점은 미해결의 상태로 남아 있다. ]를 코엘레수리아(Coele Syr-ia)의 통치자로 남겨두었다. 아폴로니우스는 큰 군대를 이끌고 얌네이아(Jamneia)로 갔다. 그리고 대제사장 요나단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가 혼자만 안전하게 살아가며 왕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 자기 좋을 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 요나단이 스스로 왕에게 복종치 않는 것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비난이 그에게 쏟아지고 있다고 말하였다. [㈜ 왕에 대한 이런 언급들은 요세푸스가 첨가한 것이다. ] \”그러므로 그대 자신을 속이지 마시오. \”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산에 앉아서 그대가 강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오. 그러나 만일 그대 힘에 자신이 있다면, 평원으로 내려와나의 군대에 대항하여 그대의 힘을 시험해 보시오. 그러면 우리들 중에서 누가 더 용감한지는 최후의 승리가 보여 줄 것이오.그러나 그대는 나의 군대 안에는 각 도시 중 최고의 남자들이 있다는 사실과 그대의 선조들에게 항상 승리해 온 사람들이 많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오. 그리고 그대는 돌로는 싸울 수없고 오직 무기로 밖에는 싸울 수 없는 땅에서 그리고 그대가 패하였을 때 도망칠 곳이라고는 어디에도 없는 땅에서 우리와 대결해야 할 것이오. \”



  4. 요나단이 알렉산더 발라스의 군대 장관 아폴로니우스를 쳐부수다[마카비 1서 10 : 74]



이와같은 말에 크게 분노한 요나단은 선발된 10,000명의 군사들을 모아 동생 시몬과 함께 예루살렘으로부터 출진하였다. 욥바(Joppa)에 이르러서 그는 그 도시의 외곽에 진을 쳤다. 왜냐하면 그 도시 안에는 아폴로니우스에 의해 설치된 수비대가 있어서 그 주민들이 그에 대항하여 성문을 굳게 닫아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나단이 그들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을때,[㈜ 마카비 1서 10 : 76에는 요나단이 실제로 성에서 문을 열었을 때 공격을 시작했다고 진술한다. ] 그들은 요나단이 자신들의 도시를 강습하여 빼앗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성문을 열어주었다.아폴로니우스는 욥바가 요나단에게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듣고3,000명의 기마병과 8,000명의 보병을 이끌고[㈜ 후자의 숫자는 마카비 1서에 없다 그러나85절에 기초하고 있다<고대. 13권 (100)을 보>). 이곳에는 아소도(Azotus)의 전투에서 아폴로니우스의 군사들에 의해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8,000으로 되어 있다. ] 아소도(Azotus)에[㈜ 성경에는 아스돗(Ashdod). ] 이르렀다. 아소도를 떠난 후에 그는 욥바에 이를 때까지천천히 느긋하게 행군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물러나 요나단을 평원으로 이끌어 내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기마병들에게 확실한 자신감을[㈜ katafronei\’n의 의미에 대해서는 참). 고대. 7권. (61) 주. ] 가지고 있었으며 또 그들을 가지고 승리를거두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요나단은 출격하여 아폴로니우스를 아소도까지 뒤쫓았다. 아폴로니우스는 적이 일단 평원으로 들어서자 뒤돌아서 적과 교전하였다. 이제 아폴로니우스는 후미에 있는 적을 기습공격하기 위하여 1,000명의 기마병들을 골짜기에[㈜ 이 계곡은 마카비 1서에는 언급이 없다] 매복시켜 두었다. 그러나 요나단은 이것을 알고는 당황해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군대를 광장으로[㈜ 이것은 마카비 1서에는 없는 사항이다. ] 이끌고 올라가서 적들이 자신의 전방에서 공격하든지 아니면 자실의 후방에서 공격하든지 그들과 대항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각 전열에서 적과 싸울 준비를 하였다. [㈜ 다른 본문에는 \”(그의 부하들을) 훈계하였다] 전투가 저녁까지 계속됨에 따라, 그는 자기 동생 시몬에게 군사의 일부를 주면서 그들에게 적의 본대를 공격하도록 명령하였다. 한편 그는 자기 휘하의 군사들에게 그들의 방패로 방벽을 만들어 적 기마병들이 던지는 창들을막으라고 명령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명령을 받은 대로 행하였다. 반면 적의 기마병들은 더이상 던질 것이 남지 않을때까지 그들에게 창을 집어 던졌다. 그러나 그들에게 전혀 손상을 주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던지는 창들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완전하게 엮어서 방벽으로 만들어놓은 방패들에 맞고 튕겨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쉽사리 적의 창 공격을 피하였고 창은 손상을 입히지 못하고 떨어졌다. [㈜ 이 진행은 마카비 1서 10 : 80, \”그들이 (요나단의) 진영을 포위하고 그의 백성들을 향해 창을 던졌다\”에 부연한 것이다. ] 적들이 이른 아침부티 늦은 저녁까지 자신들에게 창을 던짐으로 인해 지치게되었을 때 그들이 지쳤음을 눈치챈 시몬은 적군의 본대를 공격하였고 자신의 군사들이 보여준 대단한 분투로 말미암아 적을 패퇴시켰다. 그들의 기마병들은 보병들이 도망치는 것을 보았을때, 더 이상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러나 저녁까지 싸움으로 인해 지쳤고, 보병으로부터 원조를 받을 희망마저 상실하게 된 기마병들도 역시 혼란 속에서 어지럽게 도망쳤다. 그리하여 그들의 전열은 무너졌고, 그들은 평원 사방으로 흩어졌다. 요나단은 많은 적들을 살육하면서 아소도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추격하였고, 자포자기한 그들은 아소도에 있는 다곤의[㈜ 고대 서부 셈족의 곡식신(grain-god), 참). 고대. 6권. (1)이하 힐(Hill), \’Cat. Greek Coins Pal. \’p. ixiv에는 바다신과 같은 수염있는 고기(a beared fish-like sea-god)를 묘사한 4세기의 진술자를 아소도(Azotus)로 보는 것을 의심하고 있다. 이 신은 통속한 신앙이 그를 고기(히브리어 dag=\”고기\”)와 관련시켰기 때문에 다곤(Dagon)을 의미했던 것 같다. ] 신전(the temple of Dagon) 안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요나단은갑자기 기습함으로 그 도시를 점령하였고, 그 도시와 그 주위에있는 마을들까지도 불살랐다. 그는 다곤 신전도 그냥 두지 아니하여 이것 역시 불살랐고, 그 안에 피신해 있었던 사람들을 죽였다. 이렇게 해서 전투에서 쓰러진 적들과 그 신전 안에서 죽어서불탄 적들의 총 수는8,000명이었다. 그렇게 많은 군사들을 정벌한 후에, 그는 아소도에서 행군하여 아스글론(Ascalon)으로 갔다. 그가 아스글론의 외곽에다 진을 쳤을 때 아스글론의 주민들은 그를 환영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선물을 가지고 그를칭송하면서 그를 맞이하기 위하여 나왔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우호적인 태도에 호의를 표시하고는,[㈜ 요나단의 승인은 마카비 1서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거두어 들였던 많은 전리품들을 가지고 거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한편 알렉산더는 자신의 군대장관 아폴로니우스가 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마치 아폴로니우스가[㈜ 고대. 13권. (88) 각주 95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폴로니우스(Apollonius)는 데메트리우스 ll세와 싸운 것이·지 알렉산더 발라스(Alexander Balas)와 싸운 것이 아니다. 다음의 단락은 마카비 1서 10 : 88 ~89의 왜곡이다. 여기서는 알렉산더가 아폴로니우스에 대한 요나단의 승리를 어떻게 찬양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요세푸스의 어구 prosepoiei\’to caivrein\”기뻐하는 척하는\”은 마카비 1서의 prosevqeto e[ti doxavxein tovn !Iwnavqhn \”그는 요나단을 계 속해서 칭송하였다\”와 정반대 이다. ] 자기의 친구이자 동맹자인 요나단과 싸운 것은 자신의 뜻과는 반대였다는 듯이 짐짓 기배하는 체 하였다. 그래서 그는 요나단에게 보통 왕의 친족들에게[㈜ \”혈족들(Kinsmen)\”은 물론 명예스런 칭호이다. 참). 고대 12권. (295) 각주 356. ]주어지는 금브로치[㈜ 비슷한 선물들을 안티오쿠스 Ⅵ세(Antiochus Ⅵ)가 요나단에게 준 것에 관해서는 고대. 13권. (146)을 보라. ] 같은 것을 포함하여 많은 보상과 영예를 줌으로써 그의 가치를 증명하면서 그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에그론(Akkaron)과[㈜ 성경에는 에그론<Ekron : 참>. 고대. 5권. (87)) 현재는 아킬(\’Aqir), 이곳은 팔레스틴 도시들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얌네이아(Jamneia)의 약간 통쪽에 있다] 그 지역을 정착지로 그에게 넘겨 주었다.



