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권 제 12장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 안티고누스를 유대 밖으로 추방하고, 수리아에 온 안토니에게 많은 돈을 보내 그의 환심을 얻었으며 안토니는 헤롯을 고소했던 내용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용과 안토니가 유대인들 때문에 두로인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에 대

 


제 12 장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 안티고누스를 유대 밖으로 추방하고, 수리아에 온 안토니에게 많은 돈을 보내 그의 환심을 얻었으며 안토니는 헤롯을 고소했던 내용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용과 안토니가 유대인들 때문에 두로인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에 대하여



 1. 헤롯이 안티고누스(Antigonus)를 격퇴함



  멘나이우스(Mennaeus)의 아들 톨레미(Ptolemy)는 군대를모은 적이 있으며 뇌물로 파비우스(Fabius)의 환심을 사려했던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 안티고누스를 그의 조국인 유대로 돌려보내 주었다. 톨레미가 그렇게 해준 것은 안티고누스와 친척 관계였기 때문이다.[㈜ 레바논(Lebanon)에 있는 칼키스(Chalcis)의 지도자 톨레미는 몇년 일찍 안티고누스(Antigonus)의 누이 알렉산드라(刃exandra)와 결혼을 하였다. 고대. 14권. 7 . 4(126).] 또한 카시우스가 두로의 군주로[㈜ tuvranno\”의 의미에 대해서는 고대. 13권 8 : 1(235) 주295를 보라.] 남겨두었던 마리온(Marion)도 안티고누스를 도와주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작은 후국(候國)들을 통해 지배되어온 수리아를 점령하는데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본문에는 \’청포로\’ : 이 인용은 전쟁. 1권. 12 .2(239)에 근거를 둔다.] 마리온은 접경지대인 갈릴리지역을 침공하여 성채(城砦)세 곳을 빼앗고 그곳에 수비대를 주둔시켰다. 그러나 헤롯도 이에 반격하여 마리온에게 빼앗긴 지역을 모두 탈환하였다.[㈜ 안토니(Antony)의 칙령에서 고대. 14권. 12 : 4(314)이하를 인용했다. 이것은 헤롯이 유대인의 지역에서 두로인(Tyrians)들을 완전히 추방하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렇지만 헤롯은 수리아 수비대를 정중하게 놓아주었으며 그들 중 일부에게는 두로 시에 대한 선의의 뜻으로 선물을 건네주기까지 하였다.[㈜ 전쟁. 1권. 12 2(238)은 더 솔직히 \’자신을 위해 시민들의 호응을 그리고 왕자(마리온, Marion)를 위해서는 그들의 증오를 얻으려고\’라고 말하고 있다.]  헤롯은 이와 같이 갈릴리 지역의 평정을 되찾은 후 안티고누스에게 대항하기 위해 군대를 출동시켰다. 안티고누스와 전투를 벌인 결과, 그를 격퇴시키고 유대땅의 경계를 더 이상 넘보지 못하도록 유대에서 몰아내어 버렸다.[㈜ \’전쟁사\’는 전투의 장소에 대해서 불분명하다] 헤롯이 예루살렘에 당도하자, 힐카누스와 주민들은 그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었다.[㈜ 참). 전쟁. 1권. 12 : 3(240)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는 성공하여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이때 이미 헤롯과 힐누스의 가족은 혼인으로 맺어져 각별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이런 이유로 힐카누스는 헤롯을 더욱 옹호하였다. 사실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인 알렉산더의 딸이자 힐카누스의 손녀와[㈜ 이 사람은 마리암메(Mariamme)이다. 그녀는 전쟁.에 이름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헤롯의 결혼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이 결혼은 약 5년 후까지 거행되지 않았다. 고대. 14권. 15 : 14(467)을 보라 <전쟁. 1권. 17 : 8(344)와 같이 병행).] 막 결혼할 예정이었으며, 그는 그녀를 통해 세 아들과 두딸을[㈜ 세 아들은 알렉산더(Alexander),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Ⅲ], 그리고 유아로 죽었던 자였다 : 두 딸은 살람프시오(Salampsio)와 키프로스(Cypros)이다. 참). 전쟁. 1권. 22 : 2(435), 28 : 6(566)과 고대. 18권. 5\’4(130).] 둔 아버지가 되게 된다. 헤롯은 그전에 이미 신분이 낮은 그의 동족[㈜ 아마도 우리는 ejk tou\’ e[qnou\” 헤롯의 나라, 이두매인들이라기보다는 \'(유대)나라의\’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전쟁. 1권. 12 : 73(241)에서 도리스(Doris)를 \’구별된 태생\’으로 말하고 있으며, 친젱. 1권. (432)에서 그녀는 \’예루살렘 태생\’이라고 부르고 있다. 후자의 진술은 오토(Otto),\’Herodes\’, p. 23 주에 의해 의심을 받고 있다.] 여자인 도리스(Doris)와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그의 장자인 안티 파테르(Antipater)를 두고 있었다.



