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장
파르티아인들이 안티고누스를 다시 유대로 데려오고 힐카누스와 파사엘을 감금한 것과 헤롯의 도주와 힐카누스와 파사엘이 겪은 고난에 대하여
1. 파르티아인들이 수리아를 침공함[주전 40년]
2년 후, 파르티아의 총독인 바르자파르네스(Barzapharnes)와 파르티아의 왕의 아들 파코루스(Pacorus)가 수리아를 장악하였다. 루사니아스(Lysanias)가 부친 톨레미(Ptolemy), 즉 멘나이우스의 아들이 죽자 칼키스(Chalcis)의 정권을 승계했다.루사니아스가 파코루스에게 1,000달란트와 500명의 여자를 줄것이니[㈜ 고대.에 보면 안티고누스 자신이 이 약속을 한 것으로 기록됨. 전쟁. 1권. 13 : 4 (257)을 참조.] 힐카누스를 몰아내고 안티고누스를 왕위에 복권시켜 달라고 요청하였다. 파코루스는 바르자파르네스에게 내륙으로 진격하라고 명령하고 자신은 지중해를 따라 진격해 갔다. 그러나 톨레마이스(Ptolmmais)와 시돈(Sidon)의 주민들은 파코루스를 받아들였지만 해안지방의 사람들 중 두로인들(Tyrians)은 파코루스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파코루스는 자신의 기병을 파코루스라는 이름을 가진 어느 술 따르는 관원에게 위임하고 유대로 진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는 적들의 사정을 살피게 하려 함이며 안티고누스가 도움이 필요할 때 지원하려는 목적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2. 파코루스가 예루살렘을 공격함
이제 이 사람들이 갈멜(Carmel)을 공략하자 많은 유대인들도 그들 편이 되어 공격에 가담하려고 많은 무리를 이끌고 안티고누스에게 몰려왔다. 그래서 안티고누스는 먼저 드리무스(Dry-mus)라는 지역을 장악하도록 이들을 보냈다. 이로 인해 전투가 벌어졌으며 적을 패퇴시키고 추격하여 예루살렘까지 쫓아갔다.그리고 안티고누스쪽에 가담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게 되자 그들은 왕궁까지 돌진해 나갔다. 그러나 힐카누스와 파사엘은 강한 군사들로 이들에 대항했다. 이리하여 시장에서 전투가 벌어졌으며 헤롯의 군대가 적들을 물리치고 포로들을 성전 안에 가두었다. 그리고 60명을 배치시켜 성전을 감시하도록 하게 했다. 그러나 파사엘과 헤롯에 대항하는 자들이 성전을 감시하던자들을 공격하여 60명을 태워 죽였다. 이에 헤롯은 60명이 살해당한 것에 화가 치밀어 백성들을 공격하고 많은 사람들을 살해했다. 양편은 날마다 소집단으로 매복하여 숨었다가 상대방을 습격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3. [파사엘에 대한 파코루스의 음모를 간파한 헤롯이 파사엘에게 간언함]
오순절이라고 하는 유대절기가 가까이 오게 되자 성전 주위와 예루살렘 도시는 각 지역에서 올라온 수많은 군중들로 가득차게 되었고 또 이들 대다수가 무장하고 있었다. 이때 파사엘이 성벽을 호위하고 있었고 헤롯은 적은 수로 왕궁을 호위하고 있었다. 헤롯이 유대인을 공격하자 그들은 예루살렘의 북쪽으로 도망했다. 헤롯은 그들 상당수를 살해했으며 나머지는 모두 도망했다. 그들 중 일부를 헤롯은 예루살렘 도시 내부에 가두고 나머지는 예루살렘의 외벽에 가두었다. 한편 안티고누스는 파코루스에게 그들의 전쟁을 중재해 주기를 부탁하였다.[㈜ 추측컨대 왕자가 아니라 술 맡은 자. 왜냐하면 라이나흐의 주장대로 왕자는 파사엘(Phasael)을 직접 다루는 위치에 있었어야 했으며, 뒤를 이은 사절이 불필요 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파사엘은 파코루스가 중재한다는 데 대해 동의하고 500명의 파르티아 기병이 예루살렘에 들어오도록 허락했으며 파코루스를 환대해 주었다. 파코루스는 소동을 진압하러 들어오는 것처럼 가장했으나 실제로는 안티고누스를 도우러 온 것이었다. 파코루스는 파사엘을 사로잡으려는 음모를 꾸며 파사엘이 바르자파르네스에게 사신으로 가도록 설득했다. 그를 사신으로 파송하는 명목은 전쟁을 매듭짓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헤롯은 파사엘을 간곡히 만류했다. 그리고 파사엘에게 음모자 파코루스를 죽이고 그가 쳐놓은 함정에 걸려들지 말라고 간언했다. 야만인들은 본래 배반을 잘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사엘은 힐카누스와 함께 사신으로 갔다. 그러나 파코루스는 의심을 덜 받기 위해 자유인(Freemen)이라고[㈜ 더욱 엄밀히 말하자면 200명의 기병과 10명의 \”자유인\”(고대.14권. 13:5(342). 대부분의 파르티아 병사들은 노예들이었다(유스틴, xli.2.5, 라이나흐의 인용)] 불리는 일부 기병을 헤롯과 함께 남겨 놓고 나머지 기병은 파사엘을 호위하라고 딸려보냈다.
