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1 예수 그리스도와 세례 요한과 의인 야고보에 관한 요세푸스의 증언의 확실성

 


  논  문   I



  예수 그리스도와 세례 요한과 의인 야고보에 관한 요세푸스의 증언의 확실성

  [㈜ 논문 I ~Ⅵ 은William Whiston(1667~1752) 의 저작임.]



우리는 유대의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증언들 속에서 나사렛 예수(Jesus of Nazareth)의 선구자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과 나사렛 예수 자신 그리고 나사렛 예수의 동생인 의인 야고보(James the Just)에 관한 몇가지 중요한 자료들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증언들은 주로 나사렛 예수에 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거나 혹은 몇몇 지식인들은 거짓말이라고까지 하며 그의 증언들을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그의 증언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확실히 천명해왔던 필자가 이에 대해 몇가지 언급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필자는 요세푸스의 증언들에 관하여 15세기까지 살았던 사람들의 독창적인 증거들과 인용문들을 몇가지 기록하려고 한다. 그런 후에 독자들에게 보다 깊은 이력을 갖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증거에 대한 몇가지 적절한 나의 견해를 피력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세푸스에 관한일용문들을 설명하기에 앞서서 독자들의 주의를 요하는 한가지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최고의 지성인이자 유능한 재판관인 죠셉 스칼리거(Joseph Scaliger)가 그의 저서인 \’시간 개량론에관하여\’ (De Emendatione Temporum)의 서문 17쪽에서 언급한 \’요세푸스의 권위\’에 관한 문제이다. \”요세푸스는 모든 ?저술가 중에서 가장 근면하여 진리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는 헬라나 라틴의 역사가들보다도 유대의 상황이나 이방인들의 역사에 관한 요세푸스의 증언을 믿는 것이 훨씬 안전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의 진실성과 해박한 지식은 그의 저서 어디에서나 명백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주후 약 110년경 타키투스의 \’연대기\'( Annal.) 15권 44장



네로는 (마치 그 자신이 로마시에 방화한 범인인양 떠도는)소문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그 화재가 야만인들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의 탓이라고 원인을 돌렸다. 사람들은그리스도인들이 생활 속에서 악행을 저지른다는 오해를 가지고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였다. 네로는 이들을 절묘한 방법으로 죽였다.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은디베료(Tiberius)가 통치하던 시절에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처형을 당했던 그리스도(Christ)라는 사람이었다.



 주후 147년경 순교자 져스틴(Just Mart)의 \’트리포(Tryph.)와의 대화\’ p.230



여러분(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승천하였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주후 230년경 오리게네스(Orison)의 \’마태복음 주석\'(Com-ment. in Matth.) p.234



이 야고보는 의인으로서 백성들 가운데 아주 빛나는 평판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그의 저서 \’유대고대사\'(Jewish Antiquities) 제20권에서 유대인들이 그들의 성전이 훼파당할 만큼 비극을 격어야했던 원인이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하면서 말하기를 백성들이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에게 해를 가했던 사실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진노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재난을 겪게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야고보를 매우 의로운 사람이라고 증언했다는 것이다. 더우기 요세푸스는 계속 말하기를 백성들은 그들이 이러한 고난을 당하는 것이 바로 야고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주후 250년경 오리게네스의 켈수스 반박문(Contr. Cels.) 1권 p.35,36



이제 나는 유대인 행세를 하고 있는 켈수스(Celsus)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당신이 유대인이라면 세례자 요한을 인정할 것이며 그가 예수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가 죽은 후 단지 얼마간 세상을 살았던한 사람이 세례 요한은 죄사함의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었다고 기록한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유대고대사\’제18권에서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며 세례를 받으면 정결하게 된다고 사람들에게 약속하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한이 요세푸스는 비록 그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는 않았지만예루살렘의 파괴와 성전의 훼손의 원인을 조사하면서 백성들에게 임한 비극의 원인이 곧 그들이 음모를 꾸며 예수를 죽였기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예언자들이예언했던 그리스도를 살해했기 때문에 이러한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고 그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의 표현이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불행은 의인인 야고보(James the Just)를 살해한 데 대한 보상으로써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예수의 형제였다. 아주 의로운 사람을 살해했기 때문에 당하는 환난이었다.\” 이 야고보는 예수의 참제자인 바울이 \’주의 형제\’라고 부른 바로 그 인물입니다(갈 1:19).여기에서 말하는 형제의 관계성이란 혈통에 있어서의 근친관계나 교육정도의 동등함을 의미하기 보다는 삶의 방식이나 가르치는 양식이 일치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세푸스가 유대인들이 당한 예루살렘의 함락의 고통은 야고보를 살해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 고통의 원인이 예수를 죽였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주후 324년경 유세비우스(Euseb)의 \’복음의 증거\'(Demonstr.Evan.) 3장 p.124



 사실상, 우리 구세주이신 예수에 관하여 내가 이미 제시했던 여러 증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층 더 분명한 증거를 위하여 유대인 요세푸스를 새로운 증인으로 삼는다고해서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의 저서 \’유대고대사\’ 제18권에서 빌라도(Pilate)의 지배하에 있는 유대의 역사들을 기록하면서 우리 구세주이신 예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있다. \”그를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라고 하는 한 현인(賢人)이 있었다. 그는 놀라운 이적을 행했으며, 또한 진리를 숭배하는 많은 사람들의 교사였다. 유대인이나 이방인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몰려왔다.그는 그리스도였다. 그리고 빌라도가 유대인 중의 요인(要人)들의 제안을 듣고 그를 십자가의 형벌을 선고했을 때에도 그를 처음부터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느님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대로 사흘만에 다시살아나 그들에게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 또 과거의 수없이 많은 기사와 이적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의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불리워지는 집단이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현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증언에 의하여 예수가 12사도와 70제자를 가르쳤을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도 개종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볼 때 예수는 평범한 다른 사람들 이상의 비범한 어떤 능력을 그 안에 지니고 계셨음이 틀림없다. 그리스도가 놀라운 이적을 행하지도 않고 또한 비범한 가르침의방법을 이용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달리 그 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그에게로 인도해낼 수 있었겠는가. 더욱이 성경 사도행전(21장20절)에 보면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하느님의 그리스도로 영접하였으며 그가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믿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주후 330년경 유세비우스의 \’교회사\'(Hist. Eccles.)1권. 11장



 성경의 복음서에 보면 나이 어린 헤롯왕(Herod)에게 목이 잘려 죽은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에 관하여 언급을 하고 있다. 요세푸스의 기록도 이와 일치된 내용인데 여기에 보면 헤롯의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Herodias)를 이름까지 기록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헤롯 왕은 그의 법적인 아내와 이혼한 후 그의 제수인 헤로디아와 재혼을 하였다. 그녀는 페트라 아라비아(Petrean Arabians)의 왕인 아레타스(Aretas)의 딸이었다. 그런데 헤롯은 헤로디아의 남편이 생존해 있는데도 그녀를 도와이별시키고 자기 아내로 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헤롯이 요한을살해한 후에 아레타스는 그녀의 딸인 헤로디아를 불명예스럽게만들었다는 이유로 헤롯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런데 요세푸스는 기록하기를 이 전쟁에서 헤롯의 군대는 전투가 벌어졌을 때 전멸하였으며, 이러한 헤롯의 패배는 그가 세례 요한에게행한 악한 행실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더욱이 이 요세푸스는 세례 요한을 매우 의로운 사람이요 세례자의 인생을 산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성경에 기록된 복음서의 내용과 일치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요세푸스는 단지 이 헤로디아한 사람 때문에 헤롯이 그의 왕국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골(Gaul)의 성읍인 비엔나(Vienna)로 헤로디아와 함께 추방당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인 \’유대고대사\’에서 이 세례 요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몇몇 유대인들은 헤롯의 군대가 대패한 것이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러한 패배는 세례자라고 불리워지는 요한을 처형한 헤롯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마땅한 보복이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요한은 아주 선한 사람이었으며유대인들에게 가르치기를 백성들이 서로에게 의롭게 행할 것과하느님 앞에서의 경건한 생활을 실천하도록 하였던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백성들에게 세례를 받도록하였는데 왜냐하면 이 세례를 받게 되면 그들이(물로) 깨끗케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의 세례라고 하는 것은 영혼이 이미 의로운 삶에 의해 완전히 정결해졌다는 것을 전제로하고 있기 때문에 단지 죄를 제거(용서)한다는 뜻에서가 아니라육체를 정결케 한다는데 목적을 둔 세례였다. 한편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말을 듣기 위하여 그에게로 무리를 지어 몰려들게 되자 헤롯은 세례 요한이 이와 같은 탁월한 설득력으로 폭동이나 반란같은 것을 선동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왜냐하면이 군중들은 세례 요한이 시키는 것이면 무엇디든지 할 듯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헤롯은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여 결국온 나라가 소란해져서 후회하느니 보다 미리 그를 제거함으로써그러한 우환을 방지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침내 세례 요한은 헤롯의 의심많은 성격 탓에 필자가 전에 언급한바 있는 마카이루스(Macherus)라는 성(城)의 감옥에 투옥되었으며 결국 처형되었다.\” 요세푸스는 이처럼 세례 요한에 대해 말하면서 아울러 그의 저서에다 우리 구세주이신 예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한편 이 무렵에 예수라고 하는 한 현인이 있었는데 그를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예수는놀라운 이적들을 수차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기꺼이 따르는 사람들의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대인이나 이방인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왔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그런데 빌라도(Piate)는 유대인 중의 요인(要人)들의 제안에 따라 그에게 십자가의 형을 내렸는데 처음부터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를 저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는많은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 그들 앞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이외에도 그가 행한 과거의 수많은 이적이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예수의 이름을 따서 그리스도인이라고뷸리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여전히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현존하고 있다.\” 히브리 출신인 요세푸스가 이와 같이 세례 요한과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는데 더 이상그 확실성을 의심할 여지가 있겠는가? 한편 야고보는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으며 모든 사람들로부터 의인으로 칭송받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분별력이 탁월한 민족인 유대인들은 이 세례 요한을 처형한 것이 곧 예루살렘 함락의 화근이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그들의 재난은 세례 요한이 순교한 직후에발생한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야고보를 살해한 것 말고그들이 이러한 고난을 받을 만한 불경건한 요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세푸스는 기꺼이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이러한 비극은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예수의 형제인 의인야고보를 유대인들이 살해했던 까닭에 그에 대한 보응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 야고보는 매우 의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또한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제12권에서 야고보를 처형한 방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가이사(Caesar)는 베스도 (Festus)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유대의 총독으로 알비누스(Albinus)를 보냈다. 한편 아나누스Ⅱ세(Ananus, Junior)는 당시 대제사장직에 임명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성격은 무척 담대하고도 용감하였다. 그는 또한사두개파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그들은 다른 유대인들보다 판단에 성급한 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처럼 그의 성급한 성미 탓에 그는 지금이야말로 그가(그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왜냐하면 베스도는 이미 죽어버렸고 또한 후임자인 알비누스는단지 이제 오는 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산헤드린(Sanhedrin)공회의 재판관들을 소집하여 놓고 그들이 보는앞에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와(그의 동료)몇 명을 데려다 세웠다. 그리고 그들을 율법을 파기한 혐의로 기소하면서 돌로 쳐죽이도록 하였다. 그러나 백성들 중에서 가장공평하고도 율법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이처럼 행하는것을 싫어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아그립바)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더 이상 아나누스가 그러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할 것과 이제까지의 그의 행동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밝혀 줄 것을 요구하였다.\”