2. 안토니(M. Antony)가 아시아에서 헤롯과 힐카누스에게 호의를 보임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였듯이[㈜ 다른 사본에는 마지막 절이 빠져 있다.] 안토니와 가이사는[㈜ 어린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Gnaeus Octavius)는 공식적으로 주전 43년 8월에 율리우스 가이사(Julius Caesar)의 후계자로 인정이 되었다. 이때 이후로 이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가이사 옥타비아누스(Gaius Jullus Caesar Octavianus)였다. 후에, 주전 27년 그는 아구스도(Augustus)라는 별칭을 사용하였다.] 카시우스를 빌립보(Philippi)에서 격퇴시켰다.[㈜ 마게도냐에서 주전 42년 10월.]  이 전투에서 승리한 뒤 가이사는 이달리야(Italy)로[㈜ \’Italy\’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되며, \’전쟁사\’사본들에는 \’골(Gaul )\’로 나온다. 전자가 역사적으로 옳은 것이다.] 진격한 반면, 안토니는 아시아를[㈜ 안토니(Antony)는 주전 41년 봄에 소아시아에 있었다. 그의 활동에 대해서는 Plutarch, \’고대사\’, 24와 Appian,\’Bella Civilia\’4권 그리고 Bio Cassius xlviii. 24를 보라.] 향해 출발하였다. 안토니가 비두니아(Bithynia)에 당도하자 사방에서 그에게 사절들이 몰려왔다. 유대인 유력 인사들도 역시 파사엘과 헤롯을 고발하기 위해 그곳에 참석하였다. 그들은 외견상 힐카누스(Hyrcanus)가 유대를 통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헤롯이 전권을 쥐고 있다고 고발했다. 그러나 안토니로부터 무척 총애받고 있던 헤롯이[㈜ 전쟁.에는 이 항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안토니(Antony)와 헤롯의 아버지와의 우정에 대해서는 고대. 14권. 13 : 1(326)<전쟁. 1권. 12 : 5(244)의 병행 본문>을 보라.] 그의 고발자들의 비난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고 오자, 유대인 유력인사들과 주민들은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였다. 그것은 이미 헤롯이 돈으로 안토니의 마음을 돌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대 14권. 12 2-6(304-323)에는 전쟁. 과 병행절이 없음.] 안토니가  에베소(Ephesus)에 도착하자, 대제사장 힐카누스와 유대인들은 그에게 사절을 보내 금관을 예물로 바치고, 카시우스에게 전쟁 규칙에 위반되게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을 석방시킬것과 총독들에게 서신을 보내 카시우스 통치 때에 빼앗긴 유대영토를 반환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고대, 14권. 12 . 1(297),] 안토니는 유대인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판단하여 곧바로 힐카누스와 유대인에게 회신을 띄웠다. 또한 두로인들에게도 똑같은 취지의[㈜ 다른 사본들의 \’이것들을 포함하는\’에 서 추정된 본문임.] 법률을 보냈다. [㈜ 두 개의 법령은 고대. 14권. 12 : 4(314) 이하, 12 : 5(319) 이하에 인용된 것이다.]



 3.힐카누스와 유대인들에게 두로에서의 특권을 부여한 안토니의 서신



  [㈜ 다음의 법령에 대한 간단한 토론은 부록에 있는 작품들을 보라.]



