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티투스가 어떻게 예루살렘으로 진군했는지, 그리고 예루 살렘을 정찰하다가 그가 어떻게 위험에 빠졌는지, 또한 그가 진영을 친곳에 대하여
1. 유대로 행군하는 군대의 순서
티투스가 적군의 지역으로 진군할 때[㈜ 뒤따르는 기술은 갈릴리로 진군한 베스파시안(Vespasian)의 군대에 대한 설명과 비교되어야 한다. 전쟁.3권. (115-126).] 동맹국 왕들이 보낸 원군들과 그밖에 다른 모든 원군들이 선두에서 진군했다. 그 뒤를 따라 선발대와 진을 측량하는 자들이 갔으며, 그다음 지휘관들의 짐이 뒤따랐으며, 완전무장한 다른 병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 뒤에 티투스가 다른 선발 군대들과 함께 진군했으며, 창병(槍兵)들이 그 뒤를 따르고 그 뒤에 기병대가 따랐다. 계속하여 공격무기와 군사령관들과 보병대의 지휘관들이 그들의 선발부대와 함께 진군했다. 그 뒤로 독수리 문장(紋章)을 둘러싸고기수단이 행진하며 그 다음 군악대가 따르고 그 뒤로 병사들이 6열 종대로 행군하였다. 그 뒤를 따라 각 군단에 속하는 노예들과 그들의 짐이 이어져갔다. 맨 뒤에 용병들과 이들 보호하는 자들이 뒤따랐다.[㈜ 참).전쟁.3권. 6:2(123).] 티투스는 로마의 습관에 따라 당당하게 군대의 선두에서 사마리아를 통해 고프나(Gophna)로[㈜ 예루살렘 북쪽 약13마일 떨어진 주프나(Jufna).베스파시안이 고프나(Gophna)지역을 점령한 것에 대해 전쟁. 4권. 9:9 (551)을 참고할 것.] 진군했다.고프나는 전에 베스파시안이 점령하였던 도시이며 로마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티투스가 그곳에서 하루밤을 묵고 아침에다시 진군했다. 그는 하루에 걸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진군한뒤 유대인들의 말로 가시의 골짜기(Valley of Thorns)라 불리는 골짜기에 진을 쳤다. 가시의 골짜기는 예루살렘에서 약30퍼얼롱 정도 떨어진 사울의 언덕을 의미하는 가바옷 사울(Gab-aoth Saul)이란[㈜ 삼상 11:4절에 언급된 기브아(즉 사울의 출생지)는 예루살렘 북쪽 약4마일 떨어진 텔 엘 풀(Tell el-Ful)과 일치된다. \’가시의 골짜기\’는 와디 수웨이니트의 지류(Wady Suweinit : \’조그만 아카시아들의 골짜기\’)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언급된 주된 골짜기는 사울의 기브아 동과 북으로 흐른다.] 마을과 가까이 있었다. 티투스는 그곳에서 600명의 정예 기병들을 뽑아서 예루살렘을 정탐하러 즉 얼마나 강하며 유대인들의 용감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려고 함께 갔다. 티투스는 유대인들이 그를 보고 실제로 싸우기 전에 공포심에 질려 항복하지나 않을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예루살렘 주민들이 3개의 파당권력과 강도들의 내분에 휩싸여 있어서 평화를 몹시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예루살렘 주민이 그들과 대항하기에는 너무나 세력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2. 위험에 처한 티투스
티투스가 성벽으로[㈜ 아마도 현재의 다메섹 성문을 향하여.] 곧장 이르는 높은 길을 따라 말타고 가는 동안 성문 밖으로 나오는 유대인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티투스가 길을 빠져 나와 프세피누스(Psephinus)망대쪽으로[㈜ 제삼벽의 북서쪽의 모서리에서.] 경사로를 기병들을 데리고 올라갈 때, 갑자기 많은 유대인들이 헬레나(Helena)[㈜ 아디아베네(Adiabene)의 여왕. 유대주의로 개종함. 고대 20권. 2:1(17)이하. 그녀의 무덤은 전쟁.5권. 3;3(119), 4:2(147)에서 경계표로 나오며 그녀의 궁은 전쟁.5권 6:1(253)에 언급된다.] 기념비 앞에 있는 성문을 통해 여성들의 망대(Women\’s towers)라 부르는 곳에서 습격을 가했다. 유대인들은 기병대를 격파시키고, 길을 따라 질주하는 로마군 앞을 가로막으면서 후방에 남겨진 동료 로마군들과 합세하는것을 저지함으로써 티투스와 몇 명의 군사들을 고립시켰다. 티투스가 계속 진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성벽 밖의 광장이 전부 방어용 참호(도랑)들에 의해 차단되거나 성벽과 많은 철책에 의해 가로놓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티투스는 많은 적들의 사이에 끼어들어 있었기 때문에 부하들과 다시 합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부하들은 티투스가 위험에 처한 것도 모른채, 부하들은 후퇴했으며, 티투스도 함께 후퇴하는 무리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모두 급히 후퇴했다. 