 5. 톨레미 필로메토르가 알렉산더 발라스를 원조하러 오다[마카비 1서 11 . 1]



 필로메토르라 불리우는 톨레미왕이 자신의 사위인 알렉산더 3의 동맹자로서 싸우기 위하여 일군의 함대와 보병을 이끌고 수리아로 온 것도 대략 이때 쯤이었다. [㈜ 요세푸스와 디오도루스(Diodorus xxxii. 9에 반대로, 마카비 서 11 : 1에는 톨레미(Ptolemy)가 보물을 가지고 알렉산더에게로 가려고 수리아에 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진의가 어떤 것이든지 간에 알렉산더와 동맹을 맺은 요나단을 향한 그의 우정어린 행위는 그가 알렉산더에게 분명한 적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알렉산더의 입지가 약하다고 인식했을 때 그렇게 한 것이 다 혹은 디오도루스는 katagnou;\” de; aujtou\’ th\’\” yuch\’\” pantelh\’ ajdunamivan라고 말한다.] 알렉산더의 통치 아래 있는 모든 도시들은 그를 기쁘게 환영하였고, 아소도까지 그를호위하였다. 아소도에 있는 모든 주민들은 자신들의 다곤 신전이 불탄 것에 대해 그에게 복수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요나단이 그것을 파괴하였으며 자신들의 영토를 불살라 황폐케하였으며 자신들 가운데 많은 사람을 죽였노라고 그를 비난하였다. 톨레미가 이러한 불평들을 말없이 듣는 동안 요나단은 그를 만나기 위하여 욥바로 갔다. 거기서 그는 그로부터 찬란한 선물들과 모든 종류의 포상을 받았다. 그 다음 그는 엘류데루스(Ele-utherus)라 [㈜ 현재의 나르 엘-케빌(Nahr el-Keb\’r)이다. 이곳은 오르도시아(Orthosla)의 북쪽에 있으며 베니게(Phoenicla)와 셀류키드 수리아(Seleucid Syria)사이의 국경에 위치한다. 라이나흐(Reinach)는 요나만이 톨레마이스(Ptolemais)보다 오히려 더 먼 곳을 톨레미(Ptolemy)와 동행했다는 것은 의심스럽다고 한다. ] 불리는 강에 이르기까지 그를 호위하여 나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6. 톨레미 필로메토르가 자신에 대한 알렉산더



 발라스의 음모를 알아채다[㈜ 고대. 13권. (109) 다음에 나오는 단락은 고대. 13권. (108)에 나오는 proskekroukwv\”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판단컨대 헬라자료에 기초한 것으로 다메섹의 니콜라스(Nicolas of Damascus)는 보고 있다. 참). 고대. 13권. (109) 각주 118. ] 톨레미가 톨레마이스에 왔을 때[㈜ 베반(Bevan),\’H. Sel. \’ii. 219에 는 톨레마이스(Ptolemais)가 알렉산더의 왕궁의 의자에 앉았었다고 제시한다. ] 그는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반대로 거의 죽을 뻔하였다. 왜냐하면 그때 알렉산더가 마침 그의 친구이었던 암모니우스(Ammonius)를 통하여 그에 대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그 음모가 발각되었을 때, 톨레미는 알렉산더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는 이음모는 암모니우스가 자신에 대해 꾸였던 것이라고 말하면서,처벌을 위해 암모니우스를 자신에게 넘겨 줄 것을 요구하였다.톨레미가 이같이 한 이유는 그가 처벌해 줄 것을 기대하였기 때문이었다. [㈜ 이 사건은 마카비 1서 11 : 10에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톨레미가 \”내가 그에게(알렉산더) 나의 딸을 준 것을 후회한다. 왜냐하면 피는 나를 죽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 암모니우스(Ammonius)는 디오도루스 xxxiii. 9에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 ll6) 그러나 알렉산더가 그를 넘겨 주기를 거부하자, 그는 자신에 대해 음모를 꾸였던 사람은 바로 알렉산더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에 대하여 매우 나쁜 감정을 가지게되었다. 이제 알렉산더는 암모니우스 때문에 안디옥 사람들의감정을 더 일찍 상하게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암모니우스의손에 많은 해악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모니우스는 수치스럽게도 거세당함으로써 자신의 무분별한 범죄들에 대한 응보를 받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곳에서 살펴본것처럼, 그는 여자의 옷으로 자신을 숨기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 요세푸스에는 그런 단락이 없다 ; 그는 그의 자료에서 형식을 가져왔다. 여자로 변장한 암모니우스의 이야기는 디오도루스, xxtxii. 10의 설명에 이상한 병행구를 가지고 있다. 디오판투스(Diophantus)의 딸 헤라이스(Herais)는 알렉산더가 달아났었던 아라비아에 살고 있었다<고대. 13권. (117)을 보라). 성의 신비로윤 변화를 겪은 헤라이스는 남장을 하여 기병으로 알렉산더와 같이 전투에 참가하였다. ]



 7. 톨레미 필로메토르가 데메트리우스 Ⅱ세(Demetrius B)를 위해 알렉산더 발라스를 버리다[마카비 1서 11



  [㈜ 고대. 13권. (121)에 나오는 딘락은 헬라적 자료에 기초하고 있다. 미록 마카비 1서 11 : 10~20에 약간의 병행구가 있기는 하다. ]



 톨레미는 자기 딸을 알렉산더와 결혼하도록 한 것과 데메트리우스에 대항하여 그와 동맹을 맺고 있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고는 그와의 인연을 끊었다. 그리하여 자기 딸을 그로부터 빼낸 후에 신속하게 데메트리우스에게 사람을 보내어 우호 동맹을 제안하였고 그에게 자기 딸을 아내로 줄 것과 그의 부친의 권좌를 찾도록 해 둘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자 데메트리우스는 그의 특사들을 통해 전달받은 그 제안을 기쁘게 여기면서그 동맹과 결혼을 승낙하였다. 그러나 톨레미에게는 한가지 어려운 일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것은 데메트리우스를 받아 주도록 안디옥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부친 데메트리우스가 자신들에게 범했던 불법 적인 행동들로인하여 데메트리우스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기때문이었다. 그러나 톨레미는 이일 역시도 성취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안디옥 사람들은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 13권. (108)에. ] 암모니우스로 인하여 알렉산더를 미워하여 그를 안디옥에서 몰아내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알렉산더는 안디옥에서 쫓겨나가게 되어 길리기아로 갔다. 톨레미가 안디옥 사람들에게로 오자마자, 그들과 그들의 군사들은 그를 왕으로 선포하였으며 그에게 두개의 왕관을(하나는 아시아의 왕관이며 다른 하나는 애굽의 왕관이었다) 쓸 것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착하고 정직하며 눈부신 번영을[㈜ 다른 본문에는 \”다른 사람들의 소유물의. \”] 열망하지 아니하며 또한 미래를 예측하는데 능숙한 그는 로마인들에 게 자기를 미워하는 어떤 빌미를 제공하게 될까봐 드러나는 일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안디옥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는, 한일 그들이 데메트리우스를 순수히 받아 준다면 데메트리우스도 자기 아버지로 인한어떤 원한도 그들에게 갖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데메트리우스를 받아 주도록 그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데메트리우스에 게 좋은 상담자요 안내자가 될 것임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는, 만일 데메트리우스가 어떤 좋지 않은 행동들을 하려 한다면 자신은 그가 그런 행동들을 하는 것을 허용치 않겠노라고 약속하였다. 자신으로서는 애굽의 왕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말들로 그는 안디옥 사람들이 데메트리우스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였던 것이다.



