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권 제 12장 파사엘이 벨릭스를 상대로 싸우기에는 너무 힘들었고 헤롯도 안티고누스를 꺾기엔 힘들었던 것과 유대인들이 헤롯과 파사엘을 고소했으나 안토니가 그들을 방면하여 분봉왕으로 세우게 된 것에 대하여

 


제 12장



파사엘이 벨릭스를 상대로 싸우기에는 너무 힘들었고 헤롯도 안티고누스를 꺾기엔 힘들었던 것과 유대인들이 헤롯과 파사엘을 고소했으나 안토니가 그들을 방면하여 분봉왕으로 세우게 된 것에 대하여



 1. 헬릭스의 반란 [주전 42년]



 카시우스가 수리아에서 나왔을 때 예루살렘에서는 또 하나의 소요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헬릭스(Helix)가 헤롯의 형인 파사엘(Phasael)을 군대로 공격하여 말리쿠스를 죽인 헤롯에게 보복하려는 것이었다. 이때 헤롯은 다메섹의 총독인 파비우스(Fabius)와 함께 있었는데 형을 도우려 하였지만 병으로 지연되었다. 한편 파사엘은 스스로 헬릭스에게 강하게 저항했으며힐카누스가 자신에 대해 무심함을 비난했다. 왜냐하면 힐카누스가 말리쿠스를 도와주더니 말리쿠스의 형제인 헬릭스가 요새를 장악하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었다. 헬릭스는 이미 많은 요새들을 점령했으며 이 요새들 가운데는 가장 강했던 마사다(mas-ada)요새도 들어 있었다.



2. 헤롯이 그의 적들을 물리침



 그러나 헤롯의 군대에 대항해서 헬릭스가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헤롯은 병에서 회복되자마자 요새들을 다시 탈환했으며헬릭스는 마사다에서 쫓겨나 목숨을 부지하려고 애쓰는 형편이되어 버렸다. 헤롯은 또한 두로의 압제자였던 마리온(Marion)을 갈릴리로부터 축출하고 세 곳의 요처를 장악했다. 그러나 헤롯은 포로로 잡은 두로인들을 모두 살려두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중 일부에게는 선물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돌려보내기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두로 사람들에게 헤롯은 큰 호감을 얻게 되었고 마리온은 미움을 받게 되었다. 실로 마리온은 온 수리아를 공국(principality)으로 나눈 카시우스에게서 권력을 부여받은 인물이었다. 헤롯에 대한 미움 때문에 마리온은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인 안티고누스를 원조했는데[㈜ 참). 전쟁. 1권. 8 :6 (173).] 이는 또 파비우스 때문이기도 하였다. 안티고누스는 파비우스를 돈으로 매수해서 자신의 지원자로 만들었으며 자신이 공격할 때 자기 편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안티고누스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 준사람은 안티고누스의 친척인[㈜ 전쟁.1권. 9 : 2(186)] 톨레미(Ptolemy)였다.



3. [헤롯이 예루살렘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음]



 헤롯이 유대 길목에서 이들과 접전하여 승자가 되었다. 그리고 안티고누스를 격퇴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자신의 전공으로 인해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 헤롯이 힐카누스 가계와 혼인하게 되자 전에는 헤롯에게 호의를 갖고 있지 않던 자들이 이제는 헤롯을 지지하는 자들이 되었다. 전에 헤롯은 유대에서 무시할 수 없는 혈통을 지닌 도리스(Doris)라는 여자와 혼인했으며 그 사이에서 안티파테르(Antipater)를 낳았었다. 이제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인 알렉산더의 딸이며 힐카누스의 손녀인 마리암메(Mariamme)와 결혼했으며[㈜ 혹은 사실상 \’약혼했다\’의 뜻. 결혼 사실은 이후 전쟁. 1권. 17:8(344)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왕과[㈜ 힐카누스 (HyrcanusⅡ) Ⅱ세. 전쟁. 1권. 10 : 4(203)에 \”왕\”으로 호칭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인척관계가 된 것이다.