티투스는 자신의 안전은 오직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말머리를 돌려 부하들에게 따르라고 소리치면서 부하들의 퇴로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적의 중앙을 뚫고 들어갔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전쟁의 운과 티투스를 비롯한 장군들의 위험도 하느님의 돌보심 가운데 있었다. 왜나하면 그렇게 빗발치게 쏘아댄 화살들은 모두 티투스를 빗나갔으며, 게다가 그는 투구나 갑옷은 입지않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티투스는 싸우지 않고 정탐차 선발대로 갔기 때문에 무장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맞추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마치 그들의 공격이 고의적으로 빗나간 듯 하여서 전혀 그는 해를 입지 않았다. 반면 티투스는 칼을 계속 휘두르면서 옆에 있는자들을 죽이고, 정면에서 공격하는 자들은 쓰러뜨려, 쓰러진 적들의 말발굽으로 짓밟았다. 가이사(Caesar)티투스의 대담성에 유대인들은 감탄의 환성을 지르면서도 서로서로 용기를 북돋으면서 그를 공격했다. 그러나 티투스가 말머리를 돌리는 곳에서는 기겁을 하며 도주하는 유대인들만 보일 뿐이었다. 위험에 처한 티투스의 병사들은 등과 옆구리에 부상을 당한 채 그에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탈출하고자 하는 모두의 희망은 바로 티투스가 죽임을 당하기 전에 그와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2명의 병사가 뒤에서 쓰러졌다. 말을 타고 있던한 명은 포위당하여 창으로 찔려서 죽었고, 말에서 떨어진 한 명도 죽임을 당하고 말은 성읍으로 끌고 갔다. 티투스는 남은 자와 함께 안전하게 진영에 도착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첫 번째 공격에서 성공을 거두고서는, 필요 이상의 허황된 희망을 가지고 들떠 있었으며, 이런 일시적인 행운이 미래에 대한 큰 확신을[㈜ qavrso\” prouxevnei는 소포클레스(Sophocles)의 \’Trachiniae\’ 726에서 나온다.] 갖게 만들었다.
3. 스코푸스 산에 3개의 군단과 진을 친 티투스
가이사 티투스는 밤 동안 엠마오에서 온 군단과[㈜ 5군단. 전쟁. 5권. 1:6(42).] 합세하여그 다음날 진을 철수하여 스코푸스(Scopus)로 진격했다. 스코푸스는 예루살렘시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서 반짝반짝 거리는성전의 커다란 교각이 보인다고 해서 이러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의 북쪽지역과 연결된 낮은 평지에서 보면 이곳은 스코푸스(전망대)란[㈜ 즉 \’감시인\'(망류=Scopia). 고대. 11 : 329에 따르면 셈어로는 사페인(참고:미스바 즉 \’망루임\’)이었다. 여기는 케스티우스(Cestius)는 제12군단과 함께 있으면서 4년전에 진을 쳤던 곳이다. (전쟁.2:258, 542). 그리고 여기서 또한 알렉산더 대왕은 그 도시로 진군할 때 예루살렘의 대제상과 거민들을 만났다. 고대. 위에서 인용됨.] 이름과 잘 맞아 떨어진다.스코푸스에서 예루살렘까지 7퍼얼롱의 거리로 티투스는 2개의군단을[㈜ 12와 15군단, 전쟁.5권. 1:6(41).] 하나의 연합진영으로 만들라고 명령했으며, 제5군단은 후방에서 3퍼얼롱 떨어져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티투스는 제5군단 병사들이 야밤의 진군으로 피곤에 지쳐있었기 때문에 참호를 파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후방에 배치했다. 제10군단이여리고를 통해 도착했을 때[㈜ 참). 전쟁. 5권. 1 : 6(42).] 그들은 겨우 일을 시작했다. 여리고에는 베스파시안이 그전에 장악한 길목을 수비하기 위해 병사들이 배치되었다.[㈜ 베스파시안(Vespasian)은 여리고에 영구주둔군과 함께 진을 설치했다. 전쟁.4권. 9:1(486). 참).<전쟁.5권. 11:1(450)>] 이러한 군단들은 감람산(Mount of Olives)에서 예루살렘까지 6퍼얼롱 거리에 있는 곳에 위치한 진영을 설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감람산은 동쪽으로 예루살렘 맞은 편에 위치해 있었고, 기드론(Kedron)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있다.