8. 톨레미 필로메토르와 알렉산더 발라스의 죽음



한편, 큰 군대와 많은 보급 물자를 가지고 길리기아에서 수리아로[㈜ 주전 145년에 ; 참). 고대 13권. (119) 각주 124와 Bevan,\’Ptol. \’p. 305 n. 1. ] 출발한 알렉산더는 안디옥 사람들의 영토를 불지르고약탈하였다. 그 때문에 톨레미는 자기 사위인 데메트리우스(왜냐하면 그는 이미 자기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기 때문이다)와 함께 알렉산더에 맞서 출병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알렉산더를 물리치고 그를 패퇴시켰다. [㈜ 안디옥(Antioch)의 평지에 있는 오에노파라스(Oenoparas)강에 : 참) Strabo, xvi. 751. ] 패한 그는 아라비아(Arabia)로 도망쳤다. 이 때 그 전투에서 톨레미의 말이 코끼리가 지르는 나팔소리 같은 소리를 듣고 놀라 날뛰는 바람에 톨레미가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적들이 이를 보고 그에게로 달려들어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그를 죽이지는 못하고 머리에 크고작은 부상을 입혔다. 그의 호위병들이 그들의 손에서부티 그를구해냈을 때, 그는 너무나 심각한 상태여서 4일 동안이나 의식을 회복하지도 못했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아람인들의 우두머리인 자베일루스(Zabeilus)가[㈜ 그는 마카비 1서 11 : 17에서 삽디엘(Zabdiel)로 불리운다. 디오도루스 (Diodorus), xxxii. 9에 의하면 알렉산더는 그의 관리 두 사람 즉 헬리아데스(Hellades)와 카시우 스(Casius)라는 사람을 살해했다. 더구나 디오도스는 애굽족장 디오클레스(Dlocles)로 불리 운다. ] 알렉산더의머리를 베어서 그것을 톨레미에게 보내왔다. 톨레미는 제5일째에 그의 상처로부터 회복되었는데, 그가 의식을 되찾은 날이 바 로 알렉산더의 즉음의 소식을 듣고 그의 머리를 본 그날이었다 -이것은 그가 보고 들은 일들 중에서 가장 유쾌한 것이었다. 그 러나 알렉산더의 죽음으로 크게 기뻐한 지 며칠 후에 그도 곧바로 죽었다. 발라스(Balas)라고도[㈜ 그림(Grimm)은 마카비 1서 10 : 1에 대해서 흐리고 쉬러(Schurerr), i. 227 주 11은 Strabo, xvi. 251에서는 그를 알렉산더 발라스(Alexander Balas)라고 부른 것을 지적한다 참). 유스티누스(Justlnus) xxxv. 1. 6. 분명하게 발라스(Baias)는 주어진 이름이었다 ; 추측컨대 신의 애칭인 아람어 바알(Ba\’al)로부터 파생되었을것이다. ] 불리는 알렉산더(Alexan-der)는, 우리가 다른 곳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른 본문에는 \”다른 곳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다른 역사가들의 작품들안에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세푸스 작품 안에는 그런 전후 참조(cross-reference)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번역서에 있는 읽기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요세푸스가 자신의 헬라적 자료에서 어구를 택했다고 가정 할 수 있다. ] 5년 동안[㈜ 공식적으로 주린 150년에서 145년까지. 마카비 1서는 셀류키드 왕극 167년째 해에 데메트리우스 Ⅱ세의 왕위게승이 있었고, 주전 146년 10월에서 145년 10월까지 계속되었다. ] 아시아의 왕(King of Asla)이었던 것이다



 9. 데메트리우스 Ⅱ세 니카토르(Demetrius Ⅱ Nicator)의 즉위[참). 마카비 1서 11 : 19]



니카토르(Nicator)라고도[㈜ 추측적인 형태 : 여러 사본들에는 니카노르(Nicanor). 그의 (생략하지 않은)이름은 데메트리오스 데오스 니카토르 필라델포스(Demetrios Theos Nikator Philadelphos), 참), Bevan, \’H. Sel. \’ii. 223. ] 불리는 데메트리우스는 왕권을취한 이후, 사악하게도 톨레미 와 동맹을 맺은 사실과 톨레미가자신의 장인이며 자신과 클레오파트라와의 혼인을 통하여 그와관계를 맺은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톨레미의 군대들을 쳐부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그 군사들은 그의 공격을[㈜ 다른 본문에 는 와전 (訛傳)된 \”악행 (villainy). \”]피하여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도망하였다. 그러나 데메트리우스는코끼리떼를 전리품으로 획득하였다. 그러는 동안[㈜ 요세푸스는 여기에서 마카비 1서(11 : 20)에 대한 그의 부연을 요약하였다. ] 대제사장요나단은 유대(Judaea)로부터 군대를 모아서 예루살렘 안에 있는 성채를 포위 공격하였다. 그 성채는 마게도냐인 수비대와 자기들 나라의 풍속을 저 버 렸던 하느님을 공경 하지 아니 하는 몇 몇의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처음에는 성채를 점령하려는 요나단의 계획을 경시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곳의 저항능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그안에 있는 일부 하찰은 무리들이 야음을 틈타서 빠져나와 데메트리우스에게로 가서 그 성채가 공격당하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이러한 보고를 듣고 크게 진노한 그는 군대를 이끌고 요나단과 싸우기 위해 안디옥에서 출병하였다. 그가 톨레마이스에 이르렀을 때, 그는 요나단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곳에 있는 자기에게로 급히 오도록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요나단은 비록 그가 공격을 멈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금, 은, 의복들과 수많은 선물들을 가지고 백성의 장로들과 제사장들을 함께 데리고 데메트리우스에게로 갔다. 그가 이러한 선물들을 그에게 바쳤을 때, 왕의 진노는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그리하여 왕으로부터 영예롭게 된그는 그 왕 이전의 왕들로부터 계속해서 자신이 대제사장임을인정 받아왔던 것처럼 자신의 대제사장직의 보유권을 확증받았다. 그리고 데메트리우스는 요나단을 비난하는 배교자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요나단이 자기에게 사마리아와 욥바와 갈릴리의 세 지역과 모든 유대 지역의 조세를 300달란트로 낮춰주도록 요청하였을 때,[㈜ 마카비 1서 11 : 28은 \”요나단은 유대땅은 물른 사마리아에 속하는 세 지방에서 거두어 가는 조공을 면제해 달라고 왕에게 요청하고 그 대신 돈을 300달란트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 우리는 요세푸스가 읽었던 것처럼 고대. 13권. (127)(마카비 1서 11 : 34)에 인급된 \”사마리티스(사마리아)의 세 관할구역\” 즉 아파이레마(Aphairema), 롯다(Lydda)와 라마다임(Ramathaim)으로 읽어야 한다. 참). 고대. 13권. (50) 각주 56, 욥바(Joppa ; 고대 13권 에서는 베레아)그리고 갈릴리 (Galilee)는 요세푸스가 첨가한 것이다. ] 그는 그렇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이러한 모든 문제들에 관한 한 통의 편지를 주었다. 그 편지의 내용는 다음과 같았다



  요나단에게 보내는 데메트리우스 ll세의 편지[마카비 1서 11 : 30]