  주후 360년경 암브로스, 혹은 헤게시푸스(Ambrose, or Hege-sippus)의 \’예루살렘 성의 파괴에 관하여\'(de Excid. Urb. Hierosolym) 제2권. 12장



 우리는 헤롯의 군대가 대패했던 이유가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헤롯에게 자신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못하다고 말했던 세례 요한을 처형한 것에 대한 보응으로 하느님께서 징벌하셨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유대인들의 생각이라는 것을 요세푸스가 쓴 저서의 증언들을 통해서 알수 있었다(요세푸스는 무시할 수 없는 역사가로서 그는 글을 쓸때에 심지어 자신을 비방하는 말도 하는 사람이다). 유대인 자신들도 그리스도에 관하여 중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유대의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당시에 한 현인이 있었는데 수많은 이적을 행한 사람으로서 그를 사람으로 칭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는 수많은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서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났다. 그런데 이 선지자들은또한 예수의 수많은 기적들에 관하여도 예언을 했었다. 또한 이예수라는 사람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집단이 생겨났으며 모든 만민 가운데 퍼져나가게 되었다. 또한 로마제국 내에 어떤민족도 예수의 종교를 모르는 일이 없다.\” 설사 유대인들이 우리의 말을 믿지 못할지라도 최소한 자기들 나라 출신의 역사가의 말을 믿어야 할 것이다. 하물며 유대인들이 위대한 사람으로떠받들고 있는 이 요세푸스가 이같이 말하였으니 여부가 없을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식은 여전히 올바른 길에 서있지 않고 심지어 그가 기록하고 있는 예수의 신자도 아니었다. 다만 비록 그가 불신자일지라도 그러한 그의 불신의 의도나 또는 마음의 강퍅함 때문에 있지도 않은 사실을 거짓말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역사적 진실을 전하기 위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불신자였다고 하는 사실이 결코진리에 대한 편견일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불신자였으며 또한 그렇게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이 사실이 아님을 바라는 사람이었을 텐데도 진실성을 부인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은 그의증거에 대한 신빙성을 더욱 증가시켜 주는 요소가 될 것이다.



 주후 400년경 히에로니무스(Hieronym.)의 \’전기사전의 요세푸스 편에 관하여\'(de Vir. lllustr. in Josepo.)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제 18권에서 그리스도가 그의 행한 수많은 이적들 때문에 바리새인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정하고 있다. 또한 그는 세례 요한이 실제로 선지자였으며 또한 예루살렘성이 사도 야고보의 살해가 화근이 되어 파괴되었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다. 한편 그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와 동시대에 예수라고 하는 현인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그를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수많은 이적을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는사람들의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유대인들이든 이방인이든 수많은 추종자들이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로 믿어졌다. 또한 유대의 요인들의 시기 때문에 빌라도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처형하였다. 그런데 그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처음부터 사랑해왔던 사람들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3일만에 다시 부활하였으며 또한 그 예언대로 생전에 많은 이적들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을 따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부류가 지금까지도 현존하고 있다.\”



 주후 410년경 펠루시움의 이시오루스(Isidorus Pelusiota)의\’크리소스톰의 제자\'(the Scholar of Chrisostom) 4권.서신.225



 요세푸스라고 하는 한 유대인이 있었는데 그는 최고의 명성을지닌 역사가로서 율법에 대한 열정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구약성경을 사실대로 쉽게 풀어 썼으며 유대인들을 변호하는데 있어서 용감하게 앞장섰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대인들이 지닌 제도가 말로는 다할 수 없을 만큼 고상한 것임을 증명하였다.그러나 요세푸스는 유대인의 이익보다는 진리에 입각하여 사실을 설명하였고 또한 불경건한 사람들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그의 생각을 인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그의 말을 한번 들어보기로 하자.



 \”예수라고 하는 한 현인이 있었다. 그런데 그를 사람이었다고말하는 것이 타당할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수많은 이적을 행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기꺼이 수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교사였기 때문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왔다. 그는 그리스도였다.또한 빌라도는 유대인 중의 요인(要人)들의 제안에 따라 그에게십자가의 형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에도 처음부터그를 추종하여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왜냐하면 이 예수는 많은 선지자들이 그에 관하여 예언했던 대로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였으며 또한 예언대로 수많은 이적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워지는 사람들이 오늘날까지도 현존하고 있다.\”



 저자는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요세푸스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임을 발견하게 되면서 존경을 금할 길이 없다. 특히 \”에수는진리를 기꺼이 수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교사였다\”고 말하는것을 볼 때 더욱 존경스러움을 느낀다.



주후 440년경 소조멘(Sozomen)의 \’교회사\'(Hist. Eccles.) 제1권. 1장



 유대인들에게나 로마인들에게나 모두에게 큰 명성을 갖고 있는 제사장 마티아스(Matthias)의 아들 요세푸스(Josephus)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그리스도의 역사의 진실성을 잘 입증해주는 증인으로 삼을 만한 자이다. 그는 예수를 인간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가 수많은 이적을 행한 사람일뿐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개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칭하고 있는데,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는 사실과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부활했다는 사실 그리고 많은 예언자들이 그에 관해 예언했던 대로 수많은 이적을 남겼다는 사실들을 모두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또한 요세푸스는 예수께로 나아왔던 많은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들은 물론 많은 이방인들도 있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이름을따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그때까지도 현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저자가 보기에는 이 요세푸스가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가 하느님이라고 말하고자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이 모든 사실을 잘 모르는것처럼 중립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예수를믿는 신자들에게 아무런 누를 끼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신자들을 옹호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주후 510년경 카시오도루스(Cassiolorus)의 \’삼부로 된 역사\'(Hist. Tripartit.) 소조메노(Sozomeno)편



 제사장인 마티아스(Matthias)의 아들 요세푸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모두 존경을 받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에 관한 역사를 진실하게 증거해 줄 것으로 ale는다. 그는 예수가 수많은 유명한 일들을 업적으로 남겼고 진실한 가르침을 주는 교사였다는 점에서 그를 사람이었다고 감히말하지 않는다. 요세푸스는 그를 그리스도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으며 또한 그가 십자가에 처형당했다가 사흘만에 부활한 사실과 하느님의 거룩한 선지자들이 그에 관하여 수많은 이적들을 예언했었다는 사실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더욱이 요세푸스는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지 예수를 따라다니던 많은 사람들이 생존해 있으며, 그들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예수를 사랑했고 그리하여 그리스도라는 그의 칭호를 따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보존되어 온 것이다.