4. 파당들의 연합
한편 예루살렘시 안에 있는 3개의 파당들의 상호 알력과 분쟁은 점점 더 심해 갔으나, 서서히 그들에게 로마군이 총공격해 오는 것을 알자 처음으로 내분을 자제했다. 서로 경쟁적인 파당들은 로마군이 세 곳에 진을 쳤다는 것을 알고 당황하였으며, 어색하게 동맹을 맺기로 하고 서로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가를 상의했으며, 혹은 3개의 요새를 건축하기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상태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적은 요새와 같은 새로운 시를 건설하는데 그들은 성벽 뒤에서 적들이 훌륭하고 노련하게 작업하는 것을 구경꾼마냥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그들은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서로서로 싸우는데만 궁금하여 우리들의 내분 때문에 로마군이 무혈입성하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유대인들이 제10군단을 공격하다]
그들은 이런 자조적인 말들에 서로 자극을 받아 힘을 합하여 무기를 들고 제10군단을 공격하려고 갑자기 크게 고함을 지르면서 골짜기를 가로질러 진영을 수비하던 적들을 습격했다. 로마군들은 성채건축을 서두르기 위해 몇몇 무리로 흩어져 있었고, 전혀 무장을 하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로마군들은 유대인들이 결코 이러한 기습을 감행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만약 그렇게 하도록 움직인다 하더라도 내분 때문에 힘이 분산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군은 놀라서 큰 혼란에 빠졌다. 어떤 병사들은 작업을 팽개치고 도망친 반면, 대부분의 많은 병사들은 무기를 잡으러 갔으나, 적들에게 대항해 보기도 전에 죽임을 당했다. 반면 유대인들은 첫 번 공격의 성공에 용기를 얻은 자들이 몰려들어 증원이 되자 계속 강화되어져갔으며, 운이 좋게 계속 승리하자 이들의 수가 유대인에게나 적들에게나 실제 인원보다 훨씬 더 많아 보이는 것 같았다. 게다가 훈련에 익숙하고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잘 정열된 대열에서 싸우는 것에 숙달된 로마군들은 갑자기 무질서한 전투에 직면하자, 우왕좌왕하게 되었다. 따라서 로마군은 불시에 기습을 당하여 계속되는 공격에 후퇴했다. 그리고 로마군들이 공격을 받고 도망갈 때 유대인이 밀어닥치는 쪽으로 갔기 때문에 방어를 포기하고 도망가기에 여념이 없는 많은 로마군은 심한 부상을 당해야 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이 중심지를 공격하면 할수록 로마군의 무질서는 더욱 극심해졌고, 마침내 그들은 진영을 버리고 도망쳤다. 로마군단 전체가 위험에 빠져있었으나 티투스는 그 소식을 듣고도 즉시 그들을 도우러 나서지 않았다. 티투스는 병사들의 비겁한 행동을 나무라면서 유대인과의 전쟁에서 도망온 자들을 꾸짖고 나서 정예군단과 함께 유대인의 측방을 공격하여 많은 사람을 죽이고 많은 사람에게 부상을 입혔다. 유대인들은 경사진 곳에서 엄청난 손실을 입었지만, 멀리있는 참호에 이르자 로마군에게 반격을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로마군 사이에 시내를 두고 다시 전투를 개시했다. 이렇게 하여전투는 정오까지 계속되었다. 정오가 조금 지나자 티투스는 더이상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원군 보병대와 함께 그가 데리고 온 보강군들을 배치했으며, 산등성이에 요새 구축을 계속 다시 시작하도록 하기 위해 산마루에 있던 나머지 병사들은 해산시켰다.