  \’황제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Narcos Antonius)는 대제사장이요 통치자인 힐카누스와 유대국에[㈜ P사본과 동일. 나머지 사본들은 \’대제사장과 유대인의 통치자였던 힐카누스에게\’] 문안하노라. 그대가 건강하기를 바라노라. 나 또한 건강하며 나의 군대도 평안하노라. 그대의 사신인 파우사니아스(Pausanias)의 아들 리시마쿠스(Lysimachus)와 멘나이우스(Mennaeus)의 아들 요세푸스   (Josephus)와 데오도루스(Theodorus)의 아들 알렉산더(AleXander)를 에베소에서 만났노라.[㈜ 이 사람들 중 리시마쿠스(Lysimachus)와 알렉산더 두 사람은 고대. 14권. 10 : 10(219)에 힐카누스가 로마로 보낸 사신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들은 로마에서 전부터 수   행해 왔던 사명을 새롭게 하였고 그대와 유대국을 대신하여 그들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으며 그대가 우리에게 가진 호의를분명히 알 수 있었노라. 말과 행위를 통해 그대가 우리와 가장 절친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그대가 정중하고도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그대의 관심사를 나의 것으로 여기겠노노라.[㈜ 본문은 모호하고 완전치 않은 것 같다. 이 문장의 후반부는 원래 \’나는 당신이 카시우스(Cassius)의 손에 상해를 담했다는 소식을 들고 염려하였다\’등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적들과 로마인의 적들이 전 아시아를 침략하여  그들이 맹세로 세운 언약을 깨고 함부로 도시나 성전을 훼손할 경우에는, 우리뿐 아니라 전 인류에 대한 적대 행위로 간주하여 인간에 대한 야만적 행위이자 신에 대한 반역을 저지른 그들을결코 내버려두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노라. 가이사에 대한 악랄한 행위를 견디지 못하였듯이, 그와 같은 죄악을 보지 않으려고태양도 고개를 돌렸음을 알고 있노라.[㈜ 수사학적인 한 부분은 드예스데스(Thyestes) 또는 아트류스(Atreus)에 대한 소포클레스(Sophocles)의 잃어버린 작품에서 끌어낸 단락에 근거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드예스테스가 자기 아들을 위해 축연을 베풀고 있을 때의 태양의 움직임을 묘사하고 있다. 참). 세네카(Seneca),\’Thyestes\’, 775 이하와 히기누스(Hyginus),\’Fabulae\’88, \’ad id scelus etiam sol cursum avertit\’] 그러나 이번에는 마치 그들의 풍토가 그들의 불경한 죄악에 걸맞다는 듯이, 마게도냐(Macedonia)가 이 무서운 음모를 이어 받았노라. 반쯤 미친 악한 폭도들은 마게도냐의 빌립보에 모여, 거기서[㈜ 본문은 약간 확실치 않다.]  천연적으로지형이 유리하며 산으로부터 바다까지 둘러싸여 있는 지역을 점령하였다. 그래서 단지 하나의 성문으로만[㈜ 다른 본문에는 \’전체 통로\’.] 통행이[㈜ 장소에 대한 다소 다른 묘사는 아피안(Appian),\’Bell. civ.\’iv. 105-106에 나온다] 가능하게 하였노라. 신은 그들의 왜곡된 열정을 보고 이 음모와 폭도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으니, 로마가 그들을 제압하였노라. 이 때빌립보까지 도망을 친 브루투스도 우리에게 포위당해 카시우스와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노라. 이제 그들이 형벌을 받아 멸망하였으니 우리는 앞으로 계속 평화를 누리며 아시아에서는 전쟁의 소요가 일어나지 않기를 원하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신께서 내려주신 이 평화를 우리의 모든 우방과 함께 나누려 하노라.우리의 승리로 인하여 이제 아시아가 깊은 전쟁의 상처로부터회복되고 있으니 나는 그대와 유대국의 번영을 위해 그대의 관심사를 돌아 보겠노라. 나는 여러 도시에 나의 친서를 보내 자유인이든 노예이든 간에 카시우스나 그의 부하에 의해 경매되어[㈜ 본문의 헬라어는 라틴 관용어 sub hasta venire와 가깝다.] 팔려간 사람을 모두 해방시키도록 하겠노라. 나는 그대가  나와 돌라벨라(Dolabella)가 베푼 특권을 잘 이용하기 바라노  라.[㈜ 고대. 15권. 10 : 9(217) 이하, 10 : 11(224) 이하를 보라.] 그리고 두로인들에도 유대인들에게 폭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그들이 가진 유대인의 소유는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유대인에게 되돌려 주도록 명령하였노라. 그대가 보낸 금  관은 기쁘게 받았음을 밝히노라.\’



