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 묵조선

7. 看話禪 과 黙照禪


선사상이 발전하였던 송나라 시대의 선종의 특징은 첫번째로, 이 시기에 不立文字 見性成佛 등의 사상이 확립되었고, 두번째로 법맥을 전하는 표시인 전등을 존중하는 사상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선원에서만이 아니라 승려들의 생활이 일반적으로 선종의 청규를 의지하게 되었고, 네번째로서 불립문자의 가풍속에서 일반적으로는 선시,선문학등이 왕성하게 유행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섯번째로는 선사상의 중심적인 흐름이라 할 수 있는 看話禪과 黙照禪이 대립하여 서로 비판하며 공박하는 양상을 띄었다는 것인데, 이제 여기서는 서로 대립하였던 看話禪과 黙照禪의 관계를 보도록 하려고 한다.70>




1) 묵조선(黙照禪) 


黙照禪은 송대의 曹洞宗에서 祖師禪의 정신을 坐禪의 실천으로 새롭게 체계화하여 전개시킨 것이다. 黙照禪의 대표적 인물로서는 굉지정각(宏智正覺)을 들 수 있으며, 黙照禪에서의 묵(黙)은 묵묵히 좌선하는 것이요, 조(照)는 조용(照溶)으로 심성의 영묘한 깨달음의 작용을 말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黙은 좌선의 실천의 수행을 전개하는 모습으로, 照는 깨달음의 주체인 청정한 불성이 스스로 비추고 있는 것으로 黙照는 바로 수행과 깨달음이 하나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것을 宏智는 「묵조명」에서 “묵묵히 일체의 언어를 끊고 좌선할 때에 불성의 영묘한 작용이 분명히 깨달음의 세계로서 그대로 드러난다… 텅비어 있지만 그 불성의 본체는 영묘히 작용하고 있다. 영묘히 작용하여 깨달음의 세계를 비추며, 깨달음의 세계는 언어와 분별을 초월하고 있다… 깨달음의 세계는 묵묵히 좌선하는 그곳에 있으며… 묵묵히 좌선할 때에 삼라만상이 모두 광명을 놓아 설법하고 저들이 각각 증명하고 각자가 문답을 한다. 그러한 문답과 증명은 잘 맞아 하나가 되어 상응될 때, 깨달음으로 비춘 세계(照)에 좌선(黙)이 없으면 곧 미혹하게 되버린다… 黙照의 이치가 원만할 때 연꽃이 피고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라고 한다.


또한 宏智語錄에 보면 黙照禪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坐禪하고 있는 사람은 修行도 깨달음도 없다. 그는 汚染되지 않고 청정하다. 본래 지혜의 빛은 위로부터 비추어 공의 세계에 작용하여 근원적인 깨달음의 지혜의 작용에 응하여 공의 세계에 그대로 비추어 주고 있는데, 이때에 차별심이 없어지면 깨달음(黙照)의 세계가 된다. 이렇게되면 언제 어디서나 부처의 세계를 현출(現出)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黙照禪은 수증불이(修證不二 : 깨달음과 수행은 둘로 나뉘지 않는다)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좌선에만 매이는 선승들의 경향을 낳게 된다.  그리하여 대혜(大慧)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71>




2)간화선(看話禪) 


看話禪은 송(宋)대에 정통적인 禪의 계승이라 할 수 있는 黙照禪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입장에서 선 실천적인 禪 思想이라 하겠다. 看話禪의 대표적인 인물로서는 大慧宗姑가 있다. 대혜(大慧)는 잘못된 묵조고좌선(黙照姑坐禪)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선의 입장인 看話를 부각시켰다. 看話는 옛 조사들이 깨닫게 된 기연(機緣;因緣)인 공안(公案)을 참구하는 새로운 禪 수행의 방법이다. 公案은 법칙의 조문(條文)을 말하는 것으로, 「산방야화(山房夜話)」에서 보면 “公은 천하의 사람들을 깨달음의 길로 가게하는 가르침(理致)요, 案은 깨달은 이치로 나아가는 올바른 방법이다.”라고 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公案을 참구하는 것은 그 公案이 타파되기 전까지는 계속 公案과 대결해야 한다. 그리하여 생사의 윤회에서 해탈한 三昧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大慧가 인용하는 公案의 대표적인 것은 ‘무(無)’이다. 이것은 조주(趙州)가 사용한 말로써, 大慧는 이 글자로 인하여 문자 가운데서 증거를 찾으려 해서도 안되며, 일체의 분별심,차별심을 억누르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無’라는 화두(公案)을 참구하라고 한다. 이러한 公案은 자기의 심지를 개발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趙州의 ‘無’자 公案을 참구하도록 강조한 것은 5조 법연(法然)에서부터이다. 法然에 이어서 大慧가 이러한 ‘無’字를 참구하라고 하였고, 이러한 公案禪은 大慧이후에 새로운 公案禪으로서의 실천을 형성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무문혜개(無門慧開)의 「무문관(無門關)」으로 완성된 看話禪이다. 大慧가 주장한 趙州의 ‘無’字公案은 참선 수행의 中心이 되고 있다. 無門이 편집한 「無門關」48원칙의 公案중에 趙州의 無字 公案을 제1칙에 싣고 있음은 그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겠다. 사실상 48칙의 公案은 趙州無字 公案 1칙의 전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무문관의 제1칙을 살펴보자면, “참선은 마땅히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며, 절묘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보통의 심의식(心意識)을 완전히 끊어야 한다… 趙州의 無字 公案이 선종의 제일 관문이며, 이것을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 관문을 뚫는다면 역대 祖師들과 같은 안목으로 법을 본다… 그러나 이 無字 公案을 참구하여 밤낮으로 이 문제를 집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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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7. 看話禪 과 黙照禪