5. 새로운 유대인들이 감람산 경사지를 공격하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로마군의 움직임을 도망가는 것으로 착각하였고, 성벽에 배치한 보초가 옷을 흔들면서 신호를 보내는 것을 보고, 완전히 다른 새 유대인 부대들은 가장 야만스런 짐승들이 몰려드는 것처럼 맹렬하게 뛰쳐나왔다. 사실 로마군들은 상대방의 공격을 기다릴 것 없이 투석기로[㈜ 즉 \'(나사에 의해)공성무기(artillery engin)로부터\’ (투석기 (o[rganon ajfethvrion)인 것이 분명함. 전쟁. 2권. 7:2 (230)에 있다. 애매한 표현 은 아마 같은 의미를 지닌 듯하다.] 공격을 받은 것처럼 대열을 이탈하여 티투스와 몇 명의 병사들만 비탈의중간 지역에 내버려두고 산쪽으로 도망갔다. 최고사령관이 염려된 그의 친구들은 위험을 무시한 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서있는 티투스에게 죽기를 각오하고 덤비는 유대인들에게서 피하라고 간청하였다. 또한 티투스를 보호하기 위해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는 행운의 여신에게 빚진 것과[㈜ 혹은 \”그의 독특한 행운을 고려하다\”행운아로서 디도(Titus)였기 때문이다. 참). 전쟁. 6권 1 : 6(57).] 여느 평범한 병사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그가 이 전쟁과 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티투스는 이러한 충고를 들을려고 하지 않고 언덕에서 유대인들의 공격을 견디면서 그에게 줄기차게 밀려오는 적들을 대항하여 내리치고 죽였다. 그리고 나서 산비탈 아래로 유대인들을 밀어넣어 공격을 가했다. 유대인들은 티투스의 용맹성과 강인함을 두려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예루살렘으로 후퇴할 수도 없었다. 유대인들은 티투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양쪽으로 내려가면서 언덕으로 도망갔던 자들을 쫓아 계속 추격하였다. 티투스는 그곳에서 다시 한번 유대인의 측방을 공격했으며, 그들의 돌격을 제지했다. 한편 로마군 진영에서 요새를 강화하던 로마병사들은 아래있는 동료병사들이 도망가고 있는 것을보고 자신들도 한번 더 공포에 사로잡혔고, 전군단이 뿔뿔이 흩어진 것에 당황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유대인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고, 티투스도 도망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티투스가 도망하지 않고 그곳에 남아있었다면 나머지 병사들이 결코 도망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로마병사들은 공포에 질려서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으며, 그중에 몇 명은 그들의 장군 티투스가 한창 싸움하는 적진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 크게 당황하여 소리를 지르면서 전 군단에 티투스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렸다. 그들은 부끄러워서 가이사 티투스를 버리고 도망가는 것이 더 나쁜 죄임을 알고 서로서로 채찍질하면서 최후의 힘을 모아 유대인들을 공격했다. 로마병사들이일단 유대인을 퇴각시키기 위해 계속 몰아붙여 골짜기 경사진쪽으로 몰고갔다. 유대인들은 싸우면서 한걸음 한걸음 후퇴했으며, 반면 로마군들은 위치상의 잇점을 갖고 결국 유대인들 전부를 골짜기로 몰아 넣을수 있었다. 티투스는 계속 적들을 밀어붙이면서 1개 군단은 성채를 계속 짓도록 보냈다. 그는 그전에 같이 있던 군대들과 함께 적의 공격을 견뎌내고,[㈜ 전쟁. 5권. 2 : 4(82).] 적들을 궁지에 몰아 넣었다. 그런데 아첨이나 시기심에서가 아니라, 한마디 덧붙인다면 사실 가이사 티투스는 개인적으로 2번이나 위험에 처한 군단전체를 구출해 주었으며, 로마군들이 안전하게 참호 속에 몸을 숨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제 2 장
티투스가 어떻게 예루살렘으로 진군했는지, 그리고 예루 살렘을 정찰하다가 그가 어떻게 위험에 빠졌는지, 또한 그가 진영을 친곳에 대하여
1. 유대로 행군하는 군대의 순서