4. 파사엘과 힐카누스는 파르티아인들에게 체포됨
갈릴리에 당도한 그들은 갈릴리 주민들이 소동을 일으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무장을 하고 있었다. 갈릴리 주민들의 알현을 받은 총독은[㈜ 바르자파르네스(Barzapharnes).] 친절하게 대하면서도 자신의 음모를 숨기는 아주 교활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선물을 주고서 그들이 떠날 때 그들을 살해하기 위해 복병을 숨겨두었다. 그리고 이들이 엑디파(Ekdippa)라고[㈜ 아크집(Achzib). 두로와 갈멜 곶의 중간 지점에 위치함.] 하는 해변 도시에 당도하자 자신들이 음모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 엑디파에서 안티고누스가 1,000달란트와[㈜ 전쟁. 1권. 13 : 1 (248)] 500명의 많은 여자들을 상납하겠다는 약속을 파르티아인들에게 해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또한 밤중에 야만인들이 자기들을 해하려고 매복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만일 그 야만인들이 예루살렘에서 헤롯이 먼저 잡힐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던들 그들은 벌써 잡혔을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헤롯은 그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경비를 철저히 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병사들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것이 단순한 소문만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5. [파사엘이 파르티아 총독을 질책함]
파사엘은 오펠리우스(Ophellius)가 간곡히 부탁함에도 불구하고 힐카누스를 버리고 도망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펠리우스는 온 수리아에서 가장 부자인 사마랄라(Samaralla)로부터 모든 음모를 전해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파사엘은 파르티아 총독에게 찾아가서 정면에다 대고 자신들에대해 반역의 음모를 꾸민 것에 대해 질책했으며 더구나 돈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을 특히 질책했다. 그리고 파사엘은 안티고누스가 자신의 왕권을 되찾는 대가로 약속한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총독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교활한 파르티아인 바르자파르네스는 때로는 변명하고 때로는 맹세하면서 그의 모든 혐의를 벗어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는 파코루스에게로[㈜ 명백히 왕자임.] 가버렸다 : 곧바로 이 파르티아 총독이 떠나가자마자 힐카누스와 파사엘은 체포되어 감금되었다. 그들은 파르티아 총독의 반역과 거짓맹세를 질책한 것 외에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6. 헤롯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음모
한편 술 따르는 관원이[㈜ 파코루스(Pacorus). 전쟁. 1권. 13:1(249). 고대사에서는 ojinocovo\” 대신에 eujnou\’co\”로 부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헤롯을 생포하기에 용이하도록 도시밖으로 유인하라는 밀명을 받고 헤롯에게로 갔다. 그러나 헤롯은 처음부터 야만인들을 의심하고 있었고 반역 기도를 자신에게 전달해 줄 서신을 가져오게 될 전령이 적의 수중에 놓였다는 소식을 듣고 헤롯은 예루살렘을 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파코루스가 매우 긍정적으로 헤롯에게 나가기를 권유하고 전령들을 만나기 위해 나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계속해서 그는 적들이 전령들을 잡고 있지 않으며 서신의 내용에는 적들의 음모에 대한것이 아니라 파사엘에 대한 내용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헤롯은 다른 이들로부터 그의 형이 붙잡혀 있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이때 힐카누스의 딸이며[㈜ 엄격히 따져서 손녀(전쟁.1권.2:3(241)). 그러나 고대.14권.(351)의 내용에 보면 \”그의 약혼녀의 어머니인 힐카누스의 딸\”이라고 언급함이 옳은 것 같다. 그의 신부가 이런 식으로 언급되는 것은 예외적인 것이다.] 여인들 중 지혜가 뛰어난 마리암메(Maramme)가 헤롯에게 다가가서 그들은 지금 헤롯을 해칠 계략을 꾸미고 있으니 절대로 야만인들의 말을 믿고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가서는 안된다고 간언하였다.