 \”왕 데메트리우스가 형제 요나단과 유대 민족에게 문안하오. 우리는 그대에게, 내가 우리의 친족인 라스데네스에게[㈜ 라스데네스 크레탄<Lasthenes the Creten : 참). 고대. 13권. 2 : 3(50)>은 추측컨 대 코엘레 수리아(Coele Syrla)의 총독일 것이다. ] 썼던편지의 사본을 보내오. 왜냐하면 그대로 하여금 그 핀지 안에 담긴 내용을 알게 하기 위함이오. \’왕 데메트리우스는 아버지[㈜ 이 명예스런 명칭의 예는 고대. 12권. 3 : 4(148)을 보라] 라스테네스(Lasthenes)에게 문안합니다. 유대 민족이 우리에게 우호적이고 우리에 대한 그 의무들을 정확히 이행한 까닭에, 나는 그 선의에 대한 답례로 아파이레마(Aphairema),[㈜ 추측컨대 현재의 에트-타이베(e\’-Taiyybeh)는 베델(Bethel)의 북동쪽 약 4마일 지점에 있으며, 요 11 : 54에 나오는 에브라임(Ephraim)과 같은 장소이다 : 참). 아벨(Abel),\’GP. \’ii. 135와 달만(Batman), p. 217. 또한 클라인 (Klein) , pp. 137~138. 이 장소의 더 오래된 이름은 달만(Batman)에 의하면 아프라( Afra)이다. ] 롯다(Lydda),[㈜ 후에는 디오스폴리스(Biospolis), 현재는 루드(Ludd), 야파(Jaffa)의 남동쪽  약 10마일과 모단(Modin)의 서쪽 6마일에 위치하며, 하스모네. 안(HasmDnaean) 통치자들이 태어난 곳이다. ] 그리고 라마다임 (Ramathaim),[㈜ 다른 본문에는 알마다임(Armathaim), 라마다(Ramatha). 현재는 랜티스(Rentis)      로서 룻다(Lydda)의 북동쪽 약 15마일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리마대 (Arimathaea)의 요셉(Joseph)의 고향이며 사무엘(Samuel)의 본고장이 기도 하     다. 참). 고대. 5권. 10 : 2(342). ] 이 세 구역을[㈜ 데메트리우스 I세(Demetrius Ⅰ )가 유대인에게 수여한 것. 참). 고대. 13권. (48).] 유대민족에게 선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지역들은 사마리아(Samaria)에서 취하였는데, 그곳들에 속한 지역들과 함께 유대에 합병되었던 곳입니다. 더구나[㈜ 다른 본문에는 \”지금. \”] 나 이전의 왕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로부터 무엇을 받았던지간에, 또그 왕들이 땅의 소산물과 나무의 열매들 그리고 우리에게 바쳤던 소금세와 왕실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바칠 의무가 있는 다른 것들로부터 무엇을 받았던지간에 -이 모든 것들을 면제해 줄것입니다. [㈜ 비슷한 면제를 데메트리우스 I세가 약속하였다. 고대. 13권. 2 : 3(48). 마지    막 구절 \”이런      것들 중 아무0 것도 없다\”는 요세푸스가 parabibasqhvsetai를 마카비 1서 11 : 36의 ajqethvsetai로 다소 수정함으로써 34-35절의 불완전성을 보완 하였다. 이 구절에는 데메트리우스 Ⅱ세가 기대한 지불에 대한 언급을 우리가 빠뜨렸다. ] 그리고 지금부티 언제까지나[㈜ 다른 본문에는 \”또 장래에\”. 채택된 본문은 마카비 1서와 일치한다. ] 이러한 것들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그들에게 불법으로 취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시들의 사본을 하나 작성해서 요나단에게 주어, 성전안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놓도록 하십시오. \’\”이상이 그 편지에 담긴 내용들이었다. 그리하여 데메트리우스는 평화가 찾아오고, 어떤 위험이나 전쟁의 공포가 없어진 것을 확신한 그는 자신의 군대를 해산시키고 그들의 봉급을 감하였다. [㈜ 지불에 대한 삭감은 마카비 1서에는 없다. ] 그러나 그레데 섬[㈜ 그레데(Crete)는 마카비 1서에 언급하고 있지 않다. ]과 다른 섬들에서 자신과 함께올라 왔었던 용병들에게만은 계속해서 그들의 봉급을 주었다. 따라서그는 더이상 어떠한 돈도 받지 못하게 된 군인들로부터 증오와 원망을 샀다. 그 반면에 그 앞의 왕들은 그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자신에게 충성하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만일 그들을 필요로 하는 일이 생겨난다면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도록 하기 위해서 심지어 평화스런 시기에도 똑같은 봉급을 그들에 게 계속 주어왔다. [㈜ 이전 구문은 마카비 1서 11 : 38 \”그런데 그의 선왕시대부티 봉사해오던 군인들은 모두 그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의 부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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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권 제 4장 알렉산더가 요나단을 특별하게 존경한 것과 데메트리우스의 아들 데메트리우스가 알렉산더를 물리치고 요나단과 동맹을 맺게 된 것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4 장


    알렉산더가 요나단을 특별하게 존경한 것과 데메트리우스의 아들 데메트리우스가 알렉산더를 물리치고 요나단과 동맹을 맺게 된 것에 대하여


     1. 알렉산더 발라스가 톨레미 필로메토르의 딸과 결혼하다[마카비 1서 10: 51]


      [㈜ 여기서 요세푸스는 마카비 1서의 그의 병행구를 요약하고 있다. ]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 13권. (61)에. ] 데메트리우스가 전투 중에죽은 이후, 이제 알렉산더가[㈜ 별명은 발라스(Balas), 참). 고대. 13권. (119). ] 수리아에서 왕권을 잡았다. 그런후 알렉산더는 톨레미 필로메토르에게 그의 딸과 자신과의 결혼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 그는 또, 자신이 하느님의 서리에 의해 톨레미왕의 부친의 보좌를 복원시켜 주었으며 데메트리우스도 정벌해 주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혼을 통하여 톨레미왕과 자신이 결연을 맺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말하였다. 그뿐 아니라 자신과 그 같은 결연을 맺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도 가치없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톨레미는 그의 제의를 기쁘게받아들이면서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즉 자신은 알렉산더가 자기 부친의 보좌를 되찾은 것을 기뻐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딸을 주겠노라고 약속하면서 자신이 딸을 데리고 톨레마이스(Ptolemais)로 갈테니 거기서 만나자고 말했다. 왜냐하면 자기자신이 애굽에서부티 그곳까지 딸을 호위할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곳에서 자기 자식을 그에게 보내겠노라고 하였다. 이같은 편지를 써 보낸 후에, 톨레미는 자기 딸 클레오파트라(Cleopatra)를 데리고 서둘러 톨레마이스(Ptolemais)로 갔다. [㈜ 마카비 1서 10 : 57에 의하면, 이것은 셀류키드 왕국 제162년째=주전 151-150년. ] 자신이 만나자고 지정해 놓은그곳에서, 알렉산더가 자신을 만나기 위하여 기다리는 것을 본톨레미는 그에게 자신의 딸과 딸의 결혼지참금으로 왕이 주기로예정되어 있는 만큼의 금과 은을 주었다. [㈜ 마카비 1서는 결혼을 대단히 호화스럽게 치러졌다고 단순하게 말하고 있다.]


