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권 제 18장 헤롯과 소시우스가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점령한 것과 안티고누스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와 클레오파트라의 탐욕에 대하여

 


제 18 장



헤롯과 소시우스가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점령한 것과 안티고누스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와 클레오파트라의 탐욕에 대하여



 1. 예루살렘 포위 공격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여러 파당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연약한 서민들은 성전 주위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말세 때 제일 먼저 죽는 자가 믿음 좋고 복받은 사람이라는 등의 얘기를 화제로 삼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화제에 탐닉하는 반면 좀 대담하고 완강한 자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여러가지 방법으로 다른 이들의 물건을 약탈했는데 특히 예루살렘 부근 지역을 약탈하였다. 그들이 이와 같이 약탈을 자행하며0 다녔던이유는 사람이나 말을 먹일 양식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군 내부의 상황에 대해 잠시 말한다면 토성을 파괴하려는 적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는 임무를 띠고 고도의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토성을 파괴하는 적들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고 고용되었다. 이들은 적의 공격기구들을 방어할 갖가지 기구들을 발명해 내려고 하였으나 땅속에 굴을 파는 것만큼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2. 예루살렘의 함락과 대학살



 외부의 침입자를 차단하기 위해서 헤롯은 매복병을 배치시켜서 외부인의 출입을 낱낱이 점검하도록 하였다. 헤롯은 양식이 부족할 때는 먼 곳에서 양식을 가져오게 해서 식량이 떨어지는일이 없도록 하였다. 헤롯은 유대인들의 용맹성이 비록 하늘을 찌른다 하더라도 로마군의 경험과 사기로 미루어 볼 때 유대인들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만일 그들이 로마진영에 정면으로 대항하지 않는다면 죽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땅굴을 파서 로마 진영 한 가운데서 불쑥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리고 로마군이 성벽의 한쪽을 쳐서 허물어뜨리는가 싶으면 그이전에 또 다른 성벽을 쌓아서 이에 대응하였다. 그들은 끝까지 예루살렘성을 지키기로 작정한 만큼 고통스러워하거나 전술에서도 부족함을 보이지 않았다. 실로 유대인들은 자신들 주위에큰 부대가 둘러싸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개월을 견디며 항전하였다.[㈜ 고대.14권. 16:4(487)에서는 이와 반대로 첫번째 성벽이 40일만에, 그리고 두번째 벽이 15일만에 무너졌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이 \”세달만에\”, 혹은 그 이내에 함락되었다고 진술한다.(고대.14권.16:2(476)).] 그러나 헤롯의 정예병사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넘어가서 습격하고 소시우스의 백부장들이 그들을 따라가서 처음으로 성전 주위를 장악한 후 많은 로마 병사들이 쏟아져 들어옴으로 곳곳에서 대학살이 자행되었다. 로마군들은 오랫동안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느라 화가 치밀어 있었고 헤롯을 추종하는 유대인들은 헤롯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을 모조리 잡아 죽여야 한다고 헤롯에게 간언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로마 병사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좁은 거리에서 그리고 집에서 성전으로 도망가다가 잡혀 죽었으며 어린이건 노인이건 약한 여자이건 간에 무참히 살육당했다.. 헤롯은 사람을 보내 무고한 백성들은 죽이지 말라고지시하였으나 그들은 미친 사람들처럼 노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을 살해했다. 이런 상황에 처하자 안티고누스는 자신의 이전과현재의 지위를 무시하고 성채에서 내려와서 소시우스의 발 아래 무릎 끓었다. 그러나 소시우스는 안티고누스의 처지가 딱하게 된 것에 조금도 동정하지 않고 마음껏 그를 비웃으면서 그를 안티고네(Antigone)라고[㈜ 혹은 통상적 라틴어로는 \”안티고나(Antigona).\”] 불렀다. 그러나 소시우스는 안티고누스를 여자처럼 취급하지 않았으며 풀어주지 않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옥에 감금해 버렸다.