 4. 안토니가 유대인의 권익을 위해 두로에 편지함



   \’황제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두로의 행정장관들과 의회와 주민들에게 문안하노라. 유대의 대제사장이요 통치자인 힐카누스의 사신들이 에베소에 들러 그대들이 우리의 적들이 지배하고 있는[㈜ 본문이 다소 불명확하다.] 동안 유대땅을 침입하여 강제로 빼앗은 영토를 아직까 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고대. 14권. 12 : 1(297-298).] 알렸노라.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의 통치권을 장악하기 위해, 그리고 정의와 경건의 정신이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베푼 은혜를 저버린 자들과 굳은 맹세를 지킬 줄 모르는 자들에게 응분의 댓가를 지불하려 고 전쟁을 벌여 왔음을 그대들도 잘 알 줄 믿노라. 따라서 나는그대들이 우리의 우방들과[㈜ \’동맹\’ (summavcoi\”)이 라는 단어를 너무 신중하게 이해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유대는 실제로 로마 제국 안에 있는 속국이기 때문이다.] 평화를 유지하기 원하며 로마의 적들로부터 받은 것들을 소유하지 말고 빼앗았던 것은 원래의소유자에게 되돌려주기 바라노라. 왜냐하면 그들이[㈜ 브루투스(Brutus)와 카시우스(Cassius)의 일행.] 땅이나 군대를 원로원의 선물로 하사받은 것이 아니라 무력으로 쟁취하였으며, 부당한 행동을 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자들에게 무력으로 빼앗은 것들을 선물로 증정하였기 때문이니라. 이제 로마의적들은 마땅한 벌을 받았으니 우리 로마의 우방들은 원래의 소유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대들은 유대 지배자 힐카누스의 소유 중 그대들이 지금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가이우스 카시우스(Gai-us Cassius)가 부당한 전쟁을 일으켜 우리의[㈜ hjmwn, 즉 \’우리의\’에 대해서 라이나흐(Reiruch)는 ujmw\’n \’당신의\’으로 추측하는데, 그 근거로는 수리아가 안토니(Antony)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의\’는 돌라벨라(Dolabella)가 대표했던 가이사랴 당을 언급한 것 같다. 고대. 14권. 11 : 6(289) 주 466.] 영토를 침범하기 전 힐카누스가 단 하루동안 소유했던 땅이라 할지라도 즉각돌려 주도록 하라. 그대들은 유대가 그들의 소유를 관리할 수 없도록 무력을 써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하라. 그러나 만 일 그대들이 소유권에 관련된 문제로 힐카누스에 대해 탄원할 것이 있을 경우에는 우리가 그곳에 당도할 때에 그대들의 주장을 펴도록 하라. 우리는 모든 우방들의 권익을 존중할 것이며 판단에 있어서 공평성을 잃지 않겠노라\’.



 5. 안토니가 두로인들에게 보낸 서신



   \’황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두로의 행정장관과 의회와 주민들에게 문안하노라. 내가 그대들에게 칙령을 보내노니 라틴어와 헬라어로 공공 명판에 잘 기록하여서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가장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놓아두도록 하라. 황제요 세 집정관중의 한 명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공화국에 선포하노라.[㈜ 여기 헬라어는 라틴어 형태 trlumviratus lei publicae constituendae <이 구절은 마기(Magie) p.100의 언급이 없음>를 번역한 것이다.] 가이우스 카시우스가 반란을 도모하여 남의 영토를 빼앗고[㈜ 본문은 약간 수정된 것이다.] 무력으로 점령하여서 우리의 동맹국에게[㈜ 본문이 다소 불확실하고 완전치 못한 것같다.] 약탈을 일삼던 중로마인의 친구인 유대국의 땅을 빼앗았도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광기를 군대가 동원하여 진압하였고 칙령을 내려 질서를 확립하고 사법적 결정을 통해 우리의 동맹국들이 빼앗긴 것을 되찾도록 하였노라. 그러므로 그대들도 우리의 뜻을 따라 유대인의 소유는 그것이 사람이든지 재산이든지 원상태로 되돌려 주도록 하라. 노예가 된 자는 옛날처럼 자유인이 되도록 하고, 재산은 원래의 소유자에게 돌려주도록 하라. 나의 이 칙령을 어기는 자는 법정에 보내질 것이며 만일 죄가 있다고 판명될 때에는 그  행위의 경중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라.\’