티투스가 적군의 지역으로 진군할 때[㈜ 뒤따르는 기술은 갈릴리로 진군한 베스파시안(Vespasian)의 군대에 대한 설명과 비교되어야 한다. 전쟁.3권. (115-126).] 동맹국 왕들이 보낸 원군들과 그밖에 다른 모든 원군들이 선두에서 진군했다. 그 뒤를 따라 선발대와 진을 측량하는 자들이 갔으며, 그다음 지휘관들의 짐이 뒤따랐으며, 완전무장한 다른 병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 뒤에 티투스가 다른 선발 군대들과 함께 진군했으며, 창병(槍兵)들이 그 뒤를 따르고 그 뒤에 기병대가 따랐다. 계속하여 공격무기와 군사령관들과 보병대의 지휘관들이 그들의 선발부대와 함께 진군했다. 그 뒤로 독수리 문장(紋章)을 둘러싸고기수단이 행진하며 그 다음 군악대가 따르고 그 뒤로 병사들이 6열 종대로 행군하였다. 그 뒤를 따라 각 군단에 속하는 노예들과 그들의 짐이 이어져갔다. 맨 뒤에 용병들과 이들 보호하는 자들이 뒤따랐다.[㈜ 참).전쟁.3권. 6:2(123).] 티투스는 로마의 습관에 따라 당당하게 군대의 선두에서 사마리아를 통해 고프나(Gophna)로[㈜ 예루살렘 북쪽 약13마일 떨어진 주프나(Jufna).베스파시안이 고프나(Gophna)지역을 점령한 것에 대해 전쟁. 4권. 9:9 (551)을 참고할 것.] 진군했다.고프나는 전에 베스파시안이 점령하였던 도시이며 로마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티투스가 그곳에서 하루밤을 묵고 아침에다시 진군했다. 그는 하루에 걸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진군한뒤 유대인들의 말로 가시의 골짜기(Valley of Thorns)라 불리는 골짜기에 진을 쳤다. 가시의 골짜기는 예루살렘에서 약30퍼얼롱 정도 떨어진 사울의 언덕을 의미하는 가바옷 사울(Gab-aoth Saul)이란[㈜ 삼상 11:4절에 언급된 기브아(즉 사울의 출생지)는 예루살렘 북쪽 약4마일 떨어진 텔 엘 풀(Tell el-Ful)과 일치된다. ‘가시의 골짜기’는 와디 수웨이니트의 지류(Wady Suweinit : ‘조그만 아카시아들의 골짜기’)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언급된 주된 골짜기는 사울의 기브아 동과 북으로 흐른다.] 마을과 가까이 있었다. 티투스는 그곳에서 600명의 정예 기병들을 뽑아서 예루살렘을 정탐하러 즉 얼마나 강하며 유대인들의 용감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려고 함께 갔다. 티투스는 유대인들이 그를 보고 실제로 싸우기 전에 공포심에 질려 항복하지나 않을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예루살렘 주민들이 3개의 파당권력과 강도들의 내분에 휩싸여 있어서 평화를 몹시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예루살렘 주민이 그들과 대항하기에는 너무나 세력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2. 위험에 처한 티투스
티투스가 성벽으로[㈜ 아마도 현재의 다메섹 성문을 향하여.] 곧장 이르는 높은 길을 따라 말타고 가는 동안 성문 밖으로 나오는 유대인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티투스가 길을 빠져 나와 프세피누스(Psephinus)망대쪽으로[㈜ 제삼벽의 북서쪽의 모서리에서.] 경사로를 기병들을 데리고 올라갈 때, 갑자기 많은 유대인들이 헬레나(Helena)[㈜ 아디아베네(Adiabene)의 여왕. 유대주의로 개종함. 고대 20권. 2:1(17)이하. 그녀의 무덤은 전쟁.5권. 3;3(119), 4:2(147)에서 경계표로 나오며 그녀의 궁은 전쟁.5권 6:1(253)에 언급된다.] 기념비 앞에 있는 성문을 통해 여성들의 망대(Women’s towers)라 부르는 곳에서 습격을 가했다. 유대인들은 기병대를 격파시키고, 길을 따라 질주하는 로마군 앞을 가로막으면서 후방에 남겨진 동료 로마군들과 합세하는것을 저지함으로써 티투스와 몇 명의 군사들을 고립시켰다. 티투스가 계속 진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성벽 밖의 광장이 전부 방어용 참호(도랑)들에 의해 차단되거나 성벽과 많은 철책에 의해 가로놓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티투스는 많은 적들의 사이에 끼어들어 있었기 때문에 부하들과 다시 합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부하들은 티투스가 위험에 처한 것도 모른채, 부하들은 후퇴했으며, 티투스도 함께 후퇴하는 무리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모두 급히 후퇴했다. 