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티투스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각종 전시회를 열었던 것과 폭도 시몬을 잡아 승리의 기념물로 남겨두게 된 것에 대하여
1. 베스파시안이 이달리야로 갔을 때의 항해 여정
한편 가이사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을 때, 상선을 탄 베스파시안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로데스(Rhodes)로 횡단하였다. 베스파시안은 로데스에서 3단 노로 된배를 타고 항해하였다. 그는 항해중에 모든 도시에 기항(寄航)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이오니아(Ion-ia)에서 헬라(Greece)로 항해하였다. 베스파시안은 헬라에서 코르키라(Corcyra)로 항해했으며, 그곳에서 이아피기안(Iap-ygian) 갑(岬)으로 항해해서 그곳에서 부터는 육로로 여행을 계속하였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전시회를 하는 티투스]
한편 티투스는 병사들을 해변에 있는 가이사랴에서 가이사랴빌립보(Caesarea Philippi)란 곳으로 이동시키고 그곳에서 온갖 종류의 구경거리를 전시하면서 상당한 기간 가이사랴 빌립보에 머물렀다. 여기서 많은 포로들이 죽음을 당했는데, 일부는 맹수들의 밥이 되었고, 일부는 서로 두편으로 갈라 결투를 벌이는꼭두각시로 죽음을 당하였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티투스는 기오라(Gioras)의 아들 시몬(Simon)의 체포 소식을 알게 되었다.시몬의 체포 경위는 다음과 같다.
2. 시몬이 체포된 경위
이 시몬은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있을 동안 상부도시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로마 군대가 성벽을 통해 도시 안으로 들어와서 도시 전체를 황폐화시키기 시작하자, 시몬은 가장 충실한 측근들과 함께 몇 명의 석공(石工)을 데리고 오랫동안 지낼 수 있는 충분한 식량과 도피할 때 필요한 연장 도구들을 가지고 비밀지하 통로로 피신하였다. 그런데 이미 뚫어져 있던 오래된 통로까지는 들어갈 수 있었으나 그들은 이내 단단한 암벽과 만나게되었다. 그들은 굴을 앞으로 더 파나가면 안전하게 빠져 나와 도망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굴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로 굴을 파는 작업은 그들의 기대가 한낱 망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굴을 파는 작업이 느리게 진행된데다 파기에 아주 힘들고 게다가 식량을 아꼈음에도 불구하고 식량이 거의 바닥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시몬은 로마군들에게 공포심을 조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흰 옷을 입고 그 위에 자주색 망토를 걸치고 지하 동굴에서 나와 그전에 성전이 서있었던 바로 그 곳에 나타났다. 로마병사들은 처음에 그 모습을보고 기겁을 해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냥 굳어 있었다. 그러나 조금 후에 병사들은 더 가까이 다가와서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다.시몬은 병사들에게 말하기를 거부한 채 대장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로마 병사들은 재빨리 달려가, 예루살렘 주둔군 지휘관인 테렌티우스 루푸스(Terenitus Rufus)장군을 데리고 왔다. 테렌티우스 루푸스는 시몬에게서 모든 사실을 듣고 난후에 그를 결박해서 감금시키고, 티투스에게 이러 저러 해서 시몬을 붙잡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고하였다. 이렇게 하여 동족들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른 잔혹함에 대한 보복으로 시몬은 하느님에 의해 그의 가장 철천지 원수인 로마군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이었다. 더욱이 무력에 의해 당한 것이 아니라 시몬 스스로가 처벌을 받으러 걸어나오게 된 셈이었다. 이것은 시몬이로마군에게 탈주하는 자를 제지하기 위해 많은 유대인들을 죽인것에 대한 똑같은 보복을 당한 격으로 시몬 자신이 로마군에게 투항하게 된 셈이다. 왜냐하면 극악한 행동은 하느님의 진노를피할 길이 없으며, 하느님의 공의는 결코 나약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공의는 다만 정의에 어긋나는 자들을 하느님의 적절한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범죄자들이 즉시 처벌당하지않음으로써 하느님의 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 때에 더 엄격한처벌을 가하는 것이다.[㈜ 참). Horace, \’Odes\’ iii.2.31이하 \”raro antecedentem scelestum deseruit pedepoena claudo\”.] 이 시몬은 분노한 로마군의 손에 잡히게 되자 비로소 하느님의 공의를 깨닫게 되었다. 시몬은 지하 동굴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때에 지하 동굴속에 숨어있던 다른 많은 강도들도 탄로나게 되었다. 가이사 티투스가 해변에 있는 가이사랴로 다시 돌아왔을 때, 시몬은 사슬에 결박된 채 티투스에게 끌려 왔으며, 티투스는 로마에서 있을 승전 기념식에 개선을 위한 기념물로 시몬을 감금해 두라고 지시하였다.