7. 헤롯이 아라비아로 도주함
한편 파코루스와 그의 동료들은 어떻게 하면 그들의 음모를성사시킬 수 있을까를 숙고하였다. 왜냐하면 드러내놓고 헤롯을 공격하면 아주 현명한 헤롯을 제압하기 곤란하다는 이유에서 였다. 헤롯은 선수를 쳐서 밤중에 적들도 눈치 못채도록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도망했다. 그런데 파르티아인들이 이를 알고 헤롯과 그 무리를 추격했다. 이에 헤롯은 모친, 누이, 약혼녀 그리고 그녀의 모친과 그녀의 동생에게 신속히 달아나라고 명하고 자신은 부하들과 함께 힘을 다해 야만인들을 물리치는 데 전력했다. 그리하여 헤롯은 여러 차례 접전을 벌인 결과 많은 야만인들을 죽이고 마사다 요새에[㈜ 사해의 하단부 근처의 서쪽 연안 윗쪽.] 당도하였다.
8. [헤롯이 유대인을 패퇴시킨 것을 기념하여 성채를 건축하고 헤로디움이라고 명명함]
헤롯은 파르티아인들보다 더 심하게 유대인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경험했으며 계속적으로 그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알게 되었다. 이는 그가 예루살렘으로부터 60퍼얼롱 떨어진 곳에서 계속적으로 괴로움을 받았으며 때때로 그것은 일종의 정규전의 양상이 되곤 했다. 그후 헤롯이 유대인들을 패퇴시키고 그들 많은 수를 살해한 후 자신이 올린 전과를 기념하기 위해 그곳에 한 성채를 건축하여 가장 화려한 왕궁으로 성채를 장식하고 매우 견고한 요새를 구축하여 자신의 이름을 따서 헤로디움(Herodium)이라고 명명했다.[㈜ 설명은 전쟁.1권. 21:10(419)에 있다.] 또 도망하는 중에 많은 사람들이 매일 헤롯에게 합세했다. 그리고 이두매의 레사(Rhesa inIdumea)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헤롯은 자신의 형제인 요셉(Jos-eph)을 만났는데 그는 헤롯에게 추종자들 중 많은 사람을 돌려보내라고 충고했는데 이는 마사다에는 9,000명 이상이 이미 있으므로 이처럼 많은 추종자들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헤롯은 이 충고를 받아들여 추종자들 중 가장 성가신 자들만이 두매로 돌려보내면서 가는 동안 먹을 양식을 주었다. 그리고헤롯은 가장 가까운 측근과 더불어 안전하게 당도했으며 가장건장한 추종자들과 함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요새에[㈜ 마사다(Masada).]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800명을 남겨두고 또 포위 공격당할 때에 견디기에 충분한 양식을 남겨놓은 다음 자신은 서둘러서 아라비아의 페트라(Petra of Arania)로 갔다.
9. 예루살렘을 장악한 파르티아인들이 안티고누스를 왕좌에 앉힘
한편 예루살렘에 있는 파르티아인들은 약탈을 시작했으며 도망간 사람들의 집들을 부수고 왕궁까지 약탈하여 왕궁에는 300달란트도 되지 않은 힐카누스의 돈만 겨우 남겨놓을 정도였다.[㈜ 힐카누스가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신성을 모독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그랬는지 아니면 안티고누스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돈도 약탈했으나 그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미치지는 못하였다. 왜냐하면 헤롯은 오랫동안 야만인들이 배신할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보물들 중 가장 값비싼것들을 이두매로 옮겨놓을 정도로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다.그리고 헤롯의 친구들도 모두가 다 보물들을 이두매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르티아인들은 포악의 도가 지나쳐 유대를 무자비하게[㈜ 혹은 \”공포되지 않은\”] 짓밟고 마리사(Marissa) 시를[㈜ 예루살렘 남서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진 이두매(Idumaea) 지방에 있는 마레사(Mareshah).] 파괴했으며 안티고누스를 왕으로 세웠을 뿐만 아니라 파사엘과 힐카누스를 안티고누스에게 넘겨주었는데 이는 그들이 안티고누스에게 고통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안티고누스 또한 힐카누스의 두 귀를 자신의 이로 물어뜯어[㈜ 고대.14권.(366)에서는 이러한 상세한 내용이 생략되어 있고 단지 \”그의 두 귀를 짧게 잘랐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힐카누스가 자신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고 이로 인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더라도 다시는 힐카누스가 대제사장이 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 자는 완전할 뿐더러 흠이 없는 자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참).레 21 : 17-23.]
