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권 제 13장 네로가 아그립바 왕국에 네 도시를 덧붙여 주었고 유대의 다른 부분들은 벨릭스에게 속하도록 한 것과 시카리파, 마술사, 애굽의 거짓 선지자가 일으킨 폭동과,유대인과 수리아인이 가이사랴에서 싸운 것에 대하여

 


 제 13 장



네로가 아그립바 왕국에 네 도시를 덧붙여 주었고 유대의 다른 부분들은 벨릭스에게 속하도록 한 것과 시카리파, 마술사, 애굽의 거짓 선지자가 일으킨 폭동과,유대인과 수리아인이 가이사랴에서 싸운 것에 대하여



1. 네로의 즉위와 그의 성격[주후 53년]



 순리를 거스르는 네로의 난폭한 행위들, 지나친 사치와부가 몰고 온 광기, 계속된 형제, 아내, 어머니의 제거, 수많은저명인을 해친 그의 잔인무도함, 끝내는 얼마나 정신 착란이 심했던지 이 모든 이야기들이 극장 무대의 소재거리가 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이제 모두 진부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나는 여기서 이 이야기는 넘어가고, 그의 치하에서 일어난 유대의 역사적사건을 다루고자 한다.





 2. 아그립바 왕국의 확장



 네로는 헤롯의 아들인[㈜ 대 헤롯의 손자인 칼키스(Chalcis)의 아들.] 아리스토불루스에게는 소(小)아르메니아 왕국을 주고, 아그립바의 왕국에다가 그 지역의 네 도시를[㈜ 헬라어로는 \”소국가의 군주들.\”] 병합시켰는데, 그 네 도시는 곧 페라이아의 아빌라, 율리아스와 갈릴리의 타리카이아, 디베랴였다. 또한 벨릭스를 그 나머지 유대지역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벨릭스는 20년간 나라를 혼란케해 온 산적두목 엘르아살을 그의 많은 패거리들과 함께 로마로 보내어 재판을 받게 했다. 네로는 그 산적들을 십자가형에 처했는데, 가담자로 연루되어 네로가 처벌한 일반 백성들의 수는 셀수도 없었다.



3. 시카리파의 등장



 그들이 사라져서 나라가 조용한 듯했지만, 예루살렘에는 소위 시카리파라고 불리는 다른 무법자들이 고개를 들고 있었는데,이들은 대낮에 시내 중심부의 대로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특히 축제기간은 그들의 주된 활동시기로, 단도를 옷 속에 감추고 다니며 군중 속에 섞여 들어가 있다가 적을 찌르곤 했다. 그러다가그 적이 쓰러지면, 살인 공모자들은 놀란 듯이 분노의 소리를 지르며 모여들어서 그럴싸한 위장 행동을 했기 때문에 좀체로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암살당한 첫 희생자는 대제사장 요나단이었는데 그의 죽음 이후 수많은 살인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런데 백성들이 느끼는 공포는 살인 그자체에 대한 것보다 훨씬 더 심했다. 모든 사람은 마치 전장에 있는 것처럼 시시각각 죽음에의 위협을 느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대방을 항상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경계했으며, 접근하는 사람은 친구라 해도 일단 의심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그래도 살인 음모자들의 행동이 너무나 민첩하고 위장술이 뛰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죽어갔다.



 4. 거짓 선지자들의 등장



 이 외에도 또 하나의 악한 무리가 고개를 쳐들었다. 비록 손에무기는 없었지만 그 의도는 더 사악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도시의 평화를 파괴하는 데 있어서 암살자들보다도 더했다. 사기꾼이며 협잡꾼인 그들은 신적인 계시를 받았다면서 폭동을 선동했다. 또한 무리들을 설득해서 마치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게 했으며, 하느님의 구원의 증거를 주실 것이라며 그들을 광야로 이끌고 나갔다.[㈜ 마 24:24이하.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광야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고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고대. 20권. 5:1(97)에 보면 듀다스(Theudas)는 이보다 일찍이 있었던 사기꾼이었으며 이와 유사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벨릭스는 이를 반란의 조짐으로 보고, 기병대와 중무장한 보병대를 보내어 수많은 사람을 살상했다.