 6. 시돈과 안디옥(Antioch)과 아라두스(Aradus)에 대한 편지



  안토니는 동일한 내용의 칙령을 시돈과 안디옥과 아라두스의주민들에게도 내렸다.[㈜  다른 본문 \’아람인들(the Arabs) \’은 필사자의 실수이다.] 이제까지 이 문서들을 열거한 것은 로마인들이 유대국에 보여준 지대한 관심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이것들이 가장 좋은 증거 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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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권 제 12장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 안티고누스를 유대 밖으로 추방하고, 수리아에 온 안토니에게 많은 돈을 보내 그의 환심을 얻었으며 안토니는 헤롯을 고소했던 내용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용과 안토니가 유대인들 때문에 두로인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에 대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12 장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 안티고누스를 유대 밖으로 추방하고, 수리아에 온 안토니에게 많은 돈을 보내 그의 환심을 얻었으며 안토니는 헤롯을 고소했던 내용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용과 안토니가 유대인들 때문에 두로인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에 대하여


     1. 헤롯이 안티고누스(Antigonus)를 격퇴함


      멘나이우스(Mennaeus)의 아들 톨레미(Ptolemy)는 군대를모은 적이 있으며 뇌물로 파비우스(Fabius)의 환심을 사려했던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 안티고누스를 그의 조국인 유대로 돌려보내 주었다. 톨레미가 그렇게 해준 것은 안티고누스와 친척 관계였기 때문이다.[㈜ 레바논(Lebanon)에 있는 칼키스(Chalcis)의 지도자 톨레미는 몇년 일찍 안티고누스(Antigonus)의 누이 알렉산드라(刃exandra)와 결혼을 하였다. 고대. 14권. 7 . 4(126).] 또한 카시우스가 두로의 군주로[㈜ tuvranno”의 의미에 대해서는 고대. 13권 8 : 1(235) 주295를 보라.] 남겨두었던 마리온(Marion)도 안티고누스를 도와주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작은 후국(候國)들을 통해 지배되어온 수리아를 점령하는데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본문에는 ‘청포로’ : 이 인용은 전쟁. 1권. 12 .2(239)에 근거를 둔다.] 마리온은 접경지대인 갈릴리지역을 침공하여 성채(城砦)세 곳을 빼앗고 그곳에 수비대를 주둔시켰다. 그러나 헤롯도 이에 반격하여 마리온에게 빼앗긴 지역을 모두 탈환하였다.[㈜ 안토니(Antony)의 칙령에서 고대. 14권. 12 : 4(314)이하를 인용했다. 이것은 헤롯이 유대인의 지역에서 두로인(Tyrians)들을 완전히 추방하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렇지만 헤롯은 수리아 수비대를 정중하게 놓아주었으며 그들 중 일부에게는 두로 시에 대한 선의의 뜻으로 선물을 건네주기까지 하였다.[㈜ 전쟁. 1권. 12 2(238)은 더 솔직히 ‘자신을 위해 시민들의 호응을 그리고 왕자(마리온, Marion)를 위해서는 그들의 증오를 얻으려고’라고 말하고 있다.]  헤롯은 이와 같이 갈릴리 지역의 평정을 되찾은 후 안티고누스에게 대항하기 위해 군대를 출동시켰다. 안티고누스와 전투를 벌인 결과, 그를 격퇴시키고 유대땅의 경계를 더 이상 넘보지 못하도록 유대에서 몰아내어 버렸다.[㈜ ‘전쟁사’는 전투의 장소에 대해서 불분명하다] 헤롯이 예루살렘에 당도하자, 힐카누스와 주민들은 그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었다.[㈜ 참). 전쟁. 1권. 12 : 3(240)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는 성공하여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이때 이미 헤롯과 힐누스의 가족은 혼인으로 맺어져 각별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이런 이유로 힐카누스는 헤롯을 더욱 옹호하였다. 사실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인 알렉산더의 딸이자 힐카누스의 손녀와[㈜ 이 사람은 마리암메(Mariamme)이다. 그녀는 전쟁.에 이름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헤롯의 결혼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이 결혼은 약 5년 후까지 거행되지 않았다. 고대. 14권. 15 : 14(467)을 보라 <전쟁. 1권. 17 : 8(344)와 같이 병행).] 막 결혼할 예정이었으며, 그는 그녀를 통해 세 아들과 두딸을[㈜ 세 아들은 알렉산더(Alexander),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Ⅲ], 그리고 유아로 죽었던 자였다 : 두 딸은 살람프시오(Salampsio)와 키프로스(Cypros)이다. 참). 전쟁. 1권. 22 : 2(435), 28 : 6(566)과 고대. 18권. 5’4(130).] 둔 아버지가 되게 된다. 헤롯은 그전에 이미 신분이 낮은 그의 동족[㈜ 아마도 우리는 ejk tou’ e[qnou” 헤롯의 나라, 이두매인들이라기보다는 ‘(유대)나라의’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전쟁. 1권. 12 : 73(241)에서 도리스(Doris)를 ‘구별된 태생’으로 말하고 있으며, 친젱. 1권. (432)에서 그녀는 ‘예루살렘 태생’이라고 부르고 있다. 후자의 진술은 오토(Otto),’Herodes’, p. 23 주에 의해 의심을 받고 있다.] 여자인 도리스(Doris)와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그의 장자인 안티 파테르(Antipater)를 두고 있었다.