      2. 요나단이 알렉산더 발라스와 톨레미 필로메토르에 의해 영광스럽게 되다[마카비 1서 10 : 59]


     결혼 예식이 거행되고 있던 동안, 알렉산더는 대제사장 요나단에게 편지를 띄워 그에게 톨레마이스에 오도록 하였다. 그래서 요나단은 그들에게 줄 화려한 선물들을 준비해 가지고 왕들에게 나아갔다. [㈜ 참). 앞의 주. ] 그리고는 그들 모두로부터 많은 영예로 보답을 받았다. [㈜ 마카비 1서 10 : 60, ‘그는 그들에게 총애를 받았다’. ] 먼저 알렉산더는 그에게 그의 의복을 벗고 자주색의복을 입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그에게 상단에 않도록 하고는신하들에게 명하기를 그와 함께 도시의 중심으로 나아가서 어느누구라도 그에 대항하여 말하거나 그와 어떤 분쟁을 일으킨다면용서하지 않겠노라는 선포를 하게 했다. 신하들이 이렇게 행했을 때 요나단을 비난하려고 준비했던 사람들과 그에게 적의를품고 있던 사람들은 왕의 선포에 의해 요나단이 얻은 영광을 보고는 자신들이 어떤 큰 해를 당하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도망을 쳤다. 이와같이 알렉산더왕이 요나단에게 보여준 우호적인 관심은 대단하였다. 심지어 왕은 그에게 자신의 가장 절친한친구라고까지 하였던 것이다. [㈜ 마카비 1서 10 : 65, ‘가장 친한 친구중이 하나로 삼아 그 지방의 군사 및 행정 책임자로 세웠다. ‘- 즉 비록 수리아 수비대가 예루살렘의 성에 남아 있었지만 유대의 군대와 시민의 총독이었다. 참). 고대. 13권. (121). ]


     3. 데메트리우스 Ⅱ)가 알렉산더발라스에 대항하다[마카비 1서 10 : 67]


     그러나 165년에[㈜ 셀류키드 왕국 165년째는 주전 148년 10월에서 147년 10월까지 계속되거나 유대인들의 계산으로는 주전 147년 4얼에서 146년 4월까지로 계속되기도 한다. ] 데메투리우스의 아들인 데메트리우스 Ⅱ세는 많은 외국인 용병들과 자관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 주었던 그레데 사람인 라스데네스(Lasthenes the Cretan)와 함께 그레데(Crete) 섬에서 배를 타고 길리기아(Cili:in)까지 항해하였다. [㈜ 베반(Bevan),’H. Sel. ‘ii. 301은 “길리기아(Cilicia)”를 “셀류키아(Seleucia)”로 수정 제안한다(안디옥에서 거리가 밀지 않은 피에리아(Pieria)에 있는). 마카비 1서 10 : 67은 “그의 선조들의 땅으로”로 되어 있다. 아마도 수리아톨 의미한 것 같다. 유스티누스 Huv. 2~t에 의하면 데메트리우스 ll세는 크니두스(Cnidus, 카리아(Caria)에 있는)에 살고 있었다. 데메트리우스는 요세푸스가 고대. 13권. (145)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나중에 길리기아에 돌아갔다. ] 알렉산더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불안과 혼란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래서 그는 즉시 데메트리우스가 도달하기전에 안디옥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하여 베니게(Phoenicia)에서 안디옥으로 서둘러 갔다. 그는 또한 아폴로니우스 타오스(Ap0ll0nius)[㈜ 바카비 1서에서는 아플로니우스(Apollonius)가 데메트리우스에게 임명을 받았지 알렉산더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 요나단이 아폴로니우스와 싸운 것은 후손를 위 한 것이었다. ] Taos)[㈜ 다론 본문에는 “다오스”(Daos) : 마카비 1서 10 : 69, “아폴로니우스, 그는 코엘레수리아(Coele Syria)를 지배하고(to;n o[nta) 있었다. ” 어떤 학자들은 요세푸스의 tavon을 바꾸어 마카비 1서에 있는 두 음절 o[nta로 취하였다. 그런데 다를 학자들은 tavon의 전와(轉說) o[nta를 취한다. 이 점은 미해결의 상태로 남아 있다. ]를 코엘레수리아(Coele Syr-ia)의 통치자로 남겨두었다. 아폴로니우스는 큰 군대를 이끌고 얌네이아(Jamneia)로 갔다. 그리고 대제사장 요나단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가 혼자만 안전하게 살아가며 왕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 자기 좋을 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 요나단이 스스로 왕에게 복종치 않는 것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비난이 그에게 쏟아지고 있다고 말하였다. [㈜ 왕에 대한 이런 언급들은 요세푸스가 첨가한 것이다. ] “그러므로 그대 자신을 속이지 마시오. ”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산에 앉아서 그대가 강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오. 그러나 만일 그대 힘에 자신이 있다면, 평원으로 내려와나의 군대에 대항하여 그대의 힘을 시험해 보시오. 그러면 우리들 중에서 누가 더 용감한지는 최후의 승리가 보여 줄 것이오.그러나 그대는 나의 군대 안에는 각 도시 중 최고의 남자들이 있다는 사실과 그대의 선조들에게 항상 승리해 온 사람들이 많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오. 그리고 그대는 돌로는 싸울 수없고 오직 무기로 밖에는 싸울 수 없는 땅에서 그리고 그대가 패하였을 때 도망칠 곳이라고는 어디에도 없는 땅에서 우리와 대결해야 할 것이오. “


      4. 요나단이 알렉산더 발라스의 군대 장관 아폴로니우스를 쳐부수다[마카비 1서 10 : 74]