 4. 안토니는 유대인들의 고소를 듣고 헤롯과 파사엘을 유대의 분봉왕으로 임명함[주전 42 – 41년]



 가이사와 안토니가 빌립보(Philippi) 근처에서 카시우스를 죽인 후 가이사는 이달리야(Italy)로 갔으며 안토니는 아시아로가게 되었다. 많은 곳에서 온 사신들이 비두니아(Bithynia)에서안토니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들 가운데는 유대인 지도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파사엘과 헤롯을 고소하기를, 그들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했으며 힐카누스는 더 이상 명예스런 이름이 되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헤롯은 이런 고소에 변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안토니에게 거액의 돈을 줌으로 그를 매수하여 안토니가 다른 이들이 헤롯을 비난하는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게했으므로 유대의 유력자들은 그냥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5. [헤롯 형제들에 대한 안토니의 호의는 그 부친 안티파테르의 대접에 따른 보답임]



 그러나 이 이후에 100명의 유대 주요 인사들이 안디옥을 거쳐 다프네(Daphne)로 안토니(Antony)를 만나러 왔다. 안토니는이미 클레오파트라(Cleoparta)와 사랑에 빠져 그의 노예가 될 정도였다. 이 유대인들은 위엄이나 웅변에 있어서 가장 능력있는 자들이었는데 맨 먼저 헤롯 형제들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메살라(Messala)가[㈜ 기원전 약 70-3년의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는 카시우스(Cassius), 안토니(Anthony), 그리고 아구스도(Augustus)를 상대로 시민 전쟁에 참전했다. 작가이자 문학 애호가, 연설가, 호레이스(Horace)와 티불루스(Tibbulus)의 친구.] 이들의 주장을 반대하며 헤롯 형제들을 변호했다. 또 힐카누스도 메살라의 주장에 동조했는데 그는 헤롯과 인척관계 때문이었다. 안토니는 양측의 말들을 듣고 힐카누스에게 어떤 쪽이 다스리는데 가장 적합한지를 물었다. 힐카누스는 헤롯과 그의 무리가 다스리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대답했다. 안토니는 그 대답에 만족했는데 왜냐하면 안토니는 전에 헤롯의 부친 안티파테르에 의해 극진히 대접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접은 안토니가 가비니우스와 함께 유대를 침공했을 때 받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안토니는 그 형제들을 분봉왕에 임명하고 유대의 통치를 맡게 하였다.



 6. [안토니는 유대인 사절들을 살해함]



 한편 사신들이 안토니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안토니는 그들 중 15명을 붙잡아서 감금시켰다. 그리고 곧 이들을 처형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수치를 주고 추방했다. 이런 와중에 또하나의 커다란 소동이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다시 두로에 1,000명의 사신들을 보냈다. 두로에는 안토니가 머물고 있었으며 예루살렘으로 진군중이었다. 안토니는 두로의 총독을 파견하여 소요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잡는 대로 다 죽이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자신이 분봉왕으로 임명한 자들(헤롯과파사엘)을 권좌에 앉히라고 명령했다.[㈜ 이 부분의 문구는 두키디데스. I.93을 따른 것이다.]



 7. [안토니가 유대 사절단을 처형하게 된 원인]



 이 일이 있기 전에 헤롯과 힐카누스는 해변으로 나가서 사신들에게 너무 급격한 주장들을 함으로 스스로의 죽음을 자초하거나 유대와의 전쟁을 유발시키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그러나 이들이 점점 더 과격해지자 안토니는 군대를 보내 많은 사람을 살해하거나 부상을 입혔다. 힐카누스는 이 일을 매우 슬퍼하면서 이때 살해당한 자를 묻어 주고 부상자들은 의사들로 하여금 돌보게 했다. 그러나 피신한 자들은 조용히 있지 않고 도시의 공무를 어지럽게 했다. 이에 안토니는 자극받아서 투옥했던 유대 사절단들을 처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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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권 제 12장 파사엘이 벨릭스를 상대로 싸우기에는 너무 힘들었고 헤롯도 안티고누스를 꺾기엔 힘들었던 것과 유대인들이 헤롯과 파사엘을 고소했으나 안토니가 그들을 방면하여 분봉왕으로 세우게 된 것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12장