10. 파사엘의 죽음
한편 파사엘은 묶여 있어 손이나 칼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지만 머리를 바위에 부딪혀 용감하게 안티고누스의 위해를 미리 막았다. 이리하여 파사엘은 정말 헤롯의 형임을 나타내었고 힐카누스는 고상한 사람임을 나타내었다. 파사엘은 영웅적인 죽음으로 생을 마쳤다. 또한 파사엘의 죽음에 관한 또 다른 소문이있는데 즉 파사엘이 돌에 머리를 부딪혀 자결하려다가 실패하고깨어나게 되자 한 의사가 안티고누스로부터 그를 치료하라는 분부를 받고 파사엘의 상처에 독이 든 약재를 주입하여 그를 죽였다는 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여하를 막론하고 그의 죽음은 용감한 것이었다. 또 하나의 소문은 파사엘이 죽기 직전 어떤 여인으로부터 헤롯이 이들의 손에서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이제 편안히 죽는다. 왜냐하면 내 원수들에게 복수해 줄 이가 살아있으니\”라고 말했다는 소문도 있다.
11. [힐카누스를 감금하다]
이것이 파사엘의 최후였다. 파르티아인들은 갈망하던 여자들을 보답으로 얻지 못했으나 예루살렘의 통치권을 안티고누스에게 넘겨주고 힐카누스는 체포하여 파르티아에 가두어 버렸다.

제 13 장
파르티아인들이 안티고누스를 다시 유대로 데려오고 힐카누스와 파사엘을 감금한 것과 헤롯의 도주와 힐카누스와 파사엘이 겪은 고난에 대하여
1. 파르티아인들이 수리아를 침공함[주전 40년]
2년 후, 파르티아의 총독인 바르자파르네스(Barzapharnes)와 파르티아의 왕의 아들 파코루스(Pacorus)가 수리아를 장악하였다. 루사니아스(Lysanias)가 부친 톨레미(Ptolemy), 즉 멘나이우스의 아들이 죽자 칼키스(Chalcis)의 정권을 승계했다.루사니아스가 파코루스에게 1,000달란트와 500명의 여자를 줄것이니[㈜ 고대.에 보면 안티고누스 자신이 이 약속을 한 것으로 기록됨. 전쟁. 1권. 13 : 4 (257)을 참조.] 힐카누스를 몰아내고 안티고누스를 왕위에 복권시켜 달라고 요청하였다. 파코루스는 바르자파르네스에게 내륙으로 진격하라고 명령하고 자신은 지중해를 따라 진격해 갔다. 그러나 톨레마이스(Ptolmmais)와 시돈(Sidon)의 주민들은 파코루스를 받아들였지만 해안지방의 사람들 중 두로인들(Tyrians)은 파코루스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파코루스는 자신의 기병을 파코루스라는 이름을 가진 어느 술 따르는 관원에게 위임하고 유대로 진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는 적들의 사정을 살피게 하려 함이며 안티고누스가 도움이 필요할 때 지원하려는 목적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2. 파코루스가 예루살렘을 공격함