티투스는 자신의 안전은 오직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말머리를 돌려 부하들에게 따르라고 소리치면서 부하들의 퇴로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적의 중앙을 뚫고 들어갔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전쟁의 운과 티투스를 비롯한 장군들의 위험도 하느님의 돌보심 가운데 있었다. 왜나하면 그렇게 빗발치게 쏘아댄 화살들은 모두 티투스를 빗나갔으며, 게다가 그는 투구나 갑옷은 입지않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티투스는 싸우지 않고 정탐차 선발대로 갔기 때문에 무장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맞추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마치 그들의 공격이 고의적으로 빗나간 듯 하여서 전혀 그는 해를 입지 않았다. 반면 티투스는 칼을 계속 휘두르면서 옆에 있는자들을 죽이고, 정면에서 공격하는 자들은 쓰러뜨려, 쓰러진 적들의 말발굽으로 짓밟았다. 가이사(Caesar)티투스의 대담성에 유대인들은 감탄의 환성을 지르면서도 서로서로 용기를 북돋으면서 그를 공격했다. 그러나 티투스가 말머리를 돌리는 곳에서는 기겁을 하며 도주하는 유대인들만 보일 뿐이었다. 위험에 처한 티투스의 병사들은 등과 옆구리에 부상을 당한 채 그에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탈출하고자 하는 모두의 희망은 바로 티투스가 죽임을 당하기 전에 그와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2명의 병사가 뒤에서 쓰러졌다. 말을 타고 있던한 명은 포위당하여 창으로 찔려서 죽었고, 말에서 떨어진 한 명도 죽임을 당하고 말은 성읍으로 끌고 갔다. 티투스는 남은 자와 함께 안전하게 진영에 도착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첫 번째 공격에서 성공을 거두고서는, 필요 이상의 허황된 희망을 가지고 들떠 있었으며, 이런 일시적인 행운이 미래에 대한 큰 확신을[㈜ qavrso” prouxevnei는 소포클레스(Sophocles)의 ‘Trachiniae’ 726에서 나온다.] 갖게 만들었다.
3. 스코푸스 산에 3개의 군단과 진을 친 티투스
가이사 티투스는 밤 동안 엠마오에서 온 군단과[㈜ 5군단. 전쟁. 5권. 1:6(42).] 합세하여그 다음날 진을 철수하여 스코푸스(Scopus)로 진격했다. 스코푸스는 예루살렘시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서 반짝반짝 거리는성전의 커다란 교각이 보인다고 해서 이러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의 북쪽지역과 연결된 낮은 평지에서 보면 이곳은 스코푸스(전망대)란[㈜ 즉 ‘감시인'(망류=Scopia). 고대. 11 : 329에 따르면 셈어로는 사페인(참고:미스바 즉 ‘망루임’)이었다. 여기는 케스티우스(Cestius)는 제12군단과 함께 있으면서 4년전에 진을 쳤던 곳이다. (전쟁.2:258, 542). 그리고 여기서 또한 알렉산더 대왕은 그 도시로 진군할 때 예루살렘의 대제상과 거민들을 만났다. 고대. 위에서 인용됨.] 이름과 잘 맞아 떨어진다.스코푸스에서 예루살렘까지 7퍼얼롱의 거리로 티투스는 2개의군단을[㈜ 12와 15군단, 전쟁.5권. 1:6(41).] 하나의 연합진영으로 만들라고 명령했으며, 제5군단은 후방에서 3퍼얼롱 떨어져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티투스는 제5군단 병사들이 야밤의 진군으로 피곤에 지쳐있었기 때문에 참호를 파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후방에 배치했다. 제10군단이여리고를 통해 도착했을 때[㈜ 참). 전쟁. 5권. 1 : 6(42).] 그들은 겨우 일을 시작했다. 여리고에는 베스파시안이 그전에 장악한 길목을 수비하기 위해 병사들이 배치되었다.[㈜ 베스파시안(Vespasian)은 여리고에 영구주둔군과 함께 진을 설치했다. 전쟁.4권. 9:1(486). 참).<전쟁.5권. 11:1(450)>] 이러한 군단들은 감람산(Mount of Olives)에서 예루살렘까지 6퍼얼롱 거리에 있는 곳에 위치한 진영을 설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감람산은 동쪽으로 예루살렘 맞은 편에 위치해 있었고, 기드론(Kedron)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있다.
