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아 완성을 위한 수련방법
(1) 성경신의 실천도덕
東學에서 守心正氣가 侍天主의 요체라고 한다면 誠․敬․信은 守心正氣하는 구체적인 수행 방법이다. 수운은 「동경대전」“논학문”에서 “우리 道는 그리 저절로 되는 것이니, 하늘 造化의 참된 그 마음을 고이고이 삼가지켜 이를 공경하고 믿음으로써 그 기운을 바로하며, 그 덕성을 좇고 그 가르침을 받으면 되는 것이 자연한 가운데서 나오는 법이다.”고 하여 侍天主의 신앙 태도로서 誠․敬․信을 매우 강조하였다.1)
誠敬은 靈符나 造化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의 병에 써 보았더니 어떤 사람은 낫고 어떤 사람은 낫지 않았다.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 원인을 잘 살펴보니 정성을 다하여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사람은 번번이 효력이 있고 도덕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조리 효력이 없었다. 이것은 영부를 받는 사람의 성경에 달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2)
이렇게 그 사람의 誠敬에 따라 그 효력은 차이가 있다. 이런 誠敬은 어떤 윤리적인 誠敬이 아니라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는 절대적 존재에게 순종하는 유한자의 태도를 말하는 종교적 誠敬이다.
“오는 사람 曉諭해서 三七字 전해주니 無爲而化 아닐런가”3)
이렇게 ‘한울님’의 섭리에 따라 무리없이 잘 조화된 하나의 세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誠敬을 다하여 ‘한울님’을 모셔야 한다. 誠․敬․信의 실천윤리를 잘 지켜 내면 無極大道를 얻고 君子가되어 道成德立할 수 있다고 東學은 강조하였다. 이 誠․敬․信은 ‘한울님’을 모시는 올바른 태도인 동시에 수도의 방법을 가리킨 것이다.4)
‘한울님’을 잘 모실 수 있는 글이 곧 三七字(21字)로 된 呪文이다.
(2) 주문과 영부
수운은 1860년 4월 5일에 天道를 받았다. 이것은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뜻이다.
“나로부터 이 靈符를 받아 사람들을 질병으로부터 구해 내고 나로부터 呪文을 받아 사람들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여라! 그러면 너도 長生하여 천하에 포덕하게 될 것이다.”5)
수운은 ‘한울님’으로부터 직접 靈符와 呪文을 받았다. 그는 이 靈符를 받아 스스로 먹어보고 다른 사람에게 시험해 보았다. 처음에는 불사약(不死藥)이라고 할 정도로 효능이 있었으나, 후에는 ‘한울님’께 대한 지극한 정성이 없으면 효능이 없다고 하였다. 즉 靈符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울님’에 대한 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靈符와 呪文이 조화를 부릴 수 있는 같은 것으로 여겼으나, ‘한울님’께 대한 공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뒤에는 주문에 대한 생각을 달리했다. 呪文은 그 차제로 효능이 있는 어떤 呪術的인 것이 아니라 ‘한울님’을 위한 글이며, 이 글을 통해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기 때문에 어떤 효능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믿게 되었다.6)
수운은 처음에 呪文을 받았다고 말하고 뒤에는 呪文을 지었다고 말한다. 이것으로 보아 呪文의 내용이 어느 정도 수정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초기의 呪文은 청원을 목적으로 한다. 이때의 呪文은 ‘天靈을 몸에 내리게 하는 글’(降靈之文)이었다. 그런데 靈符는 바로 이 降靈의 경지에서만 백지에 도가 그려낼 수 있다. 이렇게 呪文이야말로 造化를 부릴 수 있게 하고 靈符도 만들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것이다.7) 降靈을 위해서는 呪文을 마음속으로 읽기보다 입으로 외우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여, 심독보다는 음률이 따르는 구속을 시켰다.
차츰 수운은 降靈보다 ‘한울님’의 覺得을 강조하였다. 呪文은 ‘한울님을 위한 글’(至爲天主之字)이라고 믿었다. 이때의 구송은 초기와는 달리 어떤 직접적인 실제의 목적이 아니라 심적인 태도를 확립하기 위한 구송이었다.
그러나 청원을 주로 하는 초기에 있어서도, 覺得을 추구하던 후기에 있어서도 呪文은 변함없이 종교적인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呪文의 내용상 변화는 초학주문과 본주문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8)
“爲天主顧我情 永世不忘萬事宜”
여기서 ‘한울님을 위한다는 말은 제물을 갖춘 제사와 같은 어감이 풍긴다. “내사정을 돌봐 주신다”는 말 역시 어떤 물질적인 청원이 나타난다.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수운은 조화를 無爲而化로 해석했다. 無爲而化는 ‘한울님’의 무한한 德化, 즉 ‘한울님’의 섭리다. 이러한 섭리를 체득한다는 것은 어떤 물적 체득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만사가 저절로 깨달아진다는 말이 주목된다. 여기에 종교의 목적을 진리의 각득에 두고 있다는 것이 잘 나타난다.
이렇게 誠敬으로 呪文을 구송하는 東學의 수행 목적은 救靈이나 祈福이 아니라, 인간 개조에 있다. 즉 모든 사람이 도를 얻어 군자․성인이 되어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상적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다.