    2. 안토니(M. Antony)가 아시아에서 헤롯과 힐카누스에게 호의를 보임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였듯이[㈜ 다른 사본에는 마지막 절이 빠져 있다.] 안토니와 가이사는[㈜ 어린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Gnaeus Octavius)는 공식적으로 주전 43년 8월에 율리우스 가이사(Julius Caesar)의 후계자로 인정이 되었다. 이때 이후로 이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가이사 옥타비아누스(Gaius Jullus Caesar Octavianus)였다. 후에, 주전 27년 그는 아구스도(Augustus)라는 별칭을 사용하였다.] 카시우스를 빌립보(Philippi)에서 격퇴시켰다.[㈜ 마게도냐에서 주전 42년 10월.]  이 전투에서 승리한 뒤 가이사는 이달리야(Italy)로[㈜ ‘Italy’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되며, ‘전쟁사’사본들에는 ‘골(Gaul )’로 나온다. 전자가 역사적으로 옳은 것이다.] 진격한 반면, 안토니는 아시아를[㈜ 안토니(Antony)는 주전 41년 봄에 소아시아에 있었다. 그의 활동에 대해서는 Plutarch, ‘고대사’, 24와 Appian,’Bella Civilia’4권 그리고 Bio Cassius xlviii. 24를 보라.] 향해 출발하였다. 안토니가 비두니아(Bithynia)에 당도하자 사방에서 그에게 사절들이 몰려왔다. 유대인 유력 인사들도 역시 파사엘과 헤롯을 고발하기 위해 그곳에 참석하였다. 그들은 외견상 힐카누스(Hyrcanus)가 유대를 통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헤롯이 전권을 쥐고 있다고 고발했다. 그러나 안토니로부터 무척 총애받고 있던 헤롯이[㈜ 전쟁.에는 이 항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안토니(Antony)와 헤롯의 아버지와의 우정에 대해서는 고대. 14권. 13 : 1(326)<전쟁. 1권. 12 : 5(244)의 병행 본문>을 보라.] 그의 고발자들의 비난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고 오자, 유대인 유력인사들과 주민들은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였다. 그것은 이미 헤롯이 돈으로 안토니의 마음을 돌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대 14권. 12 2-6(304-323)에는 전쟁. 과 병행절이 없음.] 안토니가  에베소(Ephesus)에 도착하자, 대제사장 힐카누스와 유대인들은 그에게 사절을 보내 금관을 예물로 바치고, 카시우스에게 전쟁 규칙에 위반되게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을 석방시킬것과 총독들에게 서신을 보내 카시우스 통치 때에 빼앗긴 유대영토를 반환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고대, 14권. 12 . 1(297),] 안토니는 유대인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판단하여 곧바로 힐카누스와 유대인에게 회신을 띄웠다. 또한 두로인들에게도 똑같은 취지의[㈜ 다른 사본들의 ‘이것들을 포함하는’에 서 추정된 본문임.] 법률을 보냈다. [㈜ 두 개의 법령은 고대. 14권. 12 : 4(314) 이하, 12 : 5(319) 이하에 인용된 것이다.]


     3.힐카누스와 유대인들에게 두로에서의 특권을 부여한 안토니의 서신


      [㈜ 다음의 법령에 대한 간단한 토론은 부록에 있는 작품들을 보라.]