    선사상이 발전하였던 송나라 시대의 선종의 특징은 첫번째로, 이 시기에 不立文字 見性成佛 등의 사상이 확립되었고, 두번째로 법맥을 전하는 표시인 전등을 존중하는 사상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선원에서만이 아니라 승려들의 생활이 일반적으로 선종의 청규를 의지하게 되었고, 네번째로서 불립문자의 가풍속에서 일반적으로는 선시,선문학등이 왕성하게 유행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섯번째로는 선사상의 중심적인 흐름이라 할 수 있는 看話禪과 黙照禪이 대립하여 서로 비판하며 공박하는 양상을 띄었다는 것인데, 이제 여기서는 서로 대립하였던 看話禪과 黙照禪의 관계를 보도록 하려고 한다.70>


    1) 묵조선(黙照禪) 

    黙照禪은 송대의 曹洞宗에서 祖師禪의 정신을 坐禪의 실천으로 새롭게 체계화하여 전개시킨 것이다. 黙照禪의 대표적 인물로서는 굉지정각(宏智正覺)을 들 수 있으며, 黙照禪에서의 묵(黙)은 묵묵히 좌선하는 것이요, 조(照)는 조용(照溶)으로 심성의 영묘한 깨달음의 작용을 말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黙은 좌선의 실천의 수행을 전개하는 모습으로, 照는 깨달음의 주체인 청정한 불성이 스스로 비추고 있는 것으로 黙照는 바로 수행과 깨달음이 하나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것을 宏智는 「묵조명」에서 “묵묵히 일체의 언어를 끊고 좌선할 때에 불성의 영묘한 작용이 분명히 깨달음의 세계로서 그대로 드러난다… 텅비어 있지만 그 불성의 본체는 영묘히 작용하고 있다. 영묘히 작용하여 깨달음의 세계를 비추며, 깨달음의 세계는 언어와 분별을 초월하고 있다… 깨달음의 세계는 묵묵히 좌선하는 그곳에 있으며… 묵묵히 좌선할 때에 삼라만상이 모두 광명을 놓아 설법하고 저들이 각각 증명하고 각자가 문답을 한다. 그러한 문답과 증명은 잘 맞아 하나가 되어 상응될 때, 깨달음으로 비춘 세계(照)에 좌선(黙)이 없으면 곧 미혹하게 되버린다… 黙照의 이치가 원만할 때 연꽃이 피고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라고 한다.

    또한 宏智語錄에 보면 黙照禪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坐禪하고 있는 사람은 修行도 깨달음도 없다. 그는 汚染되지 않고 청정하다. 본래 지혜의 빛은 위로부터 비추어 공의 세계에 작용하여 근원적인 깨달음의 지혜의 작용에 응하여 공의 세계에 그대로 비추어 주고 있는데, 이때에 차별심이 없어지면 깨달음(黙照)의 세계가 된다. 이렇게되면 언제 어디서나 부처의 세계를 현출(現出)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黙照禪은 수증불이(修證不二 : 깨달음과 수행은 둘로 나뉘지 않는다)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좌선에만 매이는 선승들의 경향을 낳게 된다.  그리하여 대혜(大慧)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71>


    2)간화선(看話禪) 

    看話禪은 송(宋)대에 정통적인 禪의 계승이라 할 수 있는 黙照禪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입장에서 선 실천적인 禪 思想이라 하겠다. 看話禪의 대표적인 인물로서는 大慧宗姑가 있다. 대혜(大慧)는 잘못된 묵조고좌선(黙照姑坐禪)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선의 입장인 看話를 부각시켰다. 看話는 옛 조사들이 깨닫게 된 기연(機緣;因緣)인 공안(公案)을 참구하는 새로운 禪 수행의 방법이다. 公案은 법칙의 조문(條文)을 말하는 것으로, 「산방야화(山房夜話)」에서 보면 “公은 천하의 사람들을 깨달음의 길로 가게하는 가르침(理致)요, 案은 깨달은 이치로 나아가는 올바른 방법이다.”라고 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公案을 참구하는 것은 그 公案이 타파되기 전까지는 계속 公案과 대결해야 한다. 그리하여 생사의 윤회에서 해탈한 三昧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大慧가 인용하는 公案의 대표적인 것은 ‘무(無)’이다. 이것은 조주(趙州)가 사용한 말로써, 大慧는 이 글자로 인하여 문자 가운데서 증거를 찾으려 해서도 안되며, 일체의 분별심,차별심을 억누르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無’라는 화두(公案)을 참구하라고 한다. 이러한 公案은 자기의 심지를 개발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趙州의 ‘無’자 公案을 참구하도록 강조한 것은 5조 법연(法然)에서부터이다. 法然에 이어서 大慧가 이러한 ‘無’字를 참구하라고 하였고, 이러한 公案禪은 大慧이후에 새로운 公案禪으로서의 실천을 형성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무문혜개(無門慧開)의 「무문관(無門關)」으로 완성된 看話禪이다. 大慧가 주장한 趙州의 ‘無’字公案은 참선 수행의 中心이 되고 있다. 無門이 편집한 「無門關」48원칙의 公案중에 趙州의 無字 公案을 제1칙에 싣고 있음은 그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겠다. 사실상 48칙의 公案은 趙州無字 公案 1칙의 전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무문관의 제1칙을 살펴보자면, “참선은 마땅히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며, 절묘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보통의 심의식(心意識)을 완전히 끊어야 한다… 趙州의 無字 公案이 선종의 제일 관문이며, 이것을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 관문을 뚫는다면 역대 祖師들과 같은 안목으로 법을 본다… 그러나 이 無字 公案을 참구하여 밤낮으로 이 문제를 집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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