    이와같은 말에 크게 분노한 요나단은 선발된 10,000명의 군사들을 모아 동생 시몬과 함께 예루살렘으로부터 출진하였다. 욥바(Joppa)에 이르러서 그는 그 도시의 외곽에 진을 쳤다. 왜냐하면 그 도시 안에는 아폴로니우스에 의해 설치된 수비대가 있어서 그 주민들이 그에 대항하여 성문을 굳게 닫아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나단이 그들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을때,[㈜ 마카비 1서 10 : 76에는 요나단이 실제로 성에서 문을 열었을 때 공격을 시작했다고 진술한다. ] 그들은 요나단이 자신들의 도시를 강습하여 빼앗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성문을 열어주었다.아폴로니우스는 욥바가 요나단에게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듣고3,000명의 기마병과 8,000명의 보병을 이끌고[㈜ 후자의 숫자는 마카비 1서에 없다 그러나85절에 기초하고 있다<고대. 13권 (100)을 보>). 이곳에는 아소도(Azotus)의 전투에서 아폴로니우스의 군사들에 의해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8,000으로 되어 있다. ] 아소도(Azotus)에[㈜ 성경에는 아스돗(Ashdod). ] 이르렀다. 아소도를 떠난 후에 그는 욥바에 이를 때까지천천히 느긋하게 행군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물러나 요나단을 평원으로 이끌어 내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기마병들에게 확실한 자신감을[㈜ katafronei’n의 의미에 대해서는 참). 고대. 7권. (61) 주. ] 가지고 있었으며 또 그들을 가지고 승리를거두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요나단은 출격하여 아폴로니우스를 아소도까지 뒤쫓았다. 아폴로니우스는 적이 일단 평원으로 들어서자 뒤돌아서 적과 교전하였다. 이제 아폴로니우스는 후미에 있는 적을 기습공격하기 위하여 1,000명의 기마병들을 골짜기에[㈜ 이 계곡은 마카비 1서에는 언급이 없다] 매복시켜 두었다. 그러나 요나단은 이것을 알고는 당황해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군대를 광장으로[㈜ 이것은 마카비 1서에는 없는 사항이다. ] 이끌고 올라가서 적들이 자신의 전방에서 공격하든지 아니면 자실의 후방에서 공격하든지 그들과 대항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각 전열에서 적과 싸울 준비를 하였다. [㈜ 다른 본문에는 “(그의 부하들을) 훈계하였다] 전투가 저녁까지 계속됨에 따라, 그는 자기 동생 시몬에게 군사의 일부를 주면서 그들에게 적의 본대를 공격하도록 명령하였다. 한편 그는 자기 휘하의 군사들에게 그들의 방패로 방벽을 만들어 적 기마병들이 던지는 창들을막으라고 명령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명령을 받은 대로 행하였다. 반면 적의 기마병들은 더이상 던질 것이 남지 않을때까지 그들에게 창을 집어 던졌다. 그러나 그들에게 전혀 손상을 주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던지는 창들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완전하게 엮어서 방벽으로 만들어놓은 방패들에 맞고 튕겨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쉽사리 적의 창 공격을 피하였고 창은 손상을 입히지 못하고 떨어졌다. [㈜ 이 진행은 마카비 1서 10 : 80, “그들이 (요나단의) 진영을 포위하고 그의 백성들을 향해 창을 던졌다”에 부연한 것이다. ] 적들이 이른 아침부티 늦은 저녁까지 자신들에게 창을 던짐으로 인해 지치게되었을 때 그들이 지쳤음을 눈치챈 시몬은 적군의 본대를 공격하였고 자신의 군사들이 보여준 대단한 분투로 말미암아 적을 패퇴시켰다. 그들의 기마병들은 보병들이 도망치는 것을 보았을때, 더 이상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러나 저녁까지 싸움으로 인해 지쳤고, 보병으로부터 원조를 받을 희망마저 상실하게 된 기마병들도 역시 혼란 속에서 어지럽게 도망쳤다. 그리하여 그들의 전열은 무너졌고, 그들은 평원 사방으로 흩어졌다. 요나단은 많은 적들을 살육하면서 아소도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추격하였고, 자포자기한 그들은 아소도에 있는 다곤의[㈜ 고대 서부 셈족의 곡식신(grain-god), 참). 고대. 6권. (1)이하 힐(Hill), ‘Cat. Greek Coins Pal. ‘p. ixiv에는 바다신과 같은 수염있는 고기(a beared fish-like sea-god)를 묘사한 4세기의 진술자를 아소도(Azotus)로 보는 것을 의심하고 있다. 이 신은 통속한 신앙이 그를 고기(히브리어 dag=”고기”)와 관련시켰기 때문에 다곤(Dagon)을 의미했던 것 같다. ] 신전(the temple of Dagon) 안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요나단은갑자기 기습함으로 그 도시를 점령하였고, 그 도시와 그 주위에있는 마을들까지도 불살랐다. 그는 다곤 신전도 그냥 두지 아니하여 이것 역시 불살랐고, 그 안에 피신해 있었던 사람들을 죽였다. 이렇게 해서 전투에서 쓰러진 적들과 그 신전 안에서 죽어서불탄 적들의 총 수는8,000명이었다. 그렇게 많은 군사들을 정벌한 후에, 그는 아소도에서 행군하여 아스글론(Ascalon)으로 갔다. 그가 아스글론의 외곽에다 진을 쳤을 때 아스글론의 주민들은 그를 환영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선물을 가지고 그를칭송하면서 그를 맞이하기 위하여 나왔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우호적인 태도에 호의를 표시하고는,[㈜ 요나단의 승인은 마카비 1서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거두어 들였던 많은 전리품들을 가지고 거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한편 알렉산더는 자신의 군대장관 아폴로니우스가 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마치 아폴로니우스가[㈜ 고대. 13권. (88) 각주 95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폴로니우스(Apollonius)는 데메트리우스 ll세와 싸운 것이·지 알렉산더 발라스(Alexander Balas)와 싸운 것이 아니다. 다음의 단락은 마카비 1서 10 : 88 ~89의 왜곡이다. 여기서는 알렉산더가 아폴로니우스에 대한 요나단의 승리를 어떻게 찬양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요세푸스의 어구 prosepoiei’to caivrein“기뻐하는 척하는”은 마카비 1서의 prosevqeto e[ti doxavxein tovn !Iwnavqhn “그는 요나단을 계 속해서 칭송하였다”와 정반대 이다. ] 자기의 친구이자 동맹자인 요나단과 싸운 것은 자신의 뜻과는 반대였다는 듯이 짐짓 기배하는 체 하였다. 그래서 그는 요나단에게 보통 왕의 친족들에게[㈜ “혈족들(Kinsmen)”은 물론 명예스런 칭호이다. 참). 고대 12권. (295) 각주 356. ]주어지는 금브로치[㈜ 비슷한 선물들을 안티오쿠스 Ⅵ세(Antiochus Ⅵ)가 요나단에게 준 것에 관해서는 고대. 13권. (146)을 보라. ] 같은 것을 포함하여 많은 보상과 영예를 줌으로써 그의 가치를 증명하면서 그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에그론(Akkaron)과[㈜ 성경에는 에그론. 고대. 5권. (87)) 현재는 아킬(‘Aqir), 이곳은 팔레스틴 도시들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얌네이아(Jamneia)의 약간 통쪽에 있다] 그 지역을 정착지로 그에게 넘겨 주었다.


     5. 톨레미 필로메토르가 알렉산더 발라스를 원조하러 오다[마카비 1서 11 . 1]


     필로메토르라 불리우는 톨레미왕이 자신의 사위인 알렉산더 3의 동맹자로서 싸우기 위하여 일군의 함대와 보병을 이끌고 수리아로 온 것도 대략 이때 쯤이었다. [㈜ 요세푸스와 디오도루스(Diodorus xxxii. 9에 반대로, 마카비 서 11 : 1에는 톨레미(Ptolemy)가 보물을 가지고 알렉산더에게로 가려고 수리아에 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진의가 어떤 것이든지 간에 알렉산더와 동맹을 맺은 요나단을 향한 그의 우정어린 행위는 그가 알렉산더에게 분명한 적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알렉산더의 입지가 약하다고 인식했을 때 그렇게 한 것이 다 혹은 디오도루스는 katagnou;” de; aujtou’ th'” yuch'” pantelh’ ajdunamivan라고 말한다.] 알렉산더의 통치 아래 있는 모든 도시들은 그를 기쁘게 환영하였고, 아소도까지 그를호위하였다. 아소도에 있는 모든 주민들은 자신들의 다곤 신전이 불탄 것에 대해 그에게 복수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요나단이 그것을 파괴하였으며 자신들의 영토를 불살라 황폐케하였으며 자신들 가운데 많은 사람을 죽였노라고 그를 비난하였다. 톨레미가 이러한 불평들을 말없이 듣는 동안 요나단은 그를 만나기 위하여 욥바로 갔다. 거기서 그는 그로부터 찬란한 선물들과 모든 종류의 포상을 받았다. 그 다음 그는 엘류데루스(Ele-utherus)라 [㈜ 현재의 나르 엘-케빌(Nahr el-Keb’r)이다. 이곳은 오르도시아(Orthosla)의 북쪽에 있으며 베니게(Phoenicla)와 셀류키드 수리아(Seleucid Syria)사이의 국경에 위치한다. 라이나흐(Reinach)는 요나만이 톨레마이스(Ptolemais)보다 오히려 더 먼 곳을 톨레미(Ptolemy)와 동행했다는 것은 의심스럽다고 한다. ] 불리는 강에 이르기까지 그를 호위하여 나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6. 톨레미 필로메토르가 자신에 대한 알렉산더