 3. 성전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헤롯이 막은 것과 예루살렘의 약탈



 이제 적들을 자기 수중에 장악한 헤롯의 당면한 문제는 외국 지원병들의 광포를 자제시키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이방인들은 매우 성전을 보고싶어 했으며 성소 안에 있는 성물들이 대체 어떤 것인지 매우 궁금히 여겨 당장이라도 달려들어갈 기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롯은 때로는 권고로 때로는 위협으로 또 어떤 때는 무력으로 이방인들을 제지했다. 왜냐하면 만일 보아서는 안될 것을 이방인들이 보게 된다면 유대 백성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승리의 기쁨을 채 맛보기도 전에 전국은 서로 죽고 죽이는 또 한 차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될 것이라고 헤롯은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헤롯은 동시에 도시를 약탈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는 간곡하게 소시우스에게 로마 병사들이 사람들을 죽이고 돈까지 약탈한다면 자신은 사막의 왕이나 다를 바 없지 않는가라고 하면서 약탈을 금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또한 소시우스에게 살육된 많은 백성들에 대해 보상하려면 대로마 제국의 영토로도 부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소시우스는 대답하기를 자신은 로마 병사들이 포위 공격할 동안에 받은 고통에 대한 보상으로라도 병사들에게 얼마간의 약탈은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헤롯은 이 말을 듣고 그러면 자신의 돈으로 모든 병사에게 보상을 해주겠으니 약탈 행위만큼은 금하게 하라고 소시우스에게 답했다. 이렇게 해서 헤롯은 돈을 주고 유대를 구할 수 있었으며 약속을 이행하여각 병사들과 지휘관들에게 화려한 의식을 갖추어 선물을 주고 특별히 소시우스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돈을 주었다. 그러므로 로마 병사는 빈손으로 왔다가 주머니가 두둑한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 소시우스는 금관을 하느님께 헌납하고 안티고누스를 쇠사슬로 포박하여 그를 데리고 예루살렘을 떠나 안토니에게로 갔다. 포로로 잡힌 안티고누스는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끝까지 발버둥쳤으나 끝내는 도끼에 찍혀 죽고 말았는데 이는 겁쟁이 같은 그에게 걸맞은 죽음이었다



4. [클레오파트라의 매력에 압도당한 안토니]



 한편 헤롯은 두 분류의 예루살렘 주민들을 차별하여 자기를 지지하는 자들에게는 포상을 해서 우의를 더 돈독히 다지는 한편 안티고누스를 지지하는 자들은 살해했다. 그리고 헤롯은 돈이 바닥이 나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장식품들을 돈으로 바꾸어서 안토니와 그 측근들에게 상납하였다. 그러나 헤롯은 이것으로 모든 어려움에 대한 면죄부를 얻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안토니는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졌으며 완전히 그녀의 매력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클레오파트라는 모든 친척을 살해하여 그녀 주위에 혈연관계를 가진 이는 살아있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혈연관계가 없는 이들까지 죽이기 시작했다.그러므로 그녀는 수리아인들 중 유력자들을 안토니에게 중상하고 안토니로 하여금 그들을 죽이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가진 것을 쉽게 손에 넣은 그녀는 유대와 아라비아에까지 탐욕의 손길을 뻗쳐 이 두 국가의 왕인 헤롯과 말리쿠스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5. 클레오파트라가 유대 땅을 달라고 안토니에게 강청(强請)함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에게 이렇게 요청하자 안토니는 그 요구를 일부만 응락했는데 왜냐하면 그런 선하고 위대한 왕들을죽인다는 것은 야만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대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연유로 해서 안토니는 헤롯과 말리쿠스와 가졌던 예전의 우의도 끊어지게 되었다. 또한 안토니는 이들 나라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탈취했다. 그리고 발삼나무가 자라고 있던 여리고에 있는 종려나무 농장까지 탈취해서 클레오파트라에게 주었다.또한 엘류데루스(Eleutherus)강[㈜ 두로의 북쪽.] 남쪽까지[㈜ 헬라어 \”-이내에\”, 즉 \”-의 이쪽 편에.\”] 공격해 두로와시돈을 제외한 모든 도시들을 정복하여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이 도시들을 장악하고는 파르티아로 원정하는 안토니를 따라 유브라데까지 가서는 아파메아(Apamea)와 다메섹(Damascus)을 거쳐 유대로 들어갔다. 유대에서 헤롯은 그녀에게 많은 선물을 줌으로써 그녀의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뿐만 아니라 헤롯은 그녀에게 빼앗긴 지역을 매년 200달란트를 주기로 하고 빌렸다.헤롯은 그녀를 펠루시움(Pelusium)까지 전송해주고 할 수 있는모든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안토니는 파르티아에서 티그라네스(Tigranes)의 아들 아르타바제스(Artabazes)를 포로로 잡고 돌아와 클레오파트라에게 선물로주었다. 안토니는 이 파르티아인 뿐만 아니라[㈜ 이 아르타바제스(아르타바스데스)는 파르티아인이 아니라 아르메니아의 왕으로서 그와 이름이 같은 메대의 왕인 아르타바스데스를 공격하기 위하여 안토니와 합세했으나 후에 그를 배신하였다. 그는 곧이어 안토니의 포로로 붙들리게 되었다.(플루타르크. Ant.50) 요세푸스는 이 두 사람의 동명이인을 혼돈하고 있는 듯 하다.(라이나흐). 병행구절인 고대. 15권. 104에서 아르타바제스를 파르티아인이라고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가졌던 돈과 그로부터 노획한 모든 탈취물까지 그녀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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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제 18 장


