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권 제 22장 유대인들이 전쟁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과기오라의 아들 시몬이 약탈을 한 것에 대하여

 


제 22 장



유대인들이 전쟁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과기오라의 아들 시몬이 약탈을 한 것에 대하여



 1. 예루살렘에서의 전쟁 준비 [주후 66-67년 겨울]



 갈릴리의 혼란이 진정되었는데 그들의 내란이 그치고 그 주민들은 로마와의 전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한편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 아나누스(Ananus)와 친 로마계가 아닌 많은 유력 인사들이 모두 성벽을 수리하고 도시 모든 곳에서 창과 전쟁 무기들을 준비중이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일관성없이 훈련을 받았는데 모든 곳이 진동할 정도였다. 반면 온건한 사람들은 매우 낙심하였다. 즉 많은 사람들이 임박한 재난을 예상하고 침울해 했다. 또 그때 줄어들지 않은 징조들이 있었는데 전쟁을 부추기는사람들은 그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였지만, 평화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분명 불길한 징조였다.[㈜ 이것에 대한 기술은 6권. 5:3, 4 (288-315)에 있다.] 즉 예루살렘은 로마군이 오기 전에도 파멸로 운명지어지는 곳처럼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나누스는 이런 호전적인 준비를 점점 그만두게 하고 나쁜 생각들을 자제하며, 열심당(Zealots)이라고 불리는 자들을더 유익한 정책으로 누그러뜨리려는 생각을 품었다. 그러나 아나누스는 그들의 기세에 굴복하였고, 그의 운명은 다음 편에서 살펴볼 것이다.[㈜ 전쟁. 4권. 5:2(315)이하 ; 아나누스(Ananus)에 관해서는 전쟁.2권. 20:3(563) 위쪽의 각주를 보라.]



 2. 사마리아와 이두매에서 기오라(Gioras)의 아들 시몬이 공격함



 아크라바테네 왕국(the toparchy of Acrabatene)에서 기오라(Gioras)의 아들 시몬은 반동적인 무리들을 모아서 약탈을 일삼았다. 그는 부유한 집을 약탈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나아가눈에 띄게 사람들을 괴롭혀 일찍이 폭군으로서 입문했다.[㈜ 그는 예루살렘 공성(攻城)시 탁월한 인물이었다.] 이에 아나누스와 지배자들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고,그와 그의 무리들은 마사다에 있는 요새로 도망했으며,[㈜ 17:2, 8, 9 (408, 433, 447).] 거기서 아나누스와 그의 다른 대적들이 살해되기까지 남아있었다.반면 그는 그의 요새 동료들과 함께 이두매에서 위세를 떨치고있었고, 그 지역 치안관들(the local magistrates)은 많은 살상과 계속되는 습격 때문에 군대를 모았으며 마을에 수비대를 만들었다. 이두매 (Idumaea)의 상황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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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제 22 장


    유대인들이 전쟁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과기오라의 아들 시몬이 약탈을 한 것에 대하여


     1. 예루살렘에서의 전쟁 준비 [주후 66-67년 겨울]


     갈릴리의 혼란이 진정되었는데 그들의 내란이 그치고 그 주민들은 로마와의 전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한편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 아나누스(Ananus)와 친 로마계가 아닌 많은 유력 인사들이 모두 성벽을 수리하고 도시 모든 곳에서 창과 전쟁 무기들을 준비중이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일관성없이 훈련을 받았는데 모든 곳이 진동할 정도였다. 반면 온건한 사람들은 매우 낙심하였다. 즉 많은 사람들이 임박한 재난을 예상하고 침울해 했다. 또 그때 줄어들지 않은 징조들이 있었는데 전쟁을 부추기는사람들은 그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였지만, 평화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분명 불길한 징조였다.[㈜ 이것에 대한 기술은 6권. 5:3, 4 (288-315)에 있다.] 즉 예루살렘은 로마군이 오기 전에도 파멸로 운명지어지는 곳처럼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나누스는 이런 호전적인 준비를 점점 그만두게 하고 나쁜 생각들을 자제하며, 열심당(Zealots)이라고 불리는 자들을더 유익한 정책으로 누그러뜨리려는 생각을 품었다. 그러나 아나누스는 그들의 기세에 굴복하였고, 그의 운명은 다음 편에서 살펴볼 것이다.[㈜ 전쟁. 4권. 5:2(315)이하 ; 아나누스(Ananus)에 관해서는 전쟁.2권. 20:3(563) 위쪽의 각주를 보라.]


     2. 사마리아와 이두매에서 기오라(Gioras)의 아들 시몬이 공격함


     아크라바테네 왕국(the toparchy of Acrabatene)에서 기오라(Gioras)의 아들 시몬은 반동적인 무리들을 모아서 약탈을 일삼았다. 그는 부유한 집을 약탈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나아가눈에 띄게 사람들을 괴롭혀 일찍이 폭군으로서 입문했다.[㈜ 그는 예루살렘 공성(攻城)시 탁월한 인물이었다.] 이에 아나누스와 지배자들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고,그와 그의 무리들은 마사다에 있는 요새로 도망했으며,[㈜ 17:2, 8, 9 (408, 433, 447).] 거기서 아나누스와 그의 다른 대적들이 살해되기까지 남아있었다.반면 그는 그의 요새 동료들과 함께 이두매에서 위세를 떨치고있었고, 그 지역 치안관들(the local magistrates)은 많은 살상과 계속되는 습격 때문에 군대를 모았으며 마을에 수비대를 만들었다. 이두매 (Idumaea)의 상황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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