 5. 애굽인 협잡꾼



 더 심한 폭풍이 애굽의 거짓 선지자에 의해 유대에 불어오고 있었다. 자칭 선지자라는 허풍쟁이 하나가 그 나라에 나타나 여기저기서 어중이 떠중이를 다 끌어모아 거의 30,000명의 무리를[㈜ 행 21:38에 의하면 4천명의 자객이라고 나와 있다. 사도 바울은 이 사기꾼으로 오인되었다.] 이끌고 광야를 우회하여 감람산(the mount of Olives)에 다다랐다. 거기서 그는 예루살렘에 입성해서 로마 주둔군을 몰아내고,자신은 황제에 즉위하고, 그를 따라온 자들은 친위대가 된다고말했다. 이에 대해 그의 공격을 예상한 벨릭스는 자기 휘하에 있는 모든 로마의 중무장한 보병대를 이끌고 방어에 나섰는데 그결과 그 애굽 선지자는 몇 사람의 추종자들과 함께 도주하고, 대부분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고 나머지는 흩어져서 몰래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6. 더욱 심한 강도짓



 이런 혼란한 상태가 진압되기가 무섭게 환자의 몸에서 염증이 퍼지는 것처럼 또 다른 지역에서 혼란한 상태가 발생하였다. 사기꾼들과 강도들이 연합하여 사람들에게 반란을 일으키라고 선동하고 독립을 주장하도록 충동했던 것이다. 그들은 로마의 지배에 복종하는 자들은 죽일 것이며, 자원하여 노예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강제로 억압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무리를 지어 전국각지로 흩어져 부자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집을 약탈하며 마을에 불을 질렀다. 이와 같은 그들의 광포함이 온 유대 구석구석까지 미쳐 모든 사람이 그들의 위협을 느낄 수 있었고, 매일매일 이싸움이 맹렬한 불꽃으로 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7. 가이사랴의 무질서[주후 약59-60년]



 또다른 소요가 가이사랴(Caesarea)에서 발생했는데,[㈜ 사도 바울은 이때 이곳에서 죄수로 붙잡혔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유대인들이 수리아 주민들을 대항해 일어섰다. 유대인들은 가이사랴의 건축자가 유대인인 헤롯왕이라는 이유로 그 성이자기네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수리아인들은 그 성의 두번째 건립자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헤롯이 유대인들을 위해 건축했었더라면 그 성에 있는 신상들과 신전들을 결코 세우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 성 자체는 헬라인들에게 속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대. 20권. 8:7(173)에 나오는 그들의 주장은 보다 오래된 도시인 스트라토의 망대(Strato\’s Tower)에는 단 하나의 유대인 거주 지역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양쪽 주장의 논지였고, 이 싸움은 드디어 무력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매일 양쪽 진영에서 혈기 높은자들이 이 성급하게 싸움을 벌이곤 했다. 유대인 공동체의 연장자들도 그 과격한 무리들을 제지할 수 없었다. 헬라인들은 유대인들에게 굴복하는 것을 수치로 여길 뿐 아니라 게다가 유대인들보다 훨씬 돈도 많고 신체도 튼튼하고 헬라군이 지원도 해주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하였다. 가이사랴에 주둔한 군인들은 로마가 수리아에서 징집해 온 자들이었으므로 항상 자기동포들을 도와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치안 담당자는 이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으며, 계속하여 호전적으로 소요를 일으키는 자들을 붙잡아 매로 다스리고 감금하였다. 그러나 체포된 자에게 이 정도의 고통을 주는 것으로는 소요를 진정시킬 수 없었으며, 오히려 폭동을 확대시키는 자극제가될 뿐이었다. 유대인들이 승리하였을 때, 벨릭스(Felix)가 시장거리로 나아와 위협적인 목소리로 해산할 것을 명하였다. 그들이 복종하기를 거절하자, 즉시 그는 군인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을 치도록 하여 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재산을 약탈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싸움이 계속되자 벨릭스는 양쪽 진영의 명망있는 자들을 선발하여 대표로 네로(Nero)에게 보내어 그 앞에서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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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권 제 13장 네로가 아그립바 왕국에 네 도시를 덧붙여 주었고 유대의 다른 부분들은 벨릭스에게 속하도록 한 것과 시카리파, 마술사, 애굽의 거짓 선지자가 일으킨 폭동과,유대인과 수리아인이 가이사랴에서 싸운 것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13 장