     발라스의 음모를 알아채다[㈜ 고대. 13권. (109) 다음에 나오는 단락은 고대. 13권. (108)에 나오는 proskekroukwv”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판단컨대 헬라자료에 기초한 것으로 다메섹의 니콜라스(Nicolas of Damascus)는 보고 있다. 참). 고대. 13권. (109) 각주 118. ] 톨레미가 톨레마이스에 왔을 때[㈜ 베반(Bevan),’H. Sel. ‘ii. 219에 는 톨레마이스(Ptolemais)가 알렉산더의 왕궁의 의자에 앉았었다고 제시한다. ] 그는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반대로 거의 죽을 뻔하였다. 왜냐하면 그때 알렉산더가 마침 그의 친구이었던 암모니우스(Ammonius)를 통하여 그에 대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그 음모가 발각되었을 때, 톨레미는 알렉산더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는 이음모는 암모니우스가 자신에 대해 꾸였던 것이라고 말하면서,처벌을 위해 암모니우스를 자신에게 넘겨 줄 것을 요구하였다.톨레미가 이같이 한 이유는 그가 처벌해 줄 것을 기대하였기 때문이었다. [㈜ 이 사건은 마카비 1서 11 : 10에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톨레미가 “내가 그에게(알렉산더) 나의 딸을 준 것을 후회한다. 왜냐하면 피는 나를 죽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 암모니우스(Ammonius)는 디오도루스 xxxiii. 9에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 ll6) 그러나 알렉산더가 그를 넘겨 주기를 거부하자, 그는 자신에 대해 음모를 꾸였던 사람은 바로 알렉산더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에 대하여 매우 나쁜 감정을 가지게되었다. 이제 알렉산더는 암모니우스 때문에 안디옥 사람들의감정을 더 일찍 상하게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암모니우스의손에 많은 해악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모니우스는 수치스럽게도 거세당함으로써 자신의 무분별한 범죄들에 대한 응보를 받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곳에서 살펴본것처럼, 그는 여자의 옷으로 자신을 숨기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 요세푸스에는 그런 단락이 없다 ; 그는 그의 자료에서 형식을 가져왔다. 여자로 변장한 암모니우스의 이야기는 디오도루스, xxtxii. 10의 설명에 이상한 병행구를 가지고 있다. 디오판투스(Diophantus)의 딸 헤라이스(Herais)는 알렉산더가 달아났었던 아라비아에 살고 있었다<고대. 13권. (117)을 보라). 성의 신비로윤 변화를 겪은 헤라이스는 남장을 하여 기병으로 알렉산더와 같이 전투에 참가하였다. ]


     7. 톨레미 필로메토르가 데메트리우스 Ⅱ세(Demetrius B)를 위해 알렉산더 발라스를 버리다[마카비 1서 11


      [㈜ 고대. 13권. (121)에 나오는 딘락은 헬라적 자료에 기초하고 있다. 미록 마카비 1서 11 : 10~20에 약간의 병행구가 있기는 하다. ]


     톨레미는 자기 딸을 알렉산더와 결혼하도록 한 것과 데메트리우스에 대항하여 그와 동맹을 맺고 있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고는 그와의 인연을 끊었다. 그리하여 자기 딸을 그로부터 빼낸 후에 신속하게 데메트리우스에게 사람을 보내어 우호 동맹을 제안하였고 그에게 자기 딸을 아내로 줄 것과 그의 부친의 권좌를 찾도록 해 둘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자 데메트리우스는 그의 특사들을 통해 전달받은 그 제안을 기쁘게 여기면서그 동맹과 결혼을 승낙하였다. 그러나 톨레미에게는 한가지 어려운 일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것은 데메트리우스를 받아 주도록 안디옥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부친 데메트리우스가 자신들에게 범했던 불법 적인 행동들로인하여 데메트리우스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기때문이었다. 그러나 톨레미는 이일 역시도 성취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안디옥 사람들은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 13권. (108)에. ] 암모니우스로 인하여 알렉산더를 미워하여 그를 안디옥에서 몰아내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알렉산더는 안디옥에서 쫓겨나가게 되어 길리기아로 갔다. 톨레미가 안디옥 사람들에게로 오자마자, 그들과 그들의 군사들은 그를 왕으로 선포하였으며 그에게 두개의 왕관을(하나는 아시아의 왕관이며 다른 하나는 애굽의 왕관이었다) 쓸 것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착하고 정직하며 눈부신 번영을[㈜ 다른 본문에는 “다른 사람들의 소유물의. “] 열망하지 아니하며 또한 미래를 예측하는데 능숙한 그는 로마인들에 게 자기를 미워하는 어떤 빌미를 제공하게 될까봐 드러나는 일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안디옥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는, 한일 그들이 데메트리우스를 순수히 받아 준다면 데메트리우스도 자기 아버지로 인한어떤 원한도 그들에게 갖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데메트리우스를 받아 주도록 그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데메트리우스에 게 좋은 상담자요 안내자가 될 것임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는, 만일 데메트리우스가 어떤 좋지 않은 행동들을 하려 한다면 자신은 그가 그런 행동들을 하는 것을 허용치 않겠노라고 약속하였다. 자신으로서는 애굽의 왕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말들로 그는 안디옥 사람들이 데메트리우스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였던 것이다.


    8. 톨레미 필로메토르와 알렉산더 발라스의 죽음


    한편, 큰 군대와 많은 보급 물자를 가지고 길리기아에서 수리아로[㈜ 주전 145년에 ; 참). 고대 13권. (119) 각주 124와 Bevan,’Ptol. ‘p. 305 n. 1. ] 출발한 알렉산더는 안디옥 사람들의 영토를 불지르고약탈하였다. 그 때문에 톨레미는 자기 사위인 데메트리우스(왜냐하면 그는 이미 자기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기 때문이다)와 함께 알렉산더에 맞서 출병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알렉산더를 물리치고 그를 패퇴시켰다. [㈜ 안디옥(Antioch)의 평지에 있는 오에노파라스(Oenoparas)강에 : 참) Strabo, xvi. 751. ] 패한 그는 아라비아(Arabia)로 도망쳤다. 이 때 그 전투에서 톨레미의 말이 코끼리가 지르는 나팔소리 같은 소리를 듣고 놀라 날뛰는 바람에 톨레미가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적들이 이를 보고 그에게로 달려들어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그를 죽이지는 못하고 머리에 크고작은 부상을 입혔다. 그의 호위병들이 그들의 손에서부티 그를구해냈을 때, 그는 너무나 심각한 상태여서 4일 동안이나 의식을 회복하지도 못했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아람인들의 우두머리인 자베일루스(Zabeilus)가[㈜ 그는 마카비 1서 11 : 17에서 삽디엘(Zabdiel)로 불리운다. 디오도루스 (Diodorus), xxxii. 9에 의하면 알렉산더는 그의 관리 두 사람 즉 헬리아데스(Hellades)와 카시우 스(Casius)라는 사람을 살해했다. 더구나 디오도스는 애굽족장 디오클레스(Dlocles)로 불리 운다. ] 알렉산더의머리를 베어서 그것을 톨레미에게 보내왔다. 톨레미는 제5일째에 그의 상처로부터 회복되었는데, 그가 의식을 되찾은 날이 바 로 알렉산더의 즉음의 소식을 듣고 그의 머리를 본 그날이었다 -이것은 그가 보고 들은 일들 중에서 가장 유쾌한 것이었다. 그 러나 알렉산더의 죽음으로 크게 기뻐한 지 며칠 후에 그도 곧바로 죽었다. 발라스(Balas)라고도[㈜ 그림(Grimm)은 마카비 1서 10 : 1에 대해서 흐리고 쉬러(Schurerr), i. 227 주 11은 Strabo, xvi. 251에서는 그를 알렉산더 발라스(Alexander Balas)라고 부른 것을 지적한다 참). 유스티누스(Justlnus) xxxv. 1. 6. 분명하게 발라스(Baias)는 주어진 이름이었다 ; 추측컨대 신의 애칭인 아람어 바알(Ba’al)로부터 파생되었을것이다. ] 불리는 알렉산더(Alexan-der)는, 우리가 다른 곳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른 본문에는 “다른 곳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다른 역사가들의 작품들안에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세푸스 작품 안에는 그런 전후 참조(cross-reference)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번역서에 있는 읽기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요세푸스가 자신의 헬라적 자료에서 어구를 택했다고 가정 할 수 있다. ] 5년 동안[㈜ 공식적으로 주린 150년에서 145년까지. 마카비 1서는 셀류키드 왕극 167년째 해에 데메트리우스 Ⅱ세의 왕위게승이 있었고, 주전 146년 10월에서 145년 10월까지 계속되었다. ] 아시아의 왕(King of Asla)이었던 것이다


     9. 데메트리우스 Ⅱ세 니카토르(Demetrius Ⅱ Nicator)의 즉위[참). 마카비 1서 11 : 19]