이제 이 사람들이 갈멜(Carmel)을 공략하자 많은 유대인들도 그들 편이 되어 공격에 가담하려고 많은 무리를 이끌고 안티고누스에게 몰려왔다. 그래서 안티고누스는 먼저 드리무스(Dry-mus)라는 지역을 장악하도록 이들을 보냈다. 이로 인해 전투가 벌어졌으며 적을 패퇴시키고 추격하여 예루살렘까지 쫓아갔다.그리고 안티고누스쪽에 가담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게 되자 그들은 왕궁까지 돌진해 나갔다. 그러나 힐카누스와 파사엘은 강한 군사들로 이들에 대항했다. 이리하여 시장에서 전투가 벌어졌으며 헤롯의 군대가 적들을 물리치고 포로들을 성전 안에 가두었다. 그리고 60명을 배치시켜 성전을 감시하도록 하게 했다. 그러나 파사엘과 헤롯에 대항하는 자들이 성전을 감시하던자들을 공격하여 60명을 태워 죽였다. 이에 헤롯은 60명이 살해당한 것에 화가 치밀어 백성들을 공격하고 많은 사람들을 살해했다. 양편은 날마다 소집단으로 매복하여 숨었다가 상대방을 습격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3. [파사엘에 대한 파코루스의 음모를 간파한 헤롯이 파사엘에게 간언함]
오순절이라고 하는 유대절기가 가까이 오게 되자 성전 주위와 예루살렘 도시는 각 지역에서 올라온 수많은 군중들로 가득차게 되었고 또 이들 대다수가 무장하고 있었다. 이때 파사엘이 성벽을 호위하고 있었고 헤롯은 적은 수로 왕궁을 호위하고 있었다. 헤롯이 유대인을 공격하자 그들은 예루살렘의 북쪽으로 도망했다. 헤롯은 그들 상당수를 살해했으며 나머지는 모두 도망했다. 그들 중 일부를 헤롯은 예루살렘 도시 내부에 가두고 나머지는 예루살렘의 외벽에 가두었다. 한편 안티고누스는 파코루스에게 그들의 전쟁을 중재해 주기를 부탁하였다.[㈜ 추측컨대 왕자가 아니라 술 맡은 자. 왜냐하면 라이나흐의 주장대로 왕자는 파사엘(Phasael)을 직접 다루는 위치에 있었어야 했으며, 뒤를 이은 사절이 불필요 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파사엘은 파코루스가 중재한다는 데 대해 동의하고 500명의 파르티아 기병이 예루살렘에 들어오도록 허락했으며 파코루스를 환대해 주었다. 파코루스는 소동을 진압하러 들어오는 것처럼 가장했으나 실제로는 안티고누스를 도우러 온 것이었다. 파코루스는 파사엘을 사로잡으려는 음모를 꾸며 파사엘이 바르자파르네스에게 사신으로 가도록 설득했다. 그를 사신으로 파송하는 명목은 전쟁을 매듭짓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헤롯은 파사엘을 간곡히 만류했다. 그리고 파사엘에게 음모자 파코루스를 죽이고 그가 쳐놓은 함정에 걸려들지 말라고 간언했다. 야만인들은 본래 배반을 잘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사엘은 힐카누스와 함께 사신으로 갔다. 그러나 파코루스는 의심을 덜 받기 위해 자유인(Freemen)이라고[㈜ 더욱 엄밀히 말하자면 200명의 기병과 10명의 “자유인”(고대.14권. 13:5(342). 대부분의 파르티아 병사들은 노예들이었다(유스틴, xli.2.5, 라이나흐의 인용)] 불리는 일부 기병을 헤롯과 함께 남겨 놓고 나머지 기병은 파사엘을 호위하라고 딸려보냈다.