    헤롯과 소시우스가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점령한 것과 안티고누스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와 클레오파트라의 탐욕에 대하여


     1. 예루살렘 포위 공격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여러 파당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연약한 서민들은 성전 주위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말세 때 제일 먼저 죽는 자가 믿음 좋고 복받은 사람이라는 등의 얘기를 화제로 삼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화제에 탐닉하는 반면 좀 대담하고 완강한 자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여러가지 방법으로 다른 이들의 물건을 약탈했는데 특히 예루살렘 부근 지역을 약탈하였다. 그들이 이와 같이 약탈을 자행하며0 다녔던이유는 사람이나 말을 먹일 양식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군 내부의 상황에 대해 잠시 말한다면 토성을 파괴하려는 적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는 임무를 띠고 고도의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토성을 파괴하는 적들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고 고용되었다. 이들은 적의 공격기구들을 방어할 갖가지 기구들을 발명해 내려고 하였으나 땅속에 굴을 파는 것만큼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2. 예루살렘의 함락과 대학살


     외부의 침입자를 차단하기 위해서 헤롯은 매복병을 배치시켜서 외부인의 출입을 낱낱이 점검하도록 하였다. 헤롯은 양식이 부족할 때는 먼 곳에서 양식을 가져오게 해서 식량이 떨어지는일이 없도록 하였다. 헤롯은 유대인들의 용맹성이 비록 하늘을 찌른다 하더라도 로마군의 경험과 사기로 미루어 볼 때 유대인들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만일 그들이 로마진영에 정면으로 대항하지 않는다면 죽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땅굴을 파서 로마 진영 한 가운데서 불쑥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리고 로마군이 성벽의 한쪽을 쳐서 허물어뜨리는가 싶으면 그이전에 또 다른 성벽을 쌓아서 이에 대응하였다. 그들은 끝까지 예루살렘성을 지키기로 작정한 만큼 고통스러워하거나 전술에서도 부족함을 보이지 않았다. 실로 유대인들은 자신들 주위에큰 부대가 둘러싸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개월을 견디며 항전하였다.[㈜ 고대.14권. 16:4(487)에서는 이와 반대로 첫번째 성벽이 40일만에, 그리고 두번째 벽이 15일만에 무너졌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이 “세달만에”, 혹은 그 이내에 함락되었다고 진술한다.(고대.14권.16:2(476)).] 그러나 헤롯의 정예병사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넘어가서 습격하고 소시우스의 백부장들이 그들을 따라가서 처음으로 성전 주위를 장악한 후 많은 로마 병사들이 쏟아져 들어옴으로 곳곳에서 대학살이 자행되었다. 로마군들은 오랫동안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느라 화가 치밀어 있었고 헤롯을 추종하는 유대인들은 헤롯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을 모조리 잡아 죽여야 한다고 헤롯에게 간언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로마 병사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좁은 거리에서 그리고 집에서 성전으로 도망가다가 잡혀 죽었으며 어린이건 노인이건 약한 여자이건 간에 무참히 살육당했다.. 헤롯은 사람을 보내 무고한 백성들은 죽이지 말라고지시하였으나 그들은 미친 사람들처럼 노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을 살해했다. 이런 상황에 처하자 안티고누스는 자신의 이전과현재의 지위를 무시하고 성채에서 내려와서 소시우스의 발 아래 무릎 끓었다. 그러나 소시우스는 안티고누스의 처지가 딱하게 된 것에 조금도 동정하지 않고 마음껏 그를 비웃으면서 그를 안티고네(Antigone)라고[㈜ 혹은 통상적 라틴어로는 “안티고나(Antigona).”] 불렀다. 그러나 소시우스는 안티고누스를 여자처럼 취급하지 않았으며 풀어주지 않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옥에 감금해 버렸다.


