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으로된 횡적 탕감복귀시대

   Ⅵ. 종으로된 횡적 탕감복귀시대


 위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같이 복귀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은 종적인 탕감조건을 모두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섭리역사가 연장될수록 복귀섭리를 담당하는 후대의 인물이 세워야 할 횡적인 탕감조건은 점점 더 늘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는 복귀섭리를 처음으로 시작하던 때였으므로 종적인 탕감조건은 아직 생기지 않았었다.     


 따라서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는 가인과 아벨이 ‘상징헌제’를 하는 것과,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굴복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서 ‘실체기대’를 하는 것으로써, 단순하게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도, 그들이 상징과 실체의 두 헌제를 하는 기간으로써 탕감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아담이후의 믿음을 세우는 중심인물들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바로 위에서 논한 바 12, 4, 21, 40 등의 각 수를 복귀하는 수리적인 탕감기간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은, 아담가정의 헌제실패로 말미암아 복귀섭리의 기간이 연장됨으로써, 그 수리적인 탕감기간들이 종적인 탕감조건으로 남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아는 그 탕감조건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될 입장이기 때문에, 그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들로서 방주 짓는 기간 120년, 홍수심판 40일, 비둘기를 4차 내보내기 위하여 세웠던 7일씩 3차를 합한 21일기간(창세기 7장 4절, 창세기 8장 10절, 창세기 8장 12절),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후 비둘기를 내보낼 때까지의 40일기간 등을 찾아 세워야 했던 것이다(창세기 8장 6절).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노아가 찾아 세웠던 이러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들은 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어, 그것들은 다시 종적인 탕감조건으로 남아지게 되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그 기간들을 다시 ‘상징헌제’로써 한꺼번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역시 ‘상징헌제’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 기간들을 탕감복귀하지 못하였었다. 그러므로 이 기간들을 다시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써 복귀하기 위하여, 뜻 성사를 이삭과 야곱에로 연장시켜 가면서 12, 4, 21, 40의 각 수에 해당하는 탕감기간들을, 다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 그가 하란에서 떠난 후 야곱이 떡과 팥죽으로써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을 때까지의 120년, 그리고 그 때로부터 야곱이 이삭에게 장자권의 축복을 받고 하란으로 가는 도중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창세기 28장 10~14절)까지의 40년, 또 그때로부터 하란에서에 고역을 마치고 처자와 재물을 취해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21년(창세기 31장 41절),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뒤 팔려간 요셉을 찾아서 애급으로 들어갈 때까지의 40년 등은 모두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들이었다. 이와 같이 종으로 된 횡적 탕감복귀기간의 년수가 결정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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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으로된 횡적 탕감복귀시대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Ⅵ. 종으로된 횡적 탕감복귀시대

     위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같이 복귀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은 종적인 탕감조건을 모두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섭리역사가 연장될수록 복귀섭리를 담당하는 후대의 인물이 세워야 할 횡적인 탕감조건은 점점 더 늘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는 복귀섭리를 처음으로 시작하던 때였으므로 종적인 탕감조건은 아직 생기지 않았었다.     

     따라서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는 가인과 아벨이 ‘상징헌제’를 하는 것과,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굴복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서 ‘실체기대’를 하는 것으로써, 단순하게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도, 그들이 상징과 실체의 두 헌제를 하는 기간으로써 탕감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아담이후의 믿음을 세우는 중심인물들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바로 위에서 논한 바 12, 4, 21, 40 등의 각 수를 복귀하는 수리적인 탕감기간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은, 아담가정의 헌제실패로 말미암아 복귀섭리의 기간이 연장됨으로써, 그 수리적인 탕감기간들이 종적인 탕감조건으로 남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아는 그 탕감조건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될 입장이기 때문에, 그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들로서 방주 짓는 기간 120년, 홍수심판 40일, 비둘기를 4차 내보내기 위하여 세웠던 7일씩 3차를 합한 21일기간(창세기 7장 4절, 창세기 8장 10절, 창세기 8장 12절),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후 비둘기를 내보낼 때까지의 40일기간 등을 찾아 세워야 했던 것이다(창세기 8장 6절).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노아가 찾아 세웠던 이러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들은 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어, 그것들은 다시 종적인 탕감조건으로 남아지게 되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그 기간들을 다시 ‘상징헌제’로써 한꺼번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역시 ‘상징헌제’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 기간들을 탕감복귀하지 못하였었다. 그러므로 이 기간들을 다시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써 복귀하기 위하여, 뜻 성사를 이삭과 야곱에로 연장시켜 가면서 12, 4, 21, 40의 각 수에 해당하는 탕감기간들을, 다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 그가 하란에서 떠난 후 야곱이 떡과 팥죽으로써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을 때까지의 120년, 그리고 그 때로부터 야곱이 이삭에게 장자권의 축복을 받고 하란으로 가는 도중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창세기 28장 10~14절)까지의 40년, 또 그때로부터 하란에서에 고역을 마치고 처자와 재물을 취해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21년(창세기 31장 41절),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뒤 팔려간 요셉을 찾아서 애급으로 들어갈 때까지의 40년 등은 모두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들이었다. 이와 같이 종으로 된 횡적 탕감복귀기간의 년수가 결정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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