    파사엘이 벨릭스를 상대로 싸우기에는 너무 힘들었고 헤롯도 안티고누스를 꺾기엔 힘들었던 것과 유대인들이 헤롯과 파사엘을 고소했으나 안토니가 그들을 방면하여 분봉왕으로 세우게 된 것에 대하여


     1. 헬릭스의 반란 [주전 42년]


     카시우스가 수리아에서 나왔을 때 예루살렘에서는 또 하나의 소요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헬릭스(Helix)가 헤롯의 형인 파사엘(Phasael)을 군대로 공격하여 말리쿠스를 죽인 헤롯에게 보복하려는 것이었다. 이때 헤롯은 다메섹의 총독인 파비우스(Fabius)와 함께 있었는데 형을 도우려 하였지만 병으로 지연되었다. 한편 파사엘은 스스로 헬릭스에게 강하게 저항했으며힐카누스가 자신에 대해 무심함을 비난했다. 왜냐하면 힐카누스가 말리쿠스를 도와주더니 말리쿠스의 형제인 헬릭스가 요새를 장악하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었다. 헬릭스는 이미 많은 요새들을 점령했으며 이 요새들 가운데는 가장 강했던 마사다(mas-ada)요새도 들어 있었다.


    2. 헤롯이 그의 적들을 물리침


     그러나 헤롯의 군대에 대항해서 헬릭스가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헤롯은 병에서 회복되자마자 요새들을 다시 탈환했으며헬릭스는 마사다에서 쫓겨나 목숨을 부지하려고 애쓰는 형편이되어 버렸다. 헤롯은 또한 두로의 압제자였던 마리온(Marion)을 갈릴리로부터 축출하고 세 곳의 요처를 장악했다. 그러나 헤롯은 포로로 잡은 두로인들을 모두 살려두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중 일부에게는 선물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돌려보내기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두로 사람들에게 헤롯은 큰 호감을 얻게 되었고 마리온은 미움을 받게 되었다. 실로 마리온은 온 수리아를 공국(principality)으로 나눈 카시우스에게서 권력을 부여받은 인물이었다. 헤롯에 대한 미움 때문에 마리온은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인 안티고누스를 원조했는데[㈜ 참). 전쟁. 1권. 8 :6 (173).] 이는 또 파비우스 때문이기도 하였다. 안티고누스는 파비우스를 돈으로 매수해서 자신의 지원자로 만들었으며 자신이 공격할 때 자기 편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안티고누스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 준사람은 안티고누스의 친척인[㈜ 전쟁.1권. 9 : 2(186)] 톨레미(Ptolemy)였다.


    3. [헤롯이 예루살렘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음]


     헤롯이 유대 길목에서 이들과 접전하여 승자가 되었다. 그리고 안티고누스를 격퇴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자신의 전공으로 인해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 헤롯이 힐카누스 가계와 혼인하게 되자 전에는 헤롯에게 호의를 갖고 있지 않던 자들이 이제는 헤롯을 지지하는 자들이 되었다. 전에 헤롯은 유대에서 무시할 수 없는 혈통을 지닌 도리스(Doris)라는 여자와 혼인했으며 그 사이에서 안티파테르(Antipater)를 낳았었다. 이제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인 알렉산더의 딸이며 힐카누스의 손녀인 마리암메(Mariamme)와 결혼했으며[㈜ 혹은 사실상 ‘약혼했다’의 뜻. 결혼 사실은 이후 전쟁. 1권. 17:8(344)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왕과[㈜ 힐카누스 (HyrcanusⅡ) Ⅱ세. 전쟁. 1권. 10 : 4(203)에 “왕”으로 호칭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인척관계가 된 것이다.