 주후 640년경 알렉스(Alex)의 \’연대기\'(Chrono.) p. 514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유대고대사\’제 18권에서 거룩한 사람인 세례 요한이 목 잘려 죽었던 것은 헤롯의 동생인 빌립의 아내헤로디아(Herodias) 때문이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헤롯은 생존해 있는 합법상의 아내이었던 페트라(Petra)의 왕인 아레타스(Aretas)의 딸과 이혼했다. 그리고 헤롯의 남편이 생존해 있는 헤로디아를 취하게 되자 아레타스는 그의 딸이 모독을 당했다고 생각하여 헤롯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사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세례 요한을 살해했었다). 요세푸스의 말에 의하자면 이 전쟁에서 그가 세례 요한을 무고히 죽인 죄악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은 헤로디아 때문에 그의 나라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리용(Lyons)시로 헤로디아와 함께 쫓겨났다고 하고 있다 [p. 526, 527]. 한편 3년간의 사역을 통해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던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에 관한 사실은 하느님의 말씀이신 복음서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히브리나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현인으로 인정하고 있는 요세푸스의 저서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설명되어지고 있다[p. 584. 586].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제5권에서 (유대의)전쟁에 관한 기록을 쓰면서 설명하기를 예루살렘이 베스파시안 황제(Vespasian)의 재위 제3년(혹은 제2년),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를 처형시킨 지 40년이 지난 때에 멸망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또한 이때에 예수의 형제이자 예루살렘의 대표격이었던 야고보가(성전 아래로) 내던져져서 돌에 맞아 숨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후 40년경. 나스타시우스 아바스(Anastasius Abbas)의 \’유대의 반박문\'(Contr. Jud.)



 당신들의 나라인 유대의 저술가이자 작가인 요세푸스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하기를 그는 의롭고 선한 사람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남겼는데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였다.



 주후 790년경 게오르리우스 신켈루스(Georgius Syncellus)의 \’연대기\'(Chron.) p. 339



 유대인들이 겪는 이 모든 불행은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를 해한 보응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는 매우 의로운 사람으로서 그들에 의해 무고히 살해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아나누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매우 급한 성격을지닌 사람으로서 당시 그는 그때야 말로 그에게 더없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총독인 베스도(Festus)는 죽고없으며 후임자인 알비누스(Albinus)는 부임차 오는 도중에 있기 때문에, 그는 권력의 공백기인 이 때를 이용하여 산헤드린 공의회를 소집하여 재판관들 앞에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와 야고보의 몇 명의 친구들을 불러 세웠다. 이때 그는이들에 대한 기소의 사유로서 율법을 범했음을 밝히면서 그들을돌로 쳐죽이도록 하였다. 그러나 유대 시민 중에서도 가장 공평무사하며 또한 율법을 사랑하던 사람들은 그러한 결정을 매우 못마땅한 것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그들은(아그립바)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아나누스가 더 이상 그러한 악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 줄 것과 이제까지 그가 행한 죄악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임을 밝혀줄 것을 간청하였다.



 주후 850년경 요한 말렐라(Johan Malela)의\’연대기\'(Chr-on.) 제 10권



 유대의 철인(哲人)인 요세푸스의 말에 의하면 이때부터 예루살렘 성의 훼파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요세푸스는 또한 유대인들이 죄없는 의인(그를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이라 부르는 것이 옳은 것일지는 모르겠다)인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한 후로부터 유대나라에는 고난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고 덧붙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유대인인 요세푸스가 그의 저서에 언급해 놓은 것이다.



 주후 860년경 포티우스(Photius)의 \’법전\’ 48권



 저자는 \’우주에 관하여\’라는 요세푸스의 논문들을 읽었는데이 책들은\’우주의 실체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도 출간되었다.이 논문은 작은 소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이 세계의 기원에 관하여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는 우리의참 하느님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그 논조가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즉 그리스도라는 명칭을 똑같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전혀 흠잡을만한 데가 없을 만큼 정확하게 그리스도가 성부 하느님으로부터낳으셨다는 납득시키기 어려운 내용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 저서의 문체가 다른 요세푸스의 저서와 거의 유사한데도 불구하고 요세푸스가 저자라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어찌 되었든 저자는 몇편의 논문에서 이 글이 요세푸스의 저작이 아니라 장로인 카이우스(Caius)에 의해 기록된것이라는 주장을 본 적이 있다.


 [\’법전\’238권]



 갈릴리와 베레아 지방의 분봉왕인 헤롯은 대헤롯의 아들로서 그의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고 요세푸스는 기록하고 있다. 이 헤로디아는 또한대헤롯의 손녀로서 그가 죽인 아들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에게서 낳은 딸이었다. 또한 그녀의 오빠는 아그립바였다. 그런데 헤롯은 헤로디아를 그녀의 남편에게서 취하여 그녀와 결혼을 하였다. 세례 요한을 죽인 이도 또한 이 사람으로서 위대한 인물이자(그리스도의) 선구자였던 그를 죽인 것은(요세푸스의 말에 의하면) 세례 요한이 백성들 가운데 반란을일으키지나 않을까 염려하였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의 탁월한덕성 때문에 모든 백성들이 그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헤롯의 시대에 우리 구주이신 예수가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셨다.



 [\’법전\’33권]



 저자는 디베랴(Tiberias)의 유스도(Justus)라는 사람의 \’연대기\'(Chronicle)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는언급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부분을 거의 다 생략해 버렸다. 다만

 그가 유대태생이었기 때문인지 유대인의 편견에 감염이 되어 그리스도의 탄생과 행적 그리고 기적과 같은 일들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을 해놓지 않고 있다.



 시대미상, 마카리우스(Macarius)의 \’거룩한 삶\'(Actis San-ctorum) 제5권(tom. V) p. 149, 요세푸스의 작품(Fabric. Joseph.) p.61



 예루살렘의 제사장이자 유대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기록하면서 요세푸스는 참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으며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셨으며 3일만에 다시 부활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저술들은 공공 도서관에 지금도 보관되어 있다.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를 인간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으나 이때에 예수라고 하는 한 현인이 있었다. 그는 수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며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런데 유대 요인들의 간청에 못이겨 빌라도(Pilate)는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었음에도 처음부터 그를 추종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수많은 선지자들이 부활과 또 다른 많은 이적들을 미리 예언했던 대로그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었다. 또한 아직도 그의이름인 그리스도를 따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무리들이 지금도 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히브리 역사가 요세푸스가 우리 주님이요 구세주이신 예수를 그의 저서들에다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데 어떻게 불신자들이 이를 부인할 여지가 있겠는가?



 주후 980년경 수이다스(Suidas)의 \’예수의 음성\'(Voce )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인 \’포로기의 회상록\'(The memoris ofCaptivity)에서 예루살렘성의 점령에 관하여 서술하면서 예수가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함께 공무를 행했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다. [유세비우스 팜필리(Eusebius Pamphilii)는요세푸스의 글을 그의 저서 \’교회사\'(Ecclesiastical History)에서 자주 인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요세푸스가 고대인이면서 또한 사도 시대 얼마 후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주후 1060년경 케드레누스(Cedrenus)의 \’간추린 역사\'(Co-mpend. Histor.) p.196



 요세푸스는 세례 요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유대인 중의 어떤 사람들은 헤롯의 군대가 완패하였던 것은\’세례자\’로 불리우는 요한을 무고히 처형한 데 대한 하느님의 징계이며 그러한 패전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였다. 세례 요한은유대인들에게 백성들끼리 상호간의 의를 행하며 하느님께 경건한 삶을 살도록 가르쳤으며 또한 세례를 받으러 나아올 것을 명하였다. 그러한 의인인 세례 요한을 헤롯이 살해해 버린 것이다.\” 또한 예수라고 하는 현인이 있었다. 그런데 그를 인간이라고말해도 좋을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수많은 이적들을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에게로 심지어 이방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나아왔다. 그런데 빌라도 총독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시켰으나 그를 처음부터 추종하던 많은 사람들은 그를 배신하지 않고 계속 그를 전파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많은 하느님의 선지자들이 부활과 수많은 이적들에 대해 과거에 증거했던 그대로 3일만에 다시 살아나 그들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주후 1080년경 테오필락트(Theophylact)의 \’조안\'(Joan) 13권



 유대의 도시(예루살렘)는 점령당하였고 하느님의 진노가 백성들을 향해 불일듯 나타났다. 그런데 요세푸스는 이 모든 일이예수의 죽음 때문에 나타난 것들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주후 1120년경 조나루스(Zonarus)의 \’연대기\'(Annal.) 제 1권 p.267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인 \’유대고대사\’의 제18권에서 우리의 주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이 무렵에 그를 인간이라고 불러도 괜찮을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라고 하는 한 현인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수많은 이적들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사모하는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물론 수많은 이방인들이 그를 추종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그런데 빌라도 총독은 유대 요인들의 요청에 못이겨 그를 십자가에 처형시켜 버렸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과거 수많은 하느님의 선지자들이 그가 부활할 것과 그가 많은 이적 행할 것을 예언했던 대로 예수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여 그들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의 이름인 그리스도를따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무리들이 오늘날까지도 현존하고 있다.