     3. 성전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헤롯이 막은 것과 예루살렘의 약탈


     이제 적들을 자기 수중에 장악한 헤롯의 당면한 문제는 외국 지원병들의 광포를 자제시키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이방인들은 매우 성전을 보고싶어 했으며 성소 안에 있는 성물들이 대체 어떤 것인지 매우 궁금히 여겨 당장이라도 달려들어갈 기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롯은 때로는 권고로 때로는 위협으로 또 어떤 때는 무력으로 이방인들을 제지했다. 왜냐하면 만일 보아서는 안될 것을 이방인들이 보게 된다면 유대 백성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승리의 기쁨을 채 맛보기도 전에 전국은 서로 죽고 죽이는 또 한 차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될 것이라고 헤롯은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헤롯은 동시에 도시를 약탈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는 간곡하게 소시우스에게 로마 병사들이 사람들을 죽이고 돈까지 약탈한다면 자신은 사막의 왕이나 다를 바 없지 않는가라고 하면서 약탈을 금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또한 소시우스에게 살육된 많은 백성들에 대해 보상하려면 대로마 제국의 영토로도 부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소시우스는 대답하기를 자신은 로마 병사들이 포위 공격할 동안에 받은 고통에 대한 보상으로라도 병사들에게 얼마간의 약탈은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헤롯은 이 말을 듣고 그러면 자신의 돈으로 모든 병사에게 보상을 해주겠으니 약탈 행위만큼은 금하게 하라고 소시우스에게 답했다. 이렇게 해서 헤롯은 돈을 주고 유대를 구할 수 있었으며 약속을 이행하여각 병사들과 지휘관들에게 화려한 의식을 갖추어 선물을 주고 특별히 소시우스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돈을 주었다. 그러므로 로마 병사는 빈손으로 왔다가 주머니가 두둑한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 소시우스는 금관을 하느님께 헌납하고 안티고누스를 쇠사슬로 포박하여 그를 데리고 예루살렘을 떠나 안토니에게로 갔다. 포로로 잡힌 안티고누스는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끝까지 발버둥쳤으나 끝내는 도끼에 찍혀 죽고 말았는데 이는 겁쟁이 같은 그에게 걸맞은 죽음이었다


    4. [클레오파트라의 매력에 압도당한 안토니]


     한편 헤롯은 두 분류의 예루살렘 주민들을 차별하여 자기를 지지하는 자들에게는 포상을 해서 우의를 더 돈독히 다지는 한편 안티고누스를 지지하는 자들은 살해했다. 그리고 헤롯은 돈이 바닥이 나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장식품들을 돈으로 바꾸어서 안토니와 그 측근들에게 상납하였다. 그러나 헤롯은 이것으로 모든 어려움에 대한 면죄부를 얻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안토니는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졌으며 완전히 그녀의 매력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클레오파트라는 모든 친척을 살해하여 그녀 주위에 혈연관계를 가진 이는 살아있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혈연관계가 없는 이들까지 죽이기 시작했다.그러므로 그녀는 수리아인들 중 유력자들을 안토니에게 중상하고 안토니로 하여금 그들을 죽이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가진 것을 쉽게 손에 넣은 그녀는 유대와 아라비아에까지 탐욕의 손길을 뻗쳐 이 두 국가의 왕인 헤롯과 말리쿠스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5. 클레오파트라가 유대 땅을 달라고 안토니에게 강청(强請)함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에게 이렇게 요청하자 안토니는 그 요구를 일부만 응락했는데 왜냐하면 그런 선하고 위대한 왕들을죽인다는 것은 야만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대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연유로 해서 안토니는 헤롯과 말리쿠스와 가졌던 예전의 우의도 끊어지게 되었다. 또한 안토니는 이들 나라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탈취했다. 그리고 발삼나무가 자라고 있던 여리고에 있는 종려나무 농장까지 탈취해서 클레오파트라에게 주었다.또한 엘류데루스(Eleutherus)강[㈜ 두로의 북쪽.] 남쪽까지[㈜ 헬라어 “-이내에”, 즉 “-의 이쪽 편에.”] 공격해 두로와시돈을 제외한 모든 도시들을 정복하여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이 도시들을 장악하고는 파르티아로 원정하는 안토니를 따라 유브라데까지 가서는 아파메아(Apamea)와 다메섹(Damascus)을 거쳐 유대로 들어갔다. 유대에서 헤롯은 그녀에게 많은 선물을 줌으로써 그녀의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뿐만 아니라 헤롯은 그녀에게 빼앗긴 지역을 매년 200달란트를 주기로 하고 빌렸다.헤롯은 그녀를 펠루시움(Pelusium)까지 전송해주고 할 수 있는모든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안토니는 파르티아에서 티그라네스(Tigranes)의 아들 아르타바제스(Artabazes)를 포로로 잡고 돌아와 클레오파트라에게 선물로주었다. 안토니는 이 파르티아인 뿐만 아니라[㈜ 이 아르타바제스(아르타바스데스)는 파르티아인이 아니라 아르메니아의 왕으로서 그와 이름이 같은 메대의 왕인 아르타바스데스를 공격하기 위하여 안토니와 합세했으나 후에 그를 배신하였다. 그는 곧이어 안토니의 포로로 붙들리게 되었다.(플루타르크. Ant.50) 요세푸스는 이 두 사람의 동명이인을 혼돈하고 있는 듯 하다.(라이나흐). 병행구절인 고대. 15권. 104에서 아르타바제스를 파르티아인이라고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가졌던 돈과 그로부터 노획한 모든 탈취물까지 그녀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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