      ‘황제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Narcos Antonius)는 대제사장이요 통치자인 힐카누스와 유대국에[㈜ P사본과 동일. 나머지 사본들은 ‘대제사장과 유대인의 통치자였던 힐카누스에게’] 문안하노라. 그대가 건강하기를 바라노라. 나 또한 건강하며 나의 군대도 평안하노라. 그대의 사신인 파우사니아스(Pausanias)의 아들 리시마쿠스(Lysimachus)와 멘나이우스(Mennaeus)의 아들 요세푸스   (Josephus)와 데오도루스(Theodorus)의 아들 알렉산더(AleXander)를 에베소에서 만났노라.[㈜ 이 사람들 중 리시마쿠스(Lysimachus)와 알렉산더 두 사람은 고대. 14권. 10 : 10(219)에 힐카누스가 로마로 보낸 사신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들은 로마에서 전부터 수   행해 왔던 사명을 새롭게 하였고 그대와 유대국을 대신하여 그들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으며 그대가 우리에게 가진 호의를분명히 알 수 있었노라. 말과 행위를 통해 그대가 우리와 가장 절친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그대가 정중하고도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그대의 관심사를 나의 것으로 여기겠노노라.[㈜ 본문은 모호하고 완전치 않은 것 같다. 이 문장의 후반부는 원래 ‘나는 당신이 카시우스(Cassius)의 손에 상해를 담했다는 소식을 들고 염려하였다’등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적들과 로마인의 적들이 전 아시아를 침략하여  그들이 맹세로 세운 언약을 깨고 함부로 도시나 성전을 훼손할 경우에는, 우리뿐 아니라 전 인류에 대한 적대 행위로 간주하여 인간에 대한 야만적 행위이자 신에 대한 반역을 저지른 그들을결코 내버려두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노라. 가이사에 대한 악랄한 행위를 견디지 못하였듯이, 그와 같은 죄악을 보지 않으려고태양도 고개를 돌렸음을 알고 있노라.[㈜ 수사학적인 한 부분은 드예스데스(Thyestes) 또는 아트류스(Atreus)에 대한 소포클레스(Sophocles)의 잃어버린 작품에서 끌어낸 단락에 근거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드예스테스가 자기 아들을 위해 축연을 베풀고 있을 때의 태양의 움직임을 묘사하고 있다. 참). 세네카(Seneca),’Thyestes’, 775 이하와 히기누스(Hyginus),’Fabulae’88, ‘ad id scelus etiam sol cursum avertit’] 그러나 이번에는 마치 그들의 풍토가 그들의 불경한 죄악에 걸맞다는 듯이, 마게도냐(Macedonia)가 이 무서운 음모를 이어 받았노라. 반쯤 미친 악한 폭도들은 마게도냐의 빌립보에 모여, 거기서[㈜ 본문은 약간 확실치 않다.]  천연적으로지형이 유리하며 산으로부터 바다까지 둘러싸여 있는 지역을 점령하였다. 그래서 단지 하나의 성문으로만[㈜ 다른 본문에는 ‘전체 통로’.] 통행이[㈜ 장소에 대한 다소 다른 묘사는 아피안(Appian),’Bell. civ.’iv. 105-106에 나온다] 가능하게 하였노라. 신은 그들의 왜곡된 열정을 보고 이 음모와 폭도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으니, 로마가 그들을 제압하였노라. 이 때빌립보까지 도망을 친 브루투스도 우리에게 포위당해 카시우스와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노라. 이제 그들이 형벌을 받아 멸망하였으니 우리는 앞으로 계속 평화를 누리며 아시아에서는 전쟁의 소요가 일어나지 않기를 원하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신께서 내려주신 이 평화를 우리의 모든 우방과 함께 나누려 하노라.우리의 승리로 인하여 이제 아시아가 깊은 전쟁의 상처로부터회복되고 있으니 나는 그대와 유대국의 번영을 위해 그대의 관심사를 돌아 보겠노라. 나는 여러 도시에 나의 친서를 보내 자유인이든 노예이든 간에 카시우스나 그의 부하에 의해 경매되어[㈜ 본문의 헬라어는 라틴 관용어 sub hasta venire와 가깝다.] 팔려간 사람을 모두 해방시키도록 하겠노라. 나는 그대가  나와 돌라벨라(Dolabella)가 베푼 특권을 잘 이용하기 바라노  라.[㈜ 고대. 15권. 10 : 9(217) 이하, 10 : 11(224) 이하를 보라.] 그리고 두로인들에도 유대인들에게 폭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그들이 가진 유대인의 소유는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유대인에게 되돌려 주도록 명령하였노라. 그대가 보낸 금  관은 기쁘게 받았음을 밝히노라.’