 주후 1120년경 글리쿠스(Glycus)의\’연대기\'(Annal.) p.234



 필로(Philo) 이후에는 현인인 요세푸스가 활약하였다. 요세푸스는 \’진리를 사랑하는 자\’라는 칭호를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요세푸스는 우리 주님께 세례를 주었던 세례 요한을 칭찬하고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를 증거함에 있어서도 그가 현인이었으며엄청난 많은 이적들을 행한 분이셨고, 십자가에서 처형되었으면서도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여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는 모든 사실들을 솔직히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가 진리를 사랑하는사람이라고 칭찬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주후 1170년경 고트프리두스 비테르비엔시스(Gotfridus Vit-erbiensis)의 \’연대기\'(Chron.). p.366, e Vers.Rufini



 요세푸스는 말하기를 아라비아의 왕인 아레타스와 헤롯 시기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것은 헤롯이 요한에게 저지른 죄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게다가 요세푸스는 그리스도에 대하여서도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무렵 예수라고 하는 한 현인이 있었는데 그를 인간이라고 불러도 좋을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그는 수많은 이적을 행했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교사였기 때문이다. 그에게로 유대인 뿐만 아니라 많은 이방인들이 나아왔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그런데 빌라도는 유대나라 요인(要人)들의 고소에 못이겨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하도록 법령을 적용시켰다. 그런데 그를 처음부터 추종하던 사람들은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받은 많은 선지자들이 그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할 것이며 수많은 이적들을 행하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예언대로 그가 다시 3일만에 부활하여 그들 앞에 실제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더우기 그의 명성과 또한 그의 이름을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무리들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주후 1360년경 니케보루스 칼리투스(Nicephorus Callistus)의 \’교회사\'(Hist. Eccels.) 제1권 p.90, 91)



 분봉왕이었던 헤롯에 관하여서는 성경의 복음서 뿐만 아니라진리를 사랑한 사람이었던 요세푸스에 의해서도 증거되고 있다. 요세푸스는 그의 동생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에 관하여서도 언급을 하고 있는데, 그녀의 남편이 아직 살아 있었는데도 그녀를 취하고 그녀와 결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헤롯은 페트라 아라비아(Petrean Arabians)의 왕 아레타스(Aretas)의 딸이었던합법적인 전처와는 이혼을 하고 헤로디아와 재혼하여 살았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헤롯은 세례 요한을 살해하였으며 또한 딸이 치욕스럽게 되어 버린데 대해 분개한 아레타스와 전쟁을 치렀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자면 이 전쟁에서 헤롯의 군대는전패하고 말았는데, 이러한 패배는 세례 요한에 대한 최악의 부당한 처형이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요세푸스는 이에 덧붙여 말하기를 세례 요한이 매우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더욱이 그는 세례에 관하여서도 언급을 하는데 이 내용은 복음서 내용과 일치가 되는 것이다. 요세푸스는 또한 헤롯이 이 헤로디아로 인하여 결국 나라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마침내는 그녀와 함께 유배지인 비엔나(Vienna)로 추방을 당하고 말았다.이 비엔나성은 서부 맨 끝에 위치한 곳에서 골(Gaul)과 인접해있는 곳이다.



 주후 1450년경 하르드만누스 스케델리우스( HardmannusSchedelius)의 \’연대기\'(Chron.) p.110



 플라비우스(Flavius)라고 불리우는 유대인 제사장 요세푸스는 유대민족의 제사장인 마티아스(Matthias)의 아들이며 가장존경받는 역사가로서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확실히 선한사람이었으며 훌륭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리스도를 극찬했던 사람이었다.



주후 1480년경 플라티나(Platina)의 \’교황들의 생애\'(VitisPontificum)그리스도편(in Christo)



 저자는 사가랴(Zachorias)의 아들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던 그의 나이 30세가 될 때까지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하여서는 언급을 피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복음서나 서신서 뿐만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의 양식이나 행적 또는 사역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책들까지도 공생애 기간 동안에 행한 그리스도의 탁월하고도 거룩한 삶에 대하여서 충분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20권으로 된 그의 저서 \’유대고대사\’를 헬라어로 기록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디베료 황제(theemperor Tiberius)의 정부에 관하여까지 언급을 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당시엔 그를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예수라고 하는 한 현인이 있었다. 그는 수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며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교사였다.이러한 이유로 유대인이나 이방인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그에게로 나아왔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그런데 빌라도는 유대민족의 요인들의 선동에 자극을 받아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고말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를 추종하던 무리들은 그리스도를저버리지 않았다. 또한 그리스도는 하느님께로부터 영감을 받은 선지자들이 수많은 이적들에 대하여 예언했던 대로 사흘만에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 또한 그의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리들이 지금까지도 현존하고 있다. 이 요세푸스는 세례 요한이 진정한 선지자였으며 또한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고기록하면서 그가 그리스도가 죽기 얼마 전 대헤롯(Herd thegreat)에 의해 마케루스(Macherus)성에서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가 요한을 살해했던 것은 그가 자신이나자신의 왕국에 위협적인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인물인 그의 동생 빌립(Philp)의 아내이자 아그립바(Agrippa)의누이인 헤로디아에게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여 그녀와 결혼한것을 세례 요한이 비난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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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1 예수 그리스도와 세례 요한과 의인 야고보에 관한 요세푸스의 증언의 확실성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논  문   I


      예수 그리스도와 세례 요한과 의인 야고보에 관한 요세푸스의 증언의 확실성

      [㈜ 논문 I ~Ⅵ 은William Whiston(1667~1752) 의 저작임.]


    우리는 유대의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증언들 속에서 나사렛 예수(Jesus of Nazareth)의 선구자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과 나사렛 예수 자신 그리고 나사렛 예수의 동생인 의인 야고보(James the Just)에 관한 몇가지 중요한 자료들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증언들은 주로 나사렛 예수에 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거나 혹은 몇몇 지식인들은 거짓말이라고까지 하며 그의 증언들을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그의 증언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확실히 천명해왔던 필자가 이에 대해 몇가지 언급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필자는 요세푸스의 증언들에 관하여 15세기까지 살았던 사람들의 독창적인 증거들과 인용문들을 몇가지 기록하려고 한다. 그런 후에 독자들에게 보다 깊은 이력을 갖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증거에 대한 몇가지 적절한 나의 견해를 피력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세푸스에 관한일용문들을 설명하기에 앞서서 독자들의 주의를 요하는 한가지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최고의 지성인이자 유능한 재판관인 죠셉 스칼리거(Joseph Scaliger)가 그의 저서인 ‘시간 개량론에관하여’ (De Emendatione Temporum)의 서문 17쪽에서 언급한 ‘요세푸스의 권위’에 관한 문제이다. “요세푸스는 모든 ?저술가 중에서 가장 근면하여 진리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는 헬라나 라틴의 역사가들보다도 유대의 상황이나 이방인들의 역사에 관한 요세푸스의 증언을 믿는 것이 훨씬 안전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의 진실성과 해박한 지식은 그의 저서 어디에서나 명백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주후 약 110년경 타키투스의 ‘연대기'( Annal.) 15권 44장


    네로는 (마치 그 자신이 로마시에 방화한 범인인양 떠도는)소문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그 화재가 야만인들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의 탓이라고 원인을 돌렸다. 사람들은그리스도인들이 생활 속에서 악행을 저지른다는 오해를 가지고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였다. 네로는 이들을 절묘한 방법으로 죽였다.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은디베료(Tiberius)가 통치하던 시절에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처형을 당했던 그리스도(Christ)라는 사람이었다.


     주후 147년경 순교자 져스틴(Just Mart)의 ‘트리포(Tryph.)와의 대화’ p.230


    여러분(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승천하였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주후 230년경 오리게네스(Orison)의 ‘마태복음 주석'(Com-ment. in Matth.) p.234


    이 야고보는 의인으로서 백성들 가운데 아주 빛나는 평판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그의 저서 ‘유대고대사'(Jewish Antiquities) 제20권에서 유대인들이 그들의 성전이 훼파당할 만큼 비극을 격어야했던 원인이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하면서 말하기를 백성들이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에게 해를 가했던 사실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진노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재난을 겪게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야고보를 매우 의로운 사람이라고 증언했다는 것이다. 더우기 요세푸스는 계속 말하기를 백성들은 그들이 이러한 고난을 당하는 것이 바로 야고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주후 250년경 오리게네스의 켈수스 반박문(Contr. Cels.) 1권 p.35,36