     4. 안토니는 유대인들의 고소를 듣고 헤롯과 파사엘을 유대의 분봉왕으로 임명함[주전 42 – 41년]


     가이사와 안토니가 빌립보(Philippi) 근처에서 카시우스를 죽인 후 가이사는 이달리야(Italy)로 갔으며 안토니는 아시아로가게 되었다. 많은 곳에서 온 사신들이 비두니아(Bithynia)에서안토니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들 가운데는 유대인 지도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파사엘과 헤롯을 고소하기를, 그들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했으며 힐카누스는 더 이상 명예스런 이름이 되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헤롯은 이런 고소에 변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안토니에게 거액의 돈을 줌으로 그를 매수하여 안토니가 다른 이들이 헤롯을 비난하는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게했으므로 유대의 유력자들은 그냥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5. [헤롯 형제들에 대한 안토니의 호의는 그 부친 안티파테르의 대접에 따른 보답임]


     그러나 이 이후에 100명의 유대 주요 인사들이 안디옥을 거쳐 다프네(Daphne)로 안토니(Antony)를 만나러 왔다. 안토니는이미 클레오파트라(Cleoparta)와 사랑에 빠져 그의 노예가 될 정도였다. 이 유대인들은 위엄이나 웅변에 있어서 가장 능력있는 자들이었는데 맨 먼저 헤롯 형제들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메살라(Messala)가[㈜ 기원전 약 70-3년의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는 카시우스(Cassius), 안토니(Anthony), 그리고 아구스도(Augustus)를 상대로 시민 전쟁에 참전했다. 작가이자 문학 애호가, 연설가, 호레이스(Horace)와 티불루스(Tibbulus)의 친구.] 이들의 주장을 반대하며 헤롯 형제들을 변호했다. 또 힐카누스도 메살라의 주장에 동조했는데 그는 헤롯과 인척관계 때문이었다. 안토니는 양측의 말들을 듣고 힐카누스에게 어떤 쪽이 다스리는데 가장 적합한지를 물었다. 힐카누스는 헤롯과 그의 무리가 다스리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대답했다. 안토니는 그 대답에 만족했는데 왜냐하면 안토니는 전에 헤롯의 부친 안티파테르에 의해 극진히 대접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접은 안토니가 가비니우스와 함께 유대를 침공했을 때 받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안토니는 그 형제들을 분봉왕에 임명하고 유대의 통치를 맡게 하였다.


     6. [안토니는 유대인 사절들을 살해함]


     한편 사신들이 안토니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안토니는 그들 중 15명을 붙잡아서 감금시켰다. 그리고 곧 이들을 처형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수치를 주고 추방했다. 이런 와중에 또하나의 커다란 소동이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다시 두로에 1,000명의 사신들을 보냈다. 두로에는 안토니가 머물고 있었으며 예루살렘으로 진군중이었다. 안토니는 두로의 총독을 파견하여 소요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잡는 대로 다 죽이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자신이 분봉왕으로 임명한 자들(헤롯과파사엘)을 권좌에 앉히라고 명령했다.[㈜ 이 부분의 문구는 두키디데스. I.93을 따른 것이다.]


     7. [안토니가 유대 사절단을 처형하게 된 원인]


     이 일이 있기 전에 헤롯과 힐카누스는 해변으로 나가서 사신들에게 너무 급격한 주장들을 함으로 스스로의 죽음을 자초하거나 유대와의 전쟁을 유발시키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그러나 이들이 점점 더 과격해지자 안토니는 군대를 보내 많은 사람을 살해하거나 부상을 입혔다. 힐카누스는 이 일을 매우 슬퍼하면서 이때 살해당한 자를 묻어 주고 부상자들은 의사들로 하여금 돌보게 했다. 그러나 피신한 자들은 조용히 있지 않고 도시의 공무를 어지럽게 했다. 이에 안토니는 자극받아서 투옥했던 유대 사절단들을 처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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