4. 파당들의 연합
한편 예루살렘시 안에 있는 3개의 파당들의 상호 알력과 분쟁은 점점 더 심해 갔으나, 서서히 그들에게 로마군이 총공격해 오는 것을 알자 처음으로 내분을 자제했다. 서로 경쟁적인 파당들은 로마군이 세 곳에 진을 쳤다는 것을 알고 당황하였으며, 어색하게 동맹을 맺기로 하고 서로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가를 상의했으며, 혹은 3개의 요새를 건축하기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상태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적은 요새와 같은 새로운 시를 건설하는데 그들은 성벽 뒤에서 적들이 훌륭하고 노련하게 작업하는 것을 구경꾼마냥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그들은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서로서로 싸우는데만 궁금하여 우리들의 내분 때문에 로마군이 무혈입성하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유대인들이 제10군단을 공격하다]
그들은 이런 자조적인 말들에 서로 자극을 받아 힘을 합하여 무기를 들고 제10군단을 공격하려고 갑자기 크게 고함을 지르면서 골짜기를 가로질러 진영을 수비하던 적들을 습격했다. 로마군들은 성채건축을 서두르기 위해 몇몇 무리로 흩어져 있었고, 전혀 무장을 하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로마군들은 유대인들이 결코 이러한 기습을 감행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만약 그렇게 하도록 움직인다 하더라도 내분 때문에 힘이 분산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군은 놀라서 큰 혼란에 빠졌다. 어떤 병사들은 작업을 팽개치고 도망친 반면, 대부분의 많은 병사들은 무기를 잡으러 갔으나, 적들에게 대항해 보기도 전에 죽임을 당했다. 반면 유대인들은 첫 번 공격의 성공에 용기를 얻은 자들이 몰려들어 증원이 되자 계속 강화되어져갔으며, 운이 좋게 계속 승리하자 이들의 수가 유대인에게나 적들에게나 실제 인원보다 훨씬 더 많아 보이는 것 같았다. 게다가 훈련에 익숙하고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잘 정열된 대열에서 싸우는 것에 숙달된 로마군들은 갑자기 무질서한 전투에 직면하자, 우왕좌왕하게 되었다. 따라서 로마군은 불시에 기습을 당하여 계속되는 공격에 후퇴했다. 그리고 로마군들이 공격을 받고 도망갈 때 유대인이 밀어닥치는 쪽으로 갔기 때문에 방어를 포기하고 도망가기에 여념이 없는 많은 로마군은 심한 부상을 당해야 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이 중심지를 공격하면 할수록 로마군의 무질서는 더욱 극심해졌고, 마침내 그들은 진영을 버리고 도망쳤다. 로마군단 전체가 위험에 빠져있었으나 티투스는 그 소식을 듣고도 즉시 그들을 도우러 나서지 않았다. 티투스는 병사들의 비겁한 행동을 나무라면서 유대인과의 전쟁에서 도망온 자들을 꾸짖고 나서 정예군단과 함께 유대인의 측방을 공격하여 많은 사람을 죽이고 많은 사람에게 부상을 입혔다. 유대인들은 경사진 곳에서 엄청난 손실을 입었지만, 멀리있는 참호에 이르자 로마군에게 반격을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로마군 사이에 시내를 두고 다시 전투를 개시했다. 이렇게 하여전투는 정오까지 계속되었다. 정오가 조금 지나자 티투스는 더이상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원군 보병대와 함께 그가 데리고 온 보강군들을 배치했으며, 산등성이에 요새 구축을 계속 다시 시작하도록 하기 위해 산마루에 있던 나머지 병사들은 해산시켰다.