    이제 나는 유대인 행세를 하고 있는 켈수스(Celsus)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당신이 유대인이라면 세례자 요한을 인정할 것이며 그가 예수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가 죽은 후 단지 얼마간 세상을 살았던한 사람이 세례 요한은 죄사함의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었다고 기록한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유대고대사’제18권에서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며 세례를 받으면 정결하게 된다고 사람들에게 약속하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한이 요세푸스는 비록 그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는 않았지만예루살렘의 파괴와 성전의 훼손의 원인을 조사하면서 백성들에게 임한 비극의 원인이 곧 그들이 음모를 꾸며 예수를 죽였기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예언자들이예언했던 그리스도를 살해했기 때문에 이러한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고 그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의 표현이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불행은 의인인 야고보(James the Just)를 살해한 데 대한 보상으로써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예수의 형제였다. 아주 의로운 사람을 살해했기 때문에 당하는 환난이었다.” 이 야고보는 예수의 참제자인 바울이 ‘주의 형제’라고 부른 바로 그 인물입니다(갈 1:19).여기에서 말하는 형제의 관계성이란 혈통에 있어서의 근친관계나 교육정도의 동등함을 의미하기 보다는 삶의 방식이나 가르치는 양식이 일치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세푸스가 유대인들이 당한 예루살렘의 함락의 고통은 야고보를 살해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 고통의 원인이 예수를 죽였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주후 324년경 유세비우스(Euseb)의 ‘복음의 증거'(Demonstr.Evan.) 3장 p.124


     사실상, 우리 구세주이신 예수에 관하여 내가 이미 제시했던 여러 증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층 더 분명한 증거를 위하여 유대인 요세푸스를 새로운 증인으로 삼는다고해서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의 저서 ‘유대고대사’ 제18권에서 빌라도(Pilate)의 지배하에 있는 유대의 역사들을 기록하면서 우리 구세주이신 예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있다. “그를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라고 하는 한 현인(賢人)이 있었다. 그는 놀라운 이적을 행했으며, 또한 진리를 숭배하는 많은 사람들의 교사였다. 유대인이나 이방인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몰려왔다.그는 그리스도였다. 그리고 빌라도가 유대인 중의 요인(要人)들의 제안을 듣고 그를 십자가의 형벌을 선고했을 때에도 그를 처음부터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느님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대로 사흘만에 다시살아나 그들에게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 또 과거의 수없이 많은 기사와 이적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의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불리워지는 집단이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현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증언에 의하여 예수가 12사도와 70제자를 가르쳤을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도 개종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볼 때 예수는 평범한 다른 사람들 이상의 비범한 어떤 능력을 그 안에 지니고 계셨음이 틀림없다. 그리스도가 놀라운 이적을 행하지도 않고 또한 비범한 가르침의방법을 이용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달리 그 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그에게로 인도해낼 수 있었겠는가. 더욱이 성경 사도행전(21장20절)에 보면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하느님의 그리스도로 영접하였으며 그가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믿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주후 330년경 유세비우스의 ‘교회사'(Hist. Eccles.)1권. 11장


     성경의 복음서에 보면 나이 어린 헤롯왕(Herod)에게 목이 잘려 죽은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에 관하여 언급을 하고 있다. 요세푸스의 기록도 이와 일치된 내용인데 여기에 보면 헤롯의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Herodias)를 이름까지 기록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헤롯 왕은 그의 법적인 아내와 이혼한 후 그의 제수인 헤로디아와 재혼을 하였다. 그녀는 페트라 아라비아(Petrean Arabians)의 왕인 아레타스(Aretas)의 딸이었다. 그런데 헤롯은 헤로디아의 남편이 생존해 있는데도 그녀를 도와이별시키고 자기 아내로 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헤롯이 요한을살해한 후에 아레타스는 그녀의 딸인 헤로디아를 불명예스럽게만들었다는 이유로 헤롯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런데 요세푸스는 기록하기를 이 전쟁에서 헤롯의 군대는 전투가 벌어졌을 때 전멸하였으며, 이러한 헤롯의 패배는 그가 세례 요한에게행한 악한 행실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더욱이 이 요세푸스는 세례 요한을 매우 의로운 사람이요 세례자의 인생을 산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성경에 기록된 복음서의 내용과 일치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요세푸스는 단지 이 헤로디아한 사람 때문에 헤롯이 그의 왕국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골(Gaul)의 성읍인 비엔나(Vienna)로 헤로디아와 함께 추방당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인 ‘유대고대사’에서 이 세례 요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몇몇 유대인들은 헤롯의 군대가 대패한 것이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러한 패배는 세례자라고 불리워지는 요한을 처형한 헤롯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마땅한 보복이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요한은 아주 선한 사람이었으며유대인들에게 가르치기를 백성들이 서로에게 의롭게 행할 것과하느님 앞에서의 경건한 생활을 실천하도록 하였던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백성들에게 세례를 받도록하였는데 왜냐하면 이 세례를 받게 되면 그들이(물로) 깨끗케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의 세례라고 하는 것은 영혼이 이미 의로운 삶에 의해 완전히 정결해졌다는 것을 전제로하고 있기 때문에 단지 죄를 제거(용서)한다는 뜻에서가 아니라육체를 정결케 한다는데 목적을 둔 세례였다. 한편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말을 듣기 위하여 그에게로 무리를 지어 몰려들게 되자 헤롯은 세례 요한이 이와 같은 탁월한 설득력으로 폭동이나 반란같은 것을 선동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왜냐하면이 군중들은 세례 요한이 시키는 것이면 무엇디든지 할 듯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헤롯은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여 결국온 나라가 소란해져서 후회하느니 보다 미리 그를 제거함으로써그러한 우환을 방지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침내 세례 요한은 헤롯의 의심많은 성격 탓에 필자가 전에 언급한바 있는 마카이루스(Macherus)라는 성(城)의 감옥에 투옥되었으며 결국 처형되었다.” 요세푸스는 이처럼 세례 요한에 대해 말하면서 아울러 그의 저서에다 우리 구세주이신 예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한편 이 무렵에 예수라고 하는 한 현인이 있었는데 그를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예수는놀라운 이적들을 수차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기꺼이 따르는 사람들의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대인이나 이방인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왔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그런데 빌라도(Piate)는 유대인 중의 요인(要人)들의 제안에 따라 그에게 십자가의 형을 내렸는데 처음부터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를 저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는많은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 그들 앞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이외에도 그가 행한 과거의 수많은 이적이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예수의 이름을 따서 그리스도인이라고뷸리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여전히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현존하고 있다.” 히브리 출신인 요세푸스가 이와 같이 세례 요한과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는데 더 이상그 확실성을 의심할 여지가 있겠는가? 한편 야고보는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으며 모든 사람들로부터 의인으로 칭송받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분별력이 탁월한 민족인 유대인들은 이 세례 요한을 처형한 것이 곧 예루살렘 함락의 화근이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그들의 재난은 세례 요한이 순교한 직후에발생한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야고보를 살해한 것 말고그들이 이러한 고난을 받을 만한 불경건한 요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세푸스는 기꺼이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이러한 비극은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예수의 형제인 의인야고보를 유대인들이 살해했던 까닭에 그에 대한 보응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 야고보는 매우 의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또한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제12권에서 야고보를 처형한 방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가이사(Caesar)는 베스도 (Festus)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유대의 총독으로 알비누스(Albinus)를 보냈다. 한편 아나누스Ⅱ세(Ananus, Junior)는 당시 대제사장직에 임명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성격은 무척 담대하고도 용감하였다. 그는 또한사두개파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그들은 다른 유대인들보다 판단에 성급한 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처럼 그의 성급한 성미 탓에 그는 지금이야말로 그가(그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왜냐하면 베스도는 이미 죽어버렸고 또한 후임자인 알비누스는단지 이제 오는 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산헤드린(Sanhedrin)공회의 재판관들을 소집하여 놓고 그들이 보는앞에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와(그의 동료)몇 명을 데려다 세웠다. 그리고 그들을 율법을 파기한 혐의로 기소하면서 돌로 쳐죽이도록 하였다. 그러나 백성들 중에서 가장공평하고도 율법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이처럼 행하는것을 싫어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아그립바)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더 이상 아나누스가 그러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할 것과 이제까지의 그의 행동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밝혀 줄 것을 요구하였다.”


      주후 360년경 암브로스, 혹은 헤게시푸스(Ambrose, or Hege-sippus)의 ‘예루살렘 성의 파괴에 관하여'(de Excid. Urb. Hierosolym) 제2권. 12장


     우리는 헤롯의 군대가 대패했던 이유가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헤롯에게 자신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못하다고 말했던 세례 요한을 처형한 것에 대한 보응으로 하느님께서 징벌하셨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유대인들의 생각이라는 것을 요세푸스가 쓴 저서의 증언들을 통해서 알수 있었다(요세푸스는 무시할 수 없는 역사가로서 그는 글을 쓸때에 심지어 자신을 비방하는 말도 하는 사람이다). 유대인 자신들도 그리스도에 관하여 중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유대의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당시에 한 현인이 있었는데 수많은 이적을 행한 사람으로서 그를 사람으로 칭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는 수많은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서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났다. 그런데 이 선지자들은또한 예수의 수많은 기적들에 관하여도 예언을 했었다. 또한 이예수라는 사람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집단이 생겨났으며 모든 만민 가운데 퍼져나가게 되었다. 또한 로마제국 내에 어떤민족도 예수의 종교를 모르는 일이 없다.” 설사 유대인들이 우리의 말을 믿지 못할지라도 최소한 자기들 나라 출신의 역사가의 말을 믿어야 할 것이다. 하물며 유대인들이 위대한 사람으로떠받들고 있는 이 요세푸스가 이같이 말하였으니 여부가 없을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식은 여전히 올바른 길에 서있지 않고 심지어 그가 기록하고 있는 예수의 신자도 아니었다. 다만 비록 그가 불신자일지라도 그러한 그의 불신의 의도나 또는 마음의 강퍅함 때문에 있지도 않은 사실을 거짓말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역사적 진실을 전하기 위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불신자였다고 하는 사실이 결코진리에 대한 편견일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불신자였으며 또한 그렇게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이 사실이 아님을 바라는 사람이었을 텐데도 진실성을 부인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은 그의증거에 대한 신빙성을 더욱 증가시켜 주는 요소가 될 것이다.