제 2 장
티투스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각종 전시회를 열었던 것과 폭도 시몬을 잡아 승리의 기념물로 남겨두게 된 것에 대하여
1. 베스파시안이 이달리야로 갔을 때의 항해 여정
한편 가이사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을 때, 상선을 탄 베스파시안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로데스(Rhodes)로 횡단하였다. 베스파시안은 로데스에서 3단 노로 된배를 타고 항해하였다. 그는 항해중에 모든 도시에 기항(寄航)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이오니아(Ion-ia)에서 헬라(Greece)로 항해하였다. 베스파시안은 헬라에서 코르키라(Corcyra)로 항해했으며, 그곳에서 이아피기안(Iap-ygian) 갑(岬)으로 항해해서 그곳에서 부터는 육로로 여행을 계속하였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전시회를 하는 티투스]
한편 티투스는 병사들을 해변에 있는 가이사랴에서 가이사랴빌립보(Caesarea Philippi)란 곳으로 이동시키고 그곳에서 온갖 종류의 구경거리를 전시하면서 상당한 기간 가이사랴 빌립보에 머물렀다. 여기서 많은 포로들이 죽음을 당했는데, 일부는 맹수들의 밥이 되었고, 일부는 서로 두편으로 갈라 결투를 벌이는꼭두각시로 죽음을 당하였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티투스는 기오라(Gioras)의 아들 시몬(Simon)의 체포 소식을 알게 되었다.시몬의 체포 경위는 다음과 같다.
2. 시몬이 체포된 경위
이 시몬은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있을 동안 상부도시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로마 군대가 성벽을 통해 도시 안으로 들어와서 도시 전체를 황폐화시키기 시작하자, 시몬은 가장 충실한 측근들과 함께 몇 명의 석공(石工)을 데리고 오랫동안 지낼 수 있는 충분한 식량과 도피할 때 필요한 연장 도구들을 가지고 비밀지하 통로로 피신하였다. 그런데 이미 뚫어져 있던 오래된 통로까지는 들어갈 수 있었으나 그들은 이내 단단한 암벽과 만나게되었다. 그들은 굴을 앞으로 더 파나가면 안전하게 빠져 나와 도망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굴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로 굴을 파는 작업은 그들의 기대가 한낱 망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굴을 파는 작업이 느리게 진행된데다 파기에 아주 힘들고 게다가 식량을 아꼈음에도 불구하고 식량이 거의 바닥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시몬은 로마군들에게 공포심을 조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흰 옷을 입고 그 위에 자주색 망토를 걸치고 지하 동굴에서 나와 그전에 성전이 서있었던 바로 그 곳에 나타났다. 로마병사들은 처음에 그 모습을보고 기겁을 해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냥 굳어 있었다. 그러나 조금 후에 병사들은 더 가까이 다가와서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다.시몬은 병사들에게 말하기를 거부한 채 대장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로마 병사들은 재빨리 달려가, 예루살렘 주둔군 지휘관인 테렌티우스 루푸스(Terenitus Rufus)장군을 데리고 왔다. 테렌티우스 루푸스는 시몬에게서 모든 사실을 듣고 난후에 그를 결박해서 감금시키고, 티투스에게 이러 저러 해서 시몬을 붙잡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고하였다. 이렇게 하여 동족들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른 잔혹함에 대한 보복으로 시몬은 하느님에 의해 그의 가장 철천지 원수인 로마군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이었다. 더욱이 무력에 의해 당한 것이 아니라 시몬 스스로가 처벌을 받으러 걸어나오게 된 셈이었다. 이것은 시몬이로마군에게 탈주하는 자를 제지하기 위해 많은 유대인들을 죽인것에 대한 똑같은 보복을 당한 격으로 시몬 자신이 로마군에게 투항하게 된 셈이다. 왜냐하면 극악한 행동은 하느님의 진노를피할 길이 없으며, 하느님의 공의는 결코 나약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공의는 다만 정의에 어긋나는 자들을 하느님의 적절한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범죄자들이 즉시 처벌당하지않음으로써 하느님의 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 때에 더 엄격한처벌을 가하는 것이다.[㈜ 참). Horace, ‘Odes’ iii.2.31이하 “raro antecedentem scelestum deseruit pedepoena claudo”.] 이 시몬은 분노한 로마군의 손에 잡히게 되자 비로소 하느님의 공의를 깨닫게 되었다. 시몬은 지하 동굴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때에 지하 동굴속에 숨어있던 다른 많은 강도들도 탄로나게 되었다. 가이사 티투스가 해변에 있는 가이사랴로 다시 돌아왔을 때, 시몬은 사슬에 결박된 채 티투스에게 끌려 왔으며, 티투스는 로마에서 있을 승전 기념식에 개선을 위한 기념물로 시몬을 감금해 두라고 지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