4. 파사엘과 힐카누스는 파르티아인들에게 체포됨
갈릴리에 당도한 그들은 갈릴리 주민들이 소동을 일으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무장을 하고 있었다. 갈릴리 주민들의 알현을 받은 총독은[㈜ 바르자파르네스(Barzapharnes).] 친절하게 대하면서도 자신의 음모를 숨기는 아주 교활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선물을 주고서 그들이 떠날 때 그들을 살해하기 위해 복병을 숨겨두었다. 그리고 이들이 엑디파(Ekdippa)라고[㈜ 아크집(Achzib). 두로와 갈멜 곶의 중간 지점에 위치함.] 하는 해변 도시에 당도하자 자신들이 음모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 엑디파에서 안티고누스가 1,000달란트와[㈜ 전쟁. 1권. 13 : 1 (248)] 500명의 많은 여자들을 상납하겠다는 약속을 파르티아인들에게 해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또한 밤중에 야만인들이 자기들을 해하려고 매복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만일 그 야만인들이 예루살렘에서 헤롯이 먼저 잡힐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던들 그들은 벌써 잡혔을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헤롯은 그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경비를 철저히 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병사들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것이 단순한 소문만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5. [파사엘이 파르티아 총독을 질책함]
파사엘은 오펠리우스(Ophellius)가 간곡히 부탁함에도 불구하고 힐카누스를 버리고 도망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펠리우스는 온 수리아에서 가장 부자인 사마랄라(Samaralla)로부터 모든 음모를 전해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파사엘은 파르티아 총독에게 찾아가서 정면에다 대고 자신들에대해 반역의 음모를 꾸민 것에 대해 질책했으며 더구나 돈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을 특히 질책했다. 그리고 파사엘은 안티고누스가 자신의 왕권을 되찾는 대가로 약속한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총독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교활한 파르티아인 바르자파르네스는 때로는 변명하고 때로는 맹세하면서 그의 모든 혐의를 벗어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는 파코루스에게로[㈜ 명백히 왕자임.] 가버렸다 : 곧바로 이 파르티아 총독이 떠나가자마자 힐카누스와 파사엘은 체포되어 감금되었다. 그들은 파르티아 총독의 반역과 거짓맹세를 질책한 것 외에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6. 헤롯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음모
한편 술 따르는 관원이[㈜ 파코루스(Pacorus). 전쟁. 1권. 13:1(249). 고대사에서는 ojinocovo” 대신에 eujnou’co”로 부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헤롯을 생포하기에 용이하도록 도시밖으로 유인하라는 밀명을 받고 헤롯에게로 갔다. 그러나 헤롯은 처음부터 야만인들을 의심하고 있었고 반역 기도를 자신에게 전달해 줄 서신을 가져오게 될 전령이 적의 수중에 놓였다는 소식을 듣고 헤롯은 예루살렘을 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파코루스가 매우 긍정적으로 헤롯에게 나가기를 권유하고 전령들을 만나기 위해 나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계속해서 그는 적들이 전령들을 잡고 있지 않으며 서신의 내용에는 적들의 음모에 대한것이 아니라 파사엘에 대한 내용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헤롯은 다른 이들로부터 그의 형이 붙잡혀 있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이때 힐카누스의 딸이며[㈜ 엄격히 따져서 손녀(전쟁.1권.2:3(241)). 그러나 고대.14권.(351)의 내용에 보면 “그의 약혼녀의 어머니인 힐카누스의 딸”이라고 언급함이 옳은 것 같다. 그의 신부가 이런 식으로 언급되는 것은 예외적인 것이다.] 여인들 중 지혜가 뛰어난 마리암메(Maramme)가 헤롯에게 다가가서 그들은 지금 헤롯을 해칠 계략을 꾸미고 있으니 절대로 야만인들의 말을 믿고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가서는 안된다고 간언하였다.
7. 헤롯이 아라비아로 도주함
한편 파코루스와 그의 동료들은 어떻게 하면 그들의 음모를성사시킬 수 있을까를 숙고하였다. 왜냐하면 드러내놓고 헤롯을 공격하면 아주 현명한 헤롯을 제압하기 곤란하다는 이유에서 였다. 헤롯은 선수를 쳐서 밤중에 적들도 눈치 못채도록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도망했다. 그런데 파르티아인들이 이를 알고 헤롯과 그 무리를 추격했다. 이에 헤롯은 모친, 누이, 약혼녀 그리고 그녀의 모친과 그녀의 동생에게 신속히 달아나라고 명하고 자신은 부하들과 함께 힘을 다해 야만인들을 물리치는 데 전력했다. 그리하여 헤롯은 여러 차례 접전을 벌인 결과 많은 야만인들을 죽이고 마사다 요새에[㈜ 사해의 하단부 근처의 서쪽 연안 윗쪽.] 당도하였다.