     주후 400년경 히에로니무스(Hieronym.)의 ‘전기사전의 요세푸스 편에 관하여'(de Vir. lllustr. in Josepo.)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제 18권에서 그리스도가 그의 행한 수많은 이적들 때문에 바리새인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정하고 있다. 또한 그는 세례 요한이 실제로 선지자였으며 또한 예루살렘성이 사도 야고보의 살해가 화근이 되어 파괴되었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다. 한편 그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와 동시대에 예수라고 하는 현인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그를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수많은 이적을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는사람들의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유대인들이든 이방인이든 수많은 추종자들이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로 믿어졌다. 또한 유대의 요인들의 시기 때문에 빌라도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처형하였다. 그런데 그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처음부터 사랑해왔던 사람들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3일만에 다시 부활하였으며 또한 그 예언대로 생전에 많은 이적들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을 따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부류가 지금까지도 현존하고 있다.”


     주후 410년경 펠루시움의 이시오루스(Isidorus Pelusiota)의’크리소스톰의 제자'(the Scholar of Chrisostom) 4권.서신.225


     요세푸스라고 하는 한 유대인이 있었는데 그는 최고의 명성을지닌 역사가로서 율법에 대한 열정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구약성경을 사실대로 쉽게 풀어 썼으며 유대인들을 변호하는데 있어서 용감하게 앞장섰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대인들이 지닌 제도가 말로는 다할 수 없을 만큼 고상한 것임을 증명하였다.그러나 요세푸스는 유대인의 이익보다는 진리에 입각하여 사실을 설명하였고 또한 불경건한 사람들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그의 생각을 인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그의 말을 한번 들어보기로 하자.


     “예수라고 하는 한 현인이 있었다. 그런데 그를 사람이었다고말하는 것이 타당할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수많은 이적을 행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기꺼이 수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교사였기 때문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왔다. 그는 그리스도였다.또한 빌라도는 유대인 중의 요인(要人)들의 제안에 따라 그에게십자가의 형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에도 처음부터그를 추종하여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왜냐하면 이 예수는 많은 선지자들이 그에 관하여 예언했던 대로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였으며 또한 예언대로 수많은 이적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워지는 사람들이 오늘날까지도 현존하고 있다.”


     저자는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요세푸스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임을 발견하게 되면서 존경을 금할 길이 없다. 특히 “에수는진리를 기꺼이 수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교사였다”고 말하는것을 볼 때 더욱 존경스러움을 느낀다.


    주후 440년경 소조멘(Sozomen)의 ‘교회사'(Hist. Eccles.) 제1권. 1장


     유대인들에게나 로마인들에게나 모두에게 큰 명성을 갖고 있는 제사장 마티아스(Matthias)의 아들 요세푸스(Josephus)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그리스도의 역사의 진실성을 잘 입증해주는 증인으로 삼을 만한 자이다. 그는 예수를 인간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가 수많은 이적을 행한 사람일뿐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개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칭하고 있는데,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는 사실과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부활했다는 사실 그리고 많은 예언자들이 그에 관해 예언했던 대로 수많은 이적을 남겼다는 사실들을 모두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또한 요세푸스는 예수께로 나아왔던 많은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들은 물론 많은 이방인들도 있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이름을따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그때까지도 현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저자가 보기에는 이 요세푸스가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가 하느님이라고 말하고자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이 모든 사실을 잘 모르는것처럼 중립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예수를믿는 신자들에게 아무런 누를 끼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신자들을 옹호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주후 510년경 카시오도루스(Cassiolorus)의 ‘삼부로 된 역사'(Hist. Tripartit.) 소조메노(Sozomeno)편


     제사장인 마티아스(Matthias)의 아들 요세푸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모두 존경을 받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에 관한 역사를 진실하게 증거해 줄 것으로 ale는다. 그는 예수가 수많은 유명한 일들을 업적으로 남겼고 진실한 가르침을 주는 교사였다는 점에서 그를 사람이었다고 감히말하지 않는다. 요세푸스는 그를 그리스도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으며 또한 그가 십자가에 처형당했다가 사흘만에 부활한 사실과 하느님의 거룩한 선지자들이 그에 관하여 수많은 이적들을 예언했었다는 사실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더욱이 요세푸스는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지 예수를 따라다니던 많은 사람들이 생존해 있으며, 그들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예수를 사랑했고 그리하여 그리스도라는 그의 칭호를 따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보존되어 온 것이다.


     주후 640년경 알렉스(Alex)의 ‘연대기'(Chrono.) p. 514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유대고대사’제 18권에서 거룩한 사람인 세례 요한이 목 잘려 죽었던 것은 헤롯의 동생인 빌립의 아내헤로디아(Herodias) 때문이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헤롯은 생존해 있는 합법상의 아내이었던 페트라(Petra)의 왕인 아레타스(Aretas)의 딸과 이혼했다. 그리고 헤롯의 남편이 생존해 있는 헤로디아를 취하게 되자 아레타스는 그의 딸이 모독을 당했다고 생각하여 헤롯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사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세례 요한을 살해했었다). 요세푸스의 말에 의하자면 이 전쟁에서 그가 세례 요한을 무고히 죽인 죄악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은 헤로디아 때문에 그의 나라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리용(Lyons)시로 헤로디아와 함께 쫓겨났다고 하고 있다 [p. 526, 527]. 한편 3년간의 사역을 통해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던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에 관한 사실은 하느님의 말씀이신 복음서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히브리나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현인으로 인정하고 있는 요세푸스의 저서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설명되어지고 있다[p. 584. 586].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제5권에서 (유대의)전쟁에 관한 기록을 쓰면서 설명하기를 예루살렘이 베스파시안 황제(Vespasian)의 재위 제3년(혹은 제2년),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를 처형시킨 지 40년이 지난 때에 멸망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또한 이때에 예수의 형제이자 예루살렘의 대표격이었던 야고보가(성전 아래로) 내던져져서 돌에 맞아 숨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후 40년경. 나스타시우스 아바스(Anastasius Abbas)의 ‘유대의 반박문'(Contr. Jud.)


     당신들의 나라인 유대의 저술가이자 작가인 요세푸스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하기를 그는 의롭고 선한 사람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남겼는데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였다.


     주후 790년경 게오르리우스 신켈루스(Georgius Syncellus)의 ‘연대기'(Chron.) p. 339


     유대인들이 겪는 이 모든 불행은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를 해한 보응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는 매우 의로운 사람으로서 그들에 의해 무고히 살해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아나누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매우 급한 성격을지닌 사람으로서 당시 그는 그때야 말로 그에게 더없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총독인 베스도(Festus)는 죽고없으며 후임자인 알비누스(Albinus)는 부임차 오는 도중에 있기 때문에, 그는 권력의 공백기인 이 때를 이용하여 산헤드린 공의회를 소집하여 재판관들 앞에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와 야고보의 몇 명의 친구들을 불러 세웠다. 이때 그는이들에 대한 기소의 사유로서 율법을 범했음을 밝히면서 그들을돌로 쳐죽이도록 하였다. 그러나 유대 시민 중에서도 가장 공평무사하며 또한 율법을 사랑하던 사람들은 그러한 결정을 매우 못마땅한 것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그들은(아그립바)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아나누스가 더 이상 그러한 악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 줄 것과 이제까지 그가 행한 죄악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임을 밝혀줄 것을 간청하였다.


     주후 850년경 요한 말렐라(Johan Malela)의’연대기'(Chr-on.) 제 10권


     유대의 철인(哲人)인 요세푸스의 말에 의하면 이때부터 예루살렘 성의 훼파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요세푸스는 또한 유대인들이 죄없는 의인(그를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이라 부르는 것이 옳은 것일지는 모르겠다)인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한 후로부터 유대나라에는 고난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고 덧붙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유대인인 요세푸스가 그의 저서에 언급해 놓은 것이다.


     주후 860년경 포티우스(Photius)의 ‘법전’ 48권


     저자는 ‘우주에 관하여’라는 요세푸스의 논문들을 읽었는데이 책들은’우주의 실체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도 출간되었다.이 논문은 작은 소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이 세계의 기원에 관하여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는 우리의참 하느님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그 논조가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즉 그리스도라는 명칭을 똑같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전혀 흠잡을만한 데가 없을 만큼 정확하게 그리스도가 성부 하느님으로부터낳으셨다는 납득시키기 어려운 내용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 저서의 문체가 다른 요세푸스의 저서와 거의 유사한데도 불구하고 요세푸스가 저자라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어찌 되었든 저자는 몇편의 논문에서 이 글이 요세푸스의 저작이 아니라 장로인 카이우스(Caius)에 의해 기록된것이라는 주장을 본 적이 있다.