    네로가 아그립바 왕국에 네 도시를 덧붙여 주었고 유대의 다른 부분들은 벨릭스에게 속하도록 한 것과 시카리파, 마술사, 애굽의 거짓 선지자가 일으킨 폭동과,유대인과 수리아인이 가이사랴에서 싸운 것에 대하여


    1. 네로의 즉위와 그의 성격[주후 53년]


     순리를 거스르는 네로의 난폭한 행위들, 지나친 사치와부가 몰고 온 광기, 계속된 형제, 아내, 어머니의 제거, 수많은저명인을 해친 그의 잔인무도함, 끝내는 얼마나 정신 착란이 심했던지 이 모든 이야기들이 극장 무대의 소재거리가 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이제 모두 진부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나는 여기서 이 이야기는 넘어가고, 그의 치하에서 일어난 유대의 역사적사건을 다루고자 한다.



     2. 아그립바 왕국의 확장


     네로는 헤롯의 아들인[㈜ 대 헤롯의 손자인 칼키스(Chalcis)의 아들.] 아리스토불루스에게는 소(小)아르메니아 왕국을 주고, 아그립바의 왕국에다가 그 지역의 네 도시를[㈜ 헬라어로는 “소국가의 군주들.”] 병합시켰는데, 그 네 도시는 곧 페라이아의 아빌라, 율리아스와 갈릴리의 타리카이아, 디베랴였다. 또한 벨릭스를 그 나머지 유대지역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벨릭스는 20년간 나라를 혼란케해 온 산적두목 엘르아살을 그의 많은 패거리들과 함께 로마로 보내어 재판을 받게 했다. 네로는 그 산적들을 십자가형에 처했는데, 가담자로 연루되어 네로가 처벌한 일반 백성들의 수는 셀수도 없었다.


    3. 시카리파의 등장


     그들이 사라져서 나라가 조용한 듯했지만, 예루살렘에는 소위 시카리파라고 불리는 다른 무법자들이 고개를 들고 있었는데,이들은 대낮에 시내 중심부의 대로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특히 축제기간은 그들의 주된 활동시기로, 단도를 옷 속에 감추고 다니며 군중 속에 섞여 들어가 있다가 적을 찌르곤 했다. 그러다가그 적이 쓰러지면, 살인 공모자들은 놀란 듯이 분노의 소리를 지르며 모여들어서 그럴싸한 위장 행동을 했기 때문에 좀체로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암살당한 첫 희생자는 대제사장 요나단이었는데 그의 죽음 이후 수많은 살인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런데 백성들이 느끼는 공포는 살인 그자체에 대한 것보다 훨씬 더 심했다. 모든 사람은 마치 전장에 있는 것처럼 시시각각 죽음에의 위협을 느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대방을 항상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경계했으며, 접근하는 사람은 친구라 해도 일단 의심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그래도 살인 음모자들의 행동이 너무나 민첩하고 위장술이 뛰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죽어갔다.


     4. 거짓 선지자들의 등장


     이 외에도 또 하나의 악한 무리가 고개를 쳐들었다. 비록 손에무기는 없었지만 그 의도는 더 사악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도시의 평화를 파괴하는 데 있어서 암살자들보다도 더했다. 사기꾼이며 협잡꾼인 그들은 신적인 계시를 받았다면서 폭동을 선동했다. 또한 무리들을 설득해서 마치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게 했으며, 하느님의 구원의 증거를 주실 것이라며 그들을 광야로 이끌고 나갔다.[㈜ 마 24:24이하.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광야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고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고대. 20권. 5:1(97)에 보면 듀다스(Theudas)는 이보다 일찍이 있었던 사기꾼이었으며 이와 유사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벨릭스는 이를 반란의 조짐으로 보고, 기병대와 중무장한 보병대를 보내어 수많은 사람을 살상했다.