2) 자아 완성을 위한 수련방법
(1) 성경신의 실천도덕
東學에서 守心正氣가 侍天主의 요체라고 한다면 誠․敬․信은 守心正氣하는 구체적인 수행 방법이다. 수운은 「동경대전」“논학문”에서 “우리 道는 그리 저절로 되는 것이니, 하늘 造化의 참된 그 마음을 고이고이 삼가지켜 이를 공경하고 믿음으로써 그 기운을 바로하며, 그 덕성을 좇고 그 가르침을 받으면 되는 것이 자연한 가운데서 나오는 법이다.”고 하여 侍天主의 신앙 태도로서 誠․敬․信을 매우 강조하였다.1)
誠敬은 靈符나 造化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의 병에 써 보았더니 어떤 사람은 낫고 어떤 사람은 낫지 않았다.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 원인을 잘 살펴보니 정성을 다하여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사람은 번번이 효력이 있고 도덕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조리 효력이 없었다. 이것은 영부를 받는 사람의 성경에 달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2)
이렇게 그 사람의 誠敬에 따라 그 효력은 차이가 있다. 이런 誠敬은 어떤 윤리적인 誠敬이 아니라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는 절대적 존재에게 순종하는 유한자의 태도를 말하는 종교적 誠敬이다.
“오는 사람 曉諭해서 三七字 전해주니 無爲而化 아닐런가”3)
이렇게 ‘한울님’의 섭리에 따라 무리없이 잘 조화된 하나의 세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誠敬을 다하여 ‘한울님’을 모셔야 한다. 誠․敬․信의 실천윤리를 잘 지켜 내면 無極大道를 얻고 君子가되어 道成德立할 수 있다고 東學은 강조하였다. 이 誠․敬․信은 ‘한울님’을 모시는 올바른 태도인 동시에 수도의 방법을 가리킨 것이다.4)
‘한울님’을 잘 모실 수 있는 글이 곧 三七字(21字)로 된 呪文이다.
(2) 주문과 영부
수운은 1860년 4월 5일에 天道를 받았다. 이것은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뜻이다.
“나로부터 이 靈符를 받아 사람들을 질병으로부터 구해 내고 나로부터 呪文을 받아 사람들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여라! 그러면 너도 長生하여 천하에 포덕하게 될 것이다.”5)
수운은 ‘한울님’으로부터 직접 靈符와 呪文을 받았다. 그는 이 靈符를 받아 스스로 먹어보고 다른 사람에게 시험해 보았다. 처음에는 불사약(不死藥)이라고 할 정도로 효능이 있었으나, 후에는 ‘한울님’께 대한 지극한 정성이 없으면 효능이 없다고 하였다. 즉 靈符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울님’에 대한 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靈符와 呪文이 조화를 부릴 수 있는 같은 것으로 여겼으나, ‘한울님’께 대한 공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뒤에는 주문에 대한 생각을 달리했다. 呪文은 그 차제로 효능이 있는 어떤 呪術的인 것이 아니라 ‘한울님’을 위한 글이며, 이 글을 통해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기 때문에 어떤 효능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믿게 되었다.6)
수운은 처음에 呪文을 받았다고 말하고 뒤에는 呪文을 지었다고 말한다. 이것으로 보아 呪文의 내용이 어느 정도 수정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초기의 呪文은 청원을 목적으로 한다. 이때의 呪文은 ‘天靈을 몸에 내리게 하는 글’(降靈之文)이었다. 그런데 靈符는 바로 이 降靈의 경지에서만 백지에 도가 그려낼 수 있다. 이렇게 呪文이야말로 造化를 부릴 수 있게 하고 靈符도 만들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것이다.7) 降靈을 위해서는 呪文을 마음속으로 읽기보다 입으로 외우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여, 심독보다는 음률이 따르는 구속을 시켰다.
차츰 수운은 降靈보다 ‘한울님’의 覺得을 강조하였다. 呪文은 ‘한울님을 위한 글’(至爲天主之字)이라고 믿었다. 이때의 구송은 초기와는 달리 어떤 직접적인 실제의 목적이 아니라 심적인 태도를 확립하기 위한 구송이었다.
그러나 청원을 주로 하는 초기에 있어서도, 覺得을 추구하던 후기에 있어서도 呪文은 변함없이 종교적인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呪文의 내용상 변화는 초학주문과 본주문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8)
“爲天主顧我情 永世不忘萬事宜”
여기서 ‘한울님을 위한다는 말은 제물을 갖춘 제사와 같은 어감이 풍긴다. “내사정을 돌봐 주신다”는 말 역시 어떤 물질적인 청원이 나타난다.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수운은 조화를 無爲而化로 해석했다. 無爲而化는 ‘한울님’의 무한한 德化, 즉 ‘한울님’의 섭리다. 이러한 섭리를 체득한다는 것은 어떤 물적 체득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만사가 저절로 깨달아진다는 말이 주목된다. 여기에 종교의 목적을 진리의 각득에 두고 있다는 것이 잘 나타난다.
이렇게 誠敬으로 呪文을 구송하는 東學의 수행 목적은 救靈이나 祈福이 아니라, 인간 개조에 있다. 즉 모든 사람이 도를 얻어 군자․성인이 되어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상적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