     [‘법전’238권]


     갈릴리와 베레아 지방의 분봉왕인 헤롯은 대헤롯의 아들로서 그의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고 요세푸스는 기록하고 있다. 이 헤로디아는 또한대헤롯의 손녀로서 그가 죽인 아들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에게서 낳은 딸이었다. 또한 그녀의 오빠는 아그립바였다. 그런데 헤롯은 헤로디아를 그녀의 남편에게서 취하여 그녀와 결혼을 하였다. 세례 요한을 죽인 이도 또한 이 사람으로서 위대한 인물이자(그리스도의) 선구자였던 그를 죽인 것은(요세푸스의 말에 의하면) 세례 요한이 백성들 가운데 반란을일으키지나 않을까 염려하였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의 탁월한덕성 때문에 모든 백성들이 그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헤롯의 시대에 우리 구주이신 예수가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셨다.


     [‘법전’33권]


     저자는 디베랴(Tiberias)의 유스도(Justus)라는 사람의 ‘연대기'(Chronicle)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는언급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부분을 거의 다 생략해 버렸다. 다만

     그가 유대태생이었기 때문인지 유대인의 편견에 감염이 되어 그리스도의 탄생과 행적 그리고 기적과 같은 일들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을 해놓지 않고 있다.


     시대미상, 마카리우스(Macarius)의 ‘거룩한 삶'(Actis San-ctorum) 제5권(tom. V) p. 149, 요세푸스의 작품(Fabric. Joseph.) p.61


     예루살렘의 제사장이자 유대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기록하면서 요세푸스는 참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으며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셨으며 3일만에 다시 부활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저술들은 공공 도서관에 지금도 보관되어 있다.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를 인간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으나 이때에 예수라고 하는 한 현인이 있었다. 그는 수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며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런데 유대 요인들의 간청에 못이겨 빌라도(Pilate)는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었음에도 처음부터 그를 추종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수많은 선지자들이 부활과 또 다른 많은 이적들을 미리 예언했던 대로그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었다. 또한 아직도 그의이름인 그리스도를 따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무리들이 지금도 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히브리 역사가 요세푸스가 우리 주님이요 구세주이신 예수를 그의 저서들에다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데 어떻게 불신자들이 이를 부인할 여지가 있겠는가?


     주후 980년경 수이다스(Suidas)의 ‘예수의 음성'(Voce )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인 ‘포로기의 회상록'(The memoris ofCaptivity)에서 예루살렘성의 점령에 관하여 서술하면서 예수가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함께 공무를 행했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다. [유세비우스 팜필리(Eusebius Pamphilii)는요세푸스의 글을 그의 저서 ‘교회사'(Ecclesiastical History)에서 자주 인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요세푸스가 고대인이면서 또한 사도 시대 얼마 후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주후 1060년경 케드레누스(Cedrenus)의 ‘간추린 역사'(Co-mpend. Histor.) p.196


     요세푸스는 세례 요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유대인 중의 어떤 사람들은 헤롯의 군대가 완패하였던 것은’세례자’로 불리우는 요한을 무고히 처형한 데 대한 하느님의 징계이며 그러한 패전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였다. 세례 요한은유대인들에게 백성들끼리 상호간의 의를 행하며 하느님께 경건한 삶을 살도록 가르쳤으며 또한 세례를 받으러 나아올 것을 명하였다. 그러한 의인인 세례 요한을 헤롯이 살해해 버린 것이다.” 또한 예수라고 하는 현인이 있었다. 그런데 그를 인간이라고말해도 좋을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수많은 이적들을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에게로 심지어 이방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나아왔다. 그런데 빌라도 총독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시켰으나 그를 처음부터 추종하던 많은 사람들은 그를 배신하지 않고 계속 그를 전파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많은 하느님의 선지자들이 부활과 수많은 이적들에 대해 과거에 증거했던 그대로 3일만에 다시 살아나 그들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주후 1080년경 테오필락트(Theophylact)의 ‘조안'(Joan) 13권


     유대의 도시(예루살렘)는 점령당하였고 하느님의 진노가 백성들을 향해 불일듯 나타났다. 그런데 요세푸스는 이 모든 일이예수의 죽음 때문에 나타난 것들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주후 1120년경 조나루스(Zonarus)의 ‘연대기'(Annal.) 제 1권 p.267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인 ‘유대고대사’의 제18권에서 우리의 주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이 무렵에 그를 인간이라고 불러도 괜찮을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라고 하는 한 현인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수많은 이적들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사모하는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물론 수많은 이방인들이 그를 추종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그런데 빌라도 총독은 유대 요인들의 요청에 못이겨 그를 십자가에 처형시켜 버렸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과거 수많은 하느님의 선지자들이 그가 부활할 것과 그가 많은 이적 행할 것을 예언했던 대로 예수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여 그들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의 이름인 그리스도를따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무리들이 오늘날까지도 현존하고 있다.


     주후 1120년경 글리쿠스(Glycus)의’연대기'(Annal.) p.234


     필로(Philo) 이후에는 현인인 요세푸스가 활약하였다. 요세푸스는 ‘진리를 사랑하는 자’라는 칭호를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요세푸스는 우리 주님께 세례를 주었던 세례 요한을 칭찬하고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를 증거함에 있어서도 그가 현인이었으며엄청난 많은 이적들을 행한 분이셨고, 십자가에서 처형되었으면서도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여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는 모든 사실들을 솔직히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가 진리를 사랑하는사람이라고 칭찬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주후 1170년경 고트프리두스 비테르비엔시스(Gotfridus Vit-erbiensis)의 ‘연대기'(Chron.). p.366, e Vers.Rufini


     요세푸스는 말하기를 아라비아의 왕인 아레타스와 헤롯 시기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것은 헤롯이 요한에게 저지른 죄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게다가 요세푸스는 그리스도에 대하여서도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무렵 예수라고 하는 한 현인이 있었는데 그를 인간이라고 불러도 좋을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그는 수많은 이적을 행했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교사였기 때문이다. 그에게로 유대인 뿐만 아니라 많은 이방인들이 나아왔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그런데 빌라도는 유대나라 요인(要人)들의 고소에 못이겨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하도록 법령을 적용시켰다. 그런데 그를 처음부터 추종하던 사람들은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받은 많은 선지자들이 그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할 것이며 수많은 이적들을 행하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예언대로 그가 다시 3일만에 부활하여 그들 앞에 실제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더우기 그의 명성과 또한 그의 이름을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무리들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주후 1360년경 니케보루스 칼리투스(Nicephorus Callistus)의 ‘교회사'(Hist. Eccels.) 제1권 p.90, 91)


     분봉왕이었던 헤롯에 관하여서는 성경의 복음서 뿐만 아니라진리를 사랑한 사람이었던 요세푸스에 의해서도 증거되고 있다. 요세푸스는 그의 동생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에 관하여서도 언급을 하고 있는데, 그녀의 남편이 아직 살아 있었는데도 그녀를 취하고 그녀와 결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헤롯은 페트라 아라비아(Petrean Arabians)의 왕 아레타스(Aretas)의 딸이었던합법적인 전처와는 이혼을 하고 헤로디아와 재혼하여 살았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헤롯은 세례 요한을 살해하였으며 또한 딸이 치욕스럽게 되어 버린데 대해 분개한 아레타스와 전쟁을 치렀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자면 이 전쟁에서 헤롯의 군대는전패하고 말았는데, 이러한 패배는 세례 요한에 대한 최악의 부당한 처형이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요세푸스는 이에 덧붙여 말하기를 세례 요한이 매우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더욱이 그는 세례에 관하여서도 언급을 하는데 이 내용은 복음서 내용과 일치가 되는 것이다. 요세푸스는 또한 헤롯이 이 헤로디아로 인하여 결국 나라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마침내는 그녀와 함께 유배지인 비엔나(Vienna)로 추방을 당하고 말았다.이 비엔나성은 서부 맨 끝에 위치한 곳에서 골(Gaul)과 인접해있는 곳이다.


     주후 1450년경 하르드만누스 스케델리우스( HardmannusSchedelius)의 ‘연대기'(Chron.) p.110


     플라비우스(Flavius)라고 불리우는 유대인 제사장 요세푸스는 유대민족의 제사장인 마티아스(Matthias)의 아들이며 가장존경받는 역사가로서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확실히 선한사람이었으며 훌륭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리스도를 극찬했던 사람이었다.