     4. 안토니가 유대인의 권익을 위해 두로에 편지함


       ‘황제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두로의 행정장관들과 의회와 주민들에게 문안하노라. 유대의 대제사장이요 통치자인 힐카누스의 사신들이 에베소에 들러 그대들이 우리의 적들이 지배하고 있는[㈜ 본문이 다소 불명확하다.] 동안 유대땅을 침입하여 강제로 빼앗은 영토를 아직까 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고대. 14권. 12 : 1(297-298).] 알렸노라.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의 통치권을 장악하기 위해, 그리고 정의와 경건의 정신이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베푼 은혜를 저버린 자들과 굳은 맹세를 지킬 줄 모르는 자들에게 응분의 댓가를 지불하려 고 전쟁을 벌여 왔음을 그대들도 잘 알 줄 믿노라. 따라서 나는그대들이 우리의 우방들과[㈜ ‘동맹’ (summavcoi”)이 라는 단어를 너무 신중하게 이해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유대는 실제로 로마 제국 안에 있는 속국이기 때문이다.] 평화를 유지하기 원하며 로마의 적들로부터 받은 것들을 소유하지 말고 빼앗았던 것은 원래의소유자에게 되돌려주기 바라노라. 왜냐하면 그들이[㈜ 브루투스(Brutus)와 카시우스(Cassius)의 일행.] 땅이나 군대를 원로원의 선물로 하사받은 것이 아니라 무력으로 쟁취하였으며, 부당한 행동을 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자들에게 무력으로 빼앗은 것들을 선물로 증정하였기 때문이니라. 이제 로마의적들은 마땅한 벌을 받았으니 우리 로마의 우방들은 원래의 소유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대들은 유대 지배자 힐카누스의 소유 중 그대들이 지금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가이우스 카시우스(Gai-us Cassius)가 부당한 전쟁을 일으켜 우리의[㈜ hjmwn, 즉 ‘우리의’에 대해서 라이나흐(Reiruch)는 ujmw’n ‘당신의’으로 추측하는데, 그 근거로는 수리아가 안토니(Antony)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의’는 돌라벨라(Dolabella)가 대표했던 가이사랴 당을 언급한 것 같다. 고대. 14권. 11 : 6(289) 주 466.] 영토를 침범하기 전 힐카누스가 단 하루동안 소유했던 땅이라 할지라도 즉각돌려 주도록 하라. 그대들은 유대가 그들의 소유를 관리할 수 없도록 무력을 써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하라. 그러나 만 일 그대들이 소유권에 관련된 문제로 힐카누스에 대해 탄원할 것이 있을 경우에는 우리가 그곳에 당도할 때에 그대들의 주장을 펴도록 하라. 우리는 모든 우방들의 권익을 존중할 것이며 판단에 있어서 공평성을 잃지 않겠노라’.


     5. 안토니가 두로인들에게 보낸 서신


       ‘황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두로의 행정장관과 의회와 주민들에게 문안하노라. 내가 그대들에게 칙령을 보내노니 라틴어와 헬라어로 공공 명판에 잘 기록하여서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가장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놓아두도록 하라. 황제요 세 집정관중의 한 명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공화국에 선포하노라.[㈜ 여기 헬라어는 라틴어 형태 trlumviratus lei publicae constituendae <이 구절은 마기(Magie) p.100의 언급이 없음>를 번역한 것이다.] 가이우스 카시우스가 반란을 도모하여 남의 영토를 빼앗고[㈜ 본문은 약간 수정된 것이다.] 무력으로 점령하여서 우리의 동맹국에게[㈜ 본문이 다소 불확실하고 완전치 못한 것같다.] 약탈을 일삼던 중로마인의 친구인 유대국의 땅을 빼앗았도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광기를 군대가 동원하여 진압하였고 칙령을 내려 질서를 확립하고 사법적 결정을 통해 우리의 동맹국들이 빼앗긴 것을 되찾도록 하였노라. 그러므로 그대들도 우리의 뜻을 따라 유대인의 소유는 그것이 사람이든지 재산이든지 원상태로 되돌려 주도록 하라. 노예가 된 자는 옛날처럼 자유인이 되도록 하고, 재산은 원래의 소유자에게 돌려주도록 하라. 나의 이 칙령을 어기는 자는 법정에 보내질 것이며 만일 죄가 있다고 판명될 때에는 그  행위의 경중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라.’


     6. 시돈과 안디옥(Antioch)과 아라두스(Aradus)에 대한 편지


      안토니는 동일한 내용의 칙령을 시돈과 안디옥과 아라두스의주민들에게도 내렸다.[㈜  다른 본문 ‘아람인들(the Arabs) ‘은 필사자의 실수이다.] 이제까지 이 문서들을 열거한 것은 로마인들이 유대국에 보여준 지대한 관심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이것들이 가장 좋은 증거 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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