     5. 애굽인 협잡꾼


     더 심한 폭풍이 애굽의 거짓 선지자에 의해 유대에 불어오고 있었다. 자칭 선지자라는 허풍쟁이 하나가 그 나라에 나타나 여기저기서 어중이 떠중이를 다 끌어모아 거의 30,000명의 무리를[㈜ 행 21:38에 의하면 4천명의 자객이라고 나와 있다. 사도 바울은 이 사기꾼으로 오인되었다.] 이끌고 광야를 우회하여 감람산(the mount of Olives)에 다다랐다. 거기서 그는 예루살렘에 입성해서 로마 주둔군을 몰아내고,자신은 황제에 즉위하고, 그를 따라온 자들은 친위대가 된다고말했다. 이에 대해 그의 공격을 예상한 벨릭스는 자기 휘하에 있는 모든 로마의 중무장한 보병대를 이끌고 방어에 나섰는데 그결과 그 애굽 선지자는 몇 사람의 추종자들과 함께 도주하고, 대부분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고 나머지는 흩어져서 몰래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6. 더욱 심한 강도짓


     이런 혼란한 상태가 진압되기가 무섭게 환자의 몸에서 염증이 퍼지는 것처럼 또 다른 지역에서 혼란한 상태가 발생하였다. 사기꾼들과 강도들이 연합하여 사람들에게 반란을 일으키라고 선동하고 독립을 주장하도록 충동했던 것이다. 그들은 로마의 지배에 복종하는 자들은 죽일 것이며, 자원하여 노예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강제로 억압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무리를 지어 전국각지로 흩어져 부자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집을 약탈하며 마을에 불을 질렀다. 이와 같은 그들의 광포함이 온 유대 구석구석까지 미쳐 모든 사람이 그들의 위협을 느낄 수 있었고, 매일매일 이싸움이 맹렬한 불꽃으로 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7. 가이사랴의 무질서[주후 약59-60년]


     또다른 소요가 가이사랴(Caesarea)에서 발생했는데,[㈜ 사도 바울은 이때 이곳에서 죄수로 붙잡혔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유대인들이 수리아 주민들을 대항해 일어섰다. 유대인들은 가이사랴의 건축자가 유대인인 헤롯왕이라는 이유로 그 성이자기네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수리아인들은 그 성의 두번째 건립자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헤롯이 유대인들을 위해 건축했었더라면 그 성에 있는 신상들과 신전들을 결코 세우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 성 자체는 헬라인들에게 속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대. 20권. 8:7(173)에 나오는 그들의 주장은 보다 오래된 도시인 스트라토의 망대(Strato’s Tower)에는 단 하나의 유대인 거주 지역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양쪽 주장의 논지였고, 이 싸움은 드디어 무력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매일 양쪽 진영에서 혈기 높은자들이 이 성급하게 싸움을 벌이곤 했다. 유대인 공동체의 연장자들도 그 과격한 무리들을 제지할 수 없었다. 헬라인들은 유대인들에게 굴복하는 것을 수치로 여길 뿐 아니라 게다가 유대인들보다 훨씬 돈도 많고 신체도 튼튼하고 헬라군이 지원도 해주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하였다. 가이사랴에 주둔한 군인들은 로마가 수리아에서 징집해 온 자들이었으므로 항상 자기동포들을 도와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치안 담당자는 이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으며, 계속하여 호전적으로 소요를 일으키는 자들을 붙잡아 매로 다스리고 감금하였다. 그러나 체포된 자에게 이 정도의 고통을 주는 것으로는 소요를 진정시킬 수 없었으며, 오히려 폭동을 확대시키는 자극제가될 뿐이었다. 유대인들이 승리하였을 때, 벨릭스(Felix)가 시장거리로 나아와 위협적인 목소리로 해산할 것을 명하였다. 그들이 복종하기를 거절하자, 즉시 그는 군인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을 치도록 하여 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재산을 약탈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싸움이 계속되자 벨릭스는 양쪽 진영의 명망있는 자들을 선발하여 대표로 네로(Nero)에게 보내어 그 앞에서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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