5. 새로운 유대인들이 감람산 경사지를 공격하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로마군의 움직임을 도망가는 것으로 착각하였고, 성벽에 배치한 보초가 옷을 흔들면서 신호를 보내는 것을 보고, 완전히 다른 새 유대인 부대들은 가장 야만스런 짐승들이 몰려드는 것처럼 맹렬하게 뛰쳐나왔다. 사실 로마군들은 상대방의 공격을 기다릴 것 없이 투석기로[㈜ 즉 ‘(나사에 의해)공성무기(artillery engin)로부터’ (투석기 (o[rganon ajfethvrion)인 것이 분명함. 전쟁. 2권. 7:2 (230)에 있다. 애매한 표현 은 아마 같은 의미를 지닌 듯하다.] 공격을 받은 것처럼 대열을 이탈하여 티투스와 몇 명의 병사들만 비탈의중간 지역에 내버려두고 산쪽으로 도망갔다. 최고사령관이 염려된 그의 친구들은 위험을 무시한 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서있는 티투스에게 죽기를 각오하고 덤비는 유대인들에게서 피하라고 간청하였다. 또한 티투스를 보호하기 위해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는 행운의 여신에게 빚진 것과[㈜ 혹은 “그의 독특한 행운을 고려하다”행운아로서 디도(Titus)였기 때문이다. 참). 전쟁. 6권 1 : 6(57).] 여느 평범한 병사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그가 이 전쟁과 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티투스는 이러한 충고를 들을려고 하지 않고 언덕에서 유대인들의 공격을 견디면서 그에게 줄기차게 밀려오는 적들을 대항하여 내리치고 죽였다. 그리고 나서 산비탈 아래로 유대인들을 밀어넣어 공격을 가했다. 유대인들은 티투스의 용맹성과 강인함을 두려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예루살렘으로 후퇴할 수도 없었다. 유대인들은 티투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양쪽으로 내려가면서 언덕으로 도망갔던 자들을 쫓아 계속 추격하였다. 티투스는 그곳에서 다시 한번 유대인의 측방을 공격했으며, 그들의 돌격을 제지했다. 한편 로마군 진영에서 요새를 강화하던 로마병사들은 아래있는 동료병사들이 도망가고 있는 것을보고 자신들도 한번 더 공포에 사로잡혔고, 전군단이 뿔뿔이 흩어진 것에 당황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유대인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고, 티투스도 도망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티투스가 도망하지 않고 그곳에 남아있었다면 나머지 병사들이 결코 도망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로마병사들은 공포에 질려서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으며, 그중에 몇 명은 그들의 장군 티투스가 한창 싸움하는 적진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 크게 당황하여 소리를 지르면서 전 군단에 티투스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렸다. 그들은 부끄러워서 가이사 티투스를 버리고 도망가는 것이 더 나쁜 죄임을 알고 서로서로 채찍질하면서 최후의 힘을 모아 유대인들을 공격했다. 로마병사들이일단 유대인을 퇴각시키기 위해 계속 몰아붙여 골짜기 경사진쪽으로 몰고갔다. 유대인들은 싸우면서 한걸음 한걸음 후퇴했으며, 반면 로마군들은 위치상의 잇점을 갖고 결국 유대인들 전부를 골짜기로 몰아 넣을수 있었다. 티투스는 계속 적들을 밀어붙이면서 1개 군단은 성채를 계속 짓도록 보냈다. 그는 그전에 같이 있던 군대들과 함께 적의 공격을 견뎌내고,[㈜ 전쟁. 5권. 2 : 4(82).] 적들을 궁지에 몰아 넣었다. 그런데 아첨이나 시기심에서가 아니라, 한마디 덧붙인다면 사실 가이사 티투스는 개인적으로 2번이나 위험에 처한 군단전체를 구출해 주었으며, 로마군들이 안전하게 참호 속에 몸을 숨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