    주후 1480년경 플라티나(Platina)의 ‘교황들의 생애'(VitisPontificum)그리스도편(in Christo)


     저자는 사가랴(Zachorias)의 아들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던 그의 나이 30세가 될 때까지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하여서는 언급을 피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복음서나 서신서 뿐만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의 양식이나 행적 또는 사역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책들까지도 공생애 기간 동안에 행한 그리스도의 탁월하고도 거룩한 삶에 대하여서 충분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20권으로 된 그의 저서 ‘유대고대사’를 헬라어로 기록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디베료 황제(theemperor Tiberius)의 정부에 관하여까지 언급을 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당시엔 그를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예수라고 하는 한 현인이 있었다. 그는 수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며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교사였다.이러한 이유로 유대인이나 이방인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그에게로 나아왔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그런데 빌라도는 유대민족의 요인들의 선동에 자극을 받아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고말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를 추종하던 무리들은 그리스도를저버리지 않았다. 또한 그리스도는 하느님께로부터 영감을 받은 선지자들이 수많은 이적들에 대하여 예언했던 대로 사흘만에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 또한 그의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리들이 지금까지도 현존하고 있다. 이 요세푸스는 세례 요한이 진정한 선지자였으며 또한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고기록하면서 그가 그리스도가 죽기 얼마 전 대헤롯(Herd thegreat)에 의해 마케루스(Macherus)성에서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가 요한을 살해했던 것은 그가 자신이나자신의 왕국에 위협적인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인물인 그의 동생 빌립(Philp)의 아내이자 아그립바(Agrippa)의누이인 헤로디아에게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여 그녀와 결혼한것을 세례 요한이 비난했기 때문이라고 요세푸스는 기록하고있다.


     주후 1480년경 트리데미우스 아바스(Trithemius Abbas)의 ‘교회의 역사가'(Scriptor. Eccles.)


     유대인 요세푸스는 계속해서 유대인으로 남아있기를 원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을 자주 칭찬하고 있다. 또한 그의 저서인 ‘유대고대사’ 제 18권에서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유명한 증언을 기록하고 있다.


    전술한 증거


     1


    위에서 언급했던 여러 저자들의 요세푸스의 저서에 관한 인용문들을 살펴보면 그 문체가 요세푸스가 그의 저서 ‘유대고대사’에서 기록한 문체와 동일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세례자 요한과 의인 야고보에 과한 인용문의 문체가 요세푸스의 것과 일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의 문체도 일치되고 있다는 사실에 아무도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2


     이러한 증언들이 요세푸스에 의해 명백하게 기록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들만 요세푸스가 전부 생략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세례 요한과 의인야고보에 관하여 요세푸스가 매우 극찬을 하며 존경하는 어조로증언을 했다고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도 이보다 더한 지대한 존경과 경의에 찬 것이 아닐 수 없는것이다. 왜냐하면 나사렛 예수의 선구자로서 온 세례 요한에게지극한 존경심을 표했던 요세푸스가 예수 그리스도를 극찬하지않았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은 나사렛 예수를 참 메시야, 즉 구주로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나중에 그 제자들은 예수의 제자가 되었던 것이 사실인데 어떻게 요세푸스가 이 예수를 극찬하지 않았겠는가? 더욱이 그리스도가 태어나서 살다가 돌아가신 바로 그 나라에 그것도 예수께서 살던 시대 바로 얼마후에 이 요세푸스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칭찬을 아껴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더우기 이 요세푸스는 의인인 야고보를 칭찬하고 있는데 어떻게제자인 야고보는 호평하면서도 그의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존경을 표하지 않았겠는가? 이것은 말이 맞지 않은 소리이다.’유대고대사’의 사본에 기록된 요세푸스의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가짜라고 주장하는 최근의 여러 학자들 중에서 가장현명하고도 박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이티기우스(Itt-igius)의 주장을 한번 들어보도록 하자.

     “혹자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선구자인 세례 요한이나 그리스도의 제자인 야고보에 관하여 요세푸스가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며 나에게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또한 만일 요세푸스가 그리스도에 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는 결코 훌륭한 역사가가 될 수 없다고 나의 주장에 반대할지라도 모른다. 그러나 물론 나도 요세푸스가 그리스도에 관하여 전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아니 더 사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요세푸스가 그리스도에 관해 언급을 할 때에 그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 사실임을 인정한다. 우리는 오늘날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지니고 있는 뿌리깊은 증오심에 기초하여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증오심은 사도들이 날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한 이적들을 통하여 그들 유대인에게 거룩한 두려움을 심어준데 대한 반발로써지니게 된 것이다.”


     3


     그리스도에 대한 요세푸스의 증언 가운데 유명한 한 구절이있다. 즉 ‘이 사람은 그리스도였다. 혹은 유일의 그리스도였다’라는 이 구절의 뜻은 이 예수라는 사람이 ‘하느님의 그리스도’라든지 ‘유대인의 참 메시야’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붙인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빼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한 이 예수라는 사람은 그의 추종자들이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모든 세상 사람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이상의 사실이 명백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 근거로써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1) 요세푸스가 유대고대사를 저술한 대상인 헬라인이나 로마인들은 이상의 뜻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 단어들을 이해할수밖에 없다. 메시야가 곧 그리스도이며 하느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이며, 또한 하느님이 백성들에게 그가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대인이나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메시야라는 뜻의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쉽게 이해했을지 모르나, 이미 언급한 대로 요세푸스는 이 책에서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기록했다기 보다는 이러한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는 로마인이나 헬라인들은 유대나라에 예수 크레스트(Jesus Chrest), 혹은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라고 불리우는 한 유명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종파를 형성하였으며 그사람들은 예수의 뒷이름인 그리스도를 따라 그리스도인(Chr-itians), 혹은 그레스도인(Chrestians)이라고 어디에서나 불리웠다. 그들은 단지 이전의 의미에서만 요세푸스의 이러한 낱말들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며, 또한 요세푸스도 그들이 이러한의미로 이해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을 썻을 것으로 믿어진다.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가운데에 히브리 낱말인 ‘메시야’를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헬라어인 ‘그리스도’도 그의 저서 가운데서 찾아볼 수 없다.


     (2) 요세푸스는 그의 증언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그리스도’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그 그리스도가 참메시야라든가 혹은 하느님의 그리스도라든가 하는 등의 의미를담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름이’그리스도’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사실만을 언급함으로써 그가 어떤뜻으로 이러한 표현을 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요세푸스는 더욱이 이같은 그의 의도를 그리스도의 이름을 언급한 다른 구절에서 분명히 드러내 보이는 듯하다. 즉 그는 아나누스에의해 야고보가 고소된 장면을 언급하면서 야고보를 예수의 형제라고 부른다. 참 메시야나 참 그리스도이신 예수가 아니라’그리스도라고 불리워진 ‘ 예수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3) 요세푸스가 스스로 이 저서에서 자신이 예수를 메시야로믿는 신자 혹은 그리스도인임을 선포한다는 것은 그의 의도와는아주 거리가 멀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가 그러한 의도를 지니고있었더라면 ‘그리스도’라는 낱말의 의미를 그의 헬라와 로마의독자들에게 틀림없이 설명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리스도에대하여 보다 충분하고도 상세한 설명을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 그러한 선포를 한다는 것은 헬라인에게나 로마인에게 그와 그의 저서, 그리고 그의 조국인 유대나라에 대한 호감을 결코 주지 못한 일이었다. ‘유대고대사’를 보면 요세푸스가헬라인들이나 로마인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데 그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선포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4) 요세푸스의 역사 서술의 방식은 사실들에 대하여 그리고남의 견해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기술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고있으며 자기의 견해를 직접적으로 피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같은 사실은 그의 저서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금방 알 수가 있다. 특히 세례 요한과 의인 야고보에 관한 기록 부분은 더욱그러하다. 그러므로 저자의 해석 방법은 요세푸스의 서술 방식과도 매우 일치되는 아주 적합한 방법이다.


     (5) 요세푸스의 저술을 인용한 매우 일치되는 아주 적합한 방법이다. 예외도 없이 공통적으로 이 구절을 저자처럼 해석하고있다. 그리고 이 고대 저술가들은 이 책이 요세푸스에 의해 기록된 장본인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를 여전히 불신자 유대인이요 비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한다. 제롬은 요세푸스가 이같은 표현으로일반적 견해 이상의 것을 의미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의미상으로 해석하는 제롬 특유의 해석방법을 발휘하여 이 구절은 라틴어로 Credebatur esse Chr-istus, 즉 ‘그는 그리스도라고 믿어졌다’라고 해석하였다. 이것도 빌라도가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 예수'(This is Jesus,The King of the Jews)(마 27:31)라고 써붙였다고 해서 그를예수로 믿는 신자로 볼 수는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사실상 빌라도는 이같은 표현을 스스로 해명하였다.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마 27:17, 22). 만일 요세푸스의 이같은 증언을 보고 요세푸스가 자신을 그리스도는 참 메시야로 믿는 신자로 선포한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그것은 빌라도가 십자가 위에 쓴 죄패를 보고 그가 자신을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참왕으로 믿는 신자’로써 선포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4


     설사 요세푸스가 여기에서는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을지라도 그가 만일 그 당시에 있던 유대 나사렛파(Jewish Nazarenes)나 혹은 나사렛 예수를 인간 이상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를 참 메시야로 믿었던 에비온파(Ebionites)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면 요세푸스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주장했던 모든 사실들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인류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모세의 의식법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는데, 예수를 참 메시야로 믿는 것과 이 모세의 의식법을 지키는것이 비록 그들이 1세기|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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