8. [헤롯이 유대인을 패퇴시킨 것을 기념하여 성채를 건축하고 헤로디움이라고 명명함]
헤롯은 파르티아인들보다 더 심하게 유대인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경험했으며 계속적으로 그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알게 되었다. 이는 그가 예루살렘으로부터 60퍼얼롱 떨어진 곳에서 계속적으로 괴로움을 받았으며 때때로 그것은 일종의 정규전의 양상이 되곤 했다. 그후 헤롯이 유대인들을 패퇴시키고 그들 많은 수를 살해한 후 자신이 올린 전과를 기념하기 위해 그곳에 한 성채를 건축하여 가장 화려한 왕궁으로 성채를 장식하고 매우 견고한 요새를 구축하여 자신의 이름을 따서 헤로디움(Herodium)이라고 명명했다.[㈜ 설명은 전쟁.1권. 21:10(419)에 있다.] 또 도망하는 중에 많은 사람들이 매일 헤롯에게 합세했다. 그리고 이두매의 레사(Rhesa inIdumea)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헤롯은 자신의 형제인 요셉(Jos-eph)을 만났는데 그는 헤롯에게 추종자들 중 많은 사람을 돌려보내라고 충고했는데 이는 마사다에는 9,000명 이상이 이미 있으므로 이처럼 많은 추종자들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헤롯은 이 충고를 받아들여 추종자들 중 가장 성가신 자들만이 두매로 돌려보내면서 가는 동안 먹을 양식을 주었다. 그리고헤롯은 가장 가까운 측근과 더불어 안전하게 당도했으며 가장건장한 추종자들과 함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요새에[㈜ 마사다(Masada).]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800명을 남겨두고 또 포위 공격당할 때에 견디기에 충분한 양식을 남겨놓은 다음 자신은 서둘러서 아라비아의 페트라(Petra of Arania)로 갔다.
9. 예루살렘을 장악한 파르티아인들이 안티고누스를 왕좌에 앉힘
한편 예루살렘에 있는 파르티아인들은 약탈을 시작했으며 도망간 사람들의 집들을 부수고 왕궁까지 약탈하여 왕궁에는 300달란트도 되지 않은 힐카누스의 돈만 겨우 남겨놓을 정도였다.[㈜ 힐카누스가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신성을 모독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그랬는지 아니면 안티고누스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돈도 약탈했으나 그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미치지는 못하였다. 왜냐하면 헤롯은 오랫동안 야만인들이 배신할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보물들 중 가장 값비싼것들을 이두매로 옮겨놓을 정도로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다.그리고 헤롯의 친구들도 모두가 다 보물들을 이두매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르티아인들은 포악의 도가 지나쳐 유대를 무자비하게[㈜ 혹은 “공포되지 않은”] 짓밟고 마리사(Marissa) 시를[㈜ 예루살렘 남서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진 이두매(Idumaea) 지방에 있는 마레사(Mareshah).] 파괴했으며 안티고누스를 왕으로 세웠을 뿐만 아니라 파사엘과 힐카누스를 안티고누스에게 넘겨주었는데 이는 그들이 안티고누스에게 고통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안티고누스 또한 힐카누스의 두 귀를 자신의 이로 물어뜯어[㈜ 고대.14권.(366)에서는 이러한 상세한 내용이 생략되어 있고 단지 “그의 두 귀를 짧게 잘랐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힐카누스가 자신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고 이로 인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더라도 다시는 힐카누스가 대제사장이 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 자는 완전할 뿐더러 흠이 없는 자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참).레 21 : 17-23.]
10. 파사엘의 죽음
한편 파사엘은 묶여 있어 손이나 칼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지만 머리를 바위에 부딪혀 용감하게 안티고누스의 위해를 미리 막았다. 이리하여 파사엘은 정말 헤롯의 형임을 나타내었고 힐카누스는 고상한 사람임을 나타내었다. 파사엘은 영웅적인 죽음으로 생을 마쳤다. 또한 파사엘의 죽음에 관한 또 다른 소문이있는데 즉 파사엘이 돌에 머리를 부딪혀 자결하려다가 실패하고깨어나게 되자 한 의사가 안티고누스로부터 그를 치료하라는 분부를 받고 파사엘의 상처에 독이 든 약재를 주입하여 그를 죽였다는 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여하를 막론하고 그의 죽음은 용감한 것이었다. 또 하나의 소문은 파사엘이 죽기 직전 어떤 여인으로부터 헤롯이 이들의 손에서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이제 편안히 죽는다. 왜냐하면 내 원수들에게 복수해 줄 이가 살아있으니”라고 말했다는 소문도 있다.
11. [힐카누스를 감금하다]
이것이 파사엘의 최후였다. 파르티아인들은 갈망하던 여자들을 보답으로 얻지 못했으나 예루살렘의 통치권을 안티고누스에게 넘겨주고 힐카누스는 체포하여 파르티아에 가두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