    니카토르(Nicator)라고도[㈜ 추측적인 형태 : 여러 사본들에는 니카노르(Nicanor). 그의 (생략하지 않은)이름은 데메트리오스 데오스 니카토르 필라델포스(Demetrios Theos Nikator Philadelphos), 참), Bevan, ‘H. Sel. ‘ii. 223. ] 불리는 데메트리우스는 왕권을취한 이후, 사악하게도 톨레미 와 동맹을 맺은 사실과 톨레미가자신의 장인이며 자신과 클레오파트라와의 혼인을 통하여 그와관계를 맺은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톨레미의 군대들을 쳐부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그 군사들은 그의 공격을[㈜ 다른 본문에 는 와전 (訛傳)된 “악행 (villainy). “]피하여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도망하였다. 그러나 데메트리우스는코끼리떼를 전리품으로 획득하였다. 그러는 동안[㈜ 요세푸스는 여기에서 마카비 1서(11 : 20)에 대한 그의 부연을 요약하였다. ] 대제사장요나단은 유대(Judaea)로부터 군대를 모아서 예루살렘 안에 있는 성채를 포위 공격하였다. 그 성채는 마게도냐인 수비대와 자기들 나라의 풍속을 저 버 렸던 하느님을 공경 하지 아니 하는 몇 몇의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처음에는 성채를 점령하려는 요나단의 계획을 경시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곳의 저항능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그안에 있는 일부 하찰은 무리들이 야음을 틈타서 빠져나와 데메트리우스에게로 가서 그 성채가 공격당하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이러한 보고를 듣고 크게 진노한 그는 군대를 이끌고 요나단과 싸우기 위해 안디옥에서 출병하였다. 그가 톨레마이스에 이르렀을 때, 그는 요나단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곳에 있는 자기에게로 급히 오도록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요나단은 비록 그가 공격을 멈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금, 은, 의복들과 수많은 선물들을 가지고 백성의 장로들과 제사장들을 함께 데리고 데메트리우스에게로 갔다. 그가 이러한 선물들을 그에게 바쳤을 때, 왕의 진노는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그리하여 왕으로부터 영예롭게 된그는 그 왕 이전의 왕들로부터 계속해서 자신이 대제사장임을인정 받아왔던 것처럼 자신의 대제사장직의 보유권을 확증받았다. 그리고 데메트리우스는 요나단을 비난하는 배교자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요나단이 자기에게 사마리아와 욥바와 갈릴리의 세 지역과 모든 유대 지역의 조세를 300달란트로 낮춰주도록 요청하였을 때,[㈜ 마카비 1서 11 : 28은 “요나단은 유대땅은 물른 사마리아에 속하는 세 지방에서 거두어 가는 조공을 면제해 달라고 왕에게 요청하고 그 대신 돈을 300달란트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 우리는 요세푸스가 읽었던 것처럼 고대. 13권. (127)(마카비 1서 11 : 34)에 인급된 “사마리티스(사마리아)의 세 관할구역” 즉 아파이레마(Aphairema), 롯다(Lydda)와 라마다임(Ramathaim)으로 읽어야 한다. 참). 고대. 13권. (50) 각주 56, 욥바(Joppa ; 고대 13권 에서는 베레아)그리고 갈릴리 (Galilee)는 요세푸스가 첨가한 것이다. ] 그는 그렇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이러한 모든 문제들에 관한 한 통의 편지를 주었다. 그 편지의 내용는 다음과 같았다


      요나단에게 보내는 데메트리우스 ll세의 편지[마카비 1서 11 : 30]


     “왕 데메트리우스가 형제 요나단과 유대 민족에게 문안하오. 우리는 그대에게, 내가 우리의 친족인 라스데네스에게[㈜ 라스데네스 크레탄은 추측컨 대 코엘레 수리아(Coele Syrla)의 총독일 것이다. ] 썼던편지의 사본을 보내오. 왜냐하면 그대로 하여금 그 핀지 안에 담긴 내용을 알게 하기 위함이오. ‘왕 데메트리우스는 아버지[㈜ 이 명예스런 명칭의 예는 고대. 12권. 3 : 4(148)을 보라] 라스테네스(Lasthenes)에게 문안합니다. 유대 민족이 우리에게 우호적이고 우리에 대한 그 의무들을 정확히 이행한 까닭에, 나는 그 선의에 대한 답례로 아파이레마(Aphairema),[㈜ 추측컨대 현재의 에트-타이베(e’-Taiyybeh)는 베델(Bethel)의 북동쪽 약 4마일 지점에 있으며, 요 11 : 54에 나오는 에브라임(Ephraim)과 같은 장소이다 : 참). 아벨(Abel),’GP. ‘ii. 135와 달만(Batman), p. 217. 또한 클라인 (Klein) , pp. 137~138. 이 장소의 더 오래된 이름은 달만(Batman)에 의하면 아프라( Afra)이다. ] 롯다(Lydda),[㈜ 후에는 디오스폴리스(Biospolis), 현재는 루드(Ludd), 야파(Jaffa)의 남동쪽  약 10마일과 모단(Modin)의 서쪽 6마일에 위치하며, 하스모네. 안(HasmDnaean) 통치자들이 태어난 곳이다. ] 그리고 라마다임 (Ramathaim),[㈜ 다른 본문에는 알마다임(Armathaim), 라마다(Ramatha). 현재는 랜티스(Rentis)      로서 룻다(Lydda)의 북동쪽 약 15마일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리마대 (Arimathaea)의 요셉(Joseph)의 고향이며 사무엘(Samuel)의 본고장이 기도 하     다. 참). 고대. 5권. 10 : 2(342). ] 이 세 구역을[㈜ 데메트리우스 I세(Demetrius Ⅰ )가 유대인에게 수여한 것. 참). 고대. 13권. (48).] 유대민족에게 선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지역들은 사마리아(Samaria)에서 취하였는데, 그곳들에 속한 지역들과 함께 유대에 합병되었던 곳입니다. 더구나[㈜ 다른 본문에는 “지금. “] 나 이전의 왕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로부터 무엇을 받았던지간에, 또그 왕들이 땅의 소산물과 나무의 열매들 그리고 우리에게 바쳤던 소금세와 왕실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바칠 의무가 있는 다른 것들로부터 무엇을 받았던지간에 -이 모든 것들을 면제해 줄것입니다. [㈜ 비슷한 면제를 데메트리우스 I세가 약속하였다. 고대. 13권. 2 : 3(48). 마지    막 구절 “이런      것들 중 아무0 것도 없다”는 요세푸스가 parabibasqhvsetai를 마카비 1서 11 : 36의 ajqethvsetai로 다소 수정함으로써 34-35절의 불완전성을 보완 하였다. 이 구절에는 데메트리우스 Ⅱ세가 기대한 지불에 대한 언급을 우리가 빠뜨렸다. ] 그리고 지금부티 언제까지나[㈜ 다른 본문에는 “또 장래에”. 채택된 본문은 마카비 1서와 일치한다. ] 이러한 것들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그들에게 불법으로 취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시들의 사본을 하나 작성해서 요나단에게 주어, 성전안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놓도록 하십시오. ‘”이상이 그 편지에 담긴 내용들이었다. 그리하여 데메트리우스는 평화가 찾아오고, 어떤 위험이나 전쟁의 공포가 없어진 것을 확신한 그는 자신의 군대를 해산시키고 그들의 봉급을 감하였다. [㈜ 지불에 대한 삭감은 마카비 1서에는 없다. ] 그러나 그레데 섬[㈜ 그레데(Crete)는 마카비 1서에 언급하고 있지 않다. ]과 다른 섬들에서 자신과 함께올라 왔었던 용병들에게만은 계속해서 그들의 봉급을 주었다. 따라서그는 더이상 어떠한 돈도 받지 못하게 된 군인들로부터 증오와 원망을 샀다. 그 반면에 그 앞의 왕들은 그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자신에게 충성하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만일 그들을 필요로 하는 일이 생겨난다면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도록 하기 위해서 심지어 평화스런 시기에도 똑같은 봉급을 그들에 게 계속 주어왔다. [㈜ 이전 구문은 마카비 1서 11 : 38 “그런데 그의 선왕시대부티 봉사해오던 군인